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춘년(雙春年)의 결혼식 이야기 (2006 처용수필 13호 박일송님 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삼생삼가연(三生三佳緣) 즉, 전생과 이승, 그리고 저승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삶을 통해 세 가지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혼례를 통하여 맺어지는 부부의 인연이라 한다. 우연히 서로 만나나 사랑을 싹틔우고 소중히 가꾼 결실로 부부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까마득한 전생에서부터 이미 하늘이 점지하여 맺어주신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서양의 경우 교회에서는 개인을 위해 평생 동안 세 차례의 종을 울려주는데, 첫 번째가 탄일종이고, 다음이 혼인종이며, 마지막으로 죽었을 때의 조종이다. 이 세 가지 중요한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것이 혼인이기에 가장 오랫동안 종을 울린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하며 어쩌면 기구하기도한 인연의 끈을 완성시켜 주는 의식이 혼례식이다. 그러나 이 혼례식이 근래 20~30년 사이 상업주의의 덧에 결려 기괴한 형태로 뒤틀어지고 더럽혀져서 천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결혼에 대한 우리의 의식구조를 살펴보므로 이 문제를 접근해 보자.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소유애착이 강해 대학교육, 취직과 결혼까지를 부모의 필수적 의무로 받아들이고, 형편이 어려우면 빚을 지고라도 엄청난 경비를 들여 결혼식을 치러주어야 마음을 놓는다. 그러한 관습적으로 수용하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식을 결혼시켜준다는 전통적 관념이다. 옛날 우리나라는 신랑이 10~12세, 신부가 13~15세경이면 혼인을 시켰다. 따라서 아무 능력이 없는 어린 신랑신부는 혼례의 시기, 배우자의 선택, 혼례비용 부담능력, 그리고 혼인 후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아무런 능력도 없으므로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혼인의 모든 영역이 부모의 판단과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부모가 혼례를 치러주지 않으면 자식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도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더벅머리 노총각, 긴 머리 노처녀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제 과거 3백년간의 산업사회를 지나 21세기의 새로운 지식기반사회가 시작되므로 과거의 전통적 문화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획기적으로 탈바꿈 하였다. 이에 혼인의 양상도 조금씩 변하게 되어 결혼시기, 배우자 선택, 결혼 전 뿐만 아니라 결혼 후의 생활까지도 모두 신랑신부가 결정하여 꾸려나가며, 부모에게는 형식적인 예의절차를 취할 뿐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면 부모가 결혼시켜주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이 결혼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결혼 비용만은 부모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야기되는 요인이 첫째, 과다한 결혼 비용 문제라 생각된다. 서양의 경우 일반적으로 결혼 비용은 신랑신부의 부담으로 이루어지며, 그 소요 금액은 결혼당사자 각자 평균 2~3개월 분 월급이 기본이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미국 신랑신부의 경우 평균 월 3천 ~5천불 월급을 받으므로 우리 돈으로 약 500~1400만원 사이의 금액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 신랑신부 소득수준인 월 150~300만원을 근거로 산출하면 300~900만원 사이의 결혼 비용을 소비해야 적절하나 일반적으로 6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정도를 쓴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미국의 40% 수준임을 계산하면 미국인들에 비해 50배나 많은 금액을 쓰고 있어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것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만약 부모로부터 금전적인 도움도 없고 하객들의 축의금을 받지 않아서 순수하게 본인들이 번 돈으로 자기 결혼 비용을 부담한다면 이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결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비합리적인 원인도 있다. 조부모, 부모, 형제, 삼촌, 고모, 이모까지 준비하는 예단도 그렇지만 당사자들의 자동차와 주택, 그리고 함께 구비하는 침대, 화장대, 옷장,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전기밥솥, 사철 이불과 의복, 신발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생활용품을 한꺼번에 혼수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이는 60~70년대 이전 생필품이 귀할 때 숟가락 하나까지 살림살이를 받아서 결혼한 부모들의 고정된 관념이 중요 이유 중 하나라 생각된다.
우리 사회의 결혼 비용이 이렇게 많이 소요되다보니 10년을 같이 살면서도 경제적 형편이 안 되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자식 낳고 사는 부부가 있게 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마련하여 부족함 없이 사는 것도 좋지만, 살아가면서 서로의 취향과 용도에 맞는 것들을 자기들이 아껴 모은 돈으로 하나씩 둘씩 장만하여 살림이 점차로 불어나는 뿌듯한 기쁨을 매달 느끼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
둘째로, 결혼식의 형식에 대한 문제점이다. 결혼식은 신성하고 경건하게 진행되어양 한다. 따라서 그 예식장의 좌석 수에 맞게 가족중심의 친지들을 초청하고, 참석자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야 하며, 음악연주회처럼 예식의 시작과 함께 식장의 문을 닫아야한다. 그러나 예식장 자리는 불과 1~2백 석인데 4~5백 명의 사람에게 청첩장을 보내어 식장에 앉을 자리는커녕, 축의금 수납대열이 아래층 계단까지 내려간다. 간단히 축의금만을 주고 빨리 사라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식장 안은 물론 바깥까지 왁자지껄한 모습은 어느 잡 시장바닥이 이를 능가할까? 하객은 축복의 기쁨이 아니라 환멸감을 가슴에 묻고 돌아간다.
그리고 결혼식장의 신랑신부를 보자. 처음에는 20세기 서양식 턱시도 양복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가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모관대와 족두리가 있는 18세기 한복으로 후다닥 갈아 입고 다시 나타나서 폐백을 드린다. 그러고 나면 잠시 빌려 입은 그 옷을 다시 벗어던지고 21세기 현재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의 시공을 휘젓고 다니는 신랑신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한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혼례식이 민족별로 차이는 나지만 지금 우리나라와 같이 기괴하게 뒤틀려있지는 아니하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먼저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결혼식을 엄숙하게 치른다. 그리고 웨딩파티 초청자들의 참석여부를 확인한 후 형편에 맞게 준비한 파티를 베푼다. 일체의 축의금은 없고, 웨딩샤워라는 이름으로 몇 몇 친구들이 10~20불씩 모아서 신혼살림에 쓰일 가재도구나 전자제품들을 물건으로 선물하는 것이 전부다.
세 번째 문제점은 무국적 사치 결혼식이다. 마치 결혼식 하루를 위해 태어난 하루살이처럼 서양식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전통적인 폐백을 위한 한복 사모관대와 족두리 빌리는 값 50~200만원, 신부화장과 마사지 비용 50만원, 부케 20만원, 꽃 터널장식 이벤트에 몇 백 만원을 지불한다. 그러나 잔칫상 대신 하객들에게 주는 만 원짜리 현금봉투...... 이런 것이 간소화가 아닌 사치 쪽으로 한 없이 치달아 결혼식 날 만은 국민소득이 미국의 50배가 넘는 수준인 200만 달러의 졸부로 변해 엄청난 돈을 날린다. 우리의 전통혼례식도 서양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이상한 결혼식이다.
물론 부모나 당사자가 넉넉해서 많은 돈을 들여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를 촉진하므로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도의 최상위 부유층의 경우 수백억 원을 들여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 걸인들까지 모두 초청하여 음식과 선물을 베풀어 주므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지만, 축하객 누구로부터 어떤 돈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넉넉한 사람들이 자기 집 결혼을 축복받기 위해 축하객을 초청하면서 그들에게 베풀기는커녕 거꾸로 초청 받은 서민들이 돈을 내어 축하해야하고, 이 축의금으로 호화사치 결혼식을 자행하므로 참석한 사람들은 축복의 감동보다 상대적 허탈감과 배신감에 빠진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관행이 보편화 되다 보니 가난한 서민들도 이 양상을 비판 없이 수용하므로 이 비용 지출이 매달 서민들 월급의 10~20%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치지 못하고 있는 큰 병폐이며, 신성한 혼인문화를 빙자한 자본주의적 퇴폐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고급술집이나 안마시술소 안에서 간혹 이루어지는 퇴폐행위는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결혼식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상업적 갈취 행위며, 이것이야말로 어느 것 보다 먼저 퇴출되어야 할 퇴폐결혼식이 아닌가? 사회 지도계층과 일반시민들이 먼저 솔선 수법해야하고, 시민단체들도 건전한 결혼식의 몇 가지 기준을 세워 계도하는 범국민 사회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필자가 교회에서 결혼할 때는 결혼식 초청장에 축의금을 사절한다는 정중한 글귀를 넣고, 가족친지들과 몇 몇 친구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오셔서 축복해 달라고 했다. 결혼할 때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데 친가와 처가 부모님들로부터 한 푼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고이 길러서 키워주시고 공부시켜주신 것도 하늘같이 고마우신데 무엇을 더 얹어 달라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본인은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하고 주례도 했지만 축의금을 준 일은 없다. 다만, 축하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몇 천 원 정도의 선물을 정성껏 포장해서 드렸을 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 자식들과 주위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당당히 실행하고 있다.
결혼예식장 업계에 전례 없는 호황을 안겨준 2006년 - 한 해 봄이 두 번 있는 쌍춘년에 결혼하면 가정에 복이 넘친다는 한해도 저물어간다. 삼생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부부의 인연을 이루는 혼례식은 더 더욱 합리적이면서 순수해지기 위해 우리 사회의 관행적 인습에서 스스로를 과감히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글을 옮깁니다. 사진 과 타이핑 : 솔바람 (구암박재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