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경제 지표들에 대한
걱정과 실망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실망과 우려가 큰 만큼
우리 경제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여러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유능한 CEO의 영입 역시
우리 기업을 위한 좋은 약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CEO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기업 오너에 의한 일인지배체제와
자식이나 손자를 통한 후계 구도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CEO는 한낱
오너 눈치나 보는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반면 미국의 500대 기업 가운데
90%가 CEO를 영입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점은
기업 오너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능한 CEO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거다.
빌 게이츠가
스티브 발머에게 CEO 자리를 넘긴 일이나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오린 스미스를 CEO로 임명한 일 등이 모두 그렇다.
우리 기업이 미래를 상대로 경영을 하려 한다면
CEO에 대한 인식과 대우를 개선해야만 한다.
기업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문 경영인이 있을 때
투자자도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직원들도 마음놓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유능한 CEO를 찾고 임명하는 일은
시대의 요청이고
우리 기업이 강해지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유능한 CEO란?
그럼 어떤 CEO가
유능한 CEO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 CEO가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성을 쌓는 일에 비유한다.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
흔들림 없이 지탱되는 성을 쌓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멋진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쌓는 것(build-up)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쌓는 일은
기업이 잘 나아갈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좀 잘못 쌓이는 것이 있어도
어느 정도의 하중은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 쌓이는 것이 늘어갈수록
위기가 다가오게 된다.
그러니 잘못 쌓였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부숴야 한다.
CEO의 이런 역할을
톰 피터스는
CDO,
즉 chief destruction officer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CEO의 파괴 대상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CEO는 자신이 이룩한 성공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공을 포함한 모든 성공을 깨야 한다.
더불어 굳어져 버려 더 이상 아무런 유용함을 발견할 수 없는
기존의 모든 사고방식이나 규칙은 물론,
때로는 시장에서 환영받은
자기 회사의 제품까지도 포함한다.
경영자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역동성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메말라 버린다면,
그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단단해진 규칙과 사고방식과
기존의 제품들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 시대 경영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요 조건이다.
톰 피터스는 미래를 여는 CEO의 조건으로
파괴하는 CEO를 꼽았는데,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기를 미래 CEO의 요건으로 꼽고 싶다.
요즘 벤처가 잘 나간다니까
대기업도 벤처에 뛰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확장은 위기를 부를 뿐이다.
삼성의 자동차 진출만 생각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므로 CEO의 중요한 또 하나의 임무는
바로 버리는 것, 포기이다.
버리는 것은 정말 어렵다.
회사 팔아야지, 주가 떨어지지,
직원들 해고해야지, 회사 이미지 흐려지지...
그런데도 버리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욕먹고
빛 안나는 결정을 하는 것이 바로 CEO이다.
당신이 회사의 미래를 맡길 새로운 CEO를 찾을 때
이렇게 파괴하는 CEO,
포기하는 CEO를 찾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여기에 덧붙여
새로운 CEO는 온실 속에서 찾기 보다는
황야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슨 말이냐고?
◆ 위기와 CEO
장사가 잘 되고 기업이 순탄하면
CEO나 직원들도 부드러워진다.
문제는 이렇게 편안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편안하게 망해버린다는 데에 있다.
전임 회장이었던
고이주에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후계자 수업을 하였던
코카콜라의 이베스터처럼 말이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성공만 한 CEO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에게는 고된 시간을 견뎌나갈
야성이 부족한 것이다.
CEO를 평가하거나 스카우트 할 때에는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 기업이 잘 될 때에는
CEO가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오직 성공만을 거둔 CEO일 경우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속수무책으로
뒷감당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위기야말로
CEO의 능력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력이야 말로
CEO의 진정한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잣대이다.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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