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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다를 지배할 ‘조선업의 왕’ 모십니다

천하한량 2007. 12. 3. 20:58
세계 바다를 지배할 ‘조선업의 왕’ 모십니다 [중앙일보]
91. 현대중공업
매출 12조로 세계 1위
도전적 인재상 선호
직원 95%에 주택 보급
올해 초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울산 본사의 도크(선박 건조장)에서 이 회사가 만든 8만2000㎥급 액화천연가스(LPG) 운반선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민재윤(26)·엄원진(28)·김다례(24)·신영모(27)·박초롱(24)·조근영(27)·이진형(27)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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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해 봤어?”

‘불가능은 없다’는 성장신화를 이끈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주 한 말이다. 민계식(65)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이 말이 오늘의 현대중공업을 만든 근본 정신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선박 건조의 약 15%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조선업체다. 또 엔진기계와 육·해상 플랜트, 중전기기, 건설장비 분야에도 진출해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12조55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20% 이상 증가한 15조200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3분기까지의 매출은 11조2800억원이다. 영업이익률도 10.6%에 이른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현대중공업은 1973년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벌판에 터를 팠다. 정 명예회장이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이용해 막대한 차관을 도입한 일화는 유명하다. “우린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돈을 꿔 줄지 망설이던 영국의 은행 간부를 설득했다고 한다.

90년대 들어 ‘최초’ 시리즈를 양산하며 세계 조선업계 선두로 자리매김했다. 94년 ‘조선 기술의 꽃’으로 불리며 일부 선진국에서나 만들었던 액화천연가스(LNG)선을, 98년에는 척당 가격이 10억 달러(약 9100억원)에 이르는 부유식원유생산저장설비(FPSO)를 국내 최초로 건조했다. 2004년에는 ‘꿈의 컨테이너선’이라는 1만 TEU(1TEU는 컨테이너 한 개)급 울트라 컨테이너선을 세계 최초로 수주했다. 또 맨땅에서 배를 올리는 육상건조공법을 개발해 조선 역사를 다시 썼다. 민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의 역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도전과 창조의 연속이었다”며 “2010년까지 매출 225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회사로 발돋움하겠다”고 밝혔다.

◆‘한번 해 보자’는 도전정신이 중요=현대중공업의 인재상은 ‘해 봤어’ 정신에 뿌리를 둔다. 인력개발부의 노진율(43) 차장은 “강한 의지로 추진력 있게 일할 사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 공채는 1년에 두 차례 상·하반기에 한다. 서류 전형에서 뽑힌 사람들은 1박2일 합숙하며 시험을 본다. 지원서는 회사의 인재상과 자신이 원하는 직무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작성하는 게 좋다.

첫날은 기본 자질 평가를 한다. 영어·한자·전공 시험을 보고 직무적성검사를 받는다. 이틀째에는 인성·자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임원 면접을 한다. 한자 시험은 중국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도입했다. 국가공인 4·5급 수준이다. 시험 첫날 저녁에는 회사 사람들과 만찬을 하는데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기획팀의 김정연(24)씨는 “1박2일 동안 경쟁해야 할 지원자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평가한다”며 “면접 때는 간결하게 요점만 말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리더 육성=현대중공업의 사내 교육 목표 가운데 국제화 비중이 가장 크다. 경영지원본부의 김환구(52) 상무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우선 인력의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입사원은 입사 2년이 되는 해에 소속 부서 특성에 따라 단기 해외연수를 간다. 올해는 중국 조선소, 일본 도요타자동차 공장, 쿠웨이트 원유생산설비 공사 현장 등을 1주일간 방문했다.

장래 임원과 부서장감을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81년부터 젊은 대리급 핵심 인력을 선발해 1년 동안 다양한 공부와 업무개선 활동에 몰두케 하는 주니어보드(Junior Board·청년중역회의) 제도를 운영한다. 임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경영 관련 아이디어를 내놓는 ‘경영제언 활동’을 한다.

매년 연구기술직 사원 중 30여 명을 선발해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에 파견한다. 해외지사 및 법인에 매년 10여 명을 선발해 반년간 해외업무를 경험토록 하는 예비 주재원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최고의 복지=미국의 인사 컨설팅 전문업체인 ‘휴잇어소시에이츠’는 3년 연속 현대중공업을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했다. 1만7500가구의 아파트를 저렴하게 공급해 전 직원의 주택보급률이 95%에 이른다. 지금까지 26만 명의 사원 자녀에게 4500억원의 장학금을 줬다. 현대예술관 등 7개 문화예술센터를 운영하며 천연잔디 축구장·실내체육관·수영장 같은 스포츠 시설도 다양하다.

여름에는 울산공장 근처의 무료 휴양지 네 곳을 이용할 수 있다. 임직원에게 가족과 함께할 주말농장도 분양한다.


문병주 기자

Q&A
요트·수영 동아리 등 사내 모임 1000개


Q:신입사원의 연봉은.

A:올 하반기 입사자를 기준으로 4400만원이다.

Q:해외에서 근무할 기회는.
 
A:수출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13개 지사와 18개 법인, 25개 이상의 공사 현장에 1000여 명을 파견한다. 해외 주재원의 경우 외국어 및 해당 분야의 전문적 능력이 있는 대리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2∼4년 근무하며 생활비·학자금 등 비용 일체를 회사가 부담한다.

Q:입사 후 직무 배치는.
 
A:신입사원들은 희망하는 사업본부와 직무를 1·2지망으로 신청한다. 희망하는 직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인원이 맞지 않을 경우 상담을 거쳐 유사한 직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다.

Q:중공업 회사라 여성 직원이 생활하기 힘들 것 같은데.
 
A:전체 직원 중 여직원은 1400여 명으로 5% 정도다. 주로 영업·기획·홍보직에서 활동한다. 연구소와 용접 등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도 많다. 미혼 여성을 위한 기숙사와 산전·산후휴가, 육아 휴직, 보육시설 등 모성 보호를 위한 각종 복지제도가 있다.

Q:회식 문화는.
 
A:회식 자리가 잦은 편이다. 바다와 접한 곳이라 회식 자리의 주요 메뉴는 해산물이다. 최근에는 인근의 현대예술관 등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보며 모임을 즐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Q:사내 모임이 활발하다는데.
 
A:요트회·수중사진동우회·바다수영회 등 동아리가 1000개 정도 된다.

신입사원
"삼겹살 면접 때 긴장 풀지 마세요"


‘아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보다 즐길 수 있는 일을 하자.’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혁희(27·사진)씨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다짐했던 문구다.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수출입업무부에서 계약부터 수출대금 회수까지의 전반적인 수출입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요즘은 매일 책상에 수십 장씩 쌓이는 서류를 보며 ‘잘나가는’ 회사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일은 많지만 세계 1위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다들 하나쯤 갖고 있다는 컴퓨터 자격증도 없고, 외국에 어학연수도 다녀오지 않았다. 그의 합격 비결은 무엇일까.
 
“시험을 잘 보거나 학점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만이 가진 그 무엇’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이씨는 현대중공업 입사 전형을 셋으로 요약했다. ▶취업 스터디 같은 벼락치기로는 승산이 없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해라 ▶인간 됨됨이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채용 시험은 1박2일로 한자·영어시험·전공·임원면접 등을 거치도록 돼 있다.

 
영어회화에서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자기소개 후 옆 지원자들을 영어로 소개해 보라는 것이었는데 다른 지원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듣지 않았다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회사 실무진과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저녁 식사면접은 인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자리다.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고보다는 얼마나 예의 바르고 솔직한가를 평가하는 자리라고 한다. “너무나 편안한 분위기여서 긴장을 풀거나 술에 취하기 쉬운데 지나치게 긴장을 푼 사람들은 거의 탈락했다는 후문입니다.”
 
최종 면접에서 어떤 말로 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때 밝혔던 이씨의 포부를 들어봤다.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단지 아는 차원,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10년·20년이 지나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