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시모음 ▒

김소월 시 모음

천하한량 2007. 11. 7. 00:46

     

          김소월 시모음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밟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 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 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 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 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료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