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지혜 ▒

바람난 40대, 방황을 두려워 마라

천하한량 2007. 10. 28. 22:32

바람난 40대, 방황을 두려워 마라
‘사추기’는 인생 2막 여는 출발점 …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올인 기회
이경수 ‘마흔의 심리학’ 저자
 
 

40대의 자화상

최근 40대 동방신기로 데뷔해 화제를 모은 댄스그룹 ‘파파스’.

‘바람난 남자’. 40대 남자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40대가 되면 남자들의 가슴에는 바람이 분다. 태풍처럼 거센 바람의 소용돌이가 속을 마구 흔들어댄다. 눈이 멀도록 ‘찐한’(?)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뜬금없이 머리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 출근길에는 지하철을 타고 그냥 이대로 종점까지 가고 싶기도 하다. 학창 시절 품었던 꿈이 떠오르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린다.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은지,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경쟁하듯 머리를 내밀고 쑥쑥 올라온다.

하지만 할 수가 없다. 얽매인 것이 많아서, 주머니가 가벼워서, 용기가 없어서, 주위 시선이 두려워서….

그러자니 한없이 처량하다. 지금껏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갑을 열어보면 만원짜리 몇 장 달랑 들어 있다. 누군가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올까 두렵다. 옷차림은 후줄근하고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깎은 머리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싸구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면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북이 올라와 있고 눈가 주름살은 밭고랑만큼이나 깊다. 배는 대책 없이 나오고 머리카락은 서리 맞은 단풍처럼 빠진다. 어느 때부턴가 친구들의 부음마저 들려온다. 인정하기 싫은 나이, 마흔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상은 일말의 기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훤히 내다보이는 미래에 가슴이 답답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이 없다. 아니, 사람은 많은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살기 바쁜 친구들은 약속시간 잡기조차 어렵고, 아내에게 남편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밀린 지 오래다. 직장에서는 중간에 끼여 위아래 눈치 보기 일쑤다.

주책없이 눈물은 왜 자꾸 나는지. 노래를 들어도, 영화를 봐도 모두가 내 이야기인 것 같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눈물이 핑 돈다. ‘바람난 40대’의 자화상이다.

40대의 가능성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서글픈가. 당장 한강에라도 가야 할 것 같다). 40대의 가슴에 이는 바람은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한다면 그 이후는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40대의 방황은 중요하다. 이 시기를 변화의 기회로 활용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다.

마흔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을 한다.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다. 40대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 10대 사춘기 청소년은 무조건 덤비고 본다. 때문에 이들의 도전은 쉬이 실패한다. 하지만 40대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한층 높다. 여기에 한 가지 더. 40대는 경제적인 여력까지 있다. 많든 적든 새로운 시도를 할 때 필요한 ‘총알’이 있는 것이다.

풍부한 경험과 경제적 여력은 가슴에 이는 바람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판단하는 만큼 가족, 나이, 건강, 시간 등 많은 것을 고려한다. 그만큼 제약 조건이 많다는 뜻이다. 때문에 가슴으로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머리로는 그것이 안 되는 이유를 수십 가지씩 꼽고 있다. 그러면서 실패했을 때 빚어질 결과를 떠올리며 두려워한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마흔의 바람은 단순한 방황에서 그치고 만다.

 

두려움 극복법

그럼 이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두루뭉술하게 ‘나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자신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흰 종이나 컴퓨터 워드 문서에 자신의 이름, 나이, 학력, 외국어 수준, 건강 상태, 보유 자격증, 성격의 장단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관심 분야,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등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써보라. 이렇게 하나하나 써 넣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그려진다. 이 과정이 끝났다면 평가한 것을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평가서를 완성했다면 이제는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가장 잘하는 것, 경쟁력을 가질 만한 것들만 남기고 못하는 것, 모자라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20, 30대까지만 해도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기 위해, 못하는 것은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하기 위해 둘 다 안고 간다. 하지만 40대에는 둘 다 갖고 가기 어렵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시험이 임박했을 때 모르는 것은 과감히 뛰어넘듯, 40대에는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대신 못하는 것에 쏟을 열정과 노력을 잘하는 것, 하고 싶은 일에 몰아주자. 그러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된다. 이제 실천만 남았다.

40대의 방황은 가슴속에 품고 있는 바람과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 간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방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바람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아니면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자신의 바람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심한 마흔앓이를 경험했다. 그때 그 방황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 시작된 나만의 작업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피곤했지만 아주 즐거운 고단함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 일은 부업이다. 본업은 퇴근 후부터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본업을 하기 위해 그깟 아르바이트 10시간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서서히 나를 옥죄고 있던 우울증과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사추기 No, 사춘기 Yes

40대 아저씨들이 20년 전 밴드를 재결성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즐거운 인생’.

두려움 극복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대화 상대를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미워하고 외면하는 사람보다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다만 언제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외롭고 힘들 때, 새로운 도전을 앞에 놓고 떨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 상태와 기분, 계획 등을 털어놓아보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다의 효능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대화 상대는 가족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좋다.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언제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좋은 대화 상대는 역시 배우자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마흔은 흔히 말하듯 ‘사추기’가 아니다. 저물어가는 석양, 계절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가을이 아니다. 희망찬 시작을 알리는 일출, 꿈틀대는 생명의 힘과 에너지를 품고 있는 봄의 느낌, 사춘기와 똑같다. 더욱이 40대는 그 에너지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좋은 재료를 갖고 있는 시기다. 그만큼 마흔의 방황과 고뇌는 새로운 인생의 제2막을 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아저씨들 반란은 무죄!
록밴드·오토바이 마니아 등 ‘즐거운 일탈’ … 정서적 경험 채워가며 제2의 삶 설계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할리데이비슨 모임 ‘라스트라다’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레볼루션이에요.”

올해 49세인 김유석(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디자이너) 씨는 지난 8월부터 한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영화제작을 배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단편영화 완성을 목표로, 영화제작 전반에 관한 이론과 실습 강의를 듣기 위해 퇴근 후 저녁시간을 고스란히 할애하고 있다. 회사 업무가 넘칠 때는 고되기도 하지만, 그는 요즘 무척 즐겁다. 자신만을 위해, 업무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대가 부럽지 않은 40대 급증

“줄곧 남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종종거리며 살아왔거든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승진하고, 집을 사고, 8학군으로 옮기기 위해 돈을 모으고…. 계획했던 일을 하나하나 이룰 때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30대 후반부터 답답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가 이 일(영화)을 했는데,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생겼다. 영화 외에도 패션디자인이나 제과제빵 같은 분야에 손을 뻗어볼 생각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영화로의 ‘일탈’이 김씨에게 20대 못지않은 활력을 준 것이다.

김진홍(대학교수·44) 씨와 ‘라스트라다’ 멤버들은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이 있기에 ‘20대가 부럽지 않은 40대’다.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의 ‘라스트라다’는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의 호그(HOG 할리 데이비슨 오너스 그룹) 모임 가운데 하나로 멤버들은 대부분 30~50대 중년 남성이다. 회장을 맡은 김씨는 2년 전 지인을 통해 처음 할리데이비슨을 접하고, “말발굽 또는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와 온몸을 전율하게 하는 진동 느낌에 반해” 오토바이를 샀다고 한다.

“회원 중에는 FM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우연히 할리를 타본 순간 일탈을 경험하게 된 거죠.”

이들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교외로, 때로는 지방으로 ‘애마’를 타고 달린다. 먼길을 달리지만 오토바이는 늘 반짝반짝 빛난다. 칫솔과 이쑤시개까지 동원해 하루에 몇 번씩 닦을 만큼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가죽점퍼에 해골 모양의 액세서리 등 복장 역시 화려하다.

“처음엔 가죽바지와 재킷만 입었어요. 그러다가 옷에 패치를 붙이기 시작했고, 반지 같은 액세서리나 팔찌, 나중엔 귀도 뚫고 타투(문신)까지 하게 됐죠.(웃음)”

그렇다고 김유석 씨나 김진홍 씨가 유별난 40대는 아니다. 김유석 씨와 함께 강의를 듣는 7명의 수강생 중 3명이 40대 아저씨며, 인터넷 카페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할리를 타고 싶다”는 중년 아저씨들의 글이 올라온다.

그뿐인가. 학창시절 문학청년이었던 누군가는 다시 펜을 잡고, 로커를 꿈꾸던 누구는 OB밴드 활동을 하거나 직장 동호회 밴드를 결성했다. 국내 1호 직장인 밴드 ‘갑근세 밴드’를 결성한 구자중(41) 씨에 따르면 “10여 년 전만 해도 흔치 않던 직장인 밴드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공자는 마흔 살을 ‘불혹(不惑)’,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이라고 칭했지만, 요즘의 마흔 살은 되레 뭔가 꿈틀거림이 시작되는 시점처럼 보인다. 서점에는 40대 남성을 겨냥한 인생 지침서가 쌓여 있고, ‘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 ‘와일드 호그’ 등 평범한 중년의 삶을 거부하고 록밴드 결성이나 바이크 여행을 통해 일탈을 감행하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다.

직장인 밴드 ‘갑근세 밴드’, 영화 제작 강의를 수강 중인 김유석 씨(오른쪽).

지루한 세상 재미있게 만드는 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명지대 여가경영학과)는 40대 남성들의 이런 변화를 “정서적 경험이 박탈됐던 한국 중년 남성들이 자신의 부족한 정서적 경험을 채워가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삶을 찾고 있는 최모(48) 씨에게도 해당한다. 그는 2년 전 동업하던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피아노, 그림, 여행, 요리 등 “옛날에 못 놀았던 것,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해보고 있다”는 그의 일탈을 두고 주변에서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의무도 있겠죠. 다만 지금은 ‘스스로 행복한 삶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생활 패턴은 같을지 몰라도,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중년 남성들의 호응을 얻은 영화 ‘즐거운 인생’의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 특히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저지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불만이 있으면 개선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현실을 흔들어야죠. 그리고 사실, 자신이 마음에 담아둔 뭔가를 ‘저지른다’고 해서 가정이 파괴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가장을 보면 ‘무책임하다’고 질책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위선 아닌가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가족이나 타인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봐요.”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아저씨의 ‘건강한’ 일탈은 개인을 성숙시키고, 지루한 세상을 좀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저씨들이여, ‘삶이 그대를 속인다’ 싶으면 한 번쯤 ‘일탈’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함으로써 자신과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집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화가 발달하게 되죠.”(김정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