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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슈는 파리 날리고 태권도는 '문전성시'

천하한량 2008. 1. 5. 16:27
'태권도 대 중국 우슈(武術), 누가 셀까?'

작년 말 중국 인터넷에 실린 글의 제목이다. 정말 누가 셀까 궁금해 클릭했더니, 예상 밖의 얘기가 실려있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 기자가 쓴 이 글은 무술 고수들의 대결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중국 내에 불고 있는 '태권도 열기'와 상대적으로 쇠락해가는 중국 우슈의 회생 방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태권도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대도시에 급격히 퍼져나가면서, 어린이와 초·중고생,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태극권(太極拳) 팔극권(八極拳) 등을 가르치는 중국 우슈관은 수련자가 적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태권도와 우슈의 위상은 '문정약시(門庭若市·집안이 시장처럼 방문객이 매우 많음)'와 '문가라작(門可羅雀·문 앞에 그물을 쳐 참새를 잡을 정도로 방문객이 거의 없음)'의 사자성어로 묘사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문전성시'와 '문전파리(?)'라고나 할까. 우슈의 본고장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 도심 체육관에 자리 잡고 있는 '창춘 우슈관(武術館)'. 대낮인데도 전등 불빛은 흐릿하고 내부 인테리어는 낡았다. 수련자는 몇 명에 불과하다. 창춘시 우슈협회가 만든 이곳은 정부 보조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 창춘 시내 우슈관은 모두 4곳. 창춘 우슈협회 주석이자 팔극권 종사(宗師)인 쑨셩팅(孫生亭)씨는 "현재 민간에서 우슈를 단련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슈는 현대인의 문화생활과 단절되어 시장화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 중국은 올림픽 태권도 부문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태권도 선수를 선발해 훈련시키고 있다. 사진은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태권도 선수 훈련 장면. /중국 시나닷컴 제공
같은 도시의 태권도장은 2007년 말 현재 40여 개에 달한다. 우슈관의 10배다. 이곳에서 10여 개 도장을 운영하는 쩐화(振華)태권도관의 류쩐화(劉振華) 관장은 "창춘 외에도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조우(廣州) 우한(武漢) 난징(南京) 타이웬(太原) 등 대도시와 창조우(滄州) 췐조우(泉州) 등 중소도시 및 허난성(河南省) 같은 내륙지방에까지 태권도가 퍼지고 있다"면서 "일부 지방에서는 학교의 체육과목으로 채택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도장의 수련생은 작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 어린이와 초중고생이 대부분이지만, 최근 화이트칼라층과 직장 여성들도 가담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소림사(少林寺) 부근에서 수련했다는 류쩐화 관장은 태권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태권도는 우슈가 갖추지 못한 4가지를 갖고 있다. 첫째, 태권도는 예의를 강조하고, 둘째 도복에서부터 도장의 실내 인테리어까지 선명한 이미지를 풍기며, 셋째 수련 과정에서 안전을 중시해 부모들이 안심하며, 넷째 품세(品勢)와 태권도 디스코 등 내용이 풍부하다." 쩐화 태권도관은 90분간의 수련 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와 서양식 몸풀기 체조, 빠른 춤곡 반주에 맞춘 태권도 기본동작 등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중국 아이들은 대부분 독자(獨子)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소심하고 고집스러운 아이들의 성격 개조와 투지 계발 등을 위해 많이 보낸다는 것이다.

만 두 살짜리 딸을 데리고 태권도장을 찾은 주오(左) 선생은 우슈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우슈관요? 안 돼요. 배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요즘 그렇게 가르치는 곳이 어디 있어요?" 그는 "내 딸을 어릴 때부터 신체 건강하고 예의 바르고 투지 넘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태권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창춘 세무대학 국제경제학과의 친시량(秦喜亮) 교수는 "우슈가 무술의 내용과 범위에서 태권도보다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시장화에 뒤진 것은 여러 개의 문파(門派)와 129개의 권법으로 갈라져 통일된 수련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홍보에서도 뒤졌기 때문"이라며 "이와 달리 태권도는 일관된 수련 방식과 스포츠의 상품화에 성공해 중국 내에서 '유행 스포츠'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내 태권도 확산 현상에 대해 중국 무술 관계자들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태권도의 경영방식'을 적극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팔극권 쑨셩팅 종사는 "우리는 태권도가 중국에 진입한 것을 환영해야 하며 무술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배척하면 안 된다"면서 "왜 우슈가 태권도보다 환영받지 못하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린대학 체육학부 리팅퀘이(李廷奎) 교수는 "초중고에서 배우는 무술은 너무 형식에 치우치고 무덕(武德) 교육에 소홀하다"면서 "우슈를 한국의 태권도, 일본의 유도, 태국의 무에타이 등과 같이 국가 무술의 지위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덕과 예의 등 전통문화의 정신을 기예(技藝) 속에 녹여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할 수 있는 스포츠로 만들 때 비로소 전 국민이 즐길 수 있고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30일 중국 푸지엔성(福建省) 푸티엔(?田)의 남(南)소림사에서 열린 '남북소림무술공연'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관객 1만여 명의 눈을 즐겁게 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새마을운동(新農村運動)을 모방한 중국이 태권도의 '스포츠 비즈니스'도 적극 배우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