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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서 민박집 연 두 처녀

천하한량 2007. 6. 9. 15:06
  • ‘각광받던 직장’ 박차고 바르셀로나서 민박집 연 두 처녀
  • 건축디자이너·프로그램회사 “얽매이기 싫다” 그만둬
    5000만원 들고 새 도전 “호스텔 사업으로 확장”
  • 바르셀로나=박란희 기자 rhpark@chosun.com
    입력 : 2007.06.09 00:43 / 수정 : 2007.06.09 06:32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민박집‘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도혜승(33·빨간 옷)씨와 이숙현(36·파란옷)씨. 민박집 내부 회전식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침대가 놓인 방들이 있다. 박란희 기자
    • 스페인의 유명 관광도시 바르셀로나 중심가에 위치한 2층짜리 일반주택.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이곳의 문을 열자, “어서 오세요” 하고 반갑게 한국말이 들려왔다. 거실엔 넓은 탁자가 놓여있고, 창 밖엔 집 꼭대기까지 뻗어 오른 커다란 오렌지나무가 보였다. 회전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침대가 3~4개씩 놓인 방들이 보였다. 아담하고 예쁜 이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쉼터’.

      주인은 30대 노처녀 2명이다. ‘도도(dodo)’라 불리는 도혜승(33), ‘수(soo)’라 불리는 이숙현(36)씨. 2004년 11월, 이들은 돈 5000만원만 들고 이곳에 왔다. 한국에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당시, 각광 받는 전문직인 건축그래픽디자이너와 컴퓨터 프로그램 판매회사 직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과감한 인생 도전=1997년 대학졸업 후 도씨는 일본 IT기업 NEC의 한국자회사에서 엔지니어 담당으로 일했다. ‘재미가 없어’ 2년 만에 건축그래픽디자이너로 직종을 바꿨다. 설계사무실, 인테리어 회사에서 3D 그래픽으로 조감도와 투시도를 만들다가 독립해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바쁘고 얽매인 생활이 싫어졌다.

      2002년 4월, 훌쩍 사이판으로 여행을 떠났다. 몇 년 만에 처음 바다에 뛰어들어 스킨스쿠버다이빙을 했다. 그 순간, ‘여기서 평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추석 무렵 짐을 쌌고, 사이판에서 스킨스쿠버다이빙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2년간 살아보니 사이판은 너무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스킨스쿠버동호회 멤버로 친하게 지내온 언니 이숙현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페인에서 살자”는 제의를 받았다.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숙현씨 또한 우연히, 그리고 과감히 인생행로를 틀었다. 10년 넘게 서울 용산에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판매회사에서 일하던 그녀도 ‘내 인생에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며 직장을 때려치웠다. 3개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단박에 스페인에 반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 만인 2004년 11월 다시 스페인에 가서 민박집을 샀다. 한 달 후 도혜승씨가 합류했다. 둘이 합쳐 5000만원을 투자했다.

    • ▲민박집‘쉼터’(왼쪽에서 첫 번째 건물)가 있는 바르셀로나 도심의 길거리.
    • ◆“호스텔 사업으로 확장할 것”=성수기로 접어드는 6월, 두 사람은 밀려드는 여행객들을 맞느라 정신 없이 바쁘다. 가족적인 분위기 덕분일까. “누나. 저 ○○예요. 정말 운이 좋았네요. 그곳에 가게 된 것.” “잘 지내시죠? 덕분에 편히 자고 잘 둘러보다 왔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민박집 홈페이지(www.bcnshimter.net)엔 이런 글들이 수두룩하다. 작년엔 2700명이 이 집을 다녀갔고, 올해는 3000명이 넘을 것 같다고 한다. 둘은 이틀에 한 번씩 교대로 민박집을 지킨다. 쉬는 날, 도씨는 바르셀로나의 맛집을, 이씨는 전시회나 음악회 등을 찾는다. 둘은 “쫓기지 않는 삶이 좋다”고 했다. 이들은 내년에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 쉼터 분점을 만들고, 후년에는 민박보다 규모가 훨씬 큰 호스텔(Hostel)을 구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