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자료실 ▒

모기를 미워하다[憎蚊]

천하한량 2016. 7. 7. 14:18
모기보다 해로운

모기를 미워하다[憎蚊]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면서
어둠 틈타 부리 놀리며 주렴 뚫고 들어오네
세상의 많은 식객들 끊임없이 웽웽대며
권세가에 들락거리는 것은 또 무슨 마음인가

 

不現其形但遺音 불현기형단유음
乘昏游嘴透簾深 승혼유취투렴심
世間多少營營客 세간다소영영객
鑽刺朱門亦底心 찬자주문역저심

- 정조(正祖, 1752~1800),『홍재전서(弘齋全書)』 권1 「춘저록(春邸錄)」

해설
   모기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저것도 생명이니 좀 참고 같이 살아보자 했는데, 며칠 밤을 시달리고 나니 이러다 모기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으로 ‘모기 퇴치법’을 검색해 봤다.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모기 퇴치법과 모기 퇴치 용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만큼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이런데 조선 시대에는 오죽했을까? 가장 존귀한 지위에 있던 왕조차 ‘모기가 밉다’는 제목으로 시를 지을 정도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괴로움을 알만하다.

 

   모기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생물이다. 밤새도록 쫓고 또 쫓아도 끊임없이 다시 귓가로 날아와 웽웽대며 잠을 설치게 한다. 피를 빤 자리에 독과 병균을 넣어 가렵게 하고 병들게 한다. 참다못해 일어나 불을 켜고 잡으려 하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보여도 몸이 작고 날쌔서 웬만해선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더 가증스럽다. 아마도 이렇게 열을 내고 있었을 정조는 문득 미움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날린다. 이 모기들이 마치 작은 이득이라도 얻어 보려고 분주하게 웽웽대며 권세가에게 들러붙는 모리배들 같구나. 이익을 꾀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올바른 자리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있어 신분이나 당파보다 능력을 중시했던 정조가 보기에 떳떳하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생각은 하지 않고 출세를 위해 경박하게 권세가의 대문을 들락거리는 자들은 그저 모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그래도 모기 같은 정도라면 그나마 낫다. 17세기의 문인 신정(申晸)은 「모기 이야기[蚊蝱說]」 라는 글에서 하는 짓은 모기 같은데 모기보다 더욱 해로운 인간들에 대해 말한다. 화성(花城)이라는 고을의 수령이 백성들이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병들고 있다고 근심을 한다. 그러자 신정이 말한다.

 

"지금 같은 사람으로서 백성을 기르고 보살피는 권한을 받은 자들이 대낮에 대놓고 백성들의 골수를 뽑고 고혈을 빨아먹고 있으니 모기가 살갗을 깨무는 따위보다 그 독성이 훨씬 심하오. 그대는 이를 통해 약한 백성들을 괴롭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소?[今有同類於人而受字撫之柄, 白晝儼然推髓而吮膏, 則其爲毒不啻蚊蝱噆膚之患而已. 子於此, 知赤子之所病乎?]”

 

   진짜 적은 모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모기의 횡포는 여전하다. 하지만 모기 퇴치 기술은 발전했다. 인터넷으로 배운 방법을 써서 지금은 나름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문제는 인간이다. 모기보다 해로운 인간들도 여전하다. 끊임없이 웽웽대며 시민들의 평온한 삶을 무너뜨린다. 이들은 어떻게 퇴치할까? 기술의 발전이 참 더디다.

글쓴이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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