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경쟁에 시달리며 위기 극복에 취약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추석 연휴였던 지난 11일 오전 6시17분께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한 가구공장 옆 소각장.
송모(48)씨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분신했다.
송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으며, 경찰은 사업실패와 가정불화를 원인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쟁 탈락·생계난에 '극단적 선택' = 베이비부머의 중심층인 50대 초반 남성을 중심으로 2009년 자살률이 20년 전보다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최근에는 가계부채 등 경제위기로 인한 자살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계속되는 주가 폭락으로 증시에 그림자가 드리웠던 지난 8월 초 어느 날 아침.
대구시 수성구의 한 아파트 현관 출입구 앞에서 인근 주민인 서모(48)씨가 투신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명 증권사 직원이었던 서씨는 고객의 자금을 만기옵션상품 등에 투자했다가 수십억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지인들에게 "나는 이번에 재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전화통화한 것이 서씨의 유언이 돼버렸다.
지난 5월에는 한 평범한 자영업자가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경기도 파주시 운정3지구의 토지 보상이 늦어지자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렸던 13억원의 은행대출 이자를 감당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공원묘지에 세워진 카니발 승용차 안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시신 옆에는 "보상이 빨리 이뤄졌으며 좋겠다. 먼저 가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놓여 있었다.
두 달 전인 6월16일 수원시 인계동에서는 일가족 4명이 집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무직이었던 김모(52)씨는 수억원의 재산을 탕진한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들을 설득해 함께 죽음을 선택했으며 "힘들어서 식구들 모두 함께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
취업난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내몰리는 서민층의 경우 일자리를 잃는 것 자체가 자살을 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서울 봉천동에서는 세입자 신모(51.일용직)씨가 홀로 기거하던 옥탑방에서 빨랫줄에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 김모(80)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지난 여름 건설현장에서 일감이 줄어들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신씨는 밀린 방세와 신변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11월 경남 김해에서는 전직 버스기사 김모(45)씨가 퇴직한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예전 직장인 차고지에 방화, 시내버스 7대를 태워 2억7천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뒤 극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쟁'은 사회적 문제" =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던 베이비붐 세대의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해법을 내놨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강제', 즉 경쟁이 심화됐는데 이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의 불안감과 피로감이 증가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이들은 '퇴출 공포'나 '노후 불안'에 시달리며 가족이나 직장에의 소속감이 이완되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며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사회 전체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윤호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40∼50대의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하지만 섣불리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국회에서 '자살예방법'이 통과돼 실태조사에 대한 여건이 좋아진 만큼 의학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유족에 대한 '심리 부검'을 실시하는 등 인문·심리학적 방법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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