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훈」은
『근사록(近思錄)』『주자전서(朱子全書)』『사자수언(四字粹言)』『공여일록(公餘日錄)』『문선(文選)』 등 15종의 자료를 바탕으로 고인(古人)의
말이나 시구에서 훈계가 될 만한 것을 채록하여 총 68칙을 실은 것이다.
윗글은 허균이 명나라 탕목(湯沐)이 지은『공여일록』에서
장무진(張無盡)의 ‘석복(惜福)의 설(說)’을 정리한 것이다. ‘석복’이란 복을 아낀다는 뜻으로,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낮추고 검소하게 생활하여 복을 오래 누리도록 함을 말한다. 예로부터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인 교훈이어서 석복수행(惜福修行)이라고도 했다. 이 교훈은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혜훈(惠訓)이다. 때문에 많은 현자(賢者)가 ‘석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고이래로 성현(聖賢)이 ‘석복’에 관한 교훈을 많이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멈춤의 미학’, '절제의 미학‘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허나 이를 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유(思惟)가 깊어 자기 성찰과 함께 중용, 균형, 멈춤의 미학을 깨달아야만 가능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다. 사상, 이념, 정치, 역사, 권력, 명예, 심지어 사랑까지 끝장을 보려고 한다.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이제는 먹는
것까지 끝장을 보려 한다. TV에선 ‘먹방’에 관한 방송이 온종일 끊이질 않고, 막장 드라마와 인터넷 방송에선 말초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잔혹한 방법과 패륜이 총동원되고 있다.
수양과 달관(達觀)을 통한 영적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止)’이다. 멈출 때 멈출 수 있어야 하고, 또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혼탁한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멈춤의 미학이다. 멈춤이 제대로 작동 되지 않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 이는 쇠함과 성함이 돌고 돌아 순환하는 게
우주의 법칙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 무엇이든 성(盛)이 있으면 반드시 쇠(衰)가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한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하지가
지나면 동지를 향해 조금씩 가고, 동지가 지나는 순간 하지를 향해 나아간다. 초승달은 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은 다시 초승달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계속 순환 반복한다. 이 순환의 법칙은 우주에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인간은 무엇이든 끝까지 누리면, 쇠할 때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많이 가졌던 만큼, 끝까지 향유했던 만큼, 절정으로 즐거워했던 만큼, 상실의 폭 또한 깊고 넓다. 이는 우주의 엄혹한
법칙이다. 인간세(人間世)엔 결코 영원불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행복할수록, 일이 순조롭게 풀릴수록, 더욱 근신하고 몸을 낮춰야 한다.
선한 일을 많이 행하고, 복을 아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