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으로 20~30대 젊은 층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29살 오모씨도 지방에서 역사와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고 외국 연수까지 다녀왔지만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안산의 반월공단의 제조업체에 잠깐 취업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박봉에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정년이 보장되고 안정적이란 생각이 들어섭니다. 오씨는 독립할 나이임에도 여전히 부모 품을 못 떠나고 있습니다. 딱히 벌이가 없다 보니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환갑이 넘은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취업이나 결혼을 못해 부모와 같이 사는 일명 ‘캥거루족’이 늘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결과 60세 이상 노년층이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은 31.6% 였습니다. 이 비율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지만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자녀와 동거하는 이유 가운데 첫 번째가 ‘자녀의 독립 생활 불가능’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녀의 경제적 능력이 안 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비율은 지난해 34.2%로 2년 전보다 4.9%p 증가했습니다. 손주를 양육하거나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 동거하는 비율도 12.1%로 역시 2년 전보다 1.9%p늘었습니다. 결국 자녀와 함께 사는 60세 이상 노년층의 46%는 자녀나 손주 부양을 위해 비자발적 동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성인이 된 자녀를 취업이나 결혼 때까지 돌보다 보니 부모세대는 은퇴 후에도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앞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오씨의 아버지도 환갑을 넘은 62살이지만, 임금이 깎이는 수모를 견뎌가며 일터로 나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노후 준비는 열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씨의 아버지는 자녀 뒷바라지에 연로한 양가 부모를 부양하느라 노후를 준비할 여력은 전혀 없다고 토로합니다. 실제로 60대 이상 노년층 가운데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6.1%에 불과합니다. 30대의 86%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비율입니다.
그래도 60대 이상의 절반은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노후 준비란 게 ‘국민연금’이 전부인 경우가 38.3%로 가장 많습니다. 노후 준비를 한다며 국민연금을 붓고는 있지만 대부분 용돈연금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렇다 보니 은퇴를 하고서도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일을 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습니다. 은퇴준비가 부족한 노인들이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겁니다. 서울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24만 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12%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46만 명이 은퇴 후 계속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인이 일하는 것을 꼭 나쁘게 볼 게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득보다는 일의 보람을 느끼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임금근로자의 주요 직종은 대부분 경비단속직이고 월수입은 122만 원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양질의 일자리보다는 단순 노무직이 노년층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는 60대 부모 세대들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자녀 키우는데 모든 힘을 썼고, 이제는 노년이 돼서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 둘을 대학에 보내고 출가시킨 68살 이모씨는 속에 담긴 얘기를 필자에게 털어놨습니다.
“자식들을 넉넉한 환경에서 키우지 못한 게 늘 맘에 걸립니다. 그래서 자식들한테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 나이에 열심히 일해서 용돈이라도 벌어야 자식들한테 부담을 안 주니까요. 다만, 이놈의 팔자가 어찌 된 건지 죽는 날까지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만 52~60세의 베이비붐 세대(‘55년~63년생)는 14%인 710만명에 달합니다. 문제는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하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고 이를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에 진입할 경우 이미 46.8%에 이르는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실질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은퇴시기와 연금수령 사이의 소득절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들이 짊어졌던 부양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고령화되어가는 인구구조에 맞춰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국가적 작업도 이제는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됩니다.
송인호 기자songs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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