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Korea, 1919
photographer Unidentified
3・1운동 참가자 처형 사진
3・1운동 당시의 희생자와 구속자들의 숫자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종로에서의 3·1 만세운동
오사카 아사히 신문이 1919년 3월6일 석간 1면에 게재한 ‘경성 종로의 조선인 군중(4일)’이라는 제목의 사진기사. 신문은 만세운동 이틀이 지난 후에서야 사진으로만 짧게 처리했다.
평양시 [Pyeongyang, 平壤市] , Korea, 1919
photographer Unidentified
3·1 만세운동
평양권번의 기생들이 평양거리에서 만세시위를 하는 모습.
태평로 [Taepyeong-ro, 太平路] Seoul, Korea, 1919
photographer Unidentified
3·1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정렬을 가다듬고 있는 일본 순사들.
박중양, 국민 품위 손상을 이유로 만세 운동 자제단을 조직하다.
3·1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폭력의 조짐이 보이자 박중양은 4월 6일 자제단을 조직하였다. 자제단은 3.1 운동과 관련하여 만세 운동 자제, 진압, 시위 참여자를 설득 및 귀가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제단 발기인회'가 조직될 때 그는 자제단 본부를 구성하고 단장이 되었고, 대구 자제단 본부장도 겸임하였다. 자제단 조직 성명서에서 박중양은 자제단 결성 취지에 대해 '경거망동으로 인하여 국민의 품위를 손상케 하는 일이 없도록 상호 자제케 함'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소요(3·1 운동)를 진압하고 불령한 무리를 배제'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들 자제단은 12월까지 각지에서 3.1 운동 참가자들에게 무력 시위를 자제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 호소하거나 만세 운동을 해산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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