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제 알코올클리닉에서의 1박2일
고혈압·간질환·당뇨·인지 장애는 기본…
의사·변호사 등 스트레스성 중독자도
많아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2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나는 술로 인해 여기에 왔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 인생의 뒤안길에 들지 않으련다.”
60대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화선지에 자신이 쓴 붓글씨 내용을 낭독했다. 짧은 문장 중간중간 목이 메었고, 이내 화선지의 글씨가 떨어진 눈물에 번졌다.
한참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에게 동료들이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을 건넸다. 화장지 반 통이 젖도록 눈물을 닦던 그가 긴 한숨과 함께 울음을
그쳤다. 그의 눈엔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가득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입원 41일째,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타’라는 닉네임의 30대 여성은 ‘찢긴 것을 풀로 다시 잘 붙여놓다’라고 썼다. 그가 말한 ‘찢긴 것’은 해체된 가족,
어딜 가도 그를 손가락질 하는 사회다. 그는 사회에서 모두가 환영하는 ‘스타’가 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그는
중고교 시절 친구들에게 ‘레드카드(빨간딱지)’란 놀림을 받았던 것이 어긋남의 시작이었다. 결혼을 했지만 술 때문에 남편이 그를 떠났다. 그는
이제 겨우 36세다.
8월 24일. 전라북도 금산사 인근 김제평야 사이에 우뚝 솟은 구성산 자락 5만여㎡(약 1만5000평) 부지에
자리잡은 김제 신세계병원(원장 김한주) 예술치료시간에 벌어진 광경이다. 예술치료사 진승희씨(익산 원광대학 예술치료학 박사과정)가 자원봉사로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이날의 주제는 ‘내 인생에 다시 쓰고 싶은 일기’. 각자의 인생에서 고치고 싶은 시절의 페이지는
찢어버리고 원하는 삶을 붓글씨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정신병동 세미나실에 모인 10여명의 환자는 진씨가 나눠준 문방사우로 저마다
되돌리고 싶은 기억을 써내려 갔다. 먹이 묻은 붓이 화선지에 닿을 때마다 손끝이 떨려 글씨가 이리저리 번졌다. 수업시작 땐 웃으며 농담도
주고받던 환자들의 얼굴이 붓글씨를 쓰는 동안 어두워졌다. 찢어버리고 싶은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는 듯했다.
10여명의 환자가 돌아가며
낭독한 ‘다시 쓰고 싶은 기억’은 다양했다. 하지만 곧 하나로 귀결됐다. 음주의 시작이었다.
120명 중 112명은
가족이 보내 입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로 인한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은 약 14조9352억원.
거기에 교통사고 특례범의 64.5%, 살인범의 63.2%, 폭력범의 62.9%가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 술에 얼마나
중독되면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왜 이들은 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나.
8월 24일, 기자는 신세계병원 알코올중독 치유 및 재활
전문센터인 소망병동에서 1박2일을 보냈다. 신세계병원 4층에 위치한 소망병동에는 116명의 남성 알코올중독자들이 적게는 3개월, 많게는 3년
이상 장기 입원해 있다. 여성 환자는 네 명으로 정신병동인 3층 사랑병원에서 지낸다. 기자도 처음엔 환자로 입원해볼 요량이었지만 환자의 대부분이
남자라 합숙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준 실습생용 흰색 가운을 받아들었다.
“여기서는 이 가운을 꼭 입고 계시는 게
좋아요. 환자들이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 신세계병원 휴먼네트워크팀 이경현(33) 팀장이 말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병동에서
수백 명의 환자와 함께 지내는 데는 흰 가운이 유일한 방패막”이라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받아든 가운을 입고 이 팀장과 함께 병동을
돌아봤다. 병원 내 세미나실, 강당, 간호실과 각 병동은 모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 땐 환자들이 비밀번호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눌러야 한다.
1층 진료실을 지나 올라간 2층은 치매병동인 ‘효자병동’. 배설물 냄새를 없애기 위해 하루 두 번
태운다는 쑥 냄새에 눈이 매웠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소파에서 쉬거나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3층은 정신과 병동인 ‘사랑병동’.
수백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남녀 구분 없이 섞여 지낸다. 초점 없는 눈, 너무 기쁜 표정을 짓거나 너무 슬픈 표정의 눈동자들이 모여 묘한 기운을
풍겼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자 알코올 병동인 ‘소망병동’이 나왔다. 간호실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병동으로 들어가자마자 200여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기자를 쏘아봤다. 낯선 사람, 그리고 여자였기 때문이다. 퀴퀴한 담배 냄새와 남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린 흡연실에선
공장 굴뚝처럼 담배연기가 계속 쏟아져 나왔고, 거실 겸 식당에 놓인 탁구대에선 탁구시합이 한창이었다. 하나의 병실엔 8명 정도의 환자가 함께
생활했고 책, 종이접기 작품, 서예작품 등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장기가 손상된 상태입니다. 고혈압·간질환·당뇨·인지 장애는 기본이고, 팔이 굽어 가슴 옆에 붙는 편마비
환자가 네 분, 알코올성 치매가 여섯 분입니다.” 이미숙(35) 간호과장이 병동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설명해줬다.
출입구 간호실을
시작으로 병실이 늘어서 있는 긴 복도에 남성들이 줄을 지어 앉아있었다. “곧 점심시간이거든요.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보니 이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밥’이 됐어요. 점심 먹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저녁식사 줄을 서지요.” 기자가 신기하게 쳐다보자 이 팀장이 말했다. 곧 큰 배식통에
식사가 들어왔다. 노인들이 먼저 자리에 앉았고 젊은이들이 수저를 놓고 대신 배식을 받아주었다. 소망병동은 알코올중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사회’였다.
입원비 월 45만원… 수금 오히려 잘돼
병동에서 본 환자들의 모습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평소엔 다정한 남편, 좋은 아빠죠. 소주 한잔 들어가고 나면서부터 바로 무너지는 거예요.” 이경현 팀장이 말했다.
이 팀장은 지난 6년 동안 정신질환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정신지체 및 알코올중독 환자들을 봐왔다. 환자들 중에는 6개월 동안의 치료과정을 10번
이상 반복했던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사회에 나가자마자 빠르게는 당일, 길게는 6개월까지도 버텨보지만 결국엔 ‘한잔’에 무너져 다시 입원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재활에 성공했다고 믿었던 환자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땐 유씨도 보호자도 함께 기운이 빠졌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병동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간호실 벽엔 방별로 배치된 환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100여명의 이름 중 8명의 이름엔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돼있었다. “이분들은 자의(自意)로 들어오신 분들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보호자 동의로 들어오셨죠. 유감이지만
(가족들에게) 버려졌다고 봐야죠. 여기 오신 분들은 거의 가정파탄 단계를 지난 분들이라서….” 이 팀장의 말이다.
- ▲ 점심식사 후 체력단련을 위한 축구시합이 한창이다. photo 남정탁 영상미디어 기자(왼쪽) / 심리치료시간. 되돌리고 싶은 기억을 화선지에 적고 있다.(오른쪽)
의료보험이 적용된 이들의 한 달 입원비는 약 45만원. 간식비와 약값은 제외다. 기자가 “병원비 수금이 잘 안되진 않느냐”고 묻자 이
팀장이 “오히려 잘된다”며 “병원비를 제때 못내 혹시라도 환자가 집에 찾아올까봐 걱정하는 가족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음주로 인한 욕설과
구타, 정신질환 증세에 지친 가족들이 환자가 집에 돌아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만성 알코올중독자의 경우 가정환경이나 사업 실패가
주 원인이지만 의외의 인물들도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른바 ‘사’자 직업군인 변호사, 의사, 교사 등이다. 이들은 주변환경보다는 스트레스성
음주가 주 원인으로, 본인이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하면 자의로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병원 이미숙 간호과장은 “현재는 (입원환자가)
없지만 가끔 변호사, 의사, 교사들도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는다”며 “스트레스성 중독으로 대부분 4주 정도 있다 가시면
많이 호전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 이 환자들을 접했을 때 알코올중독이 다른 세상의 얘기는 아니구나 싶었다”며 “이분들이 우리
아이를 가르치고, 치료한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진 않다”고 말했다.
평소 음주량이 적지 않은 기자도 1층 진료실에서 알코올중독
상담을 받아봤다. 신세계병원 김형준(41) 진료부장이 기자에게 ‘한국형 알코올중독 선별검사지’<29쪽 참조>를 나눠주며 “10개의
문항 중 4개 이상에 해당하면 알코올중독”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1, 5, 6, 10번에 ‘그렇다’고 체크하자 김형준 진료부장의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더니 “아마 10번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두근거림이 있고 식은땀이 좀 난다”고 하자 “그 정도는 경미한
현상이다. 진짜 10번이나 11번에 해당할 경우 만성 알코올중독 금단현상으로 다른 문항수와 관계 없이 바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음주습관
분포’에서 기자에게 해당하는 범주는 ‘습관성 위험’ 단계.<29쪽 그래프 참조> 김형준 부장은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술을 절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기자의 경우 “스스로 음주 습관을 밝히고 음주량을 인정했기 때문에 알코올중독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대개 알코올중독자의 경우 환자와의 상담보다는 보호자와의 상담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환자가 알코올중독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입원을 기피해 거짓말로 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진 시 검사하는 ‘알코올중독선별검사지’도 환자와 보호자의 것 2장을
기록한다.
“의학적으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간이 1년6개월이라고 하죠. 이는 뇌에서 흥분했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측정한 결과인데요. 알코올중독자들은 재활 후에도 술을 보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무려 10년 동안이나요. 알코올중독이라면 재활
후 죽을 때까지 한 잔도 마시면 안된다는 뜻이죠. 이들에게 술은 조건반사이기 때문에 뇌가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알코올중독이 약 먹으면 낫는 병인가”
점심식사 후 병원 뒤뜰 운동장.
담벼락과 철조망으로 사방이 막혀있는 잔디밭에서 빨간색 유니폼과 파란색 유니폼을 착용한 22명의 장년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골이 들어가면
환호성을 지르고, 큰 소리로 방향을 지시하는 등 여느 축구경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잠시 후 한 간호사가 잔디밭 출입구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김○○님, 엑스레이 찍을 시간이에요. 그만하세요!” 말이 끝나자 무리 중 한 명이 벤치로 다가와 땀에 젖은
윗도리를 벗고 흰색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던 그들과 일반인을 구분 짓는 것은 오로지 환자복뿐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력단련 시간이 끝나고 오후에 환자들과 1 대 1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이경현 팀장이 기자를 ‘사회복지사 실습생’으로
소개한 후 세미나실을 떠났다.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나갈 수 있는 방에 환자와 둘만 남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여기만 들어오면 다
낫는 줄 안다니까? 나 못 나아요.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무슨 알코올중독이 약 먹으면 낫는 병인가? 걸핏하면 병원 가서 약먹으래.” 몇
마디가 오가기 무섭게 재활과정 중인 최모(34·전북 익산)씨가 말 끝에 핏대를 세웠다. 알코올 금단현상 때문인지 쉽게 흥분하는 증세를
보였다.
“술은, 초등학교 때부터 마셨죠. 아버지가 막걸리 사오라고 하면 그땐 동네 슈퍼 가서 주전자에 받아오고 그랬잖아요. 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그거 한 주전자 다 먹고 뻗었던 게 처음 취했던 기억이에요. 그날 참 더웠지.”
최씨가 본격적으로 음주를 시작한 건
고3 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부터다. 성인이 돼서는 힘들었던 가정형편을 비관하며 술에 의지하다 중독이 됐다. “재활치료 후 몇 번이나 다시
입원했느냐”고 묻자 “(너무 많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후에 알아보니 이번이 열 번째다. 서른넷에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내 꼴을 보라고요. 나 하나도 책임 못지는데 내가 누굴 데리고 살 수 있겠어요.” 그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두 번째로 만난 환자는 올해 나이 39세인 정모씨. 여성이다. 남편의 구타, 두 번의 이혼, 잦은 사업실패 등으로
29세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해 여러 차례 병원과 집을 오갔다.
“내가 무던해서, 집을 담보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돈을 못 갚아서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어요. 남편도 떠났고. 처음엔 잠이 안 올 때마다 슈퍼에서 소주를 한두 병 사다 마시기 시작했는데 점점
주량이 늘더라고요. 나중엔 슈퍼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전화로 주문해 박스로 쌓아두고 마셨어요.”
만취해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했던
건 정씨의 언니. 방엔 셀 수 없을 만큼의 빈병들이 구르고 있었고, 주택 뒤뜰엔 아직 마시지 않은 소주가 박스째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에게도
발레리나를 꿈꾸며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검고 푸석푸석하게 변했다. 입퇴원을 반복한 지 3년째. 그는 “재활
후 퇴원하게 되면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고도 했다.
후에 환자 몇
명을 더 만나봤지만 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학창시절 친구를 잘못 사귀었거나 가정불화, 사업실패 등의 멍에로 음주를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재활 후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재입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방이 비밀번호로 갇힌 병원에서, 하루가 갔다.
재활 후의 꿈에 대해 토론도
이튿날 오후, 병원 4층 세미나실에서 ‘알자회’ 모임이 열렸다.
알자회는 ‘알코올중독 자존감 회복 모임’의 준말로 이곳 만성 알코올중독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토론하는 시간이다. 원형 테이블에 앉은
25명의 만성 중독환자들이 알코올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가정 내의 불화, 재활 후의 꿈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경험담을
얘기하던 중 40대로 보이는 김씨가 대뜸 앞에 앉은 의사 권석준씨에게 “나 그냥 안락사 시켜주시면 안될까?” 하고 말했다. 권씨가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살고 싶지가 않다”고 답했다. 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부인의 입에서 ‘바람핀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음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각자의 음주 습관을 말하는 시간엔 또 다른 김씨가 “한번에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아니라 24시간 동안 계속 나눠 마셔
만취 상태를 유지했다”며 “술맛과 물맛이 같아 집에서 자다가 갈증이 나 일어나면 냉장고 문을 열고 물 대신 소주를 마셨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로 참석했던 기자가 자신의 술 습관을 말할 차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득이하게 술자리가 잦다”고 말하며
“일주일에 3~4일 정도, 보통 한 번에 2병 정도 마신다”고 하자 맞은편에 앉은 한 남자가 “그거 소싯적 내 얘기구먼” 하고 받아쳤다. 순간
‘나도 진짜 알코올중독이 될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모임에 참석한 만성 중독자들은 조절력 상실에 따른
금단현상과 사회적 기능장애를 앓고 있었다. 재활에 성공해 퇴원한다 해도 이들을 받아줄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에 대해 신세계병원 김한주(49)
원장은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인근 공장과 협의해 취업도 시켜봤지만 같은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재입원하는 사례가 많아 업체들이 꺼리는
실정”이라며 “이들에게 사회적 생산활동을 계속 시키지 않으면 퇴원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병원이 자체 공장을 지어 환자들의
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