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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 사진

천하한량 2016. 10. 27. 14:35

다시 보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 사진

 

 

 

 

▲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가 된 대전역.

 

▲ 1950. 11. 24. 불타버린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 1950. 10. 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 1950. 9. 20. 왜관, 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 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1950. 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 공장 내부.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비료공장.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송전소.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1950. 12. 8. 경기도 금촌, 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새로운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