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상.장례(喪.葬禮) 절차
전통 상.장례(喪.葬禮) 절차
임종(臨終)→수시(收屍)→고복(皐復)→발상(發喪)→전(奠)→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 → 운구(運柩)→하관(下棺)→성분(成墳)→반곡(反哭)→초우(初虞)→재우(再虞)→삼우(三虞)→졸곡(卒哭)→부제→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길제(吉祭)
▣ 초종의 의미
초종(初終)이라함은, 보통 초상(初喪)이라는 말을 예문(禮文)에서 쓰는 말이다.
그 본래의 뜻은 운명(殞命)에서 졸곡(卒哭)까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운명에서 전(奠)까지를 의미한다.
1) 천거정침(遷居正寢)
환자의 병세가 위급해 도저히 회춘(回春)할 가능성이 없으면 환자를 정침(안방)으로 옮긴다.
그리고 집 안밖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환자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환자의 머리는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북쪽 문 밑에 편안하게 모신다.
네 사람이 조용한 가운데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무른다.
(천거정침(遷居正寢)은 가주(家主)에만 해당하고 가주 이외의 사람은 자기가 거처하던 방으로 옮긴다.)
2) 유언(遺言)
환자의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정돈하고 운명을 기다린다.
이때 병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도록 내용을 간락하게 묻고 그 대답을 기록한다.
병자가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평소에 미진한 일이나 사후에라도 실행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훈계나 교훈, 그리고 재산분배에 대한 유언일 것이다.
유언은 원래 자필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간적인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대리로 써도 된다.
유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마지막 귀중한 말이므로 자손들 및 친지들이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한다.
3) 임종(臨終)
임종(臨終)이란 운명(殞命)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자손들이나 친지들은 환자의 운명을 정중하고 경건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남자의 임종은 여자가 지키지 않으며, 여자의 임종은 남자가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손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4) 속광
환자의 손과 발을 잡고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햇솜을 환자의 코 밑에 대놓고 환자의 숨이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속광이라한다.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말한다. 환자가 완전히 숨을 멈추지 않았을 때 곡서이 요란하면, 운명하는 이가 순간이나마 마음이 불안하고 혼란할까 염려되므로 가족은 울음을 참고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속광해야 한다.
5) 수시(收屍)
숨이 끊어지면 눈을 감기고 준비한 햇솜으로 입, 코, 귀를 막은 후에 머리를 높여 반듯하게 괸다.
가족들은 자연 시신을 붙들고 울게 되는데, 이때 친척 가운데 초종의 범절에 익숙한 사람이 가족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시신이 굳기 전에 손과 발을 주물러서 펴게 하고 수시를 한다.
수시는 문을 닫고 하고, 시체를 안치한 방에는 불기운을 없애고 바닥에 짚은 깐다.
백지로 시신의 얼굴을 덮고, 백지나 베로 양쪽 어깨를 반듯하게 묶는다.
그 다음 턱을 괴고, 양손은 배 위에 올려 놓는데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백지 또는 베로 시신의 자세가 어그러지지 않게 팔과 다리를 묶는다.
그런 다음 시신을 시상(屍上) 위에 옮겨 누이고 홑이불로 덮은 후에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린다.
그 앞에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 다음, 중앙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한다.
(이 수시 절차를 소홀히 하면 손발과 몸이 뒤틀리고 오그라드는 경우가 생기므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
6) 고복(皐復)
고복(皐復)을 복(復), 초혼(招魂), 또는 "혼을 부른다"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흐트러진 혼을 돌아오게 한다는 뜻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데 남상(男喪)일 때는 남자가 올라가고, 여상(女喪)일 때는 여자가 죽은 사람이 입던 속적삼을 들로 올라간다.
동쪽 끝으로부터 지붕의 중앙에 올라가서, 왼손으로 그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휘두른다.
이때 크고 긴 목소리로 "00도 00군 00면 00리 학생 000공(公) 복 복 복!"하고 외친다. 죽은 자가 관작(官爵)이 있으면 "00관(官) 00공(公)"이라 하고, 죽은 자가 여자일 때는 남편의 관작을 좇아 "00부인 0씨"라고 하고, 관작이 없으면 "유인(孺人) 0 0 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고복할 때는 상주 이하 모든 가조고이 울음(곡)을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떠나려는 혼이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고복한 후의 옷[復衣]은 지붕 위에 그대로 놓거나 시체의 가슴 위에 올려 놓는 등,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주소와 관작에 성을 말하지 않고 "복!복!복!" 하기도 하고, "돌아보고 옷이나 가지고 기시오!"라고 하기도 한다.
죽음이 확인되고 사잣밥을 놓을 때에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고인을 부르며 땅을 치고 곡을 한다.
☞ 초혼의 예) "사바세계 해동 대한민국 0 0 (도.시) 0 0 (읍.면.동) 0 0 번지 0 0 호 (학생.유인)본관 0 0 0 (공.씨) 0 0 세 0 0 년 0 0 시 0 0 분 별세 복!복!복!"
7) 사잣밥
고보고을 한 다음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잔과 백지 한 권, 북어 세마리, 짚신 세 켤레, 약간의 동전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 한다.
염라대왕이 사자(使者)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 저승사자를 대접해 편안히 모셔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8) 발상과 상주
고복이 끝나면 아들, 딸, 며느리 즉 자손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다.
이와같이 상제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 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發喪)이라 한다.
발상과 동시에 상중(喪中), 기중(忌中) 또는 상가(喪家)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인다.
이렇게 초상이 나면 예제(禮制)에 따라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를 정한다.
상주는 상사(喪事)의 중심이 되는 상인(喪人)을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 상주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맏아들이 없고 맏손자가 있을 때는 작은 아들이 있어도 맏손자가 상주가 되고, 상주가 된 장손을 승중(承重) 또는 승중손(承重孫)이라 한다.
주부는 여자 상주로서 아내가 대신한다.
그리고 죽은 자의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주상이 되며,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9) 호상과 사서, 사화
호상이란 발상이 끝나면 상주를 도와서 상사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상사를 알리는 일에서부터 치상(治喪)의 범절까지를 주관한다.
그러기에 호상은 상가의 모든 것을 잘 아는 친척 또는 친구 가운데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임한다.
사서는 상사에 관계되는 문서를 맡은 자이며, 사회는 장재(掌財)라고도 하며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물품과 금전의 출납을 관리 담당하는데,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선임한다.
사화가 일을 진행시킬 때는 공책을 세 권을 만들어 놓고, 한 권에는 물품이나 금전의 출납을 기록하고, 다음 한 권에는 조문객의 부의금을 기록하는 책으로서 그 책자의 이름을 (父喪)일 때는 조객록(弔客錄)이라 쓰고, 모상(母喪)일 때는 조위록(弔慰錄)이라고 쓴다.
10) 전(奠)
전(奠)이란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기 위해 술, 과일 등을 차려 놓은 것으로, 집사(執事)가 포(脯)와 식혜(食醯), 과일 등을 탁자위에 놓으면 축관(祝官)이 손과 술잔을 씻고 술을 따라 올린다.
술은 잔에 가득 차게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운 곳에 놓는다.
이것을 염슴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한 번씩 행한다.
집사와 축관이 전을 올리는 이유는 슬프고 애통하므로 자신이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사가 대행하는 것이다. 단 절은 하지 않는다.
11) 복인(服人)
복인(服人)의 범위는 고인의 8촌 이내의 친족으로 한다.
복인들 중 남자 상제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되 부상이면 왼쪽 소매, 모상이면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고 소매를 빼서 뒤로 넘긴다.
그리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안옷고름을 조금 매기만 한다.
여자 상제들은 머리를 풀고 흰 옷을 입는다.
12) 치관(治棺)
호상이나 목수나 관장(棺匠)을 시켜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게 한다.
나무 중에는 유삼(油衫)이 제일이고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오동나무순이다.
관재(棺材)는 천판(天板), 지판(地板)을 한 장씩, 사방판(四方板) 네장을 준비한다.
두께는 세 치(약9센티)나 두 치반(약 7.5센티)으로 하며, 높이와 길이는 시신의 길이와 부피에 맞도록 한다.
칠성판은 염습할 때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로 두께가 다선 푼이라 한다.
옛날에는 부모가 회갑이 지나면 이미 관재를 준비하고 옷칠을 하여 소중히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13) 부고(訃告)
부고(訃告)는 호상이 상주와 의논해 친척과 친지에게 신속하게 전한다.
부고장은 백지에 붓글씨로 쓰는 것이 정중하지만 장수가 많을 때는 인쇄로 하고 봉투만 붓글씨로 쓰는 것이 좋다.
부고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전인부고(專人訃告 : 직접 사람이 전하는 부고), 우편부고, 신문부고가 있다.
사후의 칭호는 부고를 보내는 것이므로 상주의 아버지면 대인(大人), 어머니면 대부인(大夫人), 할아버지면 왕대인(王大人), 할머니면 왕대부인((王大夫人), 아내일 때는 망실(亡室) 또는 합부인(閤夫人), 동생일 때는 망제(亡弟)라 쓴다.
14) 습
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를 입힌 뒤 염포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 또는 습렴이라 한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하게 씻기고 나서 수건을 닦고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깍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똑耽�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다음으로 습전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 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을 한다.
이어 시신의 입속에 구술과 쌀을 물려 주는데 이를 반함이라 한다.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사자는 이불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이라 한다.
이때 화톳불을 피우고 영좌를 꾸민다. 교의에는 혼백을 만들어 얹고 영정도 만들어 세워 놓는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 친지들이 들어가서 곡을 한다.
15) 소렴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죽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해 놓는다. 머리를 묶을 삼끈과 베끈을 준비하고, 소렴상을 마련하고 시신을 묶을 베와 이불과 옷도 준비한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올린 다음에 소렴을 시작한다.
우선 시신을 소렴상에 �똑耽� 옷을 입히는데, 옷은 좋은 것으로 골라서 입히고 이불은 겹으로 한다.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로 싸매고 면목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운다.
이불로 고르게 싼다음, 장포 두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로 묶는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간다.
16) 대렴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지 사흘째 되는날에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자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벌과 이불둘을 준비한다.
시신을 맬때는 세로는 한폭을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하고 가로는 두 푹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때와 같이 한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횡포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병풍이나 포장으로 관을 가린 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린다.
17) 성복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오복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제 자리에 나간 후에 조곡을 하고 서로 조상을 한다.
<상례비요>에 보면 사람들이 차마 그 부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대렴을 하고 그 날로 성복을 하는 수가 간혹있는데 이는 예에 어긋난다고 씌여 있다.
조상을 할때는 오복의 차례대로 행하는데, 여러 자손들은 조부와 아버지 앞에 가서 �D어 앉아 슬피 운 다음 조모 및 어미니 앞에 가서 또 이와 같이 한다.
여자는 먼저 조모와 어머니 앞에 가서 곡한 다음에 조부 및 아버지 앞에 가서 남자의 의식과 같이 행한다.
18) 상복 입기
상복을 입는 절차를 성복이라 한다.
대렴한 그 이튿날로서 죽은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차마 부모가 죽은 것으로 여길 수가 없어서 급히 성복을 하지 않고 4일이 된 후에 성복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렴과 성복을 같은 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3일이 지난 후 대렴을 하고 바로 그날 성복을 하니 이것은 본래의 예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 대렴한 이튿날 날이 밝을 적에 오복(五服)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 그 복을 입고 들어가서 제자리로 간 후 아침의 곡을 하고 조상한다.
상복은 머리를 걷고 단정히 상관(喪冠)을 씌되, 효건(孝巾)으로 받들고, 그 위에 수질(首姪)을 맨다.
치마를 입고, 교(絞)와 요질(腰姪)을 띠며 짚신을 신고 기년복(朞年服) 이상은 모두 지팡이를 짚는다.
부인은 머리를 걷었던 것을 버리고 관(冠)을 쓰고 최상(최裳)을 입으며, 요질을 띠고 짚신을 신으며 지팡이를 짚는다.
어린이도 성인과 같은데 다만 관과 수질이 없을 뿐이다. 남자는 널 동쪽에 서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각각 차례로 복을 입으며 모두 슬피 조상한다.
초상(初喪)때에는 성복 이전에는 조례(弔禮)와 배례(拜禮)가 없다.
요즘 들어 아침에 전을 올리고 나서 성복하기 전에 전에 절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 상관(喪冠) : 두꺼운 종이로 심은 넣는데 폭은 5인치 2푼반을 베로 싸되, 베의 샛수는 최에 비하여 조금 가는 것으로 한다.
삼년상은 다음어 빨지 않은 것, 기년(朞年) 이하는 빨아서 다듬어 둔 것으로 세 줄을 접는다.
효건(孝巾) : 관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 수질 : 건 위에 쓰는 것으로서 삼으로 두 가닥을 서로 꽈서 만든다.
꽈놓은 둘레가 참최는 9친치 재최는 7치2푼, 대공에는 5치7푼, 소공에는 4치6푼, 시마에는 3치5푼으로 한다.
▷ 치마 : 앞쪽 여섯 폭, 뒤폭도 여섯 폭으로 앞은 웃옷 앞섶과 같이 떠놓는다.
▷ 요질(腰姪) 교대 위에 매는 것으로 허리띠를 말한다. 짚에 삼을 섞어서 굵은 두아줄 같이 만든다.
그 굵기가 참최는 7치2푼, 재최에는 5치7푼, 대공에는 4치6푼, 소공에는 3치5푼, 시마에는 2치8푼으로 한다.
▷ 짚신 : 참최에는 짚신, 재최에는 삼신, 소공 이하는 보통신을 신는다.
▷ 지팡이 : 대나무로 만드는데 높이는 가슴에 닿게 하고, 재최에는 오동나무를 깍아서 네모 버드나모로 대용해도 무방하다.
19) 문상(聞喪)
객지에 나가 있다가 보모의 상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다.
부음(訃音)을 듣는 즉시 곡을 하며 부고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절을 하고 흰 옷으로 갈아 입는다.
집에 돌아오면 상복으로 다시 갈아 입고 시신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한다.
▷ 심상(心喪) - 실제로 상복은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3년 동안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스승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서나 또는 적모(嫡母)나 계모, 재가한 어머니를 위해서도 이와 같이 한다.
▷ 조상(弔喪) - 조상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식 상례의 경우 조상은 원래 성복(成服) 후에 하도록 되어 있다.
성복 전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가서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영구(靈柩)에는 절을 하지 않는다.
성복 후라도 망인과 생시에 안면이 없었거나 여자인 경우 빈소에는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조객은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주는 일어나서 '애고 애고...'하고 곡을 한다. 호상이 조객을 안내하여 영좌 앞으로가면 조객은 '허희 허희...'(보통은 '어이 어이...')하고 슬피 곡을 한 뒤 두 번 절을 한다.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제문(祭文)을 읽고 조객이 가져온 부의(賻儀)의 명세를 바치고 나면 조객과 상주가 모두 슬피 곡을 한다.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조객은 상주와 맞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상사(喪事)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또는 "상사 말씀, 무슨 말씀으로 여쭈오리까" 또는 "병환이 침중하시더니, 상사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상주는 머리를 숙여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망극하옵니다""원로에 수고하시니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 부의(賻儀) - 상가에 부의를 보낼 때는 백지에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낸다.
단자를 쓰지 않을 때는 봉투에 물목(物目)을 기록한다. 부의는 돈이나 상가에서 필요한 물건을 한다.
20) 치장
옛날에는 석 달만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에 앞서 장사를 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
묘자리를 정하면 이어 장사 지낼 날짜를 잡는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에 산역을 시작하고 토신에게 사토제를 지낸다.
▷ 천광(穿壙) : 사토제가 끝나면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壙中)을 만든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金井機)를 땅 위에 놓고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금정기는 나무 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관의 크기를 짐작하여 반듯하게 놓고서 네구덩이를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발라서 관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곽(槨)을 만든다.
21 ) 발인(撥靷)
관을 방에서 들고나서 상여로 옮기는 것을 천구(遷柩)라 한다.
상여가 상가를 떠나 장지로 출발하는 것을 발인 또는 출상(出喪)이라 한다.
발인시에는 반드시 발인제를 지낸다.
발인제 때 관의 위치는 천구하여 관을 상여 앞에 두고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 영구(靈歐, 관)을 상여 위에 올려 모셔 놓은 다음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발인제는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발인축을 읽고, 맏 상주는 두 번 큰 절(단작이배:單酌二拜)을 한다.
발인제를 지내고 상여꾼들이 상여를 처음 들어올렸을 때 망자의 집 쪽으로 향하여 세 차례 상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망자가 집을 보고 마지막 하직 인사라 한다.
상두꾼은 보통 남자들이지만 상여가 나갈 때 상여의 뒤쪽에 광목을 길게 늘여뜨려 부인들이 이것을 잡고 따라 가기도 하는데 이를 '설매' 또는 '배줄'이라 하고 혼이 저승갈 때 타고 가라는 뜻이다.
22) 운구(運柩) 와 노제(路祭)
발인 후 상여를 장지로 운반 이동하는 것을 '운구' 또는 '운상(運喪)'이라 하거나 '행상 나간다'고 한다.
운구를 담당하는 일꾼은 '상두꾼'이라 하며,상여노래의 앞소리를 하는 사람을 '선소리꾼'이라 한다.
운상 때는 맨앞에서부터 명정(銘旌)영여(靈與)만장(輓章)운아삽(雲亞삽)상여(喪輿) 상주, 백관, 조문객의 차례로 줄을 잇는다.
노제(路祭)를 안 지낼 수도 있지만 운구 도중에 보통 한 차례를 지낸다.
노제는 주로 망령(亡靈)의 친구들이 주제관이 되어 지내므로 원하는 우인(友人)들이 많은 경우는 두서너 차례 지내기도 한다.
노제의 장소는 마을 어귀·골목 어귀·삼거리 등 망령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지날 때 지내는데,친구들이 사자와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지내는 것으로 사자와 이별을 섭섭하게 여겨 행하는 제사이다.
23) 하관(下棺)과 부수 제례(祭禮)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기 전에 장지에서 일하는 일꾼을 '산역꾼'이라 한다.
산역꾼과 지관은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 가서 술,과일,어포를 차려 놓고 '오늘 이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그리고 묘를 쓸 자리에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개토제(開土祭)를 지낸다.
묘자리를 조성하기 위해 구덩이를 팔 때는 묘터의 상·중·하에 술을 붓고,술을 부은 자리에 괭이로 각기 흙을 파기 시작한다.
이 광중을 파는 것을 '청광 낸다' 또는 '굿 낸다'고 한다.
하관은 천광이 끝나면 지관이 잡아준 하관 시간에 맞추어 상제들이 상에서 관을 운반하여 와서 베끈을 잡고 천천히 하관을 한다.
하관을 할 때 상주는 곡을 하지 않는다.
하관은 시신의 머리는 북쪽으로 발은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하관을 한다.
하관 때 시신을 관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묻는 '동천개'는 쓰지 않고 관채로 묻는데,이때 지관이 하관을 보면 해롭다고 정해주는 나이의 사람이 하관을 보게 되면 중상을 당한다 하여 하관을 보지 못하게 한다.
발인날이 말날(午日)인 경우 쥐띠인 사람과 죽은이와 상극의 띠를 가진 이가 하관을 보면 죽은 사람이나 산사람 모두에게 해롭다고 하여 보지 않는다.
상주도 마찬가지 이다.
하관이 끝나면 지관은 관을 바로 잡고 평평한지 여부를 살펴 이상이 없으면 흙덮기에 들어가는데 '복토한다'고 한다.
그리고 봉분이 완전히 성분되었을 때 주과포를 차려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를 지내고 나면,집사가 영좌(靈座 : 혼령을 안치하는 장소)를 철거하고 상주는 영여에 혼백을 모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 집으로 오거나,상여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되돌아온다(다른 길로 와야 귀신이 못 따라 온다고 한다).
되돌아올 때 상주들은 영여를 뒤따르는데 이를 반혼이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안상주들이 곡을 하면서 혼백을 맞이한다.
혼백은 빈소에 모신다.
그러면 망자에게 반혼을 고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를 반혼제(返魂祭)라 한다.
앞에 주과포혜를 진실하고(차려놓고) 술을 치고 축을 읽고 상주들이 두 번 절한다.
24) 기제사(忌祭祀) 전의 각종의례
영좌를 장지에서 반혼하여 와서 혼백을 다시 모시고 난 후부터 담제(嬉祭)를 지내기 전까지 지내는 각종 제사를 묶어 흉제(凶祭)라 한다.
기제사 지내기 전의 각종 제사는 담제를 지내므로써 보통 끝이 난다.
① 우제(虞祭)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로 일종의 위령제이다.
우제는 세 번 지내는데, 세 차례 모두 다 그 집안의 기제사 방식(가문에 따라 다름)과 동일하게 지내고 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 초우제(初虞祭)
반혼한 혼백을 빈소에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초우제라 한다.
초우제와 반혼제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초우제는 장사 당일에 지내야 한다.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상주 이하 상제들은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빗질은 하지 못한다.
♣ 재우제(再虞祭)
원래는 초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 또는 그 하루 거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보통은 초우제 지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 삼우제(三虞祭)
재우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비로서 묘역에 갈 수 있다.
상주는 간단한 묘제(墓祭)를 올리고 성분이 잘 되었는지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살피고 잔손질을 한다.
최근에 와서는 상기(喪期)를 단축할 경우 삼오날(삼우제날) 가서 봉분 옆에 흙을 파고 혼백을 묻습니다. 이를 매혼(埋魂)이라 한다.
② 졸곡제(卒哭祭)
삼우제를 지내고 3개월 이후 날을 잡아 졸곡제를 지낸다.
최근에는 상기가 짧을 경우 삼우제가 끝난 뒤 첫 강일에 지내기도 한다.
졸곡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아침 저녁으로 조석을 올릴 때만 곡을 하고, 평시에는 빈소에서 곡을 하지 않는다.
졸곡제 전에는 축문에 상주를 "疏子○○"라 쓰지만 졸곡 후에는 "孝子○○"라고 쓴다.
③ 부제
졸곡제 다음에 지내는 제사로 신주를 조상 신주 곁에 붙여 모시는 제사이다.
사당이 있는 경우 망위(亡位)의 신주를 모셔가서 이미 봉안되어 있는 선망신위(先亡神位)들과 존비·위차에 맞게 자리매김하여 제사를 모신다.
철상 후 빈소로 신주를 다시 모셔온다.
④ 소상(小祥)
사망 후 1년만에 지내는 제사로 제사 방식은 우제와 비슷하다.
먼 친척도 오고 문상객(주로 초상 때 조문오지 못한 사람)도 많이 오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해 대접한다.
소상을 치르고 나면 일반적으로 바깥상주와 안상주는 요질과 수질을 착용하지 않는다.
⑤ 대상(大祥)
사망 후 2년만에 지내는 제로 소상과 같은 방식으로 지낸다.
소상 때 보다 많이 오는 큰 행사이다.
보통 대상이 끝나면 사당이 있는 경우 신주는 사당에 안치하고 영좌는 철거한다.
담제를 따로 지내지 않는 경우는 이날 바로 탈상하고 상기(喪期)를 끝내기도 한다.
⑥ 담제
대상 후 두달째 되는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이날 탈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담제 때 탈상하고는 사당 고사를 한번 더 지내는데 이를 길제(吉祭)라 한다.
지금은 이 길제도 사라졌다.
이후의 제사는 기제사로서 이는 제례(祭禮)에 포함시키고 상례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전통 상.장례(喪.葬禮) 절차
임종(臨終)→수시(收屍)→고복(皐復)→발상(發喪)→전(奠)→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 → 운구(運柩)→하관(下棺)→성분(成墳)→반곡(反哭)→초우(初虞)→재우(再虞)→삼우(三虞)→졸곡(卒哭)→부제→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길제(吉祭)
▣ 초종의 의미
초종(初終)이라함은, 보통 초상(初喪)이라는 말을 예문(禮文)에서 쓰는 말이다.
그 본래의 뜻은 운명(殞命)에서 졸곡(卒哭)까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운명에서 전(奠)까지를 의미한다.
1) 천거정침(遷居正寢)
환자의 병세가 위급해 도저히 회춘(回春)할 가능성이 없으면 환자를 정침(안방)으로 옮긴다.
그리고 집 안밖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환자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환자의 머리는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북쪽 문 밑에 편안하게 모신다.
네 사람이 조용한 가운데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무른다.
(천거정침(遷居正寢)은 가주(家主)에만 해당하고 가주 이외의 사람은 자기가 거처하던 방으로 옮긴다.)
2) 유언(遺言)
환자의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정돈하고 운명을 기다린다.
이때 병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도록 내용을 간락하게 묻고 그 대답을 기록한다.
병자가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평소에 미진한 일이나 사후에라도 실행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훈계나 교훈, 그리고 재산분배에 대한 유언일 것이다.
유언은 원래 자필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간적인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대리로 써도 된다.
유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마지막 귀중한 말이므로 자손들 및 친지들이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한다.
3) 임종(臨終)
임종(臨終)이란 운명(殞命)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자손들이나 친지들은 환자의 운명을 정중하고 경건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남자의 임종은 여자가 지키지 않으며, 여자의 임종은 남자가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손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4) 속광
환자의 손과 발을 잡고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햇솜을 환자의 코 밑에 대놓고 환자의 숨이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속광이라한다.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말한다. 환자가 완전히 숨을 멈추지 않았을 때 곡서이 요란하면, 운명하는 이가 순간이나마 마음이 불안하고 혼란할까 염려되므로 가족은 울음을 참고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속광해야 한다.
5) 수시(收屍)
숨이 끊어지면 눈을 감기고 준비한 햇솜으로 입, 코, 귀를 막은 후에 머리를 높여 반듯하게 괸다.
가족들은 자연 시신을 붙들고 울게 되는데, 이때 친척 가운데 초종의 범절에 익숙한 사람이 가족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시신이 굳기 전에 손과 발을 주물러서 펴게 하고 수시를 한다.
수시는 문을 닫고 하고, 시체를 안치한 방에는 불기운을 없애고 바닥에 짚은 깐다.
백지로 시신의 얼굴을 덮고, 백지나 베로 양쪽 어깨를 반듯하게 묶는다.
그 다음 턱을 괴고, 양손은 배 위에 올려 놓는데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백지 또는 베로 시신의 자세가 어그러지지 않게 팔과 다리를 묶는다.
그런 다음 시신을 시상(屍上) 위에 옮겨 누이고 홑이불로 덮은 후에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린다.
그 앞에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 다음, 중앙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한다.
(이 수시 절차를 소홀히 하면 손발과 몸이 뒤틀리고 오그라드는 경우가 생기므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
6) 고복(皐復)
고복(皐復)을 복(復), 초혼(招魂), 또는 "혼을 부른다"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흐트러진 혼을 돌아오게 한다는 뜻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데 남상(男喪)일 때는 남자가 올라가고, 여상(女喪)일 때는 여자가 죽은 사람이 입던 속적삼을 들로 올라간다.
동쪽 끝으로부터 지붕의 중앙에 올라가서, 왼손으로 그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휘두른다.
이때 크고 긴 목소리로 "00도 00군 00면 00리 학생 000공(公) 복 복 복!"하고 외친다. 죽은 자가 관작(官爵)이 있으면 "00관(官) 00공(公)"이라 하고, 죽은 자가 여자일 때는 남편의 관작을 좇아 "00부인 0씨"라고 하고, 관작이 없으면 "유인(孺人) 0 0 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고복할 때는 상주 이하 모든 가조고이 울음(곡)을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떠나려는 혼이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고복한 후의 옷[復衣]은 지붕 위에 그대로 놓거나 시체의 가슴 위에 올려 놓는 등,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주소와 관작에 성을 말하지 않고 "복!복!복!" 하기도 하고, "돌아보고 옷이나 가지고 기시오!"라고 하기도 한다.
죽음이 확인되고 사잣밥을 놓을 때에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고인을 부르며 땅을 치고 곡을 한다.
☞ 초혼의 예) "사바세계 해동 대한민국 0 0 (도.시) 0 0 (읍.면.동) 0 0 번지 0 0 호 (학생.유인)본관 0 0 0 (공.씨) 0 0 세 0 0 년 0 0 시 0 0 분 별세 복!복!복!"
7) 사잣밥
고보고을 한 다음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잔과 백지 한 권, 북어 세마리, 짚신 세 켤레, 약간의 동전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 한다.
염라대왕이 사자(使者)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 저승사자를 대접해 편안히 모셔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8) 발상과 상주
고복이 끝나면 아들, 딸, 며느리 즉 자손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다.
이와같이 상제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 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發喪)이라 한다.
발상과 동시에 상중(喪中), 기중(忌中) 또는 상가(喪家)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인다.
이렇게 초상이 나면 예제(禮制)에 따라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를 정한다.
상주는 상사(喪事)의 중심이 되는 상인(喪人)을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 상주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맏아들이 없고 맏손자가 있을 때는 작은 아들이 있어도 맏손자가 상주가 되고, 상주가 된 장손을 승중(承重) 또는 승중손(承重孫)이라 한다.
주부는 여자 상주로서 아내가 대신한다.
그리고 죽은 자의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주상이 되며,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9) 호상과 사서, 사화
호상이란 발상이 끝나면 상주를 도와서 상사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상사를 알리는 일에서부터 치상(治喪)의 범절까지를 주관한다.
그러기에 호상은 상가의 모든 것을 잘 아는 친척 또는 친구 가운데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임한다.
사서는 상사에 관계되는 문서를 맡은 자이며, 사회는 장재(掌財)라고도 하며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물품과 금전의 출납을 관리 담당하는데,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선임한다.
사화가 일을 진행시킬 때는 공책을 세 권을 만들어 놓고, 한 권에는 물품이나 금전의 출납을 기록하고, 다음 한 권에는 조문객의 부의금을 기록하는 책으로서 그 책자의 이름을 (父喪)일 때는 조객록(弔客錄)이라 쓰고, 모상(母喪)일 때는 조위록(弔慰錄)이라고 쓴다.
10) 전(奠)
전(奠)이란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기 위해 술, 과일 등을 차려 놓은 것으로, 집사(執事)가 포(脯)와 식혜(食醯), 과일 등을 탁자위에 놓으면 축관(祝官)이 손과 술잔을 씻고 술을 따라 올린다.
술은 잔에 가득 차게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운 곳에 놓는다.
이것을 염슴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한 번씩 행한다.
집사와 축관이 전을 올리는 이유는 슬프고 애통하므로 자신이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사가 대행하는 것이다. 단 절은 하지 않는다.
11) 복인(服人)
복인(服人)의 범위는 고인의 8촌 이내의 친족으로 한다.
복인들 중 남자 상제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되 부상이면 왼쪽 소매, 모상이면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고 소매를 빼서 뒤로 넘긴다.
그리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안옷고름을 조금 매기만 한다.
여자 상제들은 머리를 풀고 흰 옷을 입는다.
12) 치관(治棺)
호상이나 목수나 관장(棺匠)을 시켜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게 한다.
나무 중에는 유삼(油衫)이 제일이고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오동나무순이다.
관재(棺材)는 천판(天板), 지판(地板)을 한 장씩, 사방판(四方板) 네장을 준비한다.
두께는 세 치(약9센티)나 두 치반(약 7.5센티)으로 하며, 높이와 길이는 시신의 길이와 부피에 맞도록 한다.
칠성판은 염습할 때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로 두께가 다선 푼이라 한다.
옛날에는 부모가 회갑이 지나면 이미 관재를 준비하고 옷칠을 하여 소중히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13) 부고(訃告)
부고(訃告)는 호상이 상주와 의논해 친척과 친지에게 신속하게 전한다.
부고장은 백지에 붓글씨로 쓰는 것이 정중하지만 장수가 많을 때는 인쇄로 하고 봉투만 붓글씨로 쓰는 것이 좋다.
부고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전인부고(專人訃告 : 직접 사람이 전하는 부고), 우편부고, 신문부고가 있다.
사후의 칭호는 부고를 보내는 것이므로 상주의 아버지면 대인(大人), 어머니면 대부인(大夫人), 할아버지면 왕대인(王大人), 할머니면 왕대부인((王大夫人), 아내일 때는 망실(亡室) 또는 합부인(閤夫人), 동생일 때는 망제(亡弟)라 쓴다.
14) 습
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를 입힌 뒤 염포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 또는 습렴이라 한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하게 씻기고 나서 수건을 닦고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깍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똑耽�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다음으로 습전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 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을 한다.
이어 시신의 입속에 구술과 쌀을 물려 주는데 이를 반함이라 한다.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사자는 이불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이라 한다.
이때 화톳불을 피우고 영좌를 꾸민다. 교의에는 혼백을 만들어 얹고 영정도 만들어 세워 놓는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 친지들이 들어가서 곡을 한다.
15) 소렴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죽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해 놓는다. 머리를 묶을 삼끈과 베끈을 준비하고, 소렴상을 마련하고 시신을 묶을 베와 이불과 옷도 준비한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올린 다음에 소렴을 시작한다.
우선 시신을 소렴상에 �똑耽� 옷을 입히는데, 옷은 좋은 것으로 골라서 입히고 이불은 겹으로 한다.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로 싸매고 면목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운다.
이불로 고르게 싼다음, 장포 두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로 묶는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간다.
16) 대렴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지 사흘째 되는날에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자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벌과 이불둘을 준비한다.
시신을 맬때는 세로는 한폭을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하고 가로는 두 푹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때와 같이 한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횡포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병풍이나 포장으로 관을 가린 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린다.
17) 성복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오복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제 자리에 나간 후에 조곡을 하고 서로 조상을 한다.
<상례비요>에 보면 사람들이 차마 그 부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대렴을 하고 그 날로 성복을 하는 수가 간혹있는데 이는 예에 어긋난다고 씌여 있다.
조상을 할때는 오복의 차례대로 행하는데, 여러 자손들은 조부와 아버지 앞에 가서 �D어 앉아 슬피 운 다음 조모 및 어미니 앞에 가서 또 이와 같이 한다.
여자는 먼저 조모와 어머니 앞에 가서 곡한 다음에 조부 및 아버지 앞에 가서 남자의 의식과 같이 행한다.
18) 상복 입기
상복을 입는 절차를 성복이라 한다.
대렴한 그 이튿날로서 죽은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차마 부모가 죽은 것으로 여길 수가 없어서 급히 성복을 하지 않고 4일이 된 후에 성복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렴과 성복을 같은 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3일이 지난 후 대렴을 하고 바로 그날 성복을 하니 이것은 본래의 예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 대렴한 이튿날 날이 밝을 적에 오복(五服)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 그 복을 입고 들어가서 제자리로 간 후 아침의 곡을 하고 조상한다.
상복은 머리를 걷고 단정히 상관(喪冠)을 씌되, 효건(孝巾)으로 받들고, 그 위에 수질(首姪)을 맨다.
치마를 입고, 교(絞)와 요질(腰姪)을 띠며 짚신을 신고 기년복(朞年服) 이상은 모두 지팡이를 짚는다.
부인은 머리를 걷었던 것을 버리고 관(冠)을 쓰고 최상(최裳)을 입으며, 요질을 띠고 짚신을 신으며 지팡이를 짚는다.
어린이도 성인과 같은데 다만 관과 수질이 없을 뿐이다. 남자는 널 동쪽에 서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각각 차례로 복을 입으며 모두 슬피 조상한다.
초상(初喪)때에는 성복 이전에는 조례(弔禮)와 배례(拜禮)가 없다.
요즘 들어 아침에 전을 올리고 나서 성복하기 전에 전에 절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 상관(喪冠) : 두꺼운 종이로 심은 넣는데 폭은 5인치 2푼반을 베로 싸되, 베의 샛수는 최에 비하여 조금 가는 것으로 한다.
삼년상은 다음어 빨지 않은 것, 기년(朞年) 이하는 빨아서 다듬어 둔 것으로 세 줄을 접는다.
효건(孝巾) : 관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 수질 : 건 위에 쓰는 것으로서 삼으로 두 가닥을 서로 꽈서 만든다.
꽈놓은 둘레가 참최는 9친치 재최는 7치2푼, 대공에는 5치7푼, 소공에는 4치6푼, 시마에는 3치5푼으로 한다.
▷ 치마 : 앞쪽 여섯 폭, 뒤폭도 여섯 폭으로 앞은 웃옷 앞섶과 같이 떠놓는다.
▷ 요질(腰姪) 교대 위에 매는 것으로 허리띠를 말한다. 짚에 삼을 섞어서 굵은 두아줄 같이 만든다.
그 굵기가 참최는 7치2푼, 재최에는 5치7푼, 대공에는 4치6푼, 소공에는 3치5푼, 시마에는 2치8푼으로 한다.
▷ 짚신 : 참최에는 짚신, 재최에는 삼신, 소공 이하는 보통신을 신는다.
▷ 지팡이 : 대나무로 만드는데 높이는 가슴에 닿게 하고, 재최에는 오동나무를 깍아서 네모 버드나모로 대용해도 무방하다.
19) 문상(聞喪)
객지에 나가 있다가 보모의 상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다.
부음(訃音)을 듣는 즉시 곡을 하며 부고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절을 하고 흰 옷으로 갈아 입는다.
집에 돌아오면 상복으로 다시 갈아 입고 시신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한다.
▷ 심상(心喪) - 실제로 상복은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3년 동안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스승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서나 또는 적모(嫡母)나 계모, 재가한 어머니를 위해서도 이와 같이 한다.
▷ 조상(弔喪) - 조상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식 상례의 경우 조상은 원래 성복(成服) 후에 하도록 되어 있다.
성복 전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가서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영구(靈柩)에는 절을 하지 않는다.
성복 후라도 망인과 생시에 안면이 없었거나 여자인 경우 빈소에는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조객은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주는 일어나서 '애고 애고...'하고 곡을 한다. 호상이 조객을 안내하여 영좌 앞으로가면 조객은 '허희 허희...'(보통은 '어이 어이...')하고 슬피 곡을 한 뒤 두 번 절을 한다.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제문(祭文)을 읽고 조객이 가져온 부의(賻儀)의 명세를 바치고 나면 조객과 상주가 모두 슬피 곡을 한다.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조객은 상주와 맞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상사(喪事)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또는 "상사 말씀, 무슨 말씀으로 여쭈오리까" 또는 "병환이 침중하시더니, 상사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상주는 머리를 숙여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망극하옵니다""원로에 수고하시니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 부의(賻儀) - 상가에 부의를 보낼 때는 백지에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낸다.
단자를 쓰지 않을 때는 봉투에 물목(物目)을 기록한다. 부의는 돈이나 상가에서 필요한 물건을 한다.
20) 치장
옛날에는 석 달만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에 앞서 장사를 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
묘자리를 정하면 이어 장사 지낼 날짜를 잡는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에 산역을 시작하고 토신에게 사토제를 지낸다.
▷ 천광(穿壙) : 사토제가 끝나면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壙中)을 만든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金井機)를 땅 위에 놓고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금정기는 나무 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관의 크기를 짐작하여 반듯하게 놓고서 네구덩이를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발라서 관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곽(槨)을 만든다.
21 ) 발인(撥靷)
관을 방에서 들고나서 상여로 옮기는 것을 천구(遷柩)라 한다.
상여가 상가를 떠나 장지로 출발하는 것을 발인 또는 출상(出喪)이라 한다.
발인시에는 반드시 발인제를 지낸다.
발인제 때 관의 위치는 천구하여 관을 상여 앞에 두고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 영구(靈歐, 관)을 상여 위에 올려 모셔 놓은 다음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발인제는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발인축을 읽고, 맏 상주는 두 번 큰 절(단작이배:單酌二拜)을 한다.
발인제를 지내고 상여꾼들이 상여를 처음 들어올렸을 때 망자의 집 쪽으로 향하여 세 차례 상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망자가 집을 보고 마지막 하직 인사라 한다.
상두꾼은 보통 남자들이지만 상여가 나갈 때 상여의 뒤쪽에 광목을 길게 늘여뜨려 부인들이 이것을 잡고 따라 가기도 하는데 이를 '설매' 또는 '배줄'이라 하고 혼이 저승갈 때 타고 가라는 뜻이다.
22) 운구(運柩) 와 노제(路祭)
발인 후 상여를 장지로 운반 이동하는 것을 '운구' 또는 '운상(運喪)'이라 하거나 '행상 나간다'고 한다.
운구를 담당하는 일꾼은 '상두꾼'이라 하며,상여노래의 앞소리를 하는 사람을 '선소리꾼'이라 한다.
운상 때는 맨앞에서부터 명정(銘旌)영여(靈與)만장(輓章)운아삽(雲亞삽)상여(喪輿) 상주, 백관, 조문객의 차례로 줄을 잇는다.
노제(路祭)를 안 지낼 수도 있지만 운구 도중에 보통 한 차례를 지낸다.
노제는 주로 망령(亡靈)의 친구들이 주제관이 되어 지내므로 원하는 우인(友人)들이 많은 경우는 두서너 차례 지내기도 한다.
노제의 장소는 마을 어귀·골목 어귀·삼거리 등 망령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지날 때 지내는데,친구들이 사자와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지내는 것으로 사자와 이별을 섭섭하게 여겨 행하는 제사이다.
23) 하관(下棺)과 부수 제례(祭禮)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기 전에 장지에서 일하는 일꾼을 '산역꾼'이라 한다.
산역꾼과 지관은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 가서 술,과일,어포를 차려 놓고 '오늘 이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그리고 묘를 쓸 자리에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개토제(開土祭)를 지낸다.
묘자리를 조성하기 위해 구덩이를 팔 때는 묘터의 상·중·하에 술을 붓고,술을 부은 자리에 괭이로 각기 흙을 파기 시작한다.
이 광중을 파는 것을 '청광 낸다' 또는 '굿 낸다'고 한다.
하관은 천광이 끝나면 지관이 잡아준 하관 시간에 맞추어 상제들이 상에서 관을 운반하여 와서 베끈을 잡고 천천히 하관을 한다.
하관을 할 때 상주는 곡을 하지 않는다.
하관은 시신의 머리는 북쪽으로 발은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하관을 한다.
하관 때 시신을 관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묻는 '동천개'는 쓰지 않고 관채로 묻는데,이때 지관이 하관을 보면 해롭다고 정해주는 나이의 사람이 하관을 보게 되면 중상을 당한다 하여 하관을 보지 못하게 한다.
발인날이 말날(午日)인 경우 쥐띠인 사람과 죽은이와 상극의 띠를 가진 이가 하관을 보면 죽은 사람이나 산사람 모두에게 해롭다고 하여 보지 않는다.
상주도 마찬가지 이다.
하관이 끝나면 지관은 관을 바로 잡고 평평한지 여부를 살펴 이상이 없으면 흙덮기에 들어가는데 '복토한다'고 한다.
그리고 봉분이 완전히 성분되었을 때 주과포를 차려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를 지내고 나면,집사가 영좌(靈座 : 혼령을 안치하는 장소)를 철거하고 상주는 영여에 혼백을 모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 집으로 오거나,상여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되돌아온다(다른 길로 와야 귀신이 못 따라 온다고 한다).
되돌아올 때 상주들은 영여를 뒤따르는데 이를 반혼이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안상주들이 곡을 하면서 혼백을 맞이한다.
혼백은 빈소에 모신다.
그러면 망자에게 반혼을 고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를 반혼제(返魂祭)라 한다.
앞에 주과포혜를 진실하고(차려놓고) 술을 치고 축을 읽고 상주들이 두 번 절한다.
24) 기제사(忌祭祀) 전의 각종의례
영좌를 장지에서 반혼하여 와서 혼백을 다시 모시고 난 후부터 담제(嬉祭)를 지내기 전까지 지내는 각종 제사를 묶어 흉제(凶祭)라 한다.
기제사 지내기 전의 각종 제사는 담제를 지내므로써 보통 끝이 난다.
① 우제(虞祭)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로 일종의 위령제이다.
우제는 세 번 지내는데, 세 차례 모두 다 그 집안의 기제사 방식(가문에 따라 다름)과 동일하게 지내고 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 초우제(初虞祭)
반혼한 혼백을 빈소에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초우제라 한다.
초우제와 반혼제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초우제는 장사 당일에 지내야 한다.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상주 이하 상제들은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빗질은 하지 못한다.
♣ 재우제(再虞祭)
원래는 초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 또는 그 하루 거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보통은 초우제 지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 삼우제(三虞祭)
재우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비로서 묘역에 갈 수 있다.
상주는 간단한 묘제(墓祭)를 올리고 성분이 잘 되었는지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살피고 잔손질을 한다.
최근에 와서는 상기(喪期)를 단축할 경우 삼오날(삼우제날) 가서 봉분 옆에 흙을 파고 혼백을 묻습니다. 이를 매혼(埋魂)이라 한다.
② 졸곡제(卒哭祭)
삼우제를 지내고 3개월 이후 날을 잡아 졸곡제를 지낸다.
최근에는 상기가 짧을 경우 삼우제가 끝난 뒤 첫 강일에 지내기도 한다.
졸곡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아침 저녁으로 조석을 올릴 때만 곡을 하고, 평시에는 빈소에서 곡을 하지 않는다.
졸곡제 전에는 축문에 상주를 "疏子○○"라 쓰지만 졸곡 후에는 "孝子○○"라고 쓴다.
③ 부제
졸곡제 다음에 지내는 제사로 신주를 조상 신주 곁에 붙여 모시는 제사이다.
사당이 있는 경우 망위(亡位)의 신주를 모셔가서 이미 봉안되어 있는 선망신위(先亡神位)들과 존비·위차에 맞게 자리매김하여 제사를 모신다.
철상 후 빈소로 신주를 다시 모셔온다.
④ 소상(小祥)
사망 후 1년만에 지내는 제사로 제사 방식은 우제와 비슷하다.
먼 친척도 오고 문상객(주로 초상 때 조문오지 못한 사람)도 많이 오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해 대접한다.
소상을 치르고 나면 일반적으로 바깥상주와 안상주는 요질과 수질을 착용하지 않는다.
⑤ 대상(大祥)
사망 후 2년만에 지내는 제로 소상과 같은 방식으로 지낸다.
소상 때 보다 많이 오는 큰 행사이다.
보통 대상이 끝나면 사당이 있는 경우 신주는 사당에 안치하고 영좌는 철거한다.
담제를 따로 지내지 않는 경우는 이날 바로 탈상하고 상기(喪期)를 끝내기도 한다.
⑥ 담제
대상 후 두달째 되는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이날 탈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담제 때 탈상하고는 사당 고사를 한번 더 지내는데 이를 길제(吉祭)라 한다.
지금은 이 길제도 사라졌다.
이후의 제사는 기제사로서 이는 제례(祭禮)에 포함시키고 상례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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