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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퇴출' WTF 조정원 총재는 '이완용'?

천하한량 2010. 10. 18. 17:44

'한글 퇴출' WTF 조정원 총재는 '이완용'?

[방석순의 스포츠 프리즘] 태권도인들이 열 받았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이 태권도 종주국의 언어, 한국어를 공식언어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인 조정원 총재가 그 결정에 앞장섰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WTF는 지난 7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린 총회에서 연맹의 공식언어에서 한국어를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영어 하나만을 공식언어로 지정하고, 한국어는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함께 보조언어로 그 지위를 격하시킨 것이다.

WTF는 김운용 전 총재가 1973년 대한태권도협회를 기반으로 조직한 국제경기단체다. 북한으로 망명한 최홍희가 한발 앞서 1966년에 창설한 ITF(국제태권도연맹)와 세력을 다투며 경기 기술의 개발과 보급, 국제 스포츠화에 진력해 마침내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키우는 성과도 이뤄냈다.

전 세계 192개 회원 협회를 거느리며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공인받는 경기단체로 성장하게 된 지금까지 WTF의 모든 업무는 사실상 국내 태권도인들의 손에 의해 이뤄져왔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경기를 시작할 때는 '시작', 혼전 중인 두 선수를 갈라 세울 때는 '갈려', 경고를 줄 때는 '경고' 하는 한국어 구령을 사용한다. 또 WTF의 공식회의나 문서작성에서 한국어는 영어와 함께 공식언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한국어가 이번 WTF 총회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글이 디지털 시대의 가장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고 찬사를 받던 참에, 그 한글날을 이틀 앞둔 시점에, 그것도 한국인 총재가 주재한 회의에서. WTF의 이번 결정에 대한 국내 태권도인들의 반발을 이해할 만하다.

대한태권도협회의 한 임원은 "WTF가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격노한다. 그는 조정원 총재를 '태권도계의 이완용'으로 빗대어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조 총재는 우리 한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전통무예 태권도를 자신의 입신을 위해 팔아먹은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전 세계에 글로벌 스포츠로 더욱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미 세계 통용어가 되어 있는 영어를 중시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 총재도 총회 후 인터뷰에서 "이제 태권도는 한국인들만이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며 이번 결정이 세계화, 국제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WTF 내에서 한국어의 공식언어 지위에 별다른 시비나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한국인 총재가 앞장서서 그 지위를 박탈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리송하다. 태권도에서는 아직도 상당수의 세계 각국 대표팀을 한국인 사범들이 지도하고 있다. 태권도협회 자체를 한국인들이 이끌어 가는 곳도 적지 않다.

WTF의 이번 결정에 대해 국내 태권도인들은 조 총재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의심한다. IOC 위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 운운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 스포츠계의 비위를 맞추려는 짓이라는 것이다.

'태권도 국수주의'를 우려하며 같은 동양 무도에서 출발한 유도의 경우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두 종목이 글로벌 스포츠로 발전해온 단계를 비교해 보면 아직도 상당한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일본이 국기로 여겨온 유도는 1951년 국제연맹을 결성하고 1964년 동경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자리를 굳혔다. 종목의 글로벌화가 이뤄지면서 일본의 영향력도 엷어져 갔다. 연맹 회장직이 일본을 떠난 것도 옛날. 1995년에는 현 대한체육회장인 박용성 회장이 국제유도연맹 총수로 취임했었다. 특히 그는 칼러 영상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종주국이라고 할 일본 유도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색 경기복을 컬러로 바꾸는 중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태권도에서는 오히려 종주국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 경기력이 절대 우세한 한국의 싹쓸이를 염려해 올림픽에서 남녀 각 8개 체급 가운데 나라마다 남녀 각 4개 체급에만 출전토록 제한을 둔 것이다. WTF가 주최하는 세계품새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은 개인전에만 출전하고 단체전에는 출전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종목의 세계화, 올림픽 정착이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종주국 스스로 불리를 감수하라는 것이다.

유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권도에서도 세계 각국의 경기력이 지금보다 더 평준화되고,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입지가 굳어진 후라면 종주국 한국의 영향력도 자연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WTF 공식언어의 변경도 그러한 추세와 변화에 따르면 그만이다. 종주국 태권도인들의 지지와 정부의 후원으로 총재 자리에 오른 인사가 제멋대로 내어주고 말고 할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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