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혼상제집 ▒

인목대비 어머니 光山부부인 예장

천하한량 2007. 7. 27. 19:27
  •     95일간 치러진 조선시대 예장 한눈에
  •     장례절차 일기 발견
  •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7.03.03 00:47
    • “짙은 초록 비단의 치장한 저고리 1점, 짙은 초록 명주 작은 저고리 1점, 백화(白花) 명주바지 1점, 대홍단(大紅段) 큰 띠 1개, 짙은 초록 운문단(雲紋段) 장삼 1점, 남색 운문단 속치마 1점, 흰 비단 적삼 1점, 백화 명주바지 1점….”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盧氏·1557~1637)의 장례 절차 중 습(襲·시신을 씻은 뒤 새 옷을 갈아 입힘)에 쓰인 의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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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 전 왕비 어머니의 장례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연안(延安) 김씨 의민공종회(懿愍公宗會) 김종진(金鍾進) 회장은 문중에 전해 내려오던 ‘광산부부인 노씨 장례일기’를 최근 발굴, 2일 국역본으로 출간했다. 노씨는 조선 14대 임금 선조(宣祖)의 왕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어머니다.

      이 책은 1637년 노씨가 별세한 뒤 그를 모시고 살던 장손 김천석(金天錫)이 장례 절차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 이 장례는 조선시대 국장 다음가는 예장(禮葬)으로 거행됐으며 모두 95일이 걸렸다. 책은 문상객들의 명단과 부의(賻儀), 만사(挽詞·추모사), 제문, 의복 구입과 관 마련, 땅 파는 절차까지 장례의 모든 것을 자세히 적었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는 “지금까지 왕비 가족의 장례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며 “17세기 예장의 모습을 전해 주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광산부부인 노씨의 삶은 무척 기구했다. 56세 때인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가 일어나 남편과 자식·사위를 잃고 딸 인목대비는 유폐됐으며 자신은 제주도로 유배당했던 것. 유배 중 생계를 잇기 위해 만든 술 ‘대비모주’가 오늘날 막걸리나 모주의 원조라는 설이 있다. 10년 뒤인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가까스로 복권된 뒤 80세로 별세했다.

      ‘장례일기’에서 추모사를 쓴 영의정·이조판서·좌승지 등 고위 관료들은 “중년에 참통하게 온 집이 화를 당했다” “무궁한 원한은 바다보다도 깊다”며 한결같이 이 일을 한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