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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선생과 신륵사 석종비

천하한량 2007. 1. 8. 20:33

종    목 보물  제229호
명     칭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시     대 고려시대
소 유 자 신륵사
관 리 자 신륵사
설     명 신륵사에 모셔진 보제존자 나옹의 탑비이다.

보제존자 나옹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였던 승려로, 양주 회암사의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을 받아 밀양으로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그를 따르던 문도들이 절안에 터를 마련하여 사리를 안치한 석종과 석비를 세워두었다.

비는 3단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대리석으로 다듬은 비몸은 양옆에 화강암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기와지붕처럼 막새기와와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끝부분에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직함 및 이름에 대해 적고 있는데 글의 맨 앞에 적지 않는 것은 드문 예이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가 글씨를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이다.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이 비석은 높직한 지대석(地臺石) 위에 괴임돌 1단(段)을 놓고 앙·복련(仰覆蓮)의 대석을 마련하여 장방형(長方形) 홈을 파서 대리석(大理石) 비신(碑身)을 꽂고 개석(蓋石)을 덮었는데 기왓골과 막새기와가 표시되어 있어 주목된다. 비신 좌우에 지주(支柱)를 세운 것은 같은 경내(境內)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와 같은 것으로 고려말(高麗末)의 한 양식이라 하겠다.

이 비는 우왕(禑王) 5년(1379)에 보제존자 나옹(懶翁)을 추모하여 세운 탑비로 비문은 이색(李穡)이 지었다. 비의 전면(前面)은 석종기(石鐘記)와 진당시(眞堂詩)로 양분되어 있다.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직함과 성명(姓名)을 서두에 쓰지 않고 시의 끝머리로 돌린 것은 드문 예에 속하는 것이다. 비신의 높이는 120cm이며, 비신의 너비는 61cm이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제229호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이 비는 고려 말의 승려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이다. 나옹이 말년에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절 북쪽 언덕에 종 모양의 부도를 세워 그의 사리를 안치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초상을 모실 진당을 짓는 등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비문은 이색과 서예가인 한수가 짓고 썼는데 단정한 필치가 돋보인다. 뒷면에는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시주자의 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 무늬를 새긴 비좌를 얹어 비몸을 세웠으며 비몸 양옆에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지붕 모양으로 된 개석을 얹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말기에 새로이 유행한 석비 형식으로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도 같은 형식이다.

 

 

 

 

보제존자 석종

보물 제228호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이 석종은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난 고려 말기의 승려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부도이다. 공민왕의 왕사였던 승려 나옹이 고려 우왕2년(1376) 경기도 양주 화암사에서 경상남도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이 절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 제자들이 우왕5년 절을 크게 다시 짓고 절 뒤의 좋은 자리를 택해 부도를 마련하였다. 부도의 기단 위에 돌을 깔고 기단의 앞면과 양쪽 면에 2단의 계단을 설치하였는데, 계단에 문양을 새겨 변화를 주고 있다. 그 위에 모셔진 이 석종의 모양은 완만한 타원형을 이루다가 어깨부분에서 수평이 되었으며 맨 꼭대기에는 보주를 조각하였다. 종 모양의 부도는 통도사, 금산사, 용연사, 봉암사 등에서도 볼 수 있으나 이 부도는 특히 통도사와 금산사와 같이 일종의 계단탑 형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선 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종 모양 부도의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부도 뒷편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의 내용에 의해 이 석종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 우와5년(1379)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