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 사람 주달문이 딸을 얻었다. 꼽아보니 갑술년 9월 3일 술시였다. 사주 네 개에 모두 개가 들어 있었다. 이름 지으러 간 주달문에게 스님이 말하길 "아예 개를 낳았구나."
귀한 사주라 쉽게 이름을 지을 수 없다기에 고민하던 주달문에게 "경상도 출신 아내 박씨가 벌써 이름을 지어주셨네" 하며 해법을 내놓았다. 경상도에서는 애를 '낳는다'는 표현 대신 '놓는다'고 한다. 해서 나온 이름이 '논개'다. 명월이, 앵앵이 같은 전통적인 이름 대신 논개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기생(실은 기생이 아니다)이 등장한 기원이다. 기록에 남아있는 개 넷짜리 귀한 사주는 이로부터 120년 후에나 다시 등장한다. 조선 21대 왕 영조다. 그러면 동급인가. 아니다. 논개가 한 수 위다. 그녀의 팔자에는 개가 하나 더 있어 논개가 가락지로 포박하여 남강에 수장시킨 왜장 이름이 '개아무라 로쿠스게'였다(엄밀히는 개가 아니라 게로 발음하는 것이 맞지만). 운명과 팔자, 재미로 보건 실제로 믿건 이래서 사주풀이는 재미있다.
사주에 칼이 들어 있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가 되려나보다 좋아하셨다. 조폭영화에 빠져있던 중학생은 건달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이 들어서 알았다. 그 칼이 물리적인 쇠붙이가 아니라 붓이나 펜의 은유라는 사실을. 글로 밥을 먹을 팔자였다. 아직 부족하여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책 속에 밥이 있고 돈이 있다는 말은 어렴풋이 이해한다. 하버드 졸업생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절반의 응답자가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들도 글과 밥의 연관성을 눈치 챘으리라.
고려시대 과거시험의 최상위는 제술업(製述業)과 명경업(明經業)이었다. 명경업은 경서에 밝은 사람을, 제술업은 말 그대로 글짓기 잘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었다. 둘 중에서 우위를 가르자면 제술업이 상급. 그 밑으로 기술관을 뽑는 잡업(雜業)이 있었는데 꼽아보자면 법률 지식을 보는 명법업(사법고시), 산술 능통자를 뽑는 명산업(공인회계사), 의술 실력을 기준하는 명의업(의사 고시), 풍수지리에 밝은 자를 뽑는 지리업(공인감정사)이었다. 고려시대와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세상을 아직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그런데 이 질문을 하는 사람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어요?"와 같은 꼴이다. 답에 조금 더 보탠다. 노력이 재능을 이기지 못하고 재능이 재미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세상 이치다. 그런데 작문의 세계에는 위로 한 단계가 더 있다. 노력과 재능이 많이 읽은 사람을 절대 못 잡는다. 읽은 만큼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 '로커'가 되고 싶었다. 집에서는 밤새도록 기타만 쳤고 수업시간에는 내리 잤다. 그런데 인간이 의지만으로 잘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어 오후에는 깼는데 그 눈 뜨고 있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이유는 미국의 포크가수 밥 딜런처럼 멋진 가사를 쓰기 위해서. 록커는커녕 음악과 관련된 일도 하지 못했지만, 그때 읽어둔 책과 습관은 삶의 기반이 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때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외가 있으니 책읽기다. 아직도 독서가 계절 맞춤형 취미로 보인다고? 아아, 앞날의 검은 구름 눈물 되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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