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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하위 20% 저소득층 '환갑' 돌입..'은퇴 절벽' 현실 되나?

천하한량 2016. 9. 21. 19:17

퇴직한 뒤 가계부는 매달 '펑크'

올해로 환갑을 맞은 한 할아버지 얘기를 해볼까 한다. 특별한 사연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 얘기일지도 모른다. 이 평범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번듯한 회사에 다녔지만 5년 전 정리 해고를 당했다. 준비 없이 퇴직을 맞았고, 현재는 아파트 경비로 일하며 벌이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난달 139만 6천 원(월수입)을 벌었다. 격일제로 경비원 일을 하다 보니 월급은 81만 원에 그친다. 연금보험 수령액이 51만 6천 원이고, 나머지는 예금 이자 수익, 아들딸이 가끔 쥐여주는 용돈이 전부다.

그런데 매달 쓰는 돈은 147만 7천 원(월 지출)이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은 셈이다. 할머니와 아껴 먹어도 장 보는 데만 23만 8천 원을 쓴다. 여기저기 몸도 쑤시기 시작해 병원비도 부쩍 늘었다. 가스비와 전기료처럼 집에 매월 들어가는 돈도 20만 원에 이른다. 더는 쓰임새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저축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빠듯해지는데 돈벌이는 더 줄고 있다.

■ '저소득층 고령화 속도 가장 빠르다'

가상으로 그려봤지만,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정은 우리나라 저소득가구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통계청 올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이 할아버지의 월 소득은 하위 20%(1분위) '저소득층' 평균치에 해당한다. 저소득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이 할아버지와 같은 61살이다.

소득 하위 20%는 다른 분위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지난 1분기 처음으로 60살을 넘어서 2분기 들어서는 61살이 됐다. 50살에서 60살까지 저소득층이 10년 늙는 데 걸린 시간은 13년이었다. 다른 소득 분위와 비교해도 고령화 속도는 제일 빠르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는 매년 30만 명씩 퇴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준비 없이 퇴직... 소득 감소 '역대 최고'

가구주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퇴직하면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소득 하위 20% 1분위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 2분기 148만 6천 원에서 139만 6천 원으로 6% 떨어졌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가파른 내림세다. 통계청은 저소득층이 빠르게 늙어가면서 소득도 줄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이 은퇴를 맞은 가구가 기존 3분위, 2분위에서 1분위로 편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중산층 가구의 45.5%는 3년 만에 소득 하위 40% 저소득 가구로 전락했다.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중산층 가구의 45.5%는 3년 만에 소득 하위 40% 저소득 가구로 전락했다.


전체 소득에서 연금을 포함한 소득(이전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올랐다. 2006년 2분기 28%에서 10년 만에 37%가 됐다. 문제는 이 정도의 연금소득 증가로는 소득 감소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자율이 떨어진 탓에 재산 소득은 저조하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근로 소득도 충분히 늘지 않고 있다.

■ '은퇴 절벽' 향해 내달리는 고령층

다시 할아버지 얘기로 돌아가 보자. 할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적금을 깨서 매달 빼 쓰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른다. 기초노령연금은 65세부터 나온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도 생각했지만 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자격이 안 된다. 일단 버티자는 생각뿐이다. 집 팔아서 아들딸 장가를 보낼 생각이다. 그 뒤는 말 그대로 절벽이다.



이 때문에 5분위 저소득 가구들은 나이가 들수록 파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지난 3월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파산 선고를 한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으로 집계됐다. 파산하는 노인들이 얼마나 더 늘지는 이웃 일본을 보면 자명하다. 일본에서는 고령자 600만 명 가운데 절반이 생활 보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노후 파산' 시대에 대비할 때다. 은퇴 예정자는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고, 이미 퇴직한 가구는 파산에 처하기 전에 소득을 높여주는 대책이 필요하다. 저소득 가구주의 평균 나이가 막 환갑을 지난 지금,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따라 장수는 재앙이 될 수도, 축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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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울기자 (whw@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