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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정보의 바다' 우리아이 지켜내자"

천하한량 2008. 6. 30. 01:22
오염된 '정보의 바다' 우리아이 지켜내자"
욕설·음란물·화상채팅…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1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의 ‘학부모 미디어교육’


지난 5월 4일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만든 어린이 전용 사이트 쥬니버 지식 검색 게시판에 “광우병 이명박 탄핵 촛불시위 장소 좀”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 친구들이랑 촛불시위 가려고 하는데요. (시위에) 가도 경찰서 같은 데 안 끌려가겠죠?” 6월 18일 오전 10시30분 현재 이 글의 조회수는 1만4884건, 달린 댓글 수는 111개에 달한다. “지금 우리는 이명박의 계획대로 놀아나고 있습니다” 같은 ‘친절한’ 안내에서부터 “깃발부대 따라가면 살인 당합니다” 같은 협박, “대통령은 암살 안 당하는 걸 고맙게 생각하라” 등의 인신공격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이런 댓글을 읽으며 글을 올린 초등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른바 ‘촛불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인터넷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터넷은 다른 매체와 달리 연령을 초월해 접근성이 높고 파급 효과 역시 크다. 이번처럼 예민한 사회적 이슈가 인터넷을 통해 촉발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부모 세대 중엔, 컴퓨터 사용이 능숙해 인터넷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는 자녀 세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 시점에서 새로운 미디어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학부모 미디어교육을 고민하는 현장과 전문가의 목소리, ‘초보 부모’를 위한 미디어교육 방법 등을 묶었다.


지난 6월 17일 오전 10시를 갓 넘긴 시각, 서울 화양초등학교(광진구 화양동 소재) 2층 강당에 25명 남짓의 학부모들이 모였다. 이들의 손엔 각각 작은 책자가 한 권씩 들려 있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회장 주성민)가 공동으로 마련한 학부모 대상 미디어교육 참가자들이었다. 이날 강사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교육 책임강사 이화영씨. 학부모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그는 ‘부모 노릇, 어떠세요?’란 화두(話頭)로 강의의 문을 열었다.


“여러분의 자녀를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을 기억하세요? 설마 그때도 아이 눈을 맞추며 ‘받아쓰기는 꼭 100점 받아야 한다’ ‘컴퓨터게임은 조금만 해라’ 이러진 않으셨겠죠? 여러분이 자녀에게 갖는 관심, 자녀와 나누는 대화 한마디가 미디어뿐 아니라 모든 교육의 출발입니다.” 이 강사는 “대부분의 부모가 ‘대화’라는 이름으로 자녀로부터 ‘보고’를 받으려 하고, ‘관심’이라는 가면을 쓰고 ‘간섭’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서울 화양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대상 미디어교육 현장.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외계어’에 물들고 음란물에 찌든 아이들

암호 수준 외계어로 대화하고 문학작품 훼손도
커뮤니티는 성매매, 화상채팅은 신체노출 수단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강의는 거의 대부분이 인터넷 쪽에 맞춰졌다.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 통계와 사례 중심으로 진행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 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 부문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 국가이지만 자녀 세대(97.8%)와 부모 세대(65.1%) 간 인터넷 이용률 격차가 32.7%에 달한다. 인터넷 활용도 면에서 엄연히 세대 차이가 존재하고, 이 때문에 인터넷 중독 등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 앞에서 속수무책인 부모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이날 이 강사가 준비해온 강의 자료 중엔 학부모들이 경악할 만한 정보가 적지 않았다. 인터넷상에서 흔히 쓰이는 일명 ‘외계어’의 예로는 “186(남자 성기를 비하해 일컫는 속어, 각각의 숫자를 한자로 표기한 후 세로로 써내려 간 모양을 빗대 만들어졌다)이나 쳐드셈!”과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외계어로 옮겨 쓴 ‘님의 잠수’란 글이 등장했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실태의 증거 자료로는 ‘10대들의 원나잇(원나잇 스탠드의 줄임말)’이란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물 “일산에서 몸짱과 한 판 뜨실 분!”이 제시됐다. 제일 심각했던 건 휴대폰 포토 메일이나 화상 채팅을 통해 오가는 음란물. 이 강사는 “특히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사이에서 얼굴을 교묘히 가린 채 자신의 가슴이나 성기 등을 촬영해 전송하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악플에 무심하고 뉴스에 무관심한 아이들
이유 없는 악플 횡행…‘부모 속여 게임하는 법’ 인기
“네티즌 입맛 맞춘 포털 뉴스, 산만한 요즘 애들 안 읽어”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 댓글(일명 ‘악플’)의 문제점도 언급됐다. 악플과 관련, 이날 언급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왜 악플을 다는가?’란 질문에 대한 초등생의 응답 내용이 하나였고, 어떤 고교생이 인터넷에 올린 ‘부모 감시 피해 컴퓨터 (이용)하는 비법’의 내용이 다른 하나였다. 전자에서 이 강사는 “요즘 어린이들은 ‘그냥’ ‘재수없어서’ ‘재미있어서’ ‘욕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서’ 악플을 올린다고 응답한다”며 “이런 식의 무책임한 행동이 불러올 치명적 결과를 부모가 앞장서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퓨터로 숙제 하는 척해라’ ‘들키면 모니터만 꺼라’ ‘부모가 잠들기를 기다려라’ 등으로 구성된 후자와 관련해선 “뛰는 자녀 위에 나는 부모 있다고 할 만큼 부모도 컴퓨터 관련 지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터넷 포털 뉴스 기능에 대한 부모의 감시 기능도 이날 강조된 부분 중 하나였다. 이 강사는 “부모교육을 하다 보면 대개의 가정이 신문을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인터넷에 다 있다’고 답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는 네티즌의 입맛에 맞게 노출 위치 등이 가공되게 마련이죠. 그나마도 요즘 아이들은 진중하게 앉아 뉴스만 찾아 읽을 만큼 주의 집중을 하기 힘들고요. 굳이 인터넷 뉴스를 선택하려면 아이에게 맡길 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아 기준을 정해놓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 읽는 게 중요합니다.”


이날 참가자 중 유일한 ‘아빠’였던 외국인 마르코 디아즈(42)씨는 “올해 입학한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너무 빠져 걱정하던 참에 가정통신문을 통해 강의 일정을 알게 돼 참석하게 됐다”며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 대처할 수 있는 부모의 자세를 배울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3학년 딸을 둔 주부 임현지(37)씨는 “아이가 아직 어려 강의에 등장하는 사례 전부가 와 닿진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임씨는 “인터넷으로 얻는 유해 정보는 또래끼리 확산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거부하면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얘길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학부모·교사 반응
학부모 “부모들이 대처법 배우고 예방할 수 있어 유익”
교  사 “최소한 아이들 수준만큼은 인터넷 공부해야”
 


이날 진행 전반을 맡은 노재훈(41) 교사는 “학부모 교육을 실시한다는 협의회 측 공문을 받고 내부 논의 끝에 강의를 열기로 했다”며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진 만큼 이를 바르게 지도하는 학부모 역량이 무척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요즘은 초등생만 돼도 인터넷을 검색해 숙제를 베끼고 학교 컴퓨터실에서 P2P 게임 소프트웨어를 내려받는가 하면 메신저에서 각종 욕설을 배워 전파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바로잡으려면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도 공부하고 노력해야죠.”


이날 강의를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4계명(무조건 존중하라, 성실하게 대하라, 눈높이를 맞춰 공감하라,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라)’으로 마무리 지은 이화영 강사는 “그래도 이런 강의를 찾아 듣는 학부모는 미디어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정작 교육이 필요한 쪽은 바쁘고 여유 없다는 핑계로 도통 신경 쓰지 않는 학부모”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디어교육의 흐름은 단연 인터넷 쪽이에요. 신문 등 인쇄매체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TV는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 아예 없는 집도 많거든요. 다만 컴퓨터는 ‘학습 매체’란 성격이 강해 그냥 두기 때문에 인터넷 쪽으로 모든 문제가 쏠리는 거죠. 요즘은 휴대폰 기능이 너무 발달해 휴대폰 역시 새로운 미디어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입력 : 2008.06.24 15:10 / 수정 : 2008.06.29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