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b-la-di, Ob-l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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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흘러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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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g by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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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mon has a barrow
- in the market place
Molly is a singer in the band. Desmon says to Molly,
- "Girl, I like your face."
And Molly says this
- as she takes him by the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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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b-la-di, Ob-la-da.
- Life goes on. Bra.
La la how the life goes on.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La la how the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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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mon takes trolley
- to the jewelry store.
Buys a twenty carat golden ring. Takes it back to Molly
- waiting at the door.
And as he gives it to her
- she begins to 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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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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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a couple of years
- they have built a home
- sweet home.
With a couple of kids
- running in the yards,
of Desmon and Molly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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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ever after
- in the market place
- Desmon lets the children
- lend the hand.
Molly stays at home
- and does her pretty face.
And in the evening
- she still sings it with the band
-
- **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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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a couple of years
- they have built a home
- sweet home.
With a couple of kids
- running in the yards,
of Desmon and Molly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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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ever after
- in the market place
- Molly lets the children
- lend the hand.
Desmon stays at home
- and does his pretty face.
And in the evening
- she's a singer with the band
-
- **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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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if you want some fun-
- Take Obladi Obl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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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몬은 시장터에서
- 손수레를 끌며 물건을 파는 행상인이죠
- 몰리는 음악밴드에서 노래하는 가수이구요
- 어느날 데스몬이 몰리에게 말하죠
- "아가씨, 얼굴이 너무 예뻐 맘에 들어요."
- 그러자 몰리는 그의 손을 잡고서
- 이렇게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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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블-라-디, 오블-라-다,
- 형제여, 인생은 흘러가는 법
- 라라라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거예요
- 오블-라-디, 오블-라-다,
- 형제여, 인생은 흘러가는 법
- 라라라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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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몬은 전차를 타고
- 보석 가게로 갑니다
그리고 20캐럿짜리 금반지를 사가지고서
-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 몰리에게 돌아 가지요
- 그리고 이 반지를 그녀에서 건네주자
- 그녀는 이렇게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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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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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년 남짓 시간이 흐른 후
- 그들은 드디어 가정을 꾸리게 되지요
- 아주 깨가 쏟아지는 화목한 가정을요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 데스몬과 몰리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 두 아이들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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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도 줄곧 그들은
- 시장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요
- 데스몬은 아이들이
- 일손을 거들게 했고
몰리는 집안에 있으면서
- 예쁘게 얼굴 단장을 하고서
저녁이 되면
- 여전히 밴드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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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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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년 남짓 시간이 흐른 후
- 그들은 드디어 가정을 꾸리게 되지요
- 아주 깨가 쏟아지는 화목한 가정을요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 데스몬과 몰리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 두 아이들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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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도 줄곧 그들은
- 시장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요
- 몰리는 아이들이
- 일손을 거들게 했고
데스몬은 집안에 있으면서
- 예쁘게 얼굴 단장을 하고서
저녁이 되면
- 여전히 밴드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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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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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살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 '오블라디, 오블라다' 하고 노래를 불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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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LA-DI OB-LA-DA> 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고 어떤 의미인지 아는 분은 많지 않다.
- 이 곡을 만들고 부른 폴 매카트니는 런던의 'Soho'에 있는 'the Bag o' Nails club'이라는 곳에서 당시 콩고 연주자였던 나이지리아 인인 'Jimmy Anonmuogharan Scott Emuakpor' 라는 사람에게서 'Ob-La-Di Ob-La-Da' 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는다. 항상 검은 선글래스에 아프리카 의상으로 현란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특징을 지닌 'Scott' 는 'Ob-La-Di Ob-La-Da' 라는 말을 그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Ob-La-Di Ob-La-Da' 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는 또한 그 말을 흥얼거리면서 걸어다니곤 했다."라고 후에 그와 같이 'Bad Manners' 라는 그룹에서 활동했던 'Doug Trendle' (a.k.a. Buster Bloodvessel)이 말한다. 그는 요루바족(서아프리카 Guinea 지방에 사는 흑인 원주민) 태생이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Ob-La-Di Ob-La-Da' 는 'Life goes on'('인생은 가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폴이 이 곡을 쓸 당시 'Jimmy Scott'는 폴이 사용한 그 단어에 대해 재정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에 폴 메카트니는 만약 그 단어의 일부라도 사용했다면 기꺼이 그에게 지불하겠다고 말함으로서 응했지만 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Scott'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한편 그러는 동안 'Scott'는 자신의 전부인에게 위자료 지불하는 것을 거절했다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수감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자 'Scott'는 폴에게 자신의 위자료를 대신 지불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고 폴은 이 부탁을 들어주고 'Scott'를 석방시켜 주는 대신 폴의 노래에 제기되었던 소송은 없었던 일로 마무리가 된다.
- 이 일로 인해 폴과 'Scott'는 1986년 약 64세의 나이로 'Scott'가 사망할 때까지 가장 까까운 친구로서 지내게 된다.
- 폴은 이 곡에 유달리 애착이 강하여서 이 곡을 싱글로 발표하고 싶어 했지만 존 레논은 이 곡을 싫어하여 이 곡을 싱글로 발표하는데 반대의사를 표하였다. 결국에는 스코틀랜드의 그룹인 'Marmalade'가 이 곡을 녹음하여 No.1 히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나서 그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위의 앨범 자켓에 나와 있는 것처럼 폴의 'Ob-La-Di Ob-La-Da'와 존의 'Julia'라는 두 곡으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 어�j든 우리에게는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오블라디 오블라다’로 많이 알려진 이 노래를 들으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즈몬과 몰리 부부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그려진다. 특히 가사 중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되지요 /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 La-la how the life goes on)’라는 부분은 이 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 근래에 들어서는 '오블라디 오블라다'라는 말이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라는 소설가가 쓴 수필집 <무라카미 아사히도와 이까니시테 시따에라레따까. (무라카미 아사히도는 어떻게 해서 단련할 수 있었나)>의 우리말 번역본 제목<'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Bra) 위를 흐른다’>으로 씌어져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 우리 나라 번역본 제목은 책 속의 수필 제목 중 하나를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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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e Album (THE BEATLES) ::::
< Sgt. Hearts Lonely Pepper's Band Club>이 떠나간 자리에 출현한 또 하나의 걸작으로 단순한 음악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 영역까지 도달하여 해석되어지는 대작이다. 이 앨범의 특징은 전작 <SGT. -- Peppers>가 지닌 정제된 통일성에서 벗어나 각 멤버들의 개별적 역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열찬 창의적 열성이 옴니버스 혹은 모자이크 형식으로 그려낸 자유로운 형태 ( 세션 형식 )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있다. 이로인해 자칫 그룹으로서의 응집력이 결핍되어 보일수도 있으나 통상적이고 세속적인 매너리즘을 탈피한 이데올로기적 소재와 뛰어난 작품해석을 통한 다양한 음악장르를 접할 수 있다는 잇점과 함께 각 멤버들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파악할수도 있다. 따라서 이 앨범은 Beatles만이 해 낼수 있는 예리한 음악적 카리스마가 칼날같은 지성으로 때로는 중하한 감성으로 풍요롭게 채색되어 있다. 첫 곡 'Back In The U.S.S.R.'은 후일 공연장에서 즐겨 불리우게된 활기찬 록 넘버로서 Paul의 격정적인 보칼이 전체적인 곡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Dear Prudence'는 리듬기타의 "악센트(Accent)"효과로 음악적으로 큰 호응을 받은 록발라드이고 'Glass onion'은 간결한 록 사운드가 Lennon의 강렬한 보칼과 어우러져 높은 평점을 받았고, 'Obladi - Oblada'는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나 상대적으로 음악적인 평판은 그리 높이 받지 못했다. Beatles 해산후 Revival되어 큰 인기를 얻은 경쾌하고 유우머스런 곡이다. 'Wild Honey Pie'는 실험적 성격이 강한 소곡으로 앨범에 대한 장식적 특성을 십분발휘하고 있으며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은 사냥꾼의 비인간적인 측면을 고발한 시사적 작품으로 컨트리적 색채의 리듬이 흥겹다.
- 이어지는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Harrison의 서정적 보칼과 Eric Clapton의 중후한 기타연주가 빛을 발하는 블루스곡으로 시대롤 초월한 명작의 칭호를 받고 있다. 'Happiness is A Warm Gun'은 Lennon의 죽음에 대한 현실적 연관으로 인해 근래에 들어 재해석되어지는 최고의 걸작이다. <WHITE Album>중 특히 곡구성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보칼의 응집도 역시 섬세한 지성으로 번뜩인다.
'Martha My Dear'는 현대의 Bach라 칭하는 별명에 걸맞는 Baroque형태의 작품으로 McCartney의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I'm So Tired'는 극단적 회의주의에 빠진 Lennon의 자조적 실체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고 '강함'과 '약함'을 함께 소유한 그 특유의 카리스마의 여운이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 'Blackbird'는 서정적 포크음악으로 잔잔히 수놓는 식의 부드러운 보칼과 기타연주가 압권이다. 'Piggies'는 'Martha My Dear'에 이어 연출한 또 하나의 바로크 풍의 음악으로 Harrison의 작곡법의 커다란 진보를 보여준 작품이다. 'Don't Pass Me By'는 Ringo최초의 자작곡으로 그 특유의 편안함과 동시에 컨트리적 색채가 짙은 간결한 작품이다.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는 그들의 실험적 소곡 가운데 가장 우수한 곡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I Will'은 아름다운 발라드로 낭만적 서정성이 잔잔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걸작이다. 'Julia'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애절한 작품이다. C면 첫곡 'Birthday'는 록 애호가들로 하여금 특히 찬사를 받는 곡으로 중후하고 활기찬 힘을 연출하는 걸작이다. 'Yer Blues'는 'I'm So Tired'와 마찬가지로 절망적 회의주의에 빠진 Lennon의 내면성이 담긴 블루스넘버이다. 'Mother Nature's Son'은 야릇한 노스탤지어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곡이며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y Monkey'는 훵키리듬의 활기찬 록 음악으로 앨범가운데 가장 정열적인 곡이다. 'Sexy Sadie'는 절대사상(마하리쉬 요기의 철학)에 대한 Lennon의 조소어린 시각이 나타나 있고 포근한 건반악기와 하모니의 윤기가 빼어나다.
- 'Helter Skelter'는 록 음악에 대한 Beatles의 열정을 한데 수놓은 강렬한 작품으로 대체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우리의 시대적 상황과 비견되는 점이 강하다. 개인적 자아혁명을 부르짖으며 당시 학생운동의 과격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당시에도 소수 지식인층사에에 열띤 논쟁이 벌어진 사실도 기록되고 있다. ( 뉴욕타임즈, 69년 1월 12일자) . 'Honey Pie'는 40년대의 스윙스탠다드 형식의 곡으로 멜로디의 결이 부드럽다. 'Savoy Truffle'뛰어난 구성력을 보여준 활기찬 블루스음악이다. 'Cry Baby Cry'는 Lennon이 일반석상에서 "MBE훈장을 내놓을 각오로 만들었다. "고 폭로(뉴욕타임즈 68년)할만큼 영국황실의 무사안일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Revolution 9'은 여러 잡다한 소음과 대화를 묶어 편집한 작품으로 특히 전환되는 여러가지 소리가 영상화되어 나열되는 듯한 새로운 음악적 시도로 행해진 곡으로 아트와 프로그레시브적 '구상 음악'의 초기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지막곡 'Good Night'은 100분여 동안의 파란만장했던 <WHITE Album>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곡으로 '공'의 세계로 잠재우고 있다.
당시 존재하던 모든 음악을 한데 모아 사회성과 철학을 담아서 하나의 가시화된 예술적 본질로 승화시킨 이 앨범은 Beatles의 잠재된 음악적, 사상적, 철학적 심오함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음악이 한데 모여지고 있다. Beatles에게로, 그리고 <THE Beatles>에게로" (미국 뉴스위크지, 68년 12월)라고 이 앨범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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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Beat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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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와 조화를 향한 열정,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자연적 '감성'에 무게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음악은 감성이 지성을 만든다. 비틀스가 그런 그룹이다. 비틀스는 바로 피와 땀으로 세계정복의 열매와 천재라는 칭송을 획득했다. 그들의 성공은 천재성 아닌 가혹한 고행의 결과물이다. 천재성도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결코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존 레논과 폴이 만난 게 1957년이고 존이 'Hey little girl'을 쓴 게 1958년이며 가장 멋진 밴드명인 비틀스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1960년이다. 그들은 1964년 세계를 휘몰아치기 전 최소 4-5년 밑바닥생활을 했다. 이 점에서 비틀스는 그들이 꽃을 피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호시절을 타고 졸속으로 결성된 다른 그룹들과는 종이 달랐다. 그들은 그동안 무수한 오디션 실패와 해외 투어로 연주력을 다졌으며 오로지 세계정복이란 목표를 위해 눈물과 배고픔을 삼켰다. 정말 그들 말대로 손이 아프도록 기타를 쳤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리버풀 캐번과 저 멀리 독일 함부르크 클럽을 왕래하며 연주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구촌 석권을 위한 숨가쁜 열정이자 가혹한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버풀에서 길러졌지만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는 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 <백비트>에 잘 묘사되었듯 그들은 이곳 클럽무대에서 댄서들 뒤에서 반주를 했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집단 기식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열심히도 챙겼다. 모르는 게 없었다. 1950년대 블루스와 로커빌리, 모타운 R&B, 틴 팬 앨리 팝, 라틴 음악 등 갖가지 계열의 곡들을 골라 커버 연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 'Twist and shout', 스모키 로빈슨 'You really got a hold on me', 캐롤 킹 'Chains', 리틀 리처드 'Long tall Sally', 척 베리 'Rock and roll music' 등이 그 파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들의 독창적 스타일로 빚어낼 줄 알았다. 거기서 'Love me do'가 'From me to you'가 'A hard day's night'가 'I feel fine''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길러낸 창조성, 이를테면 노력에 의해 축적된 내공의 폭발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남들 곡의 템포와 볼륨을 업그레이드했고 그 작업을 통해 이후 그들만의 코드 진행감각 즉 독자적 화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비평가 그렉 쇼(Greg Shaw)는 말한다. “비틀스는 단지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첫째가는 로큰롤 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헌신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성에서 지성으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환상적 퓨전! 비틀스의 이 무명시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나온 앨범 <The Beatles 1>에서 초기 곡인 'Love me do'에서 'Help!'까지는 이 출발 이전의 워밍업 시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실상 비틀스 초기 작품은 이 준비기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도 없다. 하긴 연습 없이 실전을 잘 치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비틀스는 나중 실전을 연습처럼 해야한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 제2부 <지구촌 전체를 손에 넣다> 1964년 2월7일 영국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비틀매니아'의 시작. 그것은 이후 음악의 중심이 '젊은이들'과 '대중음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과 고전음악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비틀스가 먼저 1963년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광풍은 당시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추문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도 잠재워버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 판에 관심을 깡그리 잊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틀스가 오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비틀스는 이처럼 정치 사회적 회오리마저 제압하는 엄청난 팝 폭발(pop explosion)현상이었다. 비틀스 초기 음악은 한마디로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1950년대 미국 로큰롤에 영국 특유의 셔플 리듬과 보컬 하모니를 덧입힌 스타일로, 강했으되 느낌은 밝았다. 기본 코드를 이용한 로큰롤만의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1950년대의 로큰롤보다는 훨씬 템포도 빠르고 볼륨도 컸다. 본격적인 밴드중심 로큰롤의 개막이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그들처럼 기타를 치고 드럼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틀매니아 시대의 음악은 이처럼 '로큰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영국에서 1963년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에 오르면서 당시로 볼 때는 경이적인 65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것은 비틀스가 이후 발표한 11장의 싱글이 모두 정상에 오르는 '넘버원 퍼레이드'의 서막이었다. 다음 싱글 'She loves you'는 선(先)주문만도 31만장에 달하면서 영국에서만 16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기록은 폴 매카트니의 1977년 'Mull of kintyre'에 의해 깨질 때까지 무려 14년 간 '영국 최고판매의 싱글' 타이틀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She loves you'로부터 1위 자리를 승계하며 선주문 94만장에 총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들의 꿈이던 미국정복을 이룩해낸 곡도 바로 이 노래였다. 이 곡은 전미차트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1964년 미국에서 'Can't buy me love'는 판매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주문 170만장에 발매와 동시에 모두 20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다(영국에서도 첫 주 122만6천장). 굳이 판매고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비틀스광풍을 설명하기에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공할 행진은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두 번째 영화에 삽입된 'Ticket to ride' 'Help!'로 이어진다. 이 때까지 넘버원 싱글 가운데 느린 곡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들은 당시 세대와 호흡하는 로큰롤의 대중성을 신뢰했다. 'Help!' 만해도 존 레논은 "원래 느린 곡조로 썼으나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빠르게 불렀다"고 밝혔다. 그 속도감을 갖춘 로큰롤에 소녀들을 미치게 한 곡 중간의 함성 'yeah yeah yeah'(비틀스 시대의 상징어가 됐다)으로 그들은 영국의 침공을 견인하며 지구촌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성공하기 전 그들이 주로 커버했던 곡을 골라 녹음한 폴 매카트니의 1999년 앨범 <Run Devil Run>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I got stung'를 부른 경위에 대한 폴의 설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엘비스 레퍼토리는 아니었으나 인트로가 맘에 들었고 난 엘비스보다 조금은 더 난폭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뜨리고 질러대는 로큰롤을 가지고 그들은 마침내 '최강의 로큰롤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비틀스는 더 나아가 '최강의 팝 밴드'가 되고자 했다. 그 비상을 알리듯 1965년 가을 때마침 현악 반주의 'Yesterday'가 나왔다.
- 제3부 <거리의 록을 전당의 예술로>(중기 비틀스) 엄밀히 말해서 로큰롤은 거리의 젊은이들 음악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어른들이 듣는 이전의 스윙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와 완전히 '분리와 독립'의 선을 그었다. 비틀스도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인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할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로큰롤(전에 지적한 듯 좀 더 강하긴 했지만)을 구사했다. 초기에 그들은 기타로 곡을 썼고 그래서 그 때의 곡들은 업 비트의 장조계열 곡들이었다. 그러나 '제5의 비틀'이라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그로부터 피아노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느린 단조계열의 발라드 팝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의 록은 완전히 근사한 전당의 예술로 '신분상승'했다. 그것을 상징하는 곡이 'Yesterday' 'Eleanor Rigby' 그리고 앨범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가사였다. 이전의 그들의 신나는 로큰롤에 담긴 노랫말이라곤 고작 젊은 남녀의 풋사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포크와 통기타의 영웅 밥 딜런(Bob Dylan)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가사의 중력을 절감했다. 특히 존 레논에게 이 부분의 충격은 절대적이었다. 갑자기 비틀스 노래는 사랑타령에서 '사색과 인생'으로 바뀌어갔다. 중기의 대표적인 노래들인 'Girl' 'In my life' 'Eleanor Rigby'는 이전 노래와는 확실히 깊이가 달랐다. 비틀스는 싱글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음악작업의 축을 전환했다. 곡도 커버 버전은 완전히 걷어치우고 철저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더러 조지 해리슨)의 자작으로 앨범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자들이나 대중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비틀스의 최고 명반으로 중기작품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저간의 상황이 있다. 물론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도 우수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영국인들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권위 있는 '버진 올 타임 톱 1000 앨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이 리서치에서 <Revolver>가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Sgt. Pepper's..>는 3위, <Rubber Soul>은 34위에 올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미국 문화계 인사들과 히피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간 싸이키델릭(psychedelic) 풍향이다. 환각과 약물로 이미지화된 이 흐름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문화적 대안(代案)을 찾고자 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의식확장을 위해 약물 LSD를 실험했고 동양종교를 탐색했고 갖가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적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평화'였다. 버진 조사에서 1등을 뺏겼지만 여전히 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바로 싸이키델릭과 히피의 '안티' 성향을 농축해낸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다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타임에 커버로 두 번 등장한 대중가수는 비틀스밖에 없다). <The Beatles 1> 앨범은 넘버원 곡들만 수록해 싱글을 내지 않은 이 앨범의 레퍼토리들이 수록되어있지 않지만 대신 'Yellow submarine' 'All you need is love'로 그 메시지와 분위기를 희미하게 맛볼 수 있다. 중기의 포크와 싸이키델릭 시대를 통해 비틀스는 '자기 음악중심'을 확립했다. 단순한 성공공식으로 일관하면서 실험을 배제하는 여타 그룹들과는 달랐다. 초기에 그토록 흔하던 히트싱글 발표도 가급적 자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악의, 소위 얼터너티브를 찾아 실험하고 탐구했다. 오늘날에도 비틀스가 최강의 그룹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음악혁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비틀스의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그룹의 결속력의 약화라는 음지가 존재했다. 4인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하나의 그룹 아닌 '존 폴 조지 링고'로 흩어지면서 비틀스는 말기를 맞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은 명반 생산을 게을리 하지는 않지만..
- 제4부 <미래의 기약-4분의 4는 역시 하나!>(말기 비틀스) 1968년 자신들의 음반사 애플(Apple)을 설립했을 때, 그리고 애플의 첫 싱글 'Hey Jude'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비틀스의 웅대한 새 출발은 이상하게도 그룹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졌다. 비틀스라는 우산 아래 뭉쳤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독자 영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그룹을 대표하던 존은 비틀스 아닌 필생의 동반자 오노 요코와의 관계에 빠져 들어갔으며, 폴은 그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넷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실세로 솟아났다. 존과 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이러한 '헤쳐' 상황은 비틀스를 '존과 폴의 그룹'에서 '폴의 그룹'으로 재편했다. 조지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액센트를 두기 시작했고 곡을 쓰지 못했던 링고도 마침내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과 같은 곡을 써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애플사에서 낸 첫 앨범 <The Beatles>(일명 화이트 앨범)는 불가피하게 '한지붕 네가족'의 앨범이 되어 나왔다. 자신이 쓴 곡을 녹음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룹동료가 아니라 거의 세션 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비틀스의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사업고문 발탁을 놓고 존 조지 링고와 폴 간의 입장차이가 불거지면서 멤버들간의 갈등도 노출되었다. 존과 폴은 모든 면에서 가령 예를 들면 결혼날짜와 장소와 같은 문제에서도 사사건건 경쟁적 심리전을 전개했다. 말기에서 비틀스가 차지한 차트 넘버원 곡들은 존의 'The ballad of John & Yoko' 'Come together', 조지의 'Something'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폴이 주도적으로 쓴 곡이었다. 폴의 작곡 감각은 이후에도 접하기 어려울 만큼 이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해산 직전에 나온 'Let it be'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곡들은 비틀스 작품이기보다는 폴의 솔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폴의 천재성은 말기의 앨범 <The White Album> <Abbey Road>에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굳이 싱글이 아니었어도 전자의 'Obladi oblada' 'Martha my dear' 'I will', 후자에서는 'You never give your money' 'Golden slumber'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등 그가 주조한 곡들은 어떤 싱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 기습적인 비틀스 해산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폴이었다. 전설의 4인들은 해산 후에도 각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 할 것 없이 1970년대의 어떤 싱어 송 라이터나 팝 스타들보다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차트 넘버원 곡을 기록했다. 그룹 출신으로 솔로활동에서 멤버 모두가 1위 곡을 가진 그룹은 비틀스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윙스(Wings)라는 그룹을 만든 폴의 히트행진은 비틀스 업적을 거의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존 폴 조지 링고를 아무리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비틀스라는 집합으로 기억한다. 말기 이후가 '4분의 4'이었을지언정 대중의 뇌리에는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임은 비틀스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깨고 1995년 폴 조지 링고가 투합해 존의 노래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다시금 입증되었다. 여기서 링고 스타의 비틀스론(論)을 들어보자. "우린 신비로웠고 그것은 텔레파시였다. 우리가 녹음실에서 작업했을 때…그걸 묘사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린 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비틀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묻히지 않고 갈수록 위대성과 가치가 증대한다. 미국 브라질 쿠바 일본 그리고 한국을 가리지 않고 <The Beatles 1>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열풍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은 뉴 밀레니엄 첫 스타가 비틀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1960년과 2000년 사이의 40년 세월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비틀스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불로(不老) 불사(不死) 불패(不敗)의 그룹이다. [ From Izm.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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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row : [英][노상 행상인 등이 쓰는] 두바퀴 손수레(pushcart).
- [들것 모양의] 상자형 운반기(handbarrow). ( =wheelbarrow )
- - barrow boy 손수레 행상인
- *Ob-La-Di Ob-La-Da : (=Life goes on) 인생은 가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 위의 설명 참조
- *trolley : (=trolley car[美]=teacart) 고가(高架) 이동 활차. 손수레, 광차(鑛車).
- 촉륜(觸輪) [시내 전차·트롤리 버스의 폴 끝에 있는 것].
- [英][병원의] 4륜 환자 운반차. 시내 전차로 나르다(를 타고 가다)
- be off one's trolley美속어 정신이 나가다, 제 정신이 아니다.
- *Bra : (=Bro) 형제라는 말에 대한 하와이의 속어,
- 또는 아일랜드어로는 영원을 의미한다고도 함. 현대어로는 여성의 브래지어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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