▒ 한산의역사 ▒

1908년 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한국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 파견 및 한국 황제의 양위와 한일협정 체결시 한산에서 일어난 사건들.

천하한량 2007. 1. 9. 17:58

기수(機受) 제850호 한국 각지의 토적(討賊) 정황에 관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1908년 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한국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 파견 및 한국 황제의 양위와 한일협정 체결 1건 


발신일: 1908-04-01 
수신일: 1908-04-01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270호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평안남도(平安南道) 삼등(三登)수비대의 일부는 3월 14일 동 지역 동북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약 80명의 적(賊)을 야습하였다. 그 중 7명은 사살하고 4명에게는 부상을 입혔으며 소총 5정을 노획하였다. 또 영원(寧遠)수비대는 같은 날 희천(熙川) 동북으로 약 2리 떨어진 곳에서 약 60명의 적(賊)을 공격하여 이를 궤란(潰亂)시켰다. 적(賊)의 사망자는 6명, 부상자는 10여 명. 노획품은 소총 5정, 창 1개. 


2.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수비대 대장 카네모토(金本) 중위가 인솔한 토벌대는 3월 17일 동 지역 서북방으로 약 5리 반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250명과 조우(遭遇)하여 이를 궤란(潰亂)시켰다. 적(賊)의 사망자는 26명, 부상자는 10여 명. 노획품은 소총 16정, 기타 잡품 약간. 아군 1명 부상을 입음.탁영태(濯纓台) 정지(停止) 척후는 18일 동 지역 북방으로 1리 반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60명을 공격하였다. 그 중 4명은 사살하고 6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소총 1정을 노획하였다.온정원(溫井院)수비대는 23일 동 지역 서북방으로 3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100명을 공격하고 고전 끝에 그 중 32명을 사살하고 나머지는 궤란(潰亂)시켰다. 아군 1명이 전사하였다. 


3. 경기도(京畿道) 남양(南陽)수비대의 척후는 3월 20일 동 지역 북방으로 1리 떨어진 곳에서 가옥을 방어하던 적(賊) 14명을 격퇴하였다. 적(賊)의 사망자는 6명, 부상자는 5명. 노획물은 소총 6정, 엽총 2정 기타 잡품 다수.이수두(二水頭)수비대의 일부는 21일 가평(加平) 서방으로 약 12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3명을 사살하고 수괴 박내봉(朴來鳳)을 생포하였다.적성(積城)수비대의 토벌대는 22일 파주(坡州) 동북방으로 약 1리 반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50명을 격퇴하였다. 적(賊)의 사망자는 11명. 노획품은 소총 9정, 잡품 약간. 


4. 강원도(江原道) 양구(楊口)수비대의 일부는 3월 10과 11일 양일에 걸쳐 홍천(洪川) 동방 및 북방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화승총(火繩銃) 14정을 노획하였다. 


5. 충청남도(忠淸南道) 강경(江景)수비대 대장이 인솔한 토벌대는 3월 15일 한산(韓山) 부근에서 적(賊) 약 40명을 포위하여 그 중 24명을 사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소총 2정 기타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6.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부토벌대는 2월 15일부터 29일에 걸쳐 적(賊) 242명을 사살하고 총 43정, 창 42개, 탄약 기타 잡품 다수를 노획하였다.포항(浦項)수비대의 척후는 3월 17일 흥해(興海) 서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20명을 격퇴하였다. 적(賊)의 사상자는 8명.경주(慶州)수비대의 척후는 19일 동 지역 북방으로 약 7리 떨어진 곳에서 약 130명의 적(賊)과 조우(遭遇)하였다. 포항(浦項)수비대의 척후와 협력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그 중 8명을 사살하고 2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소총 2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지례(知禮)수비대의 척후는 19일 동 지역 서남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약150명의 적(賊)을 격퇴하였다. 그 중 5명은 사살하고 약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7. 전라북도(全羅北道) 용담(龍潭)수비대의 척후는 3월 15일 중이곡(中梨谷, 위치 불명)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고 2명을 포획하였다.전주(全州)수비대의 척후는 20일 동 지역 남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30명을 격퇴하였다. 그 중 2명은 사살하고 소총 1정을 노획하였다. 


8.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光州)수비대의 토벌대는 3월 21일 동 지역 서북방으로 약 5리 떨어진 곳에서 파견기병대의 일부와 협력하여 김태원(金泰元)이 지도하는 약 50명의 적(賊)을 공격하였다. 그 중 5명은 사살하고 수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아군 보병 2명 부상. 노획품은 화승총(火繩銃) 4정, 기타 잡품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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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機受) 제1609호 한국 각지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1908년 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한국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 파견 및 한국 황제의 양위와 한일협정 체결 1건 


발신일: 1908-07-08 
수신일: 1908-07-08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01호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남도(咸鏡南道) 방면 
갑산(甲山)수비대는 6월 27일 동 지역 부근에서 적(賊) 2명을, 갑산(甲山) 동북방지구에서 적(賊) 3명을 사살하였다.성진(城津)수비대의 토벌대는 6월 27일 동 지역 부근에서 약 30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6명을 사살하였다.북청(北靑)수비대에서 출동한 중위(中尉) 이하의 토벌대는 6월 29일 동 지역 동남방으로 약 2리 떨어진 곳에서 약 70여 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5명을 사살하였다. 


2. 평안북도(平安北道) 방면 
강계(江界)분서의 순사는 수비병과 함께 6월 14일 적(賊) 2명을 붙잡았다.창성(昌城) 주재 일본인 순사 3명과 한국인 순사 2명은 동 지역 수비대와 함께 6월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삭주(朔州) 군내에서 적(賊) 7명을 붙잡고 총 5정을 압수하였다. 


3. 평안남도(平安南道) 방면 
덕천(德川)수비대의 하사(下士) 이하 7명은 6월 20일 동 지역 서남방으로 약 4리 반 떨어진 곳에서 7명의 적(賊)을 습격하여 이를 궤란(潰亂)시켰다. 총기 3정을 노획하였다.강서(江西)수비대 대장 중위(中尉) 이하 8명은 6월 22일과 23일 양일에 걸쳐 동 지방 토벌에서 적(賊) 1명을 붙잡고, 1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2정,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영원(寧遠)수비대의 병졸 3명은 6월 23일 동 지역 동북방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2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양덕(陽德)수비대는 6월 25일 동 지역 부근에서 적(賊) 3명을 사살하고 총기 2정을 노획하였다. 


4. 황해도(黃海道) 방면 
서흥(瑞興)수비대의 특무조장(特務曹長) 이하 11명은 6월 17일 동 지역 서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3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3정, 연탄(鉛彈) 80발을 노획하였다.신천(信川)수비대는 6월 20일과 22일에 동 지역 남방으로 약 5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붙잡았다. 총기 1정을 노획하였다.신원(新院)분견소의 헌병은 6월 23일 재령(載寧) 동남방으로 약 10리 떨어진 곳에서 약 20명의 적(賊)과 충돌하여 그 중 4명을 사살하였다. 화약,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신계(新溪)수비대의 특무조장(特務曹長) 이하 22명과 순사 3명은 6월 23일 동 지역 서남방으로 약 3리 떨어진 곳에서 약 10명의 적(賊)을 습격하고 그 중 7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2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해주(海州)경찰서의 순사는 6월 27일 해주(海州) 서부에서 총기 10정을 압수하였다. 29일에는 동 지역에서 총기 4정을 압수하고 폭도 7명을 귀순시켰다. 


5. 강원도(江原道) 방면 
홍천(洪川)수비대는 6월 20일과 23일 양일에 걸쳐 동 지역 부근에서 적(賊) 3명을 붙잡았다.진부(珍富)수비대는 6월 23일 동 지역 서북방 4리 떨어진 곳에서 약 100명의 적(賊)을 토벌하였다. 그 중 수괴(首魁) 1명을 붙잡고 13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33정, 탄약,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통천(通川)수비대는 6월 26일 동 지역 부근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강릉(江陵)분서의 순사는 수비병과 협력하여 6월 28일 강릉(江陵) 부근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고 3명을 붙잡았으며 총기 12정을 노획하였다. 


6. 경기도(京畿道) 방면 
경시청 순사는 6월 23일 개성(開城)에서 적(賊) 1명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경성(京城)에서 적(賊) 4명을 붙잡았다.풍덕(豊德)분견대의 상등병 이하 7명은 6월 25일 동 지역 동남방으로 약 3리 반 떨어진 곳에서 약 30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2명을 사살하였다. 총 1정, 기타 약간을 노획하였다.이천(利川)수비대에서 출동한 소위(少尉) 이하 토벌대는 6월 27일 경주(慶州) 남방에서 약 20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5명을 사살하였다. 총기 1정, 창 5개를 노획하였다. 또 같은 수비대의 특무조장(特務曹長)이 인솔한 토벌대는 6월 26일과 27일에 걸쳐 광주(廣州) 남방에서 적(賊) 3명을 사살하고 총기 1정을 노획하였다. 


7. 충청남도(忠淸南道) 방면 
강경(江景)수비대는 6월 18일부터 25일에 걸쳐 강경(江景), 홍산(鴻山), 한산(韓山), 함열(咸悅) 지방 소탕에 종군하여 적(賊) 약 40명을 토벌하였다. 그 중 13명은 사살하고 약간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총기 5정, 화약, 기타 약간을 노획하였다.마천(?川)분견소의 헌병은 6월 27일 동 지역 동북방으로 4리 반 떨어진 곳에서 약 50명의 적과 충돌하여 이를 궤란(潰亂)시켰다. 그 둥 12명은 사살하고 약간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총기 5정, 화약, 기타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공주(公州)수비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6월 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정산(定山) 서남방으로 약 3리 떨어진 곳 및 예산(禮山) 동북방으로 1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약 3명을 사살하였다.온천리(溫泉里)분견소의 헌병 5명은 동 지역 서남방으로 1리 떨어진 곳에서 약 15명의 적(賊)을 격퇴하였다. 적(賊)의 사상자는 불명(월일 불명). 


8. 경상북도(慶尙北道) 방면 
천변(川邊), 안동(安東) 남방으로 2리 반, 지도상에는 없음)분견대 대장 이하 4명이 토벌을 위해 부재중이던 6월 22일 약 30명의 적(賊)이 동 지역을 습격하였다. 아군 잔류병 4명이 이를 격퇴하고 그 중 4명 사살하였다. 


9. 경상남도(慶尙南道) 방면 
함양(咸陽)수비대는 6월 18일부터 22일에 걸쳐 동 지역 서남방 지구를 소탕하였다. 적(賊) 1명을 사살하고 10여 명을 붙잡았다. 더욱이 지리산(智異山)에 올라 적(賊)의 소굴을 파괴하고 화승총(火繩銃) 12정, 기타 약간을 노획하였다.단성(丹城)에서 덕산(德山), 단성(丹城) 서방으로 약 2리 반으로 분견(分遣)된 하사(下士) 이하 8명은 6월 20일 덕산(德山) 서북방으로 2리 반 떨어진 곳에서 10여 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4명을 사살하였다.하동(河東)수비대에서 출동한 중위(中尉) 이하 10명은 6월 27일 동 지역 동북방으로 약 3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3명을 붙잡았다.부산(釜山)수비대에서 출동한 수색대(참1발(參一發) 제300호 7의 제2항과 동일)는 양산(梁山) 북방에서 궤주(潰走)하는 적(賊)을 추격하였다. 6월 27일 그 중 2명은 사살하고 총 15정을 노획하였다.울산(蔚山)분서의 순사는 6월 30일 울산(蔚山) 군내에서 적(賊) 2명을 붙잡고 총검을 노획하였다. 


10. 전라북도(全羅北道) 방면 
갈담(葛潭), 전주(全州) 남방 7리분견대의 하사(下士) 이하 6명과 순사 9명은 6월 24일 순창(淳昌) 동북방으로 3리 떨어진 곳에서 약 20명의 적(賊)을 토벌하여 그 중 6명을 사살하였다. 


11. 전라남도(全羅南道) 방면 
순천(順天)수비대는 6월 22일 순천(順天) 군내에서 약 40명의 적(賊)과 조우(遭遇)하여 그 중 14명을 사살하였다. 총 11정 탄약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순천(順天)분서의 순사는 6월 25일 곡성(谷城) 군내에서 적(賊) 7명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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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機受) 제1852호 한국 서부 및 남부 각도의 폭도 정황에 관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1908년 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한국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 파견 및 한국 황제의 양위와 한일협정 체결 1건 


발신일: 1908-08-06 
수신일: 1908-08-06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12호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평안북도(平安北道, 기차 불통 때문에 보고 연착) 희천(凞川) 동방지구 소탕을 위해 파견된 보병 제27연대 제8중대의 일부는 7월 1일 및 7일에 소탕 구내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의주(義州)수비대의 일부는 7월 4일부터 8일에 걸쳐 대관(大關) 부근에서 적(賊) 4명을 사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총 4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선천(宣川)분견대의 일부는 7월 5일 동 지역 북방으로 5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1명을 붙잡고 화승총(火繩銃) 5정을 노획하였다.위원(渭原)분견대는 7월 19일 동 지역 동남으로 7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10명을 토벌하고 그 중 7명을 사살하였다. 


2. 평안남도(平安南道) 맹산(孟山)분견대의 일부는 7월 13일 동 지역 동북으로 약 3리 떨어진 곳에서 7명의 적(賊)을 궤란(潰亂)시켰다(적(賊)의 사상자는 불명).자산(慈山)의 한국인 순사는 7월 20일 적(賊) 1명을 붙잡고 총기 4정,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 


3. 황해도(黃海道, 기차 불통 때문에 보고 연착) 황주(黃州)수비대는 6월 25일부터 7월 8일에 걸쳐 군내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고 총 6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장연(長淵)수비대는 6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동 지역 부근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였다. 7월 9일에는 대탄(大灘) 북방으로 2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 또 동 지역 순사는 7월 15일 군내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연안(延安)수비대는 6월 26일부터 7월 7일에 걸쳐 온정원(溫井院) 부근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6명을 붙잡았다. 총 17정, 탄약,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신원(新院)수비대는 6월 27일부터 7월 6일에 걸쳐 당 지역 부근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3명을 붙잡았으며 총 4정,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해주(海州)수비대의 일부는 6월 28일과 7월 3일 청석두(靑石頭) 부근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붙잡았다. 더욱이 7월 7일에는 동 지역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 동 수비대의 다른 부대는 6월 28일부터 7월 8일에 걸쳐 군내에서 적(賊) 3명을 붙잡고 총 13정을 노획하였다. 또 동 지역의 순사는 7월 28일 군내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신계(新溪)수비대의 일부는 6월 29일부터 7월 10일에 걸쳐 군내에서 적(賊) 38명을 사살하고 3명을 붙잡았으며 총기 28정을 노획하였다.곡산(谷山)수비대는 6월 30일과 7월 4일 군내에서 적(賊) 4명을 사살하였다.탁영대(濯纓臺)분견대는 7월 1일 동방으로 2리 떨어진 곳에서 총 2정을 노획하였다.기린장(麒麟場)수비대의 일부는 7월 8일 백천동(白川洞) 부근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였다.수안(遂安)의 헌병은 7월 11일 동 지역 북방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20여 명과 충돌하여 이를 궤주(潰走)시키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적(賊)의 사상자는 불명).대수구(大水口)의 헌병은 7월 13일 율전(栗田), 삼등(三登) 동남방에서 적(賊) 20여 명을 궤주(潰走)시켰다. 적(賊)의 사상자는 불명. 또 17일에는 수안(遂安) 군내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 


4. 경기도(京畿道) 이천(利川)수비대의 척후는 7월 18일 곤지암(昆地巖)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 


5. 강원도(江原道) 홍천(洪川)수비대는 7월 17일부터 23일에 걸쳐 동 지역 서방지구를 검거하여 적(賊) 5명을 붙잡았다. 또 동 수비대의 척후는 7월 18일부터 20일에 걸쳐 홍천(洪川), 횡성(橫城)의 경계의 지구를 수색하여 적(賊) 2명을 붙잡고 총 3정을 노획하였다.울진(蔚珍)분견대의 일부는 7월 18일과 20일 양일간 군내에서 적(賊) 5명을 사살하고 총 1정, 말 1두를 노획하였다.사평리(沙坪里)분견대의 일부는 7월 19일 동 지역 동방으로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2명을 붙잡고 총 2정을 노획하였다. 


6. 충청북도(忠淸北道) 수안보(水安堡)분견대의 척후는 7월 24일 동 지역 서남으로 약 2리 떨어진 곳에서 10여 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3명을 사살하였으며 총 5정,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7. 충청남도(忠淸南道) 연산(連山)의 순사는 7월 21일 군내에서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홍산(鴻山)분견대의 척후는 한국인 순사와 함께 7월 21일과 23일 양일간 한산(韓山) 군내에서 적(賊) 1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붙잡았으며 화승총(火繩銃) 3정을 노획하였다.노성(魯城)의 헌병은 7월 24일 군내에서 적(賊) 1명을 붙잡고 총 2정을 노획하였다. 


8.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慶州)수비대의 일부는 한국인 순사와 함께 7월 14일 군내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였다. 또 다른 일부는 군내를 검거하고 7월 22일 적(賊) 1명을 포획하였다.현촌(縣村)분견대의 일부는 7월 19일 단양(丹陽) , 충청북도(忠淸北道)남방으로 3리 떨어진 곳에서 8명의 적(賊)과 조우(遭遇)하여 그 중 3명을 사살하였다.예안(禮安)수비대의 일부는 7월 21일 영양(英陽) 군내에서 약 30명의 적(賊)을 토벌하고 그 중 12명을 사살하였다. 아군 병졸 1명이 부상을 입었다.영천(永川)수비대의 일부는 7월 22일과 23일 양일간 동 지역 동북으로 3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2명을 사살하였다.성주(星州)수비대의 척후는 헌병과 함께 7월 24일 동 지역 서남으로 약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10명을 토벌하여 그 중 8명을 사살하고 화승총(火繩銃) 2정을 노획하였다.영해(寧海)의 헌병은 7월 25일 일월산(日月山) 부근에서 약 70명의 적(賊)을 토벌하여 그 중 9명을 사살하고 화승총(火繩銃) 23정,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 


9. 경상남도(慶尙南道) 거창(居昌)수비대의 척후는 군내를 검거하고 7월 22일 황산장(黃山場) 부근에서 약 80명의 적(賊)을 궤란(潰亂)시켰다. 그 중 19명은 사살하고 화승총(火繩銃) 1정을 노획하였다.양산(梁山)수비대의 척후는 7월 22일 동 지역 북방으로 4리 떨어진 곳에서 적(賊) 3명을 포획하였다. 
10. 전라북도(全羅北道) 김제(金提)의 헌병은 7월 20일 군내에서 총기 3정,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흥덕(興德)의 순사는 7월 29일 적(賊)의 습격을 받아 이를 격퇴시켰다(적(賊)의 사상자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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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료 명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자 료 내 용


 

기수 제2552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8-11-04 
수신일: 1908-11-05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348호 
메이지 41년(1908) 11월 4일 
한국주차군사령관 보고 요지


 
1. 함경남도 중령진(中岺鎭)의 헌병 및 보조원은 10월 24일 장진군(長津郡) 내에서 약 120명의 적과 약 2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우리측 보조원 1명이 부상당하였는데, 적의 사상자는 확실하지 않다.


 
2. 평안남도 덕천(德川)의 헌병은 10월 25일 그곳 서남방 6리 지점에서 약 25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8명을 죽였다.


 
3. 황해도 해주(海州)수비대의 일부는 10월 16일 그곳 동방 약 6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3명을 죽이고 2명을 생포하였으며 총 10정을 노획하였다.청단(靑丹)의 헌병은 10월 22일 그곳 동방 약 1리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여 3명을 생포하고 총기 약간을 노획하였다.


 
4. 강원도 울진(蔚珍)의 헌병은 10월 17일 그곳 서남방 6리 지점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총기와 잡품을 노획하였다.


 
5. 경기도 마전(麻田)의 헌병은 한국인 순사와 함께 10월 15일 그곳 서북방 3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총 2정을 노획하였다.의정부(議政府)의 헌병은 10월 22일 후평리(後坪里) 동남방 3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격퇴하였는데, 적의 사상자는 확실하지 않다.


 
6. 충청남도 청양(靑陽)의 헌병은 10월 24일 동 군내에서 약 1백 명의 적과 충돌하여 적의 수괴(首魁) 이하 17명을 죽이고 총기 6정과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부여의 헌병은 10월 26일 한산(韓山) 북방에서 약 7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9명을 죽이고 총 4정과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또 같은날 26일 임천(林川) 서방에서 약 30명의 적과 충돌하여 그 중 4명을 죽이고 총 2정을 노획하였다.


 
7. 경상북도 예천(醴泉)의 헌병 및 보조원은 군내를 수색하던 중 10월 8일 적의 저격을 받아 우리측 보조원 1명이 부상당하였다.


 
8. 전라남도 순창(淳昌)수비대의 일부는 10월 14일 복내장(福內場) 동남방에서 약 10명의 적과 충돌하여 그 중 5명을 죽였다. 또 15일 밤 장흥(長興) 동방에서 적 10명을 토벌하여 그 중 9명을 죽였다.영광의 헌병은 함평군(咸平郡)에서 약 1백 명의 적과 충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일시 불명).나주(羅州)의 헌병은 10월 17일 그곳 북방 4리 지점에서 약 1백 20명의 적을 공격하여 그 중 3명을 죽이고 총기 5정과 기타 잡품을 노획하였다.광주(光州)수비대의 일부는 순사와 함께 10월 26일 그곳 동북방 1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이고 총 4정을 노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