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미국인 최초 '북한 태권도박사 1호' 조지 바이탈리
'태권도 8단' 전직 뉴욕 경찰관
10대부터 운동하며 희망찾아
"미-북 문화교류 많아졌으면…"
"태권도를 제외한 그 무엇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도록 만들겠습니까?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에 준 위대한 선물입니다."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에서 박사학위(태권도학)를 받은 조지 바이탈리(53·태권도 8단·사진)는 5일 전화와 이메일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이탈리는 지난 9월 태권도의 역사와 태권도가 청소년에게 주는 유익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논문으로 북한 국가학위학직 수여위원회(위원장 전하철 부총리)가 주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그의 박사학위 수여식은 북한의 신문·방송에 보도됐다. 2007년 북한에 태권도 박사과정이 생기자 곧바로 등록해 지금까지 학업과 논문 준비를 해온 그는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최종심사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바이탈리의 태권도 입문은 197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빈민가에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둔 숫기없는 소년이었던 그는 집 부근에 생긴 태권도장에 운명처럼 빨려들었다. 이후 태권도는 침울했던 소년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삶의 궤적을 바꿔놓았다. 그는 81년 뉴욕 경찰이 되어 2005년까지 근무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태권도를 연마했다.
그는 태권도의 본래 형태를 띤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이다. 국제태권도연맹은 고 최홍희 총재가 택견·수박도 등을 통합해 재창시한 태권도로 무예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남쪽의 세계태권도연맹(WTF)의 태권도는 스포츠적 성향을 더 많이 띠고 있다. 북한 태권도는 국제태권도연맹 소속이다. 바이탈리가 북한으로 간 이유다. 그는 89년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 때 최 총재와 함께 미 태권도팀을 데리고 평양을 방문했으며, 2007년과 올해 북한 태권도팀의 미국 방문을 도왔다.
바이탈리는 "50년대 한국군의 전투무술이었던 태권도를 80년 북한이 받아들였다"며 "남북한이 역사에서 무언가를 교환한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태권도에 대해 "태권도의 원형에 가깝다"며 "단군·광개토대왕·을지문덕·화랑·김유신·계백·원효·세종·퇴계·율곡·이순신·도산 등이 익힌 바로 그 태권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태권도는 평화"라며 "미국인 최초 북한 태권도 박사 1호를 시작으로, 앞으로 미국과 북한, 그리고 남북한 사이에 더 많은 문화교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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