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소식 ▒

[빚 권하는 한국사회]‘대부 공화국’

천하한량 2007. 6. 9. 15:44
[빚 권하는 한국사회]‘대부 공화국’

“빚진 죄인.” “빚지고는 발 뻗고 잠 못 잔다.”

빚을 진 사람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것을 표현한 속담이다.

하지만 최근 빚에 대한 심리적 태도가 급속히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낼 수 있는 것이 곧 능력이고,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잘 투자해서 성공하면 된다는 것.

빚에 대한 한국인의 사회적 인식 변화를 주제어로 살펴봤다.

○빚쯤이야…

여론조사기관인 메트릭스가 2월 20∼50대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5.6%가 “부채도 능력”이라고 대답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하는 소비자태도조사에서 2002년 2분기(4∼6월)와 2007년 2분기의 가계부채에 대한 인식을 비교해 보면 최근 5년 사이에 빚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가계부채가 있다”는 응답자가 2002년도에는 47.4%였으나 올해는 52.0%로 증가했다. 서울에서는 42.7%에서 52.2%로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보유 중인 부채가 과다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다”는 응답이 37.4%에서 19.9%로 오히려 감소했다. 서울에서는 36.6%에서 26.0%로 감소했다.

2002년 596조 원이었던 가계부채가 지난해 671조 원으로 늘어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인식이다. 빚도, 빚을 진 가구도 늘어났지만 빚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서는 더 확산된 것이다.



빚 무서운 줄 몰라

가구당 평균부채 2915만 원→3668만 원

‘빚 많다고 생각’ 되레 37%→19%로 감소

○‘빚 갚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빚은 정말 ‘만만해진’ 것일까. 현실은 그 반대다. 빚을 줄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씀씀이 규모를 소득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 소득에서 이자, 저축, 세금을 빼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 가처분소득의 증가율은 외환위기 이후 9년간 연평균 4.7%였다. 이전 9년간의 평균치가 14.7%인 것을 감안하면 소득 증가세가 3분의 1로 둔화된 셈이다.

가처분소득 증가세는 꺾였지만 가계부채 증가율은 외환위기 직전 9년간 평균 16.1%, 외환위기 이후 9년간 14.6%로 비슷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증가가 구조적으로 부진해지면서 지출을 조금만 늘려도 부채가 늘어나게 됐다”며 “외환위기 이후 빚의 악순환 고리가 구조적으로 정착됐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은 “그런데도 빚을 ‘만만하게’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빚의 질도 변했다

성인 35% “빚 잘내는 것도 능력으로 생각”

생계형 부채보다 소비형 부채로 패턴 변화

○빚내서 투자한다

메트릭스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수익이 예상된다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할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회사원 김모(38) 씨는 2003년 1월 은행에서 3억 원을 대출받아 서울 강남 지역에 4억8000만 원을 주고 산 43평형 아파트 값이 지난해 말에는 10억 원 가까이로 뛰었다. 과감하게 빚을 내서 ‘베팅’을 해 4년 만에 2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셈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5%대였던 금리가 6%를 넘어서면서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이 240만 원 정도로 월수입의 절반을 넘고 올해부터는 종합부동산세까지 내야 한다.

지금이라도 아파트를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메트릭스의 조사 결과에서도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어도 굳이 부채를 바로 갚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32.6%나 됐다.

김 씨는 “다시 빚을 내서 세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파트가 재건축 대상이 돼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릴 때까진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 정체가 장기화되면 이번에는 대출을 받아 최근 활황인 주식시장에 뛰어들까 생각하고 있다.

○생계형에서 소비형 빚으로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송태경 정책실장은 “아이 돌잔치를 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이 발단이 돼 부채에 허덕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에야 돈이 없으면 아예 안 하거나 간단히 했는데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구조가 되면서 굳이 안 빌려도 될 돈을 꾸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주부 최모(56) 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한 막내딸(23)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해외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닌 딸이 그 어려운 취업난을 뚫고 직장을 잡은 것이 기특하긴 하지만 요즘 부쩍 씀씀이가 커져서 걱정이다.

취직 후 생전 처음 만든 신용카드를 조심조심 쓰던 것은 처음 몇 달. 점점 고급 핸드백이나 구두 같은 ‘명품’을 아무렇지 않게 할부로 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돈이 모자라면 현금서비스까지 받는 눈치다. 우연히 딸의 카드대금 결제가 몇 번 연체되기도 하고 카드가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 씨의 걱정에도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엄마 걱정 마세요. 요즘 다 그래. 카드도 많이 써야 신용이 좋아지는 거라고요.”

메트릭스의 조사에서 연령대별 응답 실태를 비교해 보면 50대는 빚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20, 30대에선 빚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식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 어깨 누르는 빚

‘감당하기 어려운 빚의 무게’는 저소득층에게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소득 수준에 따라 5개 계층을 나눌 때 최하위 계층(전체 가계의 20%)은 외환위기 이후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가계수지 동향에서도 최저 소득계층의 적자율은 56.5%. 가처분소득의 56.5%만큼 돈을 더 써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은 셈이다.

그러면서도 소비성향은 중산층을 따라간다. 서울대 이소정 박사(사회복지학)는 학위논문에서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소비지출÷가처분소득)이 다른 계층을 닮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가 저소득층 주부 12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 “직장에서 정장을 입는 날에 나만 못 입으면 난처하다”며 옷을 사는 ‘사회적 관계 지출’이나 “밥만 먹고 일만 하고 살면 그게 사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여가지출’, “힘든 건 마찬가진데 즐기고 외식도 하고 보자”는 지출이 눈에 띄었다.

저소득층의 지출에는 개인교통요금(승용차 구입 및 유지비)과 통신비(휴대전화 구입과 통화요금)의 비중이 컸다. 빚을 내서라도 차와 휴대전화는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됐다는 것.

한양대 김재원(경제학) 교수는 “소득 이상으로 지출하거나 상환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빌리는 경향이 뚜렷해져 만성적 가계 적자와 함께 장기적으로 저축률을 떨어뜨려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빚 권하는 한국사회]돈 권하는 한국사회, ‘빚’과 그리고 그림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이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신용카드 빚으로 돌잔치하고 대학등록금 내고, 결혼하고, 집 장만하고, 자녀 교육시키고, 재테크하고…. 2007년 한국은 돈 없는 서민들에게 빚을 부추기는 사회다. 한국인의 경제 라이프 사이클 중 어느 것 하나 빚의 힘을 빌리지 않는 게 없다. 직장인들 모임에서는 빚으로 집을 사 대박을 터뜨린 얘기가 무용담이다. 빚 없이 성실하게 저축하는 직장인은 “어느 세월에 집 사려고…”라며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각종 통계를 들여다보면 외환위기 이후 소득을 웃도는 소비 증가세가 고착화됐다. 소득 하위 20%의 저소득층은 매년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연 소득에서 이자 지출 등을 뺀 금액)의 50% 이상을 부채로 떠안는다. 한국인과 빚의 ‘동거’가 이상하고 위태롭다.》

○ 빚으로 시작하는 사회 첫발

2006년 가까스로 취업한 김모(29·여) 씨. 그러나 입사 후 1년 가까이 속병을 앓았다. 대학 시절 학자금으로 대출받은 2000만 원 때문이다. 연이율은 6.7%.

1998년 대학에 입학한 김 씨는 2학년 때 처음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3학년 때 500만 원을 추가로 빌려 6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4학년 때는 취업 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그만둬 빚이 더욱 늘었다.

취업 준비 3년 만인 2006년 중소기업에 취직해 받은 월급은 150만 원. 매달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의 원금과 이자 30만 원은 그의 벌이로 만만치 않다.

김 씨는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빚 갚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동산 신화의 왜곡, 빚내지 않으면 바보?

2002년 결혼과 함께 경기 용인시에 30평형대 아파트를 구입한 이모(32) 씨.

월급이 300만 원 남짓인 그가 당시 가진 돈은 1억 원 정도였다. 이 씨는 은행 대출 1억7000만 원, 친지에게 빌린 1억 원, 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5000만 원 등으로 4억2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5년이 지난 지금 월급 대부분이 이자로 들어간다.

맞벌이 부부인 그는 아내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아 나갈 작정이지만 주변의 또래 친구들은 “뭐 하러 갚느냐, 그 돈 있으면 주식이나 펀드투자하라”고 권유한다.

이 씨는 “빚은 일단 없애고 봐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 자영업의 그림자

대기업에 다니던 박모(41) 씨는 2003년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애프터서비스(AS) 전문점을 차렸다.

창업 당시 돈이 부족해 은행에서 2000만 원을 빌렸다. 그러나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차료와 운영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일이 늘어났고 순식간에 빚은 4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박 씨는 2006년 말 사업을 그만두고 다시 중소기업에 계약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은행과 카드사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회사마저 그만두고 지금은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다.

○ 잘못된 소비가 부른 빚


주부 도모(45) 씨는 공무원인 남편과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도 씨는 6년 전 길거리에서 “생활용품을 보너스로 준다”는 말에 신용카드 3개를 만들었다. 신용카드가 있으니 당장 현금을 안 내도 쇼핑과 외식을 즐길 수 있었다. 써댄 돈은 신용카드 연체로 돌아왔고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함께 보험약관대출에도 손을 댔다. 빚은 올 초 6300만 원까지 늘어 가정불화에 시달리고 있다.

○ 노후 준비, 대책 없는 투자는 빚만 늘려

2003년 정년퇴직을 앞둔 회사원 최모(59) 씨는 A사 주식이 상장된다는 말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주식 투자에 나섰다.

여윳돈은 한 푼도 없었지만 “다니는 회사의 주거래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2000만 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여기에 보험회사에서 대출받은 1000만 원과 신용카드 대출 300만 원 등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

그는 “아이 결혼 비용에다 노후 준비까지 생각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상장 계획은 소문일 뿐이었다. 주가는 떨어졌고 최 씨는 투자 수익 대신 빚만 떠안게 됐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빚 권하는 한국사회]당신의 부채 건강합니까



나는 과연 내 분수에 맞는 규모의 빚을 안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말 정부는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면서 ‘총부채상환비율(DTI) 40% 이내’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개념을 내세웠다. 대출 원리금이 1년 예상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출을 받게 제한한다는 것.

대다수 금융 전문가는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DTI의 개념이 익숙하지만 이전에는 적정한 대출 규모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빌려 주는 금융권이나 빌리는 일반인들이나 담보만 있으면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을 만큼 무조건적인 분위기였다는 것.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수익이 워낙 크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다.

하나은행 본점 김창수 재테크팀장은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대출이 변동금리와 만기 일시상환 방식이어서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금리가 오른다거나 만기 연장이 안 돼 상환 압력에 부닥칠 경우 심하면 파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

김 팀장은 외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일종의 주거를 위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수입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원리금을 갚으면 된다는 개념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무리한 대출을 하기 때문에 가장이 실직하거나 소득이 줄어들면 바로 타격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국내외의 재무관리 매뉴얼을 참고로 적정한 빚의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소비자 부채의 상환 원리금이 총소득에서 소득세를 뺀 순소득액의 2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출을 하는 것이 좋다. 또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 관련 부채비율은 대출원금과 이자비용, 재산세, 주택화재보험료, 관리비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 총소득의 28% 이내일 때 적정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부채 관련 지출이 총소득의 36%를 넘지 않아야 한다. 또 자산 대비 총부채의 비율이 40% 이내일 때가 적정한 규모다.

고규현 삼성증권 자산클리닉 매니저도 “대부분의 전문가가 대출 상환 원리금이 월 소득의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 매니저는 최근 금융 당국이 주택담보대출의 89%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거치식 대출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거치식 대출은 거치 기간엔 원리금이 아닌 이자만을 내는 방식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거치 기간에 이자만 내다가 집을 팔아 양도차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고 매니저는 “거치식 대출 방식이 규제를 받을 경우 앞으로는 대출을 받으면 바로 원리금을 내야 해 대출에 대한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중산층이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것에 대한 규제와 압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대출을 받을 때는 상환 능력을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빚 권하는 한국사회]韓 “일단 빌리고 보자” 日 “빚은 최후의 수단”


일본 도쿄(東京)에 사는 가미야 아키라(神谷朗·34) 씨는 3년 전 집을 옮겼다.

월 임차료가 20만 엔인 20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건설회사의 사원아파트로 옮긴 것. 사원아파트는 낡은 데다 15평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첫아이를 출산한 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탓에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봉은 450만 엔. 간호사인 아내의 월급도 비슷했다. 소득이 절반 가까이 줄면서 가미야 씨는 집뿐 아니라 취미 생활이나 외식 횟수도 크게 줄였다.

“빚을 내는 건 최후 수단이죠. 나한테 빚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부끄럽기도 하고요. 빚은 경제활동의 올가미예요.”

가미야 씨에게도 내 집 마련의 꿈이 있다. 최근 일본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집값도 소폭 오르고 있어 내 집 마련을 빨리 할수록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소득을 감안해 집을 살 작정이다.

가미야 씨는 “거품 경제 시절에는 너도나도 연봉의 6배까지 빚을 내 집을 사기도 했다”며 “그때 따끔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집을 살 때도 연봉의 3배 이내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42) 씨. 그는 2년 전 은행에서 4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은행 대출만으로도 모자라 친척에게서 5000만 원을 빌렸다. 매달 내는 대출 이자는 200만 원을 웃돈다. 월급은 500만 원 선. 빚이 연봉의 약 7배다.

집값이 2년 새 3억 원 남짓 올랐지만 생활은 늘 쪼들린다. 이자를 내고 나면 월급으로 초등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도 충당하기 힘들다.

자동차, 부부와 두 자녀가 모두 갖고 있는 4개의 휴대전화, 가끔의 외식, 휴가 때 여행…. 어느 것 하나 줄이기가 만만치 않다. 집을 팔자니 양도소득세가 발목을 잡는다.

김 씨는 “집값이 올랐으니 손해는 아닌데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고 말했다.

○ 소득에 맞춰 쓰는 일본, 빚 끌어다 소비에 맞추는 한국

가미야 씨와 김 씨의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빚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많은 한국인이 빚을 얻어서라도 소비하고 투자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소득에 맞춰 소비한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1980년대 말 거품 붕괴의 고통을 당하면서 부채에 대한 보수적 인식을 굳힌 반면, 한국은 2000년 이후 부채와 소비를 권하는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소득 하위 20% 계층이 외환위기 이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지만 같은 기간 일본의 최하위 저소득층은 흑자를 내고 있다.

일본뿐 아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가계 대부분이 흑자이거나 한국 가계에 비해 적자 규모가 작다.

가처분소득은 소득에서 이자비용 지출, 저축 등을 빼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2000∼2006년 한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5.0%였다. 같은 기간 한국 가계의 부채 증가율은 14.6%로 소득 증가율의 3배에 육박한다.

조금 벌어서 많이 쓰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채 증가율에서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뺀 수치는 한국이 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소득에 비해 빚을 얻어 소비하는 성향이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높은 셈이다.

○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한국은 2.1배, 일본은 3.9배

중소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0) 씨.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와 사무실 등 5억 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

빚은 1억5000만 원으로 매달 들어가는 대출 이자는 100만 원 정도다.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 외에도 1억1000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부담스럽다. 재산은 있는데 금융자산이 없다 보니 대출 이자를 갚느라 소액이지만 가끔 사채를 쓰기도 한다. 이 때문에 빚이 조금씩 늘어난다.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은 적은 편이다.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은 한국이 2.1배, 미국 3.2배, 영국 2.8배, 일본 3.9배 등이다.

평균적으로 1000만 원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다면 한국인은 2100만 원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같은 경우 미국인은 3200만 원, 영국인은 2800만 원, 일본인은 3900만 원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는 통계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빚 권하는 한국사회]피할수 없는 빚이라면…신용카드 대출 단계서 막아라

악착같은 대부업체나 사채업자와의 ‘쩐의 전쟁’에서 서민들은 승리할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불필요한 빚은 절대 내지 않는 게 우선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빚이라면 대출 과정에서 거듭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후에도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출은 계획적으로 하라=대부업체 광고 끄트머리에는 역설적으로 “대출은 계획적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말만큼 쉬운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급전이 필요할 때 직장 내 대출을 먼저 알아보고 다음으로 주거래 은행, 외국계 은행, 카드사, 캐피털업체, 상호저축은행 순으로 방문하라고 권한다.

미리 빌릴 금액을 정해서 초과대출을 받지 않아야 한다. 대출 상담원이나 모집인들은 종종 “신용도가 좋으니 더 빌려라” “연봉의 2배까지 가능하다”고 권유한다. 이런 말에 넘어가면 빚이 쉽게 늘어난다.

▽달콤한 속삭임, 쓴 결과=인터넷 검색 창에 ‘대출’이라는 단어를 치면 수십 개의 대출전문 사이트가 나온다. 이 중에는 대출을 중개해 주는 이른바 ‘에이전시’들이 있다. 이들은 “원래 (대출이) 안 되는데 내가 연결하면 가능하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대출금의 10% 정도를 요구한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수수료 한 푼 들이지 않고 돈을 빌릴 수 있는데도 이런 유혹에 속아 수수료를 치르기도 한다. ‘무이자 1개월’ ‘신용불량자도 저리 대출 가능’이라는 달콤한 안내도 실상은 ‘악마의 속삭임’인 경우가 많다.

▽신용카드 단계에서 멈춰라=‘은행→신용카드→대부업체→사채’. 이는 빚이 악성으로 치닫는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용카드 단계에서 부채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채 이용자 중 상당수가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은 뒤 이른바 ‘돌려 막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한국여신금융협회는 신용카드 빚 단계에서 카드사의 다양한 제도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대표적인 것인 리볼빙 서비스. 이는 신용카드 사용대금(대출금)의 일정 비율만 갚고 나머지는 리볼빙 구좌에 넣어 두는 방식이다. 이번 달에 100만 원을 갚아야 한다면 10만 원만 내고 나머지 90만 원은 리볼빙 형태로 두는 것. 리볼빙한 금액의 이자율은 18∼20%로 연체이자율(통상 21∼29%)보다 낮다. 또 리볼빙을 이용하면 연체를 피하게 되므로 신용이 나빠지지 않는다.

카드사에 요청해 빚을 분할 상환하는 ‘할부전환’이나, 은행 잔액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빚을 관리하라=자신의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율이 얼마인지, 마이너스 통장 이자율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대출이 어느 기관에 얼마나 있는지는 물론이고 이자율과 상환기한 등을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법의 보호를 받아라=빚 때문에 극한 상황에 놓였다면 법에 호소하는 것이 빠르다.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는 모두 불법이다. 일수업자는 대부분 미등록 영업자다. 채권추심 과정에서 물건을 빼앗기거나 집 안에 강제로 들어오는 것도 불법행위다. 압류는 법원 집행관만 할 수 있다. 물론 신체포기 각서도 무효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빚 권하는 한국사회]대부업체 들춰보니…사채시장 단골은 20, 30代

2002년 10월 대부업이 양성화된 직후 2만9000여 개에 이르던 업체는 올해 초 1만7000여 개로 줄었다.

숫자만 놓고 봐서는 대부업 시장이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재정경제부가 올해 초 등록업체 4770개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도 총대부잔액은 5조2000억 원으로 업체당 평균 11억 원 정도다. 대부업 양성화 직후인 2003년 4월 평균 대부잔액 21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와 대부업 관계자들은 오히려 평범한 생활인들의 이용률 증가로 인한 대부업의 양극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신분이나 수입이 확실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이 합법적인 대부업체로 몰리는 반면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실태 파악이 어려운 영세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시장으로 떠밀려 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2006년 11월부터 3개월간 사금융 이용자 5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 30대 이용자가 76%에 이르렀다. 2005년에는 68%였고, 특히 여성은 20대 이용자가 무려 49.5%로 절반에 육박했다.

또 대졸 이상이 58%로, 과거 2004년 40%, 2005년 47% 등의 수치와 비교하면 고학력자가 사금융의 주 고객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고정수입이 있는 회사원(52%)도 절반을 넘어서는 등 매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연 200%에 가까운 고금리는 물론 감금 협박 등 불법 채권추심 행위는 여전하다.

자영업자인 A(서울 중랑구) 씨는 2006년 2월 등록 대부업체에서 연 166%라는 고금리에 500만 원을 빌렸다가 연체하자 대부업자에게서 “몸을 팔아서라도 갚으라”는 폭언과 욕설을 들었다.

주부 B(경기 고양시) 씨는 5월 하순 집으로 불쑥 찾아온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 직원에게서 “남편 빚을 대신 갚으라”는 요구와 함께 뺨을 맞는 수모를 겪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대출 경매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해당 사이트에 액수와 자신의 신용정보를 올리면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이자율을 제시해 낙찰되는 시스템이다.

얼핏 보면 개인 간 돈거래 같지만 사실상 경매사이트가 대신 돈을 지급하고 보증하는 식이다. 이들 업체는 회원 가입 때 신용카드 번호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 신용정보 유출 위험이 크고, 피해가 생겼을 때 구제 방법도 없는 실정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송태경 정책실장은 “고리대금업을 합법화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며 “등록업체들도 부실한 관리감독 아래 각종 불법 및 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무등록업체는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