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살 무렵의 이청운Li Ching Yuen 李清雲1677-1933
photographer Unidentified
256 Year Old Chinese Herbalist Li Ching-Yuen
Li Ching-Yuen or Li Ching-Yun (simplified Chinese: 李清云; traditional Chinese: 李清雲; pinyin: Lǐ Qīngyún; died May 6, 1933) was a Chinese herbalist, martial artist and tactical advisor, known for his supposed extreme longevity.[4][5] He claimed to be born in 1736, while disputed records suggest 1677. Both alleged lifespans of 197 and 256 years far exceed the longest confirmed lifespan of 122 years and 164 days of the French woman Jeanne Calment. His true date of birth was never determined and his claims have been condemned by gerontologists as fabrications.
250살 무렵의 이청운
* 약초를 캐다가 도인을 만나 불로장생술을 전수받다
지금까지 그 근거가 명확하게 입증된 사람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중국 청나라 시대부터 중화민국 초기까지 살았던 약초의학자 이청운(李靑雲)이다. 이청운은 1677년에서 1933년까지 무려 256년을 살았다.
그는 일생 동안 약초와 의학을 연구하여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에서 주는 특별상을 받았고, 200살이 넘었을 때에도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일생동안 24명의 부인을 맞아들였고 2백 명이 넘는 자손을 두었다. 그는 무예에도 조예가 깊어서 구룡팔괘장(九龍八卦掌)이라는 무술을 창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타임지는 이청운에 대한 소식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그는 청나라 강희(康熙) 16년(1677년)부터 옹정, 건륭,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 선통 등 황제 9명을 거치고 중화민국을 건국하였을 때까지 살았다. 1930년 미국의 뉴욕타임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 대학 오준걸(吳俊傑) 교수에 따르면 서기 1827년에 청나라 궁중에서 이청운의 150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고 또 1877년에 이청운의 200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에 깊은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한 선인(仙人)을 만나서 불로장생의 도를 배웠고 그것을 일생동안 실천하였던 까닭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거북이처럼 앉으며, 참새와 같이 움직이고, 개처럼 잠을 자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자신이 장수한 원인이 3가지에 있다고 했는데 첫째, 일생동안 채식을 하는 것이고 둘째, 마음을 밝고 평온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 일생 동안 연잎, 결명자, 나한과, 구기자, 병풀, 참마 같은 약초를 달여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사람은 혈통(血通), 요통(尿通), 변통(便通)의 3통을 유지해야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혈액과 소변, 대변이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 청나라 왕실에서 2백 살 기념 잔치를 열어주다
이청운은 그는 의학 특히 양생술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는 200살이 넘었을 때에도 행동거지가 장년(壯年)과 같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선’과 같이 여겼다.
그는 운남성에서 태어났으나 90여 세 되었을 때 사천(四川)성 개현(開縣)으로 와서 정착했다. 민국 16년(1927년), 이청운은 사천의 군벌 양삼(楊森)의 요청을 받고 만현으로 가서 양생술을 가르쳤다.
양삼은 이청운을 상빈으로 모시고 그를 위해 새 옷을 준비했으며 사진관에 부탁해서 사진을 찍은 후 크게 확대해서 주방에 걸어두었다.
성내 각 신문은 앞을 다투어 이 기이한 인물에 대해서 보도했고 온 사천성이 들썩거렸다. 민국 20년(1931년), ‘만주일보’는 9월 15일 다시 이청운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청운이 250세가 되던 해에 사천성 개현 사람인 유성훈(劉成勳)이 그를 인터뷰했다. 당시 이청운은 신이 나서 고전을 인용해 가면서 양생술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양생경험 뿐 아니라 고금의 양생술과 교훈을 언급했다. 유성훈은 이를 기록하여 ‘자술(自述)’이라는 글로 남겼다. 이 글은 뒷날 양생술의 명저로 널리 알려졌다.
유성훈이 이청운에 대해 회고한 글이 1986년 ‘기공’이라는 잡지에 실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청운이 구술하고 유성훈이 기록한 ‘장생불로비결(長生不老秘訣)’ 1,000여 자도 동시에 실렸다. 북경의 몇 개 신문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하였으나 당시 ‘기네스 북’에서는 의심을 품고 이청운의 장수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 오래 살려면 오래 사는 것을 먹어라
‘자술(自述)’이라는 글에서 이청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수명에는 장단이 있다. 이는 원기가 주재하는 것이다. 원기(元氣)는 원기(原氣)라고도 하는데 타고나기도 하고 태어난 뒤에 길러서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은 신장(腎臟)에서 발원하여 단전(丹田)에 보존되고, 삼초(三焦)를 빌려서 전신에 이른다. 원기는 오장육부 등 모든 장기와 조직이 움직이는 동력의 원천이다.”
그는 원기를 아끼는 것을 촛불에 비유하여 생동감 있게 설명했다. “만일 촛불을 등롱 안에 놓아둔다면 불이 타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놓아둔다면 수명이 짧아지거나 바로 꺼지고 말 것이다.” 양생술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이청운은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아주 좋아했다.
그대의 형(形)을 힘들게 하지 말고, 그대의 정(精)을 흔들지 말며, 그대의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 생각을 적게 하여 신(神)을 기르고, 욕심을 적게 하여 정(精)을 기르며, 말을 적게 하여 기(氣)를 길러야 한다.
그는 양생술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이 말의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청나라의 학자인 육롱기(陸"녡?의 말도 아주 좋아했다.
땔감이 충분하고 쌀이 충분하면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다. 나는 일찌감치 관청의 녹봉(祿俸)을 먹지 않았으므로 놀랄 일도 없고 욕을 볼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았으므로 이자를 내야 할 일도 없었고 전당포 문 앞을 드나들 일도 없었다.
그저 맑은 차와 담백한 밥을 먹으므로 장수할 수 있었다. 이것이 양생의 묘결이고 장수에 대한 잠언(箴言)이다. 이 이치를 얻으면 장수할 수 있으므로 애써 영약(靈藥)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금단(金丹)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는 수명을 기르려면 옛사람들의 가르침대로 자(慈), 검(儉), 화(和), 정(靜)의 네 가지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청운은 자신의 양생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위장이 상한다. 잠을 지나치게 오래 자지 않는다. 지나치게 자면 정기가 손상된다. 나는 2백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음식을 지나치게 먹은 적이 없고 한 번도 지나치게 잠을 잔 적이 없다.
배고픔과 추위, 고통과 간지러움은 부모가 대신할 수 없다. 쇠약해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처자(妻子)가 대신할 수 없다.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 보전하는 것이 양생의 법칙이고 관건이다.”
그는 구체적인 생활방법에 대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잘한 일에 대해 조급해 하면 몸이 상한다고 했다
춥고 더운 데 조심하지 않거나, 발걸음을 너무 빨리 하거나, 술과 음탕한 일에 빠지면 반드시 몸이 상하기 마련이고 손상이 커지면 죽는다. 그러므로 선인(先人)들이 남긴 양생술에 따라서 살면 수명을 기를 수 있다.
걸음을 걸을 때 너무 빠르게 걷지 말고, 무엇이든지 눈으로 너무 오래 보지 말고, 귀로 끝까지 듣지 말고, 피곤할 때까지 앉아있지 말고, 오랫동안 누워 있지 말라. 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입고, 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벗고,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기 전에 음식을 먹어라.
음식은 여러 번에 나누어 먹되 적게 먹고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고 부귀영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장수할 수 있다.”
* 구기자는 불로장생의 명약
이청운의 가장 큰 장수비결은 구기자차이다. 옛 의학책에는 구기자를 먹고 무병장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늘 맨발로 다니므로 사람들이 맨발의 장씨라고 부르는 한 이인(異人)이 있었는데 그는 산동성 의씨현(s氏縣)의 한 노인에게 구기자 복용법을 알려 주었다. 그 노인은 구기자를 복용하여 백 살이 넘게 살았고 걸음이 나는 듯이 빨랐으며 흰 머리카락이 검게 변하였고 빠진 이빨이 다시 돋아났으며 정력이 젊었을 때와 같아졌다.
본의 이름난 극작가 에슌 스이씨(永春水氏)는 구기자의 효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본래 병이 많았다. 중년이 될 때까지 나는 날마다 집 안에만 있고 외출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허약한 몸을 고치기 위해 온갖 약을 다 먹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한 귀인을 만났는데 그는 좋은 약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약을 복용하고 모든 병이 나아서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 약은 아주 간단한 약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구기라는 한 가지 약이다. 나는 구기를 장기간 오랫동안 복용했다. 평시에는 구기의 잎과 줄기를 잘게 썰어 그늘에 말려서 날마다 차대신 마셨다. 3-4년이 지나자 모든 통증이 없어졌고 5-6년이 지나자 몸이 전보다 두 배로 건강해졌으며 반노환동(返老還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구기를 복용하라고 권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학자들이 이청운이 구기자차를 마시고 256세까지 살았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에 와서 구기자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들은 구기자에서 그 무렵의 과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비타민 X를 발견했는데 비타민 X는 얼굴을 아름답게 해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 구기자는 몸속에 지방이 쌓이지 않게 하고, 망가진 간세포를 새로 살아나게 하며,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뇌세포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며, 내분비선의 기능을 촉진하여 갖가지 호르몬이 잘 분비되게 하고, 몸속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묘, 갖가지 신체 조직과 장부의 기능을 정상으로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기자는 늙은 것을 아이로 되돌리는 작용 곧 반노환동(返老還童) 작용이 뛰어난 약초이다.
옛 의학자들은 구기자의 효능을 ‘각노(却老)’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했는데 이는 늙음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현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구기자에는 다섯 종류의 생물 알칼로이드와 수십 종의 스테롤(Sterol) 화합물, 16종의 미량원소, 베타카로틴, 갖가지 비타민, 3종의 지방산, 16종의 아미노산 등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구기자에 들어 있는 다당류 중에서 특히 단백다당은 기력을 늘리고 세포를 재생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단백다당은 면역력을 늘리고 골수의 조혈기능을 촉진하며 간에서 과산화지질이 생기지 않게 한다. 또 임파 세포의 기능을 촉진하고 세포를 늙지 않게 하고 암세포를 물리친다.
수명이 긴 것을 먹으면 그것을 먹는 사람의 수명도 길어진다. 구기자는 수명이 아주 길고 생명력이 강하다. 서울의 어느 집에서 담장에 울타리로 구기자를 심은 것을 보았는데 줄기가 사람의 팔뚝보다 굵었고 길고 구불구불하게 뻗은 덩굴이 100미터가 넘는다고 하였다.
* 쑥뜸으로 242살에 달리기 시합에서 1등
옛 기록에는 쑥을 먹고 쑥으로 뜸을 떠서 오래 살았다는 기록도 여러 군데 보인다. 일본의 <동강사필기(東岡舍筆記)>에도 족삼리에 쑥뜸을 떠서 242살 넘게 살았다는 노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하국 보반군 수천촌에 만평이라는 농사꾼이 있었다. 그는 경장 7년에 태어나서 관정 8년까지 살았다. 194세 때 고을의 관리가 생일축하연을 열어 주었는데 집에서 수십 리나 떨어져 있는 관청까지 걸어가서 생일축하연에 참석하였다. 그는 관리한테 자신의 백발을 잘라 바쳤고 관리는 그에게 쌀을 하사하였다.
만평노인에 대해 일본의 <문고명가만필(文庫名家漫筆)>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원보 15년 9월 11일 다리 위에서 늙은이들이 모여서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만평과 그의 아들과 손자가 나란히 가장 앞장서서 달렸다. 그 때 만평의 나이 242세였다. 시합을 주최한 사람이 만평 노인한테 ‘오래 살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만평 노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평 노인은 ‘장수의 묘법은 없고 다만 조상 대대로 족삼리에 뜸을 떠 왔을 뿐입니다. 뜸을 뜨는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 매달 음력 초하루부터 뜸을 뜨기 시작하여 8일간 뜸을 뜹니다. 일 년 내 뜸을 뜨는데 뜸을 뜨는 숫자는 각각 다릅니다. 오른쪽에는 초하루에 8장, 2일에 9장, 3일에 9장, 4일에 11장, 5일에 9장, 6일에 9장, 7일에 8장, 8일에 8장을 뜨고, 왼쪽은 초하루에 9장, 2일에 11장, 3일에 11장, 4일에 11장, 5일에 10장, 6일에 9장, 7일에 9장, 8일에 8장을 뜹니다. 뜸이 사람을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해 줍니다.’
* 세계 최고의 장수자들
이 밖에도 백 살 넘게 장수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많다.
영국의 우정국 간부인 로버트 테일러는 1764에 나서 1898에 나서 향년 134세까지 살았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희유(希有)의 장수를 축하하여,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로버트 테일러에게.’라는 서명이 담긴 여왕의 초상화를 선물로 받고 감격한 나머지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미국의 찰리 스미스는 1842년에 나서 1979년까지 138세를 살았다. 그는 라이베리아에서 태어나서 13세 때인 1854년에 미국으로 와서 텍사스의 목장에서 노예로 일하다가 22세 때인 1863년 1월 1일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자유인이 되었다. 그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오래 활약하였고 1955년에 은퇴하였고 135세 때인 1976년에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인도의 하비브 미얀은 1869년에 태어나 2008년에 죽을 때까지 140살을 살았다. 그는 2002년 두 손자와 함께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는데 그 때 그의 이름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클라리넷 연주자로 평생을 살았으며 죽기 전에는 집 한 귀퉁이에 있는 기도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캐서린 피츠제럴드는 1464에 나서 1604년까지 141살을 살았다. 그녀는 데스몬드 백작의 부인으로 남편의 영지를 다스렸다. 그녀는 죽기 얼마 전부터 매주마다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시장 거리를 4~5마일 정도 걷곤 했다. 그녀는 앵두나무에 올라가 앵두를 따다 떨어져 허벅지를 다쳤는데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죽었다.
토마스 파는 영국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으로 1483에서 1635년까지 153세를 살았다. 토마스 파는 1483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18세 때에는 집을 나와 도시에서 살다가 군인이 되었다. 1518년 36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농장을 상속하여 시골에서 살았다. 1563년 80세에 처음으로 조안 트롤리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지만 둘 다 어려서 죽었다.
1588년 106세 때에 캐서린 밀튼과 혼외정사를 통해 사생아를 낳았다. 교회에서 100세가 넘은 노인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서 흰옷을 입고 참회하게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1595년 113세 때에 조안 트롤리가 죽고 1605년 123세 때 제인 로이드와 결혼하였다. 제인 로이드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낳지 않았다.
1613년 131세 때에도 도리깨질을 할 정도로 건강하였으며,1635년 153세 때에 토마스 하워드백작이 그의 소문을 듣고 그를 왕에게 알현시키기 위해 런던으로 갔는데, 그 해가 그의 마지막이 되었다.
런던에서 두 달을 지내는 동안 수많은 귀족들이 그를 보며 놀라워하고 장수를 기원하였다. 이때 루벤스가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1635년 9월에 드디어 영국의 왕인 찰스 1세를 만났다. 찰스 1세는 런던에 집을 마련해주고 가족들을 데려와서 살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어느 날 음식을 많이 먹고 체한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
토마스 파가 갑자기 죽자 온 영국이 발칵 뒤집혔고 왕은 그의 시신을 부검하여 사망원인을 밝히게 하였다. 부검 결과 그의 사망원인은 기름진 음식과 런던의 더러운 공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찰스 1세는 자신이 그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크게 슬퍼하였고 그의 시신을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하였다.
티베트의 고승 니얄라 린포체는 1826에 나서 1978년에 죽을 때까지 153세를 살았다. 그는 티베트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로 기록에 남아있다.
러시아의 이골 비토게비치 코르요프는 1801에 나서 1957년까지 157세를 살았다. 그는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군을 크게 괴롭힌 러시아군 지휘관인 코카서스 공화국의 초대 총독 모로프 장군의 요리사였다.
터키의 자로 아가는 1774에 나서 1933년까지 160세를 살았다. 젊었을 적 그는 건설 노동자로 활동하였고 100년 이상을 청소부로서 일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장수자로 언론에 크게 알려져 말년에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으로 초청되어 여행을 다녔다. 죽은 뒤에 그의 시신은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보냈다.
러시아의 스히라리 무스리모프는 1805에 나서 1973년까지 169세를 살았다. 아제르바이잔에서 태어난 그는 소련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한때 서방세계에서는 그의 나이를 의심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의 나이를 인정하고 있다. 무스리모프 덕분에 아제르바이잔과 다케스탄 지방의 장수마을과 장수노인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1964년 160세 때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1973년 9월 죽을 무렵에 그의 아들은 143세였고 손자는 9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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