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삶도 고통도 끝난다’는 생각은 착각
당장의 과제들 남겨둔 채 도망치는 짓일 뿐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노인병원 간호사 K씨는 50대 형부의 자살사례를 내게 들려준 바 있다. 신체 건강하고 언제나 긍정적이며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형부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와 함께 경제적 고통 속에서 결국 자살을 생각하게 됐다. 간호사인 K씨가 형부의 우울증 증세를 감지해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지만, 형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날 병원으로 K씨에게 언니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형부가 산속에서 내려오질 않아! 어쩌면 좋니!” 119를 불러 겨우 형부를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그라목손(농약의 일종)이 온몸에 퍼진 상태였다. 중환자실에서 사흘 동안 치료를 받으며 형부는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후회한다.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K씨는 형부를 간호하면서 자살하는 사람이 후회와 회한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형부는 결국 살아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통계수치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매일 뉴스나 인터넷에 거의 단골처럼 빠지지 않는 자살소식은 자살문제가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알려준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살은 연령과 계층·성별을 가리지 않지만,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40대와 50대 남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은 문제가 심각하다.
자살 사례나 자살 충동자들을 조사해보면 자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가정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 등 개인적 이유, 둘째 구조조정이나 퇴직 등 사회병리 현상 또는 사회구조적 문제, 셋째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자살의 ‘개인적 이유’와 ‘사회구조적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개선되기 어렵고, 개인이 홀로 해결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세 번째 자살 동기 ‘죽음과 자살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자살의 경우, 자살예방교육을 통해 잘못된 자살관을 바꾸기만 하면 자살 충동의 상당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살하면 자기 삶도 끝나고 고통도 사라질 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니까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면 자살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림대에 개설한 ‘자살예방교육’ 강의를 들은 자살 시도자와 충동자들은 더 이상 자살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살한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거나 문제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삶을 의미있게 영위하다가 죽음이 찾아오면 편안하고 여유있게 맞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J(42)씨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가정이 파괴된 이후 10여년간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두 딸과 어머니 생각에 자살을 잠시 유보해둔 상태에서 자살예방교육 수업을 들었다.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지긋지긋한 이 삶을 자살로 끝낼 수도 없다는 말이냐’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는 수업을 듣는 내내 혼란에 휩싸였지만, 수업시간에 추천해 준 책을 차분히 정독하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살예방 워크숍에서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 교육에 의해 바뀐 자살관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밝히기도 했다. 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살예방교육이 필요하고, 자신도 자살예방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자살자의 증언을 우리가 직접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닌가. 과학이나 의학을 통한 접근 역시 불가능하다. 그러나 통로를 찾아보면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자살 후의 감정은 불교의 천도재(薦度齋)와 구병시식(救病施食), 기독교의 안수기도, 샤머니즘의 퇴마의식, 현대의 최면치료 등으로 짐작할 수 있다. 최면치료와 임사체험(臨死體驗)에 따르면,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했을 땐 ‘빛의 존재’가 자신을 맞으러 오며 눈부시고 따뜻한 빛에 싸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살자는 육체에서 떠난 후 아무도 맞이해주러 오지 않아 캄캄한 암흑 속에서 혼자 울고 있다고 한다. 최면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떠올리는 죽음의 기억 중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경험은 깊은 상처가 되어 현재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우울증과 고독감, 위축감과 죄책감은 과거 자살 경험이 있는 환자들이 가장 흔하게 호소하는 정신증세들이다. 각자의 삶에 주어진 책임을 참을성 없이 벗어던진 환자들은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품게 되고, 자살을 선택한 바로 그 순간부터 어리석은 행위를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그땐 후회한다 해도 정상적 삶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45세 남자환자인 P씨는 만성두통과 불면,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약물 복용과 상담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최면치료를 받았다. 두 번째 최면치료 시간에서 찾아낸 과거의 기억에서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스무 살 무렵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뒤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다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최면치료 과정에서 몸을 빠져나온 그의 영혼은 맥없이 생을 마감한 것을 크게 반성했지만, 삶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의 이번 삶도 과거의 삶과 흡사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형과 형수의 손에서 자라나며 갖은 모멸감을 겪었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리는 데다, 여유 없이 생활하며 얻은 긴장과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내는 동안 외로움과 위축감, 우울감은 점점 깊어져갔다. 과거 삶에서 끝까지 성실하게 살며 극복했어야 할 문제들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어 재시험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현재의 우울과 무기력이 과거 자살 경험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그는 현재 삶의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만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생사학(生死學)을 창시한 스위스의 유명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ebler-Ross)는 죽음을 앞두고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세심하게 보살핌으로써 단 한 사람도 자살을 택하지 않도록 인도했다. 환자들이 병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하려 할 때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약물 처방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치료했고, 가족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우울증이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의 목표는 사람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존엄성을 지키다가 후회 없이 다음 생을 맞이하는 걸 돕는 데 있었다.
“자살은 아직 자신이 배워야 할 과제를 남겨둔 채 죽는 행위다. 자살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살하고자 한다면, 그는 그 어려움과 함께 사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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