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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nie And Clyde / 보니 앤 클라이드 음악적인 리뷰 + 음악

천하한량 2007. 7. 17. 18:33

Bonnie And Clyde / 보니 앤 클라이드 음악적인 리뷰 + 음악

1967년/ 감독: Arthur Penn /주연: Faye Dunaway + Warren Beatty

음악: Charles Strouse / 111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뭐,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을 한 평생 살고 가면서

우리들의 이름이 미래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 하는 점도 사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물론 위인 열전에 오르는 것까지야 당연히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떤 분야에서 자기의 이름이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어쨌든 유명해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려 40여 차례나 영화화가 된바 있는 서부시대의 대표적인 무법자,

제시 제임스 (Jesse James, 1847-1882, 미국 미주리)나

1890년대의 실존인물들, Butch Cassidy 와 Sundance Kid.

그리고 이 영화의 보니 와 클라이드 같이 불명예스럽게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철수와 영희 같이 미국에서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이 되어버린

보니 앤 클라이드.

텍사스의 로웨나(Rowena) 에서 3남매 중의 둘째로 태어나, 달라스 인근의

시멘트 시에 있던 외할머니 집에서 자라나면서 글쓰기를 좋아하였던 소녀,

보니(Bonnie Parker/1910-1934, 미국 텍사스)

16살에 무척 빠른 시집을 가게 되지만, 5년형을 선고받은 시원치 않은 남편덕분에

트럭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웨이트리스의 일을 하면서 지루한 삶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드(Clyde Chestnut Barrow/1909-1934, 미국 텍사스).


텍사스, 엘리스 카운티(Telico 인근)의 목화밭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클라이드는 달라스 변두리에서 아주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15세인 1926년에 이미 자동차도둑으로 처음 체포가 된다.

그리고 전형적인 범죄자의 길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되는데,

그러면 이 둘(아래 실제 사진)은 어떻게 만났고 또 함께 뜻을 같이 하게 되었을까?



신기술의 상징으로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코닥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즐겨하던 보니 덕분에 아직도 꽤 많이 남아있는 이 두 사람의 흑백실물사진을 먼저

보여주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막 출소를 하여 보니의 어머니차를 훔치러 온

클라이드 (Warren Beatty, 1937, 미국 버지니아)

나체로 자기 방에서 지루하게 1932년의 한 여름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보니 (Faye Dunaway, 1941, 미국 플로리다)

처음 만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이미 1930년 1월에 달라스에서

만났고 또 사귀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콜라를 마시다 즉흥적인 강도행각을 벌이며 만나자마자 둘이 함께 차를

훔쳐 타고서 길을 떠나는 초반부 줄거리도 실제와는 좀 다르다고 하는데,

역사 (무슨 자랑이라고, 아주 상세한 기록이 매우 많다)에 기록되기로는 이 둘이

만난 지 2달 밖에 안 되는 1930년3월에 클라이드가 감옥에 가게 되면서 잠시 이별을

하였고, 1932년 2월에 클라이드가 가석방이 되면서 둘이 함께 도둑질을 시작 하다가,

이번에는 한 달만에 보니가 잡혀서 석 달간의 감옥생활을 하였다고한다.

그리고 1932년 6월, 보니가 출소를 하면서 드디어 이 둘은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미주리, 등을 마치 신혼여행 하듯이 차를 훔쳐 타고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은행에 들려 마치 자기 돈을 찾듯이 은행 강도짓을

해오던 이들은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하던

모스(C W Moss/Michael J Pollard, 1939, 미국 뉴저지)
를 끌어들이면서

3인조가 되고 (실제 인물은 Floyd Hamilton ), 또 여기에다 역시 전과자인 친형,

버크(Buck Barrow/Gene Hackman, 1930, 미국 CA)

목사의 딸로 자라나 형수가 된

블랑셰(Blanche Barrow/Estelle Parsons, 1927, 미국 매사추세츠)


가세를 하면서 ‘배로우 갱’ 이라고 언론의 호칭을 얻게 되는 5인조 강도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사소한 의견다툼과 턴 돈의 분배과정에서 말싸움은 잦아지고,

또 살인만은 하지 말자던 약속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할 수 없이 깨지게 되면서,

그때부터 대규모적인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러 번의 경찰 포위망을 용케 피해오던 이들은 1934년1월에 아이오와에서

있었던 총격전 끝에 형, 버크가 사살되고, 형수도 잡힌다.

또한 부상을 당한 보니와 클라이드도 결국 모스의 아버지 집을 찾아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당분간 요양을 하지만, 그러나 아들의 장래를 생각한 모스 아버지의 밀고로

마침내 1934년 5월23일(오전 9시15분), 마을을 다녀오던 이 둘은 미리 매복을 하고

기다리던 경찰의 집중사격을 받고 루이지애나의 Blake Lake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몇십 발의 기총소사를 집중적으로 받아 형편없이 망가진 보니 와 클라이드의 사체는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잔인하게 며칠 동안 달라스시내에서 전시가

되었다고 하니 마치 중세시대로 잠시 되돌아간 느낌도 없지 않지만,

무자비한 총알세례로 마치 벌집같이 되면서 죽어가는 참혹한 보니 와 클라이드의

모습이 담긴 마지막 장면은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도 엄청나게 큰 충격을 주면서

화제가 되어 1967년12월에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주로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보아오던 살인 등의 중범죄 장면들이

이렇게 벌건 백주대낮에 여과 없이 그냥 보여 지면서(이것도 일종의 리얼리즘이지만)

영화가 점점 더 잔혹해져간다는 범사회적인 비평의 직격탄을 받기 시작한 이때부터

아닌 게 아니라 미국 영화들은 ‘잔혹의 미학’이라는 신종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한때 폭력이 판을 치게 되었고, 또 Sam Peckinpah(1925-1984, 미국 CA) 같은

감독들에 의해 그 잔혹의 한계선이 모호해지기도 하였다.

여하튼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이 장면은 5년 후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The Godfather(1972)에서 맏아들, 소니의 죽음장면으로 그대로 또 다시

재연(오마주)이 된다.



여러 가지 새로운 유행 풍조를 만들어낸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American New Cinema’ 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에서 자극을 받고 또 영향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효시 같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매끄럽지 않고 거칠기는 하더라도 생동하는 실험 영화를 표방한다는 1960년의

‘New American Cinema Group’ 과는 또 성격을 달리한다.)

월남전이 수렁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반전시위와 민권운동 등이 미국 전역을 휩쓸던

1960년대 후반, 히피문화를 포함한 당시의 저항적인 청년문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 기성세대들이

만들어오던 할리우드의 낭만주의와 해피엔딩의 방식들을 배타시하고 사회 현실의

비판을 주로 냉소적인 각도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고 또 비극적으로 결론을 낸다할지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정제하지 않고 필름에 담겠다는 얘기인데, 1930년대의 이 ‘보니 앤 클라이드‘ 도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바로 어수선한 1960년 후반의 사회상을 고발하기 위하여

미래로 잠시 원정을 온 셈 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

이라고 일컫는 이 영화와 같은 해의 ‘The Graduate’(1967),‘Easy Rider’(1969)

모두다 충격적인 마지막 결론으로도 유명하다.



저항적인 청년문화가 만들어내었다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념비적인 이 작품이

청년이 아닌 당시 45세의 나이로 연출경력 20년째이던 브로드웨이 출신의

아서 펜(Arthur Penn/1922, 미국 필라델피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일 년 전에 ‘The Chase’(1966)를 통해 미국의 사법제도를 비판한

적이 있었고, 또 1970년에는 ‘Little Big Man’을 통하여 과거의 미국정부가 인디언

원주민들을 얼마나 못살게 하였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 적이 있어, 사회(제도) 비판의

전문적인 작가 감독이란 별명까지 얻게 되지만, 바로 이 점이 (처음) 제작까지 직접

나서서 한 당시 30세의 젊은 워렌 비티가 선호한 점이었고, 또 환상적인 콤비사이가

되면서 이 문제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러나 누벨바그에 빠져있던 워렌 비티는 처음에 프랑스의 Francois Truffaut 와

Jean-Luc Godard 에게 감독직을 제의하였었다고 한다.)

한편, 아서 펜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 덕분으로 1970년, 파라마운트영화사로 부터

‘대부’ 프로젝트의 감독 제1순위로 지명된 적이 있으나, 무슨 이유 인지, 본인이

고사를 하므로서, 미국 영화계에 ‘Francis Ford Coppola’ 라는 또 한명의 거장이

탄생하는 동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의적도 아니고 무슨 동기나 목적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그냥 살인과 강도행각을

막 저지른 철없는 보니 와 클라이드를 영웅시하고 또 미화시킨 이 작품에 대한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나서,

이 보니 와 클라이드를 주제로 한 노래들까지 덩달아 히트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곡이 ‘Santo & Johnny’의

‘The Ballard Of Bonnie And Clyde’ (아래 음악)
라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이곡도 가사가 붙여져 1970년대 내내 방송으로 자주 들을 수가 있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음악이 한국에서 잘못 알려진 것과 같이 결코 이 영화의

주제곡이 아니란 점이고, 또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결코 이곡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비오는 날에 보니가 시를 지어 신문사로 보내는 장면이 나오지만,

“제시 제임스가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 아신다면 이제부턴 보니 와 클라이드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세요....“로 시작되는 그녀의 자작시, ‘The Story Of Bonnie

And Clyde’ 역시 Lester Flatt & Earl Scruggs 등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면서

널리 알려졌으며, 컨트리 앤 웨스턴의 명가수, Merle Haggard 도 ‘The Legend Of

Bonnie And Clyde’ 라는 곡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Bye Bye Birdie’(1963)나 ‘Annie’(1982) 같은 뮤지컬의 음악으로 유명한

찰스 스트라우스(Charles Strouse/1928, 미국 뉴욕)

전체 오리지널 스코어는 만들었지만 이 영화를 대표할만한 Main Theme이나

주제곡은 없다. 대신 Lester Flatt & Earl Scruggs 가 바이올린의 간드러진 휘들링 과

신나는 밴조의 멜로디 연주의 Blue Grass 스타일로 발표한

'Foggy Mountain Breakdown' (아래 음악)
을 삽입곡으로 사용하면서 범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져가는 보니 와 클라이드의 뒷모습에 배경음악으로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이 이 영화음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번 등장하는 잔혹한 총격 씬들의 총소리에는 신경을 무지하게 쓴 대신

정작, 음악은 상당히 소홀히 한 셈이다.

그나저나 1960-70년대뿐만 아니라, 이 보니 와 클라이드를 찬양하는 노래들은

최근에도 ‘Eminem’, ‘Jay Z & Beyonce’, ‘Kane & Able’, ‘Tori Amos’,

‘Travis Tritt’ 등에 의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데,

이는 마치 제임스 딘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이름, 보니 파커 와 클라이드 배로우,

역시 의류의 상표로 사용을 하면서 그들을 문화적인 우상으로 만든 상술에도

그 원인이 있는듯하다. 하지만 상술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관광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해보려는 미국의 한 촌 동네, 즉 보니 와 클라이드가 죽은 곳의 지명을

‘Bonnie And Clyde County’라고 개명하기까지 한 그 지방의 상술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