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Steyer씨 "수박도는 내 인생의 전부" |
태권도 만큼 체계가 잡히고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무술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 동부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무술 도장의 대부분은 태권도 도장이다. 특히나 대학가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다른 무술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련시간에 출석한 수련생의 숫자만을 비교해 보더라도, 다른 무술 수련생들의 서너배 이상은 보통이다. 따라서, 태권도를 오늘날 위치까지 끌어 올려 놓은 많은 분들의 노고를 간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태권도가 무술로서 지니고 있는 그 본래의 정신이 점점 흐려지고, 점수따기 위주의 운동경기로 변질 됐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태권도를 소재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외국인들 가운데는 이미 화랑도, 수박도 등의 우리 전통무예를 포함한 여타의 무술에서 그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주목 할 만 하다. 수박도를 미국에서 처음 접한 것은 최근에 열렸던 어느 한국 문화의 밤 행사에서 였다. 얼핏 보기에는 태권도와 동작이 비슷했다. 도복도 70년대 초반 태권도에서 사용했던 도복을 입고, 공격동작, 방어 동작등도 태권도와 비슷해 보였다. 게다가 무술수련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태권도가 하나의 유행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우리의 귀에 조차 생소한, `수박도`라는 무술은 과연 어떤 무술인지 수박도 사범인 Philip J. Steyer씨의 도장을 찾아 그의 설명을 들어 보았다. 수박도 4단인 Steyer씨는 미국 동부 Ivy League 소속의 Brown University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수재 이다. 하지만, 그는 영문학이 아닌 수박도에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다. 몇해전엔 한국으로 수박도 유학을 다녀오기까지한 그의 꿈은 자기 소유의 수박도 도장을 마련하는 것 이다. 그는 "수박도가 없는 나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 라는 말로 수박도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다. Steyer씨가 수박도를 처음 접한것은 그가 아홉살 나던 때 였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여러 무술 도장을 찾아 다니던 그는 수박도의 매력에 푹 빠져 올해로 열 여덟해 동안을 수박도와 함께 했다고 한다. Steyer씨를 사로잡은 것은 수박도가 강조하는 내면의 수양이었다고 한다. Steyer씨가 말하는 수박도는 그 철학을 노자의 중용과 도에 바탕을 두고, 외유내강을 지향하여 삶의 방향, 인간관계 까지를 관장하는 무술이라고 한다. 수련생의 행동방식까지를 관장하는 수박도는 Steyer씨에게 있어서 심신의 단련 수단을 뛰어 넘어 종교의 경지에 까지 이른 듯 하다. 수박도는 수련생이 다다른 경지를 외공, 내공, 심공의 세가지로 나누어 평가한다. 외공은 근력 등의 육체적인 완성을 지칭하고, 내공은 호흡과 기의 흐름 등을 말한다. 이 두가지는 우리가 종종 들을 수 있는 단어들 이다. 그런데, 수박도는 여기에 심공 이라는 또 하나의 수련 방향을 제시한다. 심공은 정신적인 면의 수련 정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내, 정직함, 겸손, 정신통일, 그리고 용기 등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와같은 심리적인 측면의 성숙을 강조하는 수박도가 Steyer씨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고 매사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으로 키워 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도장엔 한미 양국의 국기 그리고 무덕관 수박도 기와 더불어 창시자의 사진이 걸려있다. 수박도 수련은 이들에 대한 경례와 이어지는 묵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수련 시간 내내 동작하나 하나에 담긴 정신을 우리의 태극기를 짚어가며 되풀이 설명한다. 엄숙함 마저 감도는 시간 이었다. 수박도가 강조하는 외유내강 그리고 겸손은 그 복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Steyer씨가 매고있는 띠의 바탕 색은 얼핏 보기엔 검은 색 같지만 실제로는 진한 청색의 띠다. 고단자 라고 하더라도 검은 띠를 매지 않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은색은 사물이 소진했을 때 남는 검은 재를 가리키며 이는 곧 정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정상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에 검은 띠를 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4단 이상의 고단자는 그가 매고 있는 것과 같이 붉은 줄이 가운데 들어있는 외유내강을 상징하는 띠를 맨다고 한다. 이들이 "형" 이라고 부르는 공격과 방어 자세는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을 뿐 더러, 태권도와 많이 흡사하다. 그렇지만 그 궁금증은 Steyer씨의 설명을 듣고 쉽게 풀렸다. 수박도가 그 공격과 방어동작을 집대성 할 때 무예보통지를 참고로 했기 때문이었다. 수련시간의 마무리는 자유대련으로 이루어 졌다. 한가지 특이할 만한 사실은 이들이 착용하는 보호 장구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 이다. 이들이 착용하는 보호 장구는 헬멧과 마우스피스가 고작이다. 언듯 극진 공수도와 같은 실전 대련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체 접촉은 거의 없는 대련이었다. 조금 실망감이 들었지만, Steyer씨의 설명이 걸작 이다. 보호장구를 착용하면 보호장구를 차고 때리는데 익숙해 지기 때문에 실전에서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 이다. 상대방을 직접 때리지 않은 대신, 있는 힘을 다하여 주먹을 내 지르고 발로 차는 연습을 하는 것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태권도, 택견, 화랑도, 수박도 이름이 다르고 각각이 추구하는 바도 조금씩 다르다. 개중에는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는 무술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구어 왔고 우리의 정신이 담긴 전통 무술들이다. 서로를 아우르는 건전한 비판 속에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며, 어쩌면 우리 보다 우리 것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Steyer씨의 힘찬 "확국장갑권공격" 시범으로 미국에서 경험한 수박도 소개를 마친다. 미국 케임브리지 = 도깨비 뉴스 리포터 겨울 나그네 winterreise@dkb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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