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오일쇼크가 몰아쳤던 1980년 말, 부산시는 관내 모든 식당의 공기밥 그릇 크기를 높이 6㎝, 직경 10㎝ 이내로 줄이라는 행정지침을 내려 보내 시민들 분노를 샀다. 지금 상식으론 이해 안 될 에피소드지만, 그만큼 고(高)유가의 충격파가 엄청났다.
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36달러(두바이유 기준). 그것이 지금은 85달러까지 뛰어 올라 지난 1일 사상 최고치(85.69달러)를 기록했다. 27년 전 2차 오일쇼크 때 유가 수준의 2배를 넘은 것이다.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충격도는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작다. 비싸진 휘발유 값을 놓고 불평은 나오지만 피부로 느끼는 체감(體感) 유가는 오일쇼크 때보다 낮다. 나라 경제가 망할 것처럼 위기에 들끓었던 1·2차 오일쇼크 때와 달리 국민 생활은 비교적 평온하다. ‘조용한 유가 100달러 시대’의 비밀은 무얼까.
◆대형차 잘 팔리는 수수께끼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영선(35)씨는 요즘도 서울 서대문에 있는 집에서 안양의 회사까지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김씨는 “월 30만원 정도 기름값이 들지만 외근이 잦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승용차는 기름 많이 먹는 대형차가 잘 팔린다. 올해 들어 9월까지 2000㏄ 이상 대형차 판매량은 3.6% 늘었지만, 소형차(1500㏄ 미만)는 도리어 15.7% 줄었다.
전북 김제 유리 온실에서 시설채소를 재배해 일본에 수출하는 조기심(48)씨는 “기름값이 올라 생산비가 30% 정도 더 들지만 어차피 기름값 인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수출 경쟁력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산업계도 걱정을 하면서도 비상경영까지는 돌입하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생산원가가 올라가는 것보다 유가 급등 소식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것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00달러가 주는 심리적 위축을 제외한다면 ‘제3차 오일쇼크’로 불릴 만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유1: 물가·소득은 더 올랐다
지금의 국제유가는 1차 오일쇼크(1974년) 때보다는 8배, 2차 오일쇼크(1980년) 때보다는 2.4배 가량 올라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물가·소득 상승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체감 가격은 그때보다 낮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 사진=블룸버그
◆이유2: 석유 의존도 줄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산업의 석유 의존도가 떨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석유를 많이 잡아먹는 중화학 공업에서 석유가 덜 들어가는 IT며 첨단산업으로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전 세계 산업의 석유의존도는 1974년의 절반 수준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물가 수준과 석유의존도를 함께 고려한 가격을 ‘실질실효가격’이라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두바이유의 연평균 가격이 84.97달러가 되면 1차 오일쇼크 때와 충격이 비슷하고, 151.65달러를 유지해야 2차 오일쇼크 때와 맞먹게 된다.
유가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급등세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은 “1·2차 오일쇼크 때는 유가가 1년 새 150% 폭등했지만, 올해는 40% 상승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유3: 난방비 비중 낮아졌다
1·2차 오일쇼크 때 서민들의 가장 큰 고통은 난방비 상승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근로자 가구가 전기·난방·취사 등에 사용하는 광열비는 전체 소득 중 2.3%에 불과하다.
1980년에는 소득의 5.2%, 1974년엔 5.4%를 광열비로 썼다. 그만큼 현재 유가 상승 여파를 덜 받는 구조가 됐다.
하지만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수급실장은 “소득이 낮은 하위 10% 가구일 경우 광열비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수준”이라며 “유가 급등기에 저(低)소득층의 기름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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