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유럽에서 귀국항공권 없으면 경찰서 강제 직행

천하한량 2008. 9. 15. 19:04

[브뤼셀 저널] '반(反)이민' 장벽 쌓는 EU

불법체류자 5년 재입국 금지 초강경 입법

여행자 검문도 잦아져 귀국 항공권 꼭 지녀야

브뤼셀(벨기에)=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앞으로 유럽에 여행이나 출장을 간다면 명심할 게 있다. '항상 귀국 항공편
을 몸에 지닐 것'.

기자는 지난 18일 오후 6시 벨기에 브뤼셀 샤를루아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오
는 중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발 여객기에서 내린 다른 승객들과 함께 공항 입국장
에 들어서는 순간 공항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요새 보기 드문 신분증 검사가 시작됐
고, 승객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1985년 체결된 '솅겐(Schengen) 조약'에 따라 유럽
25개국 안에서 이뤄지는 여행의 경우 여권 검사가 사라진 게 오래 전 일이기 때문
이다.

그래도 여권이 있는 이상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과 벨기에가
1960년 맺은 비자 면제 협정에 따르면 한국인은 비자 없이도 벨기에에 90일간 머물
수 있고, 출입국 시 제시해야 할 서류는 여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문 제는 경찰이 기자의 여권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도 거주지를 캐묻
고 거주 허가증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무비자 체류기간인 90일 일정으로 브뤼셀
에서 연수 중인 기자는 굳이 거주 허가증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답했지만 그 순
간부터 경찰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불법 체류자 대하듯 하기 시작했다.

역시 거주 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검문에 걸린 외국인 여성 2명과 함께 기
자는 여권을 압수당한 채 공항 청사 지하에 있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기자는 거주
허가증을 만들지 않은 이유를 재차 설명하고 90일 안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경찰은 믿으려 들지 않았다. 함께 붙잡힌 한 여성도 "거주 허가증이 있지
만 여행 다녀오는 길이라 집에 뒀다"고 설명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기자는 여행사로부터 이메일로 받아놓은 귀국 항공편 티켓을 출력해 보여줌
으로써 1시간 만에 간신히 풀려났다. 하지만 기자와 함께 경찰에 억류됐던 두 여성
은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우 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이 소동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 유럽 의회는
EU(유럽연합) 내 불법 체류자를 최장 18개월 억류한 뒤 추방해 5년간 재입국을 금
지하는 초강경 이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번 추방되면 EU 27개 회원국 어디에
도 5년간 발을 못 붙이게 한 이 법안은 통과 직후 '전 지구적'인 비난을 받았다.

아이린 칸(Khan) 국제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세계 다른 지역에 극히 나쁜 선
례를 남겼다"고 말했고, 유엔 인권 담당관 루이스 아르부르(Arbour)는 "약자를 충
분히 보호할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새 이민법은 유럽 각국의 반이민 정서가 노골화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지
난달 출범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Berlusconi) 정권은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을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대대적 단속과 추방을 단행한 데 이어,
불법 체류자를 최고 징역 4년에 처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니콜라 사르코
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도 이달 초 "닫힌 유럽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유럽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 역시 원치 않는다"고 말해 EU 차원
의 강력한 이민 정책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