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드리운 암운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 위기 해법을 둘러싼 논쟁은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는 물론 그리스 내부 정치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에 대한 비관론이 점차 대두되고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그리스가 망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인 미국 핌코의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도 "그리스가 결국은 디폴트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과 IMF 등 국제사회는 그리스 지원 대책을 놓고 연일 접촉을 벌이며 긴박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 잘나갈 때 포퓰리즘 빠져 그리스는 한때 유로존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2000년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외국 자본의 유입이 시작되고 EU의 원조가 늘어나면서 대규모 지역개발이 이뤄졌다. 규모의 경제 효과는 물론 관광 경기까지 좋아지면서 호시절을 구가했다. 2000년대 중반 유럽 국가들이 2% 안팎의 성장에 머물 때 그리스는 3.6~4.2%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호경기를 활용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등 미래를 내다본 정책을 펴지 못했다. 정치권은 연금 지급을 확대하고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했다.
잘나가던 그리스 경제에 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로존 내부에서 저개발국에 속했던 그리스였던 만큼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순리였지만 인기에 영합해 공공 부문 확대만 지속한 것이 원인이 된 셈이다. 이와 함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35%였던 법인세를 25%로 대폭 낮추는 등 감세 정책을 추진한 것도 문제였다. 공공 부문은 확장되는데 감세 정책까지 동반 추진하면서 재정적자의 씨앗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로존 가입으로 인한 혜택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의 위기가 현실이 됐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 비율이 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4.3%에 이르는 등 이미 암세포를 내재하고 있었다. 위기가 닥쳐와도 통화 절하가 불가능해지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어렵게 됐다. 상대적으로 경제 체질이 약했던 그리스가 유로화를 통해 화폐가치 고평가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09년 17.5%까지 높아졌고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낮아져 2009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4.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 "우리도 힘든데…" 그리스 지원 치킨게임그리스 재정 위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09년 11월 18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결국 지난해 5월 유로존과 IMF는 그리스에 대해 역사상 최대 규모인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까지 분할 지급이 예정돼 있는데 지원이 계속될 때마다 각국의 입장 차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구제금융 지원 당시부터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미온적인 데 반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적극적이었다. 유로존 최대 경제권인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대한 자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써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왜 남의 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하나?"라는 독일 국민들의 근원적 불만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민간 부문의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가급적 공적 자금 투입을 줄이고 그리스 채권을 보유한 민간 투자자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독일은 모든 그리스 채권을 7년물로 강제 교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상 강제로 만기를 연장하는 조치인 셈이다.
독일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히자 프랑스와 ECB가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프랑스 금융회사들의 그리스 부채 노출(익스포저) 규모는 총 567억달러로 가장 많다. 독일의 노출 규모는 339억7000만달러 정도다. 결국 독일의 입장대로 강제로 만기를 연장하면 그리스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프랑스 은행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독일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신용평가사들의 입장도 부담이다. 신평사들은 그리스 채권의 만기를 강제로 연장할 경우 사실상 디폴트 상황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 채권 투매가 일어나게 되고 국채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ECB는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IMF의 입장도 변수다. 존 립스키 IMF 총재 대행은 "유로존의 지원이 확정되지 않으면 IMF의 추가 지원도 없다"고 밝혔다.
◆ 반대 거센 긴축 내부 상황도 딜레마오는 29일은 그리스 구제금융 5차분 120억유로 지원이 예정된 날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당초 고강도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지만 연금 지급 축소 범위를 줄이는 등 계획대로 이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EU와 IMF는 새 재정긴축 계획을 요구했고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2015년까지 500억유로 규모의 국유 자산 매각과 280억유로 규모의 재정 지출을 줄이는 새 긴축안을 내놨다.
그리스의 재정 긴축안은 그리스 GDP의 10%에 이르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수준이다. 연금 지급이 줄어들고 공무원 15%가 일자리를 잃어야만 한다.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공기업 근로자들의 고용안정도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파판드레우 총리의 새 긴축안은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달 초 제1 야당인 신민주당에 거국내각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민주당은 EU, IMF와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는 것을 거국내각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파판드레우 총리는 거국내각 구성안을 접는 대신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그는 이 같은 개각안을 의회 신임 투표에 부치는 배수진을 쳤고 지난 22일 그리스 의회는 내각신임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28일로 예정된 긴축 재정안 의회 투표에서도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U와 IMF가 23일 그리스의 재정 긴축안을 승인했기 때문에 다음주 의회에서 통과만 되면 다음달 3일 유로존 긴급 재무장관회의에서 구제금융 5차 지원분 집행을 확정할 전망이다. 5차 지원분이 지급되면 오는 9월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9월 이후에도 1000억유로 규모의 제2차 구제금융이 필요할 전망이다. 그리스 위기에 대한 우려로 채권 발행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리스의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고강도 재정긴축이 경기 침체를 불러와 성장을 저해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승철 기자]
'▒ 경제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산 구두·핸드백, 오늘부터 관세철폐 (0) | 2011.07.01 |
---|---|
잠 못드는 아빠들 (0) | 2011.06.28 |
'부채, 요람에서 무덤까지.' (0) | 2011.06.14 |
퇴직할 때쯤 자녀들은 대학생… 등록금에 저당 잡힌 노후 (0) | 2011.06.09 |
임원도 좋은 게 아니네… 작년 과로死 무려 57명 (0) | 2011.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