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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ises The Cranberries

천하한량 2007. 7. 27. 00:37
Promises
 
언약
 
 - Sung by The Cranberries

You better believe I'm coming
You better believe what I say
You better hold on to your promises
Because you bet
You'll get what you deserve

She's going to leave him over
She's gonna take her love away
So much for your eternal vows, well
It does not matter anyway

**
Why can't you stay here awhile
Stay here awhile
Stay with me

***
Oh, all the promises we made
All the meaningless and empty words
I prayed, prayed, prayed
Oh, all the promises we broke
All the meaningless and empty words
I spoke, spoke, spoke

What of all the things
that you taught me
What of all the things that you'd say
What of all
Your prophetic preaching
You're just throwing it all away
Maybe we should burn
The house down
Have ourselves another fight
Leave the cobwebs in the closet
'Cause tearing them out
is just not right

** Repeat

*** Repeat


내가 올 거라는 걸 믿어
내 말을 믿는 게 좋을 거야
네가 했던 약속들을 지켜야 해
네가 큰소리 쳤으니까
너는 응분의 보상을 받을 거야

여자는 남자를 차 버릴 거야
그녀는 자기 사랑을 가지고 가 버릴 거야
너의 영원한 맹세는 끝나버린 거지
그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
너는 왜 잠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거야?
여기 잠깐만 있어 줘
나랑 같이 있어 줘

***
아, 우리가 했던 약속들은 모두,
다 의미 없고 공허한 말이 되어버렸지
내가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 우리가 깨뜨린 약속들은 모두,
다 의미 없고 공허한 말이 되어버렸지
내가 그렇게 애타게, 애타게 얘기했는데…

네가 나한테 가르쳐 주었던
것들은 모두
네가 말했던 것들은 모두
네가 말했던 미래의 꿈들은
모두 어떻게 된 거야
너는 그 모든 걸 날려 버리고 있는 거야
아마 우리는 과거의 일은
모두 지워버리고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해야겠지
마음속 옛 추억은 그대로 간직해
모두 다 잊어버리는 건
옳지 않으니까

** 반복

*** 반복

 
 NOTES... 
 
 
 
::::  The Cranberries  ::::
 
    여자 보컬 돌로레스 오라이오던의 카리스마가 번뜩이는 크랜베리즈는 1990년 아일랜드의 리머릭에서 형제인 노엘(기타)과 마이크 호건(베이스), 그리고 퍼걸 롤러(드럼)에 의해 결성되었다. 원래 이들의 이름은 Cranberry Saw Us였고 니엘이란 싱어가 있었다. 그러나 곧 니엘이 밴드를 떠나는 바람에 세 사람은 '여가수 구함'이란 광고를 내게 되고, 그래서 짜잔하고 등장한 사람이 돌로레스. 여기서부터 크랜베리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크랜베리즈는 곧 몇 개의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고 여기저기 레코드 회사를 찾아 다녔다. 아일랜드 레코드사와 계약을 한 이들이 92년에 처음 낸 싱글은 [Uncertain]. 그러나 별 반응을 얻지 못한다. 거기다가 매니저와의 불화로 그룹이 거의 해산직전의 위기에까지 빠졌다가 겨우 제 자리를 잡고 93년 봄에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와 싱글 'Dreams,' 'Linger'를 연속해서 발표한다. 그러나 아일랜드와 영국에서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했고, 그래서 이들은 93년 여름과 가을, 미국에서 스웨이드와 The The의 오프닝 밴드로 투어에 나서게 된다.
   투어 덕분이었는지 크랜베리즈는 오히려 미국에서 뜨기 시작했다. 음악 팬들의 입소문과 미국의 유명 케이블 음악채널 MTV에서 'Linger'의 비디오를 틀어 주면서 이들의 앨범이 팔리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에서만 이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다. 뒷북을 친 영국에서는 94년 여름이 되어서야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이 차트 1위에 오른다.
   94년 여름에 돌로레스는 듀란 듀란의 세트 매니저와 결혼을 했고, 크랜베리즈의 두번째 앨범 [No Need to Argue]는 가을에 발매가 되었다. 이 앨범은 'Zombie,' 'Ode to My Family'의 히트곡을 내며 전세계에서 천만장이 팔려나가 첫번째 앨범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 번째 앨범 [To the Faithful Departed](96)는 발매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돌로레스가 6월에 호주에서 있었던 한 콘서트 도중 무릎을 다치고,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아 호주, 미국, 유럽 투어 모두를 도중에 중단해야만 했다. 나중에는 돌로레스가 솔로 커리어를 위해 밴드를 떠날 거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결국 밴드는 99년에 네 번째 앨범 [Bury the Hatchet]를 발표했지만 다시 옛날의 성공을 맛보지 못했다. 첫 두 장의 앨범의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크랜베리즈가 이처럼 빨리 나락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Dreams'와 'Linger' 같은 명곡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다.  [ From Koreamusic.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