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재김인전 ▒

와초리에 심은 김인전 선생의 민족혼

천하한량 2009. 2. 17. 00:13

와초리에 심은 김인전 선생의 민족혼
"서천 사람 모두의 정신적 자산"
와초교회 임종석 장로
2009년 02월 16일 (월) 12:03:22 허정균 기자 huhjk@newssc.co.kr

   
▲ 와초교회 임종석 장로
건지산에서 갈라져나온 한 지맥이 광암천과 옥포천의 수계를 가르며 이어질 듯 말 듯 간신히 섬이 되는 것을 면한 채 금강가로 바짝 다가간 끝에 화양면 와초리가 있다. 마을 동쪽으로 해발 50여마터나 될까 말까한 산에 의지하여 70여가호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예전에는 120여 가호 600여명이 살던 큰 마을이었으며 군산시 성산면 서포를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다. 갈바탕이던 마을 앞 진펄은 제방을 쌓아 물을 밀어내 문전옥답이 된지 오래이며 멀리 길산천까지 탁 트인 들판이 이어진다.

마을 입구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가 간직한 와초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경재 김인전 선생은 1906년에 이 마을에 한영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에 열정을 바쳤다. 마을 한 켠에 그 학교 터가 빈터로 남아 있고 그 위엔 선생을 기리는 추모비가 들판을 내려다 보고 있다.

   
▲ 김인전 선생 추모비
이 학교 출신인 송기면, 김인두, 이근호, 임학규 등은 기미년 3월 마산장에서 독립만세의 횃불을 높이 들어 이 고장 사람들이 품은 기개를 일제의 코밑에 들이밀었다.

당시 21세이던 임학규는 이 마을 출신이다. 그의 여섯 자녀가 모두 생존해 있는데 3남인 와초교회 임종석(81) 장로만이 와초리를 지키고 있다. ‘김인전과 함께 하는 와초리 대보름제’가 끝난 다음날 임장로를 만났다. 그는 김인전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이어받고자 하는 정신이 갈수록 희박해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옛 한영학교 터로 안내했다.

“그가 미친 영향은 호남일대까지 두루 미쳤습니다. 이런 분이 와초리에서 학교를 세워 민족혼을 고취시킨 것을 와초리 사람뿐만 아니라 서천사람 모두가 정신적인 자산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는 오는 28일에 열릴 ‘제2회 서천 마산신장 3·1운동 재연 및 기념행사 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행사를 준비 중이다.


   
▲ 화양면 와초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