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사회적 논의 필요하다 [중앙일보]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서구 선진국 얘기가 아니다. 지금, 바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의 부모들은 이런 상담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애들 학원비 버느라 고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아이들은 누구에게 이런 고민을 터놓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들끼리 ‘낙태계’를 만들어 수술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여관을 빌려 불법으로 무자격자에게 시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어야 할까. 보건복지부가 2005년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해 평균 낙태 건수는 약 34만 건에 이른다.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수가 약 4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이 중 약 14만 건은 청소년을 포함한 미혼모들이 하는 낙태라고 한다. 한국의 형법은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반면 모자보건법은 산모의 보건학적 문제나 강간 등을 사유로 하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가난으로 자녀를 키울 방도가 없거나 미혼모, 청소년 임신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하려는 경우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무허가 시술을 통해 불법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아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낙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무조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형법이나 산모의 우생학적 이유, 전염병, 정신질환 등의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도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의 경우 산모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상담절차를 두는 등 낙태를 위한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 낙태를 위한 최소 주수도 20주를 넘지 않는 등 매우 조심스럽게 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8주 이내면 낙태가 가능하다. 청소년이나 미혼여성이 임신한 경우 낙태를 당연시 여기는 풍조는 갈수록 만연하고 있다. 남녀 간 사랑에 대한 책임이나 태아의 권리 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낳은 아이를 누가,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막막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아이를 낳아 키우려는 청소년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하는 순간부터 사회의 매서운 편견과 싸워 나가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힘들고,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다. 이처럼 경제적 능력도 없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 버리면 불법적 낙태시술이 더욱 늘어나고 임산부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성관계에 대한 책임의식과 피임교육을 좀 더 활성화하는 등의 예방교육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임신이 됐다면 무조건 낙태를 하도록 아이들을 내몰기보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임신한 청소년과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달라져야한다. 철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무조건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려 할 경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격려해 주고 앞으로 잘살 수 있도록 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특히 미혼모에게 대해서는 무조건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남녀가 동등하게 책임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등에서는 유전자검사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내 경제적 부양 책임을 부과한다. 또한 정부가 미혼모·청소년 임산부 보호시설 등을 설립해 이들을 실제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제 우리도 허울뿐인 법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진지하게 낙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낙태의 허용범위를 보다 현실화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교육하는 상담의 제도화 등 법 개정과 사회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소윤 연세대 교수·의료법윤리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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