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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한마디 못하는데 졸업.. 그건 비리입니다

천하한량 2014. 2. 26. 20:57

[오마이뉴스 송영복 기자]

전공 공부는 등한시 한 채, '취업 준비 학원'이 되어버린 대학.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송영복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교수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내부고발적인 글을 보내와서 싣습니다. 이와 관련된 어떠한 반론도 환영합니다. < 편집자말 >

오늘날 우리는 소위 최고의 지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비리와 부패 등의 문제를 접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내부의 속살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무너져 가는 대학을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과의 현실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이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이제까지 어렵게나마 붙잡고 가보려고 발버둥쳤던 한 학과의 이상 아닌 이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왜곡된 현실과 이기주의에 의하여 와해되려 하는지 알리고 발전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스페인어학과 졸업했다' 말하기 부끄러운 졸업생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홈페이지.

ⓒ 화면캡처

경희대학교 스페인어학과는 1981년 학과가 만들어진 이래 2004년 이전까지 졸업논문이나 졸업시험에 불합격하여 졸업을 유예하거나 졸업을 하지 못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허울이 좋아 학위지 어디 가서 내가 스페인어학과 졸업생이라는 말을 하기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졸업생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경희대학교 스페인어학과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학과들은 어떻습니까? 어문계열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다른 명문대학교는 모두 훌륭한 졸업생만을 배출시켰답니까? 적건 많건, 심각하건 덜 심각하건 우리나라 대학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여간 이런 현실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불합리하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국의 대학과 비교해 생각해 본다면 더욱 처참한 일이라는 게 극명해집니다. 과연 어느 나라, 어느 대학의 학위자가 외국어문을 전공하고도 10초 이상의 외국어 대화 능력이 안 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었고 그런 현실에 묻혀서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졸업장 남발의 현실이 있었습니다.

2004년,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학사학위를 받는 사람들은 학사로서의 최소 위상이라 할 수 있는 해당언어 구사능력과 그 언어 사용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정책이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었습니다. 언어구사 능력과 중남미를 비롯한 스페인어권 역사와 문화 졸업시험이 중요한 관건이 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이 때문에 졸업을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을 하죠. '역사와 문화'는 그나마 단기간에 열심히 공부하면 어찌어찌 해 볼 만한 것이었지만 '유럽표준 스페인어' 과목에 합격하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하는 어려운 난관이었습니다.

언어능력 향상의 핵심을 유럽표준 스페인어 수업에 두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이 수업을 적어도 5단계까지(전체 6단계) 이수하지 않고는 졸업을 할 수 없도록 학과 교육과정을 디자인하여 시행하였습니다. 평가방법에 있어서는 수업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유럽표준이 정한 수준의 객관적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학생만이 학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상대적인 발전도도 중요하게 살피지만 그보다는 졸업까지 필요한 일정한 수준의 어학능력을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점에 중점을 둡니다. 이 제도만 잘 이끌어 간다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어학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양성해 낼 수 있다는 벅찬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럽표준 스페인어 졸업시험 통과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쉽고 편한 학점받기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불만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술집 수업, 한 달이 넘는 휴강과 대강, 10분 늦게 시작해 20분 일찍 끝나는 수업에 협조전 제출하고 놀러가도, 아니면 그냥 '묻지마' 자체 휴강을 해도, 학칙을 벗어난 결석일수 초과에도 등록금만 잘 내면 꼬박꼬박 학점 나오는 수업들에 길들어져 있던 학생들에게 유럽표준 스페인어 수업은 일상적이지 않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취업을 한 학생이 졸업 요건을 갖추지 못해 곤란을 겪는 상황까지 발생하였습니다. 학부모님이 찾아와서 우리자식 졸업시켜 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졸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다른 학과에 비하여 졸업생 수가 월등히 감소를 하더군요.

'스페인어 능력 못 갖춘 사람 졸업 못한다' 정착시켰는데...



세계 어느 대학의 스페인어학과가 한국대학의 스페인어학과가 요구하는 수준의 어학능력보다 낮은 능력을 요구하거나 아예 아무런 요구조차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 sxc

이런 점을 문제 삼아 교수나 학교 당국에서 압력도 들어왔습니다. 관료적 무사안일이 대학이라고 없겠습니까. 그러나 차츰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스페인어 능력을 못 갖춘 사람은 졸업을 못한다는 점을 학생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연히 졸업생의 숫자도 정상을 찾아가고 재학생들의 스페인어 실력은 늘어갔습니다. 어학능력을 키우기 위해 외국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갔다 오는 학생들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외국에 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국내파의 경우도 몇 년 만에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의 노력도 하고 외국도 갔다 왔지만 그래도 역시 스페인어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이 졸업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대학의 분위기가 전공공부를 등한시 하는 풍토에 대학 3~4학년이 되면 취업준비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학과의 정책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정책을 이어가는 교수들에게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고등학교의 연장인 양 보습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지면서 대학이 제대로 된 교육은 안 시키면서 졸업요건만 엄격하게 한다는 날 선 비판도 생깁니다.

하지만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발전하는 스페인어 문화권,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외교는 더욱더 우리와 밀접해지고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수록 실력 있는 중남미 전문가, 어학능력을 잘 갖춘 학생들에게 더 많고 더 좋은 취업의 기회가 그리고 다른 수많은 전공 활성화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대학교육을 정상화 시키는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의 취업뿐만 아니라 졸업 이후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됩니다. 결코 쓸데없는 대학공부나 졸업요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동의하겠습니다. 그러나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창립 이래 이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단 한 명도 졸업논문이나 졸업시험 탈락으로 인하여 졸업을 못한 경우가 없다는 것을 재삼 강조합니다.

일반 전공 수업을 통하여 이미 상당한 학문적인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도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운동선수, 방송인이라고 수업에 한 번도 안 나와도 학점을 주었고, 취업을 했다고 기말에 레포트 한 번 내고도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요 우리 학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교수의 애경사에 학과장은 휴강을 지시하고 학생들은 '노력봉사'에 동원이 됩니다. 교수님의 출장과 개인적인 사정은 인터넷 강의로 대체가 됩니다. 학기 중에 한 달씩 출장을 가는 것도 예사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버젓이 용납되는 현실 속에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질을 담보하고 있으니 굳이 졸업요건을 강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본질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무사안일에 불과합니다.

졸업시험 자체가 너무 어렵거나 편파적이어서 졸업을 못한다는 주장은 졸업시험이 어려워지면서, 아니 정상화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불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대학의 스페인어학과가 한국대학의 스페인어학과가 요구하는 수준의 어학능력보다 낮은 능력을 요구하거나 아예 아무런 요구조차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너무 엄격한, 교수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식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에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수위조절을 통해서 만들어진 유럽표준 스페인어 수업의 수준도 그리고 그 수업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내걸고 있는 졸업요건의 수준도 극히 전공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정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절대 학자의 뜬구름 잡는 이상이 만들어 놓은 과도한 졸업요건이 아닙니다. 한편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편파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하여 모든 유럽표준 스페인어 과목은 2명의 교수가 팀티칭으로 교육 및 평가를 하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졸업요건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또 다른 절대적인 이유로 학과의 면학분위기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새로이 들어오는 신입생들조차도 우리학과는 다른 학교나 다른 학과와는 달리 유럽표준 스페인어 수업이 절대평가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학점 따기가 힘들고 스페인어 할 줄 모르면 졸업이 안 된다고 하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1학년 때부터 차근히 공부를 하고 계획과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단계적인 교육에 의한 졸업준비가 그나마 정착을 하였습니다.

'묻지마 졸업', 그건 비리입니다

그런데 지난 1월, 학과 내부 회의를 통해 '유럽표준 스페인어 졸업시험 통과'라는 원칙이 깨졌습니다. 졸업이 어려워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아침에 졸업이 쉬워지면 학생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떨어지고 비록 졸업 요건으로 어학능력인증 자격증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언어교육의 단계성이 무너지면서 졸업을 앞두고 자격증에만 집착하게 되는 왜곡된 현상이 빚어질 것이 뻔합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학생들을 위해' 졸업을 편하게 시켜주어야 한다며 어학능력인증서 제출도 폐지하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줄 겁니다. 애당초 오늘날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이유가 무사안일의 '묻지마 졸업'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그리고 대학이 다들 그렇게 적당히 엉터리 졸업장을 발급해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치부합니다. 가짜 학위가 판을 치고 대학의 각종비리가 이제는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되었으니 엉터리 졸업장 정도야 애교 수준이 되나보군요. 그러나 분명 졸업장은 자격증입니다. 일정한 요건을 만족한 학점과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한 자격증입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학생을 졸업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비리입니다.

학위증을, 즉 졸업장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에 따른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은 실천되어야 합니다. 대학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교수는 위조 학위를 만들어 내지 않는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학은 시대의 조류라는 말로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은 공멸하게 될 미래를 막는 데에 학자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짧지만 야심차고 의욕적인 그리고 많은 고통과 희망을 가지고 유지되어 왔던 한 학과의 운명이 일부 교수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다수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결정을 통과시키고 집행하는 학과의 현실과 이를 묵고 좌시하는 학교 당국 앞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이러한 글을 쓰면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지리한 고통으로 이어질 분쟁을 원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대의와 공익은 모두를 위해서 지켜져야 합니다. 따라서 학칙과 학과의 교육 목표 그리고 교육과정 시행세칙 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조치들은 바로잡아져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송영복 기자는 경희대학교 스페인어학과 교수입니다. 작은 정의가 모여 큰 정의가 되고 작은 정상화가 모여 큰 정상화가 됩니다. 대학은 한 사회의 중요한 기틀입니다. 한 대학, 한 학과의 일이 아니라 한 사회, 한 국가의 올바름을 바로 세우고 건전함을 지키며,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작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주시고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