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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식비 5000원..평범한 시민들의 끔찍한 노후

천하한량 2016. 3. 4. 18:45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저는 연금 미납자입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제게 찾아올 미래는 노후파산뿐입니다. 솔직히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40대 남성)

"전업주부로 있으면서 시부모님을 돌보고 있어요. 그러나 정작 저를 돌봐줄 자식은 없지요. 노인 복지 시설에 들어갈 돈도 모아놓지 못했고요. 결국 집에서 외롭게 죽는 수밖에 없는 걸까요?"(50대 여성)

"매달 연금으로 160만원을 받지만, 나가는 돈이 160만원 넘어요.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니에요. 의료비와 돌봄 서비스 비용까지 아끼며 산다는데, 저는 그 돈을 안 쓰면 죽는 수밖에 없어요."(70대 남성)

일본에서는 노년층 빈곤이 사회적인 위기로 대두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한 공원에 홈리스 노인들이 앉아있는 모습.
일본에서는 노년층 빈곤이 사회적인 위기로 대두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한 공원에 홈리스 노인들이 앉아있는 모습.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 그 삶은 비극이 된다. 노후파산에 내몰린 일본인들은 한목소리로 "죽고 싶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장수는 악몽이었고, 노후는 스스로를 배반한 지 오래였다. 매달 100만원 안팎인 연금에 의존하며 살기에 현실은 너무나 엄혹했다. 다시로 다카시 씨(83)는 5평이 채 안 되는 집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는 "내 딴에는 성실하게 일하며 살았는데, 설마 이런 신세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시로 씨 한 달 수입은 100만원가량. 국민연금 65만원과 회사원 시절 적립한 후생연금 35만원이 전부다. 독거노인 과반 연금 수입이 100만원 미만이라는 점에서 아주 적은 수입도 아닌 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비참했다. 한 달 수입 100만원 중 집세로 60만원을 내면 40만윈이 남았다. 여기에 공공요금과 보험료를 내면 20만원이 다였다. 도무지 삶을 유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매일 5000원 이하 식비로 연명하며 "생활비 때문에 전기까지 끊었다"던 그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삶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 일상을 취재한 NHK 취재팀은 "(다시로 씨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도 노후파산에 처한다는 이 가혹한 현실에 몸서리가 났다"고 썼다.

대부분 사람은 '가족' '집' '연금' '정년' 등 네 가지만 보장되면 노후 걱정이 없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노후 공식만 따른다고 다가올 앞날이 안락하리란 보장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가 사회 후생제도를 손보지 않는다면, 개개인이 필사적으로 대비하지 않는다면 끔찍한 미래가 도래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한다.

2014년 9월 일본에서 NHK 스페셜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이 방송됐다. 사회 관심 밖에 놓인 노인들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나자 일본 열도는 커다란 충격에 잠겼고, 노후파산이란 말도 이때부터 공공연히 쓰였다. 이 책엔 당시 방송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노인들의 충격적인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후를 준비했던 이들마저 노후파산이란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게 된 상황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들춰냈다. 책이 출간되고 일본 사회가 다시 한번 들썩였음은 물론이다. NHK가 보여준 현실은 예상보다 더욱 심각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독거노인만 600만명이 넘고, 그중 300만여 명이 빈곤 상태다. 이 중 200만여 명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잃은 노후파산자다. 더 끔찍한 건 이런 노후파산자들이 애당초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누리던 사람에게도 노후파산이 찾아왔다. 모아둔 예금이 있고, 자기 소유 집도 있으며, 연금도 꾸준히 부었고, 돌봐줄 자식이 있는데도 막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가족과 함께 살던 때에 설계된 구제도를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노후파산이 더 심각해질 것임을 지적한다. 병에 걸리거나, 가족을 잃거나, 부양할 부모가 있거나, 자녀가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 연금에 기대 사는 등 어느 하나만이라도 어긋나면 노후파산에 빠져들 수 있다며 사회보장제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한국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일본 상황을 마냥 구경만 할 순 없는 이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이 한 해에 3500명가량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노인 10명 중 7명이 가난과 질병, 고독 등 2가지 빈곤을 함께 경험한다. 내년이면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는다. 초고령사회도 머지않은 미래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에도 사회보장제도 개선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크다.

[김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