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례의 의미 |
예서(禮書)에 의하면 "제왕(帝王)은 하늘을 제사 지내고 제후(諸侯)는 산천을 제사 지내며,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을 제사 지낸다"고 했다.
이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천지(天地)가 절대자이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게는 산천(山川)이 절대자이며, 그렇지 않은 사인(私人)에게 있어서의 절대자는 조상(祖上)이라는 데에 연유한다.
인간이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까닭은 효(孝)를 계속하기 위함이며, 효란 자기존재에 대한 보답이다. 그래서 제의례를 근본에 보답하는 의례라는 뜻으로 보본의식(報本儀式) 이라 한다.
효는 자기존재에 대한 보답(報答)이기 때문에 인간의 온갖 행실(行實) 중에서도 가장 근원(根源)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모심을 극진히 한다.
이렇게 "살아 계신 조상은 극진히 받들면서 그 조상이 돌아가셨다고 잊어 버려 박하게 한다면 심히 옳지 못한 일이다."라고 옛 현인(賢人)들은 말하고 있다.
진실로 자기존재를 고맙게 여기는 사람은 "돌아가신 조상 섬기기를 살아 계신 조상 모시듯"(事死如事生)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조상을 섬기는 제의례를 일러 "효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효는 조상이 살아 계신 동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예(禮)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하는 근본으로 하는 성리학(性理學)에 바탕을 둔 <주자가례>는 조선 오 백년 동안 우리의 조상숭배(祖上崇拜) 사상을 보편화 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가신(家神) 신앙으로 승화되어 백성들의 사고 구조에까지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의식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복합하여 후손들이 진실한 공경심(恭敬心) 보다는 형식(形式)에 치우쳐서 가산(家産)을 탕진(蕩盡)하는 허례허식(虛禮墟飾)의 폐를 낳기도 하였다.
예의 근본에 대한 제자의 질문을 받은 공자는 <호화로움보다는 차라리 검소(儉素)함이 낫다>고하였다, 또한 주자도 <검소함과 슬픔과 공경하는 마음에 바탕을 두어 예를 표하여야 된다.>고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형편에 따르되, 진실한 공경심으로 정성껏 지내야 한다.
제례는 본디 조상에 대한 숭앙심(崇仰心)과 추모(追慕)에 뜻이 있으나, 요즘 일부에서는 나의 근본인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심마저 고갈(枯渴)되어 가고, 기껏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일(忌日)마저도 명분도 우러나지 않을 정도로 타락되어 가고 있다.
건전한 조상의 혈통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므로 누구라도 조상의 은혜에 성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진정한 추모의 정을 지녀야 한다. 이는 금수(禽獸)가 아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면 결코 양심을 속이거나 망각(妄覺)해서는 안 될 진리인 것이다.
제사의 근원은 먼 옛날에 천재지변(天災地變), 질병(疾病), 맹수(猛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유고사상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변하게 되어 가장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사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이년에 포은 정몽주 선생이 제정한 제례규정에는 대부 이상의 관원은 삼대 봉사(三代奉祀)로 하고 육품이하의 신문을 가진 사람은 이대봉사이고, 칠품이하의 하급관원과 서민들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시대 경국대전 예전편에 기록된 제례의 봉사대상을 보면 사대부이상은 사대봉사, 육품이상은 삼대봉사, 칠품이하는 이대봉사 일반서인(一般庶人)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칠품 이상의 관원은 불과 20% 미만으로 일반국민의 80% 상당의 인원이 칠품이하의 관원이나 서인이었기 때문에 전국민 중 대부분이 부모제사만 지낸 셈이다.
그러하던 것이 한말 갑오경장(고종 21년)이후로 구시대의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반상의 구별없이 사대부의 예절을 따라 사대봉사를 해왔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었는데 기제는 조부모까지만 봉사한다고 하였는데, 1973년 가정의례준칙을 전면개편하여 6월 1일부터 시행되다가 1999년 규제개혁철폐에 의하여 가정의례준칙은 폐지되고,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제정하였는데 제례는 기제 및 명절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 되었다.
제사는 시기와 대상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된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오늘날은 기제(忌祭)와 묘제(墓祭), 시제(時祭)와 절사(節祀) 등이 보편화 되어있습니다.
● 기제(忌祭)
고인(故人)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기제는 본래 4대조(4代祖), 즉 고조할아버지까지 제사하는 것이 법도이나, 종가집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와 조부모, 즉 2대(代)만을 모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의례준칙에는 2대조까지와 후손이 없는 3촌이내의 존비속, 즉 후손이 없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까지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있습니다.
기제(忌祭)는 모든 제사의 기본이며, 부모와 조상을 생각하는 후손의 정성이며 마음입니다.
다른 제사는 모두 폐해도 기제는 존속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 시제(時祭)
시제(時祭)는 돌아가신 날에 관계없이 적절한 날을 택하여 모시는 제사를 말합니다.
시제사(時祭事)는 기제사(忌祭事)와 달리 아침이나 낮의 적절한 시간을 정해서 올립니다.
오늘날 시제(時祭)라 하면 대부분 가을에 별도로 지내는 제사, 즉 이제(邇祭)를 가리키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는 이제 뿐 아니라, 차례(茶禮), 연시제(年時祭), 사시제(四時祭) 등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 차례(茶禮)
차례는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과 돌아가신 조상의 생신날에 올리는 간단한 제사를 말합니다.
아침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때로는 낮에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월 초하루의 연시제(年始祭)와 추석절의 절사(節祀)가 차례(茶禮)의 형식으로 올리는 제사입니다.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차례의 제수와 절차 역시 기제(忌祭)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무축단작(無祝單酌)이라 하여 축문을 읽지않고. 술 역시 한 잔만 올리는 것이 원칙이나, 근래에는 핵가족 시대이므로 제사를 올리는 형식처럼 술 역시 여러 잔을 올리기도 합니다.
● 연시제(年始祭)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올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차례(茶禮)라고 말합니다.
연시제, 즉 설날 차례는 4대조까지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2 대조까지 지내기를 권장합니다.
● 추석 절사(節祀)
음력 8월 보름, 즉 한가위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흔히 차례(茶禮)라고 합니다.
봉사 대상이나 절차는 연시제, 즉 설날 차례와 같으나, 떡국을 쓰지않으며 갱에 토란국을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제수는 새로 익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 사시제(四時祭)
사시제(四時祭)는 1년에 네번 계절마다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통상 매계절의 중월, 즉 음력 2월, 5월, 8월, 11월 상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냅니다.
요즘에는 사시제를 지내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 이제(邇祭)
이제(邇祭)는 계추(季秋), 즉 음력 9월에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오늘날 시제(時祭)라고 하는 것은 대개 이제(祭)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사시제(四時祭)가 변형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 묘제(墓祭)
묘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올리는 제사의 총칭입니다.
묘제에서는 산소가 속해있는 땅의 토지신에게도 제수를 따로 마련하여 제사를 지냅니다.
묘제는 정월초하루, 한식, 단오, 그리고 추석 등 1년에 4번 올리는 것이 법도이지만, 통상 설과 추석은 성묘(省墓)로서 묘제를 대신하므로 한식 성묘가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 한식(寒食)
한식(寒食)은 절기상의 청명(淸明) 다음날을 말합니다.
이 날은 절기력에서 새해 첫날로 꼽는 동짓날에서 105일째 되는 날입니다.
한식(寒食)이란 말은 춘추전국 시대의 진문공(晋文公)이 면산(緜山)에 은거한 개지추(介之推)를 불러내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지만, 개지추가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그대로 타 죽었고, 이를 애통히 여긴 진문공이 해마다 이 날이 되면 개자추를 생각하며 찬밥을 먹었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한식의 유래야 어찌되었건 그것은 우리 문화와는 상관없는 중국의 일이며, 우리의 제례문화에서 한식은 찬밥 먹는 날이 아닙니다.
조상의 산소를 참배하고 성묘하는 날일 뿐입니다.
성묘절차는 설이나 추석과 같습니다.
● 생신제(生辰祭)
생신제는 고인의 생일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생신제는 부모님에 한해서 올리는 것이 원칙이며, 복상(服喪)기간인 3년만 올리고 이후에는 폐지합니다.
근래에는 1년탈상, 또는 49일 탈상, 백일 탈상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생신제는 3년간 올리는 것이 마땅하며, 여건상 어려울 경우에도 돌아가신 후 첫 생신에는 생신제를 올려야 합니다.
생신제는 별도로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상식(上食)을 올리는 정도로 간단히 준비해도 좋으며, 고인이 생전에 특히 좋아했던 음식을 중심으로 제수를 장만합니다.
또한 번거로운 제사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일동 재배(再拜)후 제주(祭主)가 술 한잔을 올린 후 다시 일동 재배를 올림으로써 간단히 끝내도록 합니다.
[제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제주(祭主)에 관하여.]
제사는 신주(神主)를 모셔놓고 지내는 것이 법도에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과 형편상 신주를 모시지 못하는 경우, 1회용 신주(神主)인 지방(紙榜)으로 대체하여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신주(神主)나 위패(位牌)와 달리 지방에는 친속(親屬)관계가 표시됩니다.
친속관계란 제사를 모시는 사람, 즉 제주(祭主)와 제사를 받는 조상 간의 가족관계를 말합니다.
● 제주(祭主)
제사에서 제주(祭主)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주(祭主)가 누구냐에 따라 지방(紙榜)에 쓰는 조상의 친속(親屬)관계가 틀려집니다.
예컨대 부모님의 제사에 있어서는
1. 아들이 제주(祭主)가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2. 아들이 없으면 손자를 제주(祭主)로 합니다.
3. 아들이 있다해도 다른 집에 양자(養子)로 입적된 상태라고 하면 역시 제주(祭主)가 되지 못합니다.
4. 아들이 없다면 딸도 제주(祭主)가 될 수 있습니다.
5. 이 때 사위는 제주(祭主)가 되지 못합니다.
6. 외손자가 장성하면 외손자를 제주(祭主)로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외손봉사(外孫奉事)라고 합니다.
예컨대, 친아들이 있어도 남의 집에 입양되었다면 손자가 제사를 모시게 됩니다.
이 경우 손자가 제주(祭主)이므로, 지방(紙榜)의 친속관계는 부모가 아닌 조부모가 됩니다.
같은 까닭으로.
※ 망부(亡夫), 즉 남편의 제사는 아내가 있어도 자식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망처(亡妻), 즉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망자(亡子), 즉 자식의 제사는 손주가 있어도 부친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부친과 자식이 없는 형제의 제사는 동생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부친, 자식, 형제가 없는 사람의 제사는 조카가 제주(祭主)가 됩니다.
● 지방(紙榜)은 1회용 신주(神主)
제사를 치르려면 신주(神主)를 모시는 것이 본래의 법도이자 격식입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신주(神主)를 모시기 어려울 경우, 1회용 신주(神主)로써 지방(紙榜)을 쓰게 됩니다.
지방(紙榜)은 1회용이므로, 제사가 끝나면 제상(祭床)의 촛불에 태워 소각합니다.
● 단사(單祀)와 합사(合祀)
단사(單祀)란 하나의 제사에 하나의 신위(神位)만을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합사(合祀)란 하나의 제사에 부부 양위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단사의 경우에는 한 장의 지방에 하나의 신위(神位)만을 쓰며,
합사의 경우에는 한 장의 지방에 부모님의 신위, 즉 양위(兩位)를 함께 씁니다.
※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 기일(忌日)이 서로 틀려도 각 기일(忌日)마다 합사로 모십니다.
● 지방(紙榜)에서 부부의 위치
지방(紙榜)에서는 왼쪽이 남자의 자리이며, 오른쪽이 여자의 자리입니다.
중앙을 기준하여 왼쪽에 부친의 신위를 모셔 쓰고, 오른쪽에 모친의 신위를 모셔씁니다.
부친이 재혼하여 모친이 2분 이상일 경우 모친의 신위를 오른쪽에 차례로 써서 모십니다.
본처가 부친의 바로 오른쪽이 되며, 그 후에는 순서에 따라 차례로 오른쪽으로 써서 모십니다.
이혼한 모친은 부친과 합사하지 않습니다.
● 지방(紙榜)의 수량
한 장의 지방(紙榜)에는 한 대(代)만 모십니다.
여러 대를 함께 봉사할 경우 부모님을 한 장에 함께 모시고, 조부모님이나 증조부모, 고조부모는 다른 지방에 모십니다.
4대 봉사의 경우는 모두 여덟분의 신위를 모시지만 지방의 숫자는 4장입니다.
기제사가 아닌 시제(時祭)나 차례(茶禮)에서는 한 장의 지방(紙榜)에 여러 대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한 장의 지방에 1대만 모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제사 지내는 장소
과거에는 일정한 규모이상의 저택, 특히 사대부(士大夫)가의 저택에는 반드시 사당(祠堂)채가 딸려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항시 조상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간단한 제사는 이곳에서 지냈으나, 참석 인원들이 많거나 하면 정침(正寢 - 주로 안채의 대청)으로 위패를 모셔와 지내기도 했습니다.
사당이 없는 경우에도 벽장을 이용하거나 벽감(壁龕)등에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때 마다 정침으로 모셔와 지내기도 했습니다.
● 사당 모습과 사당채의 배치
● 제사지내는 장소는 형편에 맞게 합니다.
오늘날에는 사당은 물론 벽감 등도 마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패를 집안에 모시는 경우도 거의 없으므로 제사 지내는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사 지내는 장소는 후손의 형편에 맞추어야 합니다.
제사는 어디까지나 후손의 마음을 표출해내는 정성에 그쳐야 하며, 그것이 과도한 형식이나 호사스런 준비로 나타나는 것은 예법에도 맞지 않습니다.
가족이 단촐한 경우에는 안방에서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참석인원이 조금 많으면 거실에서 지내도 좋습니다.
단독주택의 마당 같은 곳, 즉 실외(室外)에서 지내는 것은 안됩니다.
대청이나 마루에서 제사를 지낼 경우 참석인원이 너무 많아 일부가 마당에 내려서서 참례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 제사청의 설치
① 뒷벽 : 제사청은 출입구 없는 벽면 앞에 설치합니다.
병풍으로 가릴 경우에는 출입문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사 중에는 출입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병풍을 쓸 경우에는 굳이 벽면 앞에 설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형편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 방향 : 제사청은 남쪽을 바라보게끔 합니다. 즉, 후손들은 북쪽을 향해 제사드립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방향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제사청의 형편에 맞게 합니다.
③ 병풍 : 제사청의 벽 앞에는 병풍을 둘러치는 것이 좋습니다만, 출입문 없는 깨끗한 맨벽일 경우 병풍이 없어도 좋습니다.
병풍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급적 있으면 더 좋다는 차원입니다.
④ 교의 : 교의는 위패를 모시는 탁자입니다. 근래에는 제상에 직접 신위를 모시므로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⑤ 제상 : 제물을 진설하는 탁자입니다. 교자상 등을 이용해도 좋고, 교자상이 없으면 상을 이어붙인 후 깨끗한 흰종이나 천을 깔아도 됩니다.
⑥ 향안 : 향로를 올려놓는 탁자입니다.
⑦ 주가 : 술주전자와 퇴주기 등을 올려놓는 곳입니다. 쟁반 등을 사용해도 됩니다.
⑧ 자리 : 제사청에는 돗자리나 화문석을 깔아놓습니다. 없을 경우 깨끗이 청소하면 됩니다.
※ 제구(祭具) 및 제기(祭器)에 대해서는 해당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큰집이냐, 작은집이냐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제사를 꼭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어른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제사 지내는 집도 적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반드시 장자(長子) 또는 종손이 제사를 지내게 되어있었고, 이로 인해 장자는 재산상속의 우선권 및 서열상의 존중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법개정으로 인해 모든 자녀가 동등한 비율로 유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따라서 정서상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법적평등의 결과로서 장남이 반드시 제사를 받들어야 하는 의무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남이 제사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딸은 말할 것도 없고, 차남 이하 다른 아들들도 절대로 제사를 떠맡지 않으려 합니다.
제사 지내는 것이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사는 장남의 집, 즉 큰집이 아닌 작은 집(차남이하 동생들의 집)에서 지내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경제적 형편이 좋고, 제사 올릴 공간이 충분한 집에서 맡는 것을 권장합니다.
장남이 자청해서 모신다면 몰라도, 법도의 문제로 장남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곳에서 제사를 모신다 해도 제주(祭主)는 반드시 장남, 또는 장손이 되는 것이 법도에 맞습니다.
● 콘도제사와 호텔제사, 해외 제사
명절 연휴에 여행을 떠나서 숙박지에 간단히 제물을 마련하고 조촐하게 차례를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과연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후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해외여행이라도 할 량이면 외국어 모르는 부모님의 영혼이 혹시 이국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까요?
제사는 마음이며 정성이자, 법도이며 격식입니다.
실제로 조상의 영혼이 찾아 오는지 여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과 정성의 표시를 굳이 여행지 제사로 표현해야 할까요?
차라리 지내지 않느니만 못한 것 아닐까요?
기제일 및 시간 기제(忌祭)란 사람이 죽은날, 즉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3년상을 치른 경우의 기일은 그 이후부터가 된다. 기제의 봉제사 대상은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4대, 즉 고조(高組)까지가 이상적 입니다. 제주(祭主)는 고인의 장자(長者)나 장손(長孫)이 되며,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에는 차자(次子)나 차손(次孫)이 대행한다. 상처(喪妻)한 경우에는 그 남편이나 자손이 제주가 되고, 자손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에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 신위(神位)를 설치함에 있어 그날 돌아가신 조상의 신위 하나만 설치하는가 아니면, 고위(考位)와 비위(女+比 位)를 함께 설치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예컨대, 가례(家禮)와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한 위(位)만 제사 지낸다 하였으나, 이황(李滉)께서는 기제에서 합제하는 것은 고례(古禮)에는 없었다고 하지만 집에서 전부터 해 오고 있기 때문에 경솔하게 다루어 버릴 수 없다고 하였다. 기제의 절차는 기일(忌日) 하루 전에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집안을 정결(淨潔)하게 한 뒤에, 신위(神位)를 마련하고 제기(齊器)를 진설(陳設)하며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현대에는 거의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으므로 지방(紙榜)으로 대신하거나 사진을 모시기도한다. 지방(紙榜)을 쓰고 돌아가신 분을 모실 준비가 되면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는 돌아가신 날 00시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형편에 따라서 돌아가신 당일 일몰 이후에 지내기도 한다. [기제일과 시간] 예문에는 별세한 날 자시에 행사한다고 되어있다. 자정(12시) 부터 인시(5시)까지 날이 새기 전 새벽에 기제를 올리는 것이 예이다. 신도는 음이라 하여 늦밤 중에 활동을 하여 닭소리가 나기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예문에 없는 미신적인 말이다. 날이 바뀌는 첫 새벽 즉 궐명행사의 예문정신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제일 먼저 고인의 제사부터 올리는 정신을 강조한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와 생활여건에서 볼 때 한 밤중 제사는 가족들이 핵가족화 되어서 분산거주하여 참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음날 출근과 활동에는 지장이 많아진다. 그래서 근래의 가정의례준칙을 보면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이 시간이면 사업하는 분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분이나 공무원이나 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며 제관들이 모이기 좋은 시간이어서 도시에서는 저녁 7~8 경에 행사하는 집들도 많이 있다. 간혹 기제일을 잘못 알고 별세한 전일 저녁 7~8시경에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기제는 별세한 날에 지내는 제사이므로 별세한 전일에 지내는 것은 잘못이다. 또 축문에 보면 휘일부림(諱日復臨)이란 말이 있고, 이 뜻은 돌아가신날이 다시돌아오니라는 뜻이다. [재계(齋戒)] 별세(別世)하신 전일(前日)이 입재일(入齋日)이고 별세(別世)한 날이 기일(忌日)로서 정재일(正齋日)이고 그 다음날이 타재일(타齋日)이다. 이 삼일간은 재계(齋戒)를 해야한다. 입제일(入齋日)에는 제주(祭主)와 주부(主婦)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음주(飮酒)를 삼가며 가무(歌舞)를 하지 않으며 상가(喪家)의 조문(弔問)도 하지않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故人)의 생존시(生存時)를 회상(回想)하면서 추모(追慕)하는 법이다.
기제사(忌齊祀)는 고인(故人)이 별세(別世)한 날을 매년 추모(追慕)하는 의식(儀式)으로 순수한 가족적인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기제사(忌齊祀)의 참사범위(參祀範圍)는 제한된 바는 없고, 고인(故人)의 직계자손(直系子孫)의 배우자 근친(近親) 또는 고인(故人)과 친분이 두텁던 분이나 고인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사람은 모두 참사(參祀)할 수 있다. 특히 고인(故人)의 직계자손(直系子孫)으로서 원지(遠地)에 출장 중이거나 기타사정(其他事情)으로 제사에 불참될 시는 집에 전화로서 알리고 제사지내는 시간쯤 되어서 행사하고 있는 쪽으로 향하여 망배(望拜 : 멀리서 절하는 일)를 하거나 묵념(默念 : 고개숙여 추모하는 일)을 해야 한다.
남자는 자기 직업 직급 신분에 정해진 제복(制服)이 있으면 그것을 입고, 그렇지 않으면 한복(韓服) 정장(正裝)에 도포(道袍)를 입고 유건(儒巾)을 쓴다. 만일 도포가 없으면 한복이나 양복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메어야 한다. 여자는 옥색(玉色)한복을 입는다. 그것이 없으면 다른 한복이나 양장정장을 한다. 남녀 모두 평상복(平常服)을 입을때라도 정장이여야 하고 현란한 색상이나 악세사리는 피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