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형의 태권도역사- 의해서 얼룩지고 포장되어 온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 중에서 지금의 시대를 같이
하고 있는 태권도사(跆拳道史)의 정론은 아직도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정체성의
혼돈에서 벗어나지 나지 못하고 있다.
50년 이란 짧은 기간의 태권도사를 비교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지고 교육한 민족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그럴 듯 하게 포장,왜곡한 태권도사를 선결하지 않는 이상, 태권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서 태권도사의 정론은 기대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태권도사를 만들어낸 인물들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은 태권도사의
완결이 아닌 진행형에 불과하다.
(1966년3월 22일 국제태권도연맹-ITF현판식) -무풍지대(無風地帶)의 태권도사-
만주에서 개장사 하던 사람이 해방이 되어 국내의 정치와 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 초기정부의 주역이되고 장군이 되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었으며, 일제하에서 일본에서 유학한 친일파와 도항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시대의 우범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국내로 들어와서 애국자가 되고 선각자가 되어 역사 창출에 관여한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부패한 이승만 정권으로 부터 박정희의 독재 18년을 거처서 지금까지 이어온 태권도사는 무풍지대의 소용돌이 속에 이어 왔다.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온 태권도史-
정치와 밀접한 관계에서 출발한 태권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며 식자(識者) 들이 자주 인용하는 철학적 요소와 민족사를 더해서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의 태권도사 라고 할수있 다. 먼저 태권도사를 민족사와 비교해서 유추한 것이 고구려 시대 각저총 벽화의 수박희 장면과 경주 석굴암에 있는 금강역사의 석조상 등이다. -태권도란-
1960대 태권도란 무도명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에 권위 있는 사학자들은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수련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출발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패한 정권하에서 상납하듯 태권도사를 쓰기 위해서 태권도의 고대사를 신화처럼 조작해 만든 것이다. 그 예가 1968년 11월 3일자 주간조선에 게재된 "남태평양까지 뻗은 고려인삼과 태권도"제목의 이선근 박사의 태권도관련 칼럼이다.
그는 칼럼에서 유감없이 태권도의 고대사 를 찬미했다. 그림까지 삽입하여 태권도의
원형을 근세 중국의 유술(柔術)이라고 소개했으며 창헌류(최홍희장군의 호)의 23개
형(型)이 태권도의 기본형 이라고 당시 군부의 실세였던 최홍희 의 눈치를 보면서
글을 쓴 것이다.
-최홍희와 태권도-
창헌류란 오도관을 창설하고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를 지낸 최홍희를 가리키는 말이다. 1972년 국제태권도연맹의 창설자인 최홍희가 망명하고 정치적으로 최홍희란 이름과 국제태권도연맹 은 한국에서 사라지게 된다.불과 4년전인 1968년 당시 언론에 게재된 이선근박사의 태권도사 칼럼 내용이 1972년 이후 최홍희의 망명과 동시에 사라지고 태권도사의 첫 번째 변화는 시작되 었다. 1972년 이후 30년 동안 이어온 태권도사는 삼국시대가 기원이 되어 고구려의 각저총 벽화와 경주의 석굴암, 조선시대 쓰인 무예도보통지,태껸,등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용해서 오늘날에 와서는 철학적 요소까지 구성하여 그럴듯 하게 만들어 졌다.
태권도의 중앙도장이라 할 수 있는 국기원과 태권도 제도권의 태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홍보해온 태권도사의 변천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태권도사가 어느 정도 포장되어 왔는지 유 추할 수가 있다. 오랫동안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현대 태권도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최홍희란 이름 을 감추어
오다가 최근에 와서 태권도역사에 최홍희란 이름을 등재 한 것이다.
제도권안의 태권도사 인명부에는 최홍희란 이름은 군사정권을 거쳐 김영삼
정부까지 기록하지 않았다. 시대와 정치의 변화에 맞추어 태권도의 역사가 기록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출발해야된다.
태권도(跆拳道)란 무도명이 정확하게 어느 시기,누구로부터 시작 되었는지 아직도 학계에서는 정론화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앞서 말한 태권도는 우리의 고대사와 관계없는 가라데 로부터 출발한 것을 시작으로 역사를 기록 해야 한다. 즉, 해방후 일본에서 활동한 초창기 관장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공수도,당수도로 시작한 것이 태권도의 기원이 된다.
무덕관을 창관한 황기관장은 중국에서 무술을 배웠다고 하지만 분명하지 않고
그가 국내 청도관에서 당수도를 처음 배웠다는 설도 검증을 거쳐 기록해야 한다.
태권도와 가라데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금도 수련하고 있는 태극(太極)
품새의 명칭과 틀의 형태를 보면 알 수가 있다. 1920년대 가라데의 창시자 후나고시가
저술한 공수도 교본를 보면 태극 (太極)형이
그대로 기록 되어 있다. 그당시 후나고시가 만든 공수도의 틀(型)에서 대안 없이 대충 조작,모방해 서 만든 품세가 국기원의 태극형이다.
(가라데 교본의 태극형) -일본에서 가라데를 수련한 원로들-
1945년 해방이 되고 일본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당수도와 공수도란 무도명 으로 각 도장을 창설하고 각자의 조직을 만든 것이 초창기 관(館)의 개념이다.
(쇼도깡 가라데 시절 최홍희)
가장 먼저
1944년 이원국에 의해서 창관한 청도관 1946년 전상섭의 조선연무관(후에 지도관,윤쾌병초대관장) 1946년 노병직의 송무관 1946년 윤병인의 YMCA권법부(후에 창무관) 1945년 무덕관 1954년 오도관 등이다. 이들이 창관한 당시의 무도명은 모두가 일본서 배워온 당수도(唐手道),공수도(空手道) 그대로 사용했다.
-태권도의 작명가-
최초의 태권도란 무도명 일본서 유학중 쇼도깡에서 가라데를 배운 최홍희에 의해서 군에서 부터 출발했다. 오도관이 세력이 커지고 군의 장성으로 있었던 최홍희가 그동안 공수도,당수도로 난립해있던 관(館)통합과 주도권을 위해 군 세력을 이용하여 고군분투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55년 명칭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태권도(跆拳道)란 무도명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최홍희의 생전 증언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창설부대 참가 중에서
시범보인 당수도 연무를 보고 "태껸"이구먼 이라고 말한 이대통령의 음운(音韻)에
착상하여 跆 와 拳을 만들어 냈다고 전한다.
(대한태권도협회 창립 1959년9월 3일 대한체육회건물 에서-
황기,고재천,엄운규,이남석,현종명,남태희,최홍희,김순배,등) 태권도란 무도명이 이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최홍희이에 의해서 작명 되었으며 그가 당시 권력을 이용해서 수차례 관장들을 설득하여 1959년9월3일 대한체육회에서
정식으로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 했으나 4.19혁명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태권도란 무도명이 만들어 지기는 했으나
당시 창관(創館)한 관장들의 반발로 쉽게 정착하지 못했으며 공수도 집착한
이종우 현 지도관장등에 의해서 1961년 대한 태수도협회가 창립되기도 했으며,
태권도란 무도명을 만들어낸 최홍희가 다시 1965년 태권도계를 장악한 후
대한태권도협회로 어렵게 통과시켜 출범시키기도 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1966년 3월 22일 서울에서 창립한 국제태권도연맹이 출발하면서
대한태권도협회와 국제태권도연맹간에 첨예한 이권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분쟁의 원인은 초창기 태권도 단체가 정착 과정에서 이권과 자리 선점 이라고 할수 있는
단증문제, 사범의 해외파견, 태권도 국제대회 관장, 등을 서로가 좋은 입지를 차지
하려는 되서 시작 되었다.
-박정희와 태권도-
1968년 9월은 국제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 분쟁이 극에 치 닿고 있었으며, 결국은 제1회 아시아 태권도대회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개최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이런 반목속에서 태권도란 무도명이 정착되었으나 반목의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최홍희가 1972년 한국을 떠나고 1973년 김운용 등장과 함께 세계태권도연맹이 새롭게 출범 하였으며 최홍희는 해외에서 1966년 서울에서 본인이 창립한 국제태권도연맹의 맥을 이어왔다.
그리고 태권도가 경기화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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