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이 나라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게 되었다.
상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부상자들도 많았다.
그 중 전쟁에서 팔과 다리를 모두 잃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서 나온 용사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달아주던 여왕이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그 군인 앞에 섰다.
훈장을 들고 그를 쳐다보던 여왕이
갑자기 훈장을 떨어뜨리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훈장을 목에 건 용사가
잠시 후 훈장을 목에 건 용사가
여왕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국과 여왕 폐하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이 몸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용사를 감동시킨 것은 훈장이 아니라
여왕의 눈물이었다.
^-^
1914년 남극탐험에 나섰다가
목적지를 겨우 150㎞ 앞두고 부빙에 갇혀
2년여의 표류 끝에
극적으로 생환한 새클턴의 탐험대.
그 탐험대의 부대장을 맡았던
프랭크 와일드는
1909년에도
새클턴과 함께 남위 88도까지 갔다가
식량이 바닥나고 체력이 저하되어
부득이 후퇴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새클턴은 함께 비상식량과
조랑말 고기로 부실한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자기 몫의 비스킷 4개 가운데 1개를 와일드에게 주며
강제로 먹였다.
이때의 기억을 와일드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순간의 이런 행동이
“이 순간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자상하고 호의적인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와일드는
다음 문장에는 줄까지 쳐가며 적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비스킷이었다.”
인듀어런스호가 남극을 향해 출발할 때
인듀어런스호가 남극을 향해 출발할 때
와일드는 탐험대 부대장을 맡았다.
비스킷 한조각을 나눠준 새클턴의 따뜻한 마음을
와일드는 결코 잊지 않았고
새클턴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횡단탐험의 소중한 자산이었음이 나중에 입증되었다.
^-^
대안학교인 성지고등학교에 전과 13범으로
조폭 두목인 학생이 있었다.
소주병을 바지 뒤춤에 넣어오고
러닝셔츠차림으로 등교하는
무시무시한 학생으로
선생님들도 모두 포기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김선태 교장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행사가 있을 때면
그 학생에게 책임을 맡겨 진행하게 했다.
그리고 개교기념일엔
표창장을 주었다.
표창의 내용은
“앞으로 이 학생은
선행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상을 주어 표창함”이었다.
종이로만 해서 주면 찢어버릴지 몰라
판넬까지 해서 주었다.
집에 가지고 가니
부모들이 감격해서 목이 메었고
걸어두니
집에 오는 손님들이 보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결국 그 학생은 자격증을 세 개나 따고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
리더십의 생명은
이처럼 감동이다.
리더십이라고 하면
영웅, 거인, 카리스마, 권위 같은 것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사실은
사소하면서도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리더의 모습에
감동하여 따르는 경우가 많다.
^-^
어느 직장인의 대화에서는
상사가 다음과 같이 해줄 때 눈물이 난다고 한다.
― 아침 일찍 마주치면
"밥 먹고 왔냐"며 등 두드려주는 부장이 있었다.
회식 마칠 때 제과점에 들러 "애 갖다 주라"며
롤케이크 하나 사준다.
그거 몇 푼 안 하지만 사람 뭉클하게 한다.
아내도 그 분 만난다고 하면 늦게 들어가도 뭐라고 안 한다.
― 남미 출장을 갔는데
뉴욕 테러가 터져서 LA 경유 비행편이 없어졌다.
유럽 경유편은
5000달러가 넘었는데
상사가 "비싸더라도 안전한 길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 한 마디가 신뢰로 이어지더라.
― 신입사원 시절 등산하다가 사장님을 만났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동기 누구누구랑은 자주 얼굴 보냐"고
따뜻하게 물으셨다.
"충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부하에게
진심으로 해줄 수 있는가?
출처 ; 휴넷
'▒ 성공가이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령별 재테크 방법 (0) | 2007.06.05 |
---|---|
미래 CEO에 대한 자격요건 (0) | 2007.06.05 |
노부나가,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0) | 2007.06.05 |
CEO가 갖춰야 할 진정한 리더십 (0) | 2007.06.05 |
CEO들의 전략기획의 시점은? (0) | 2007.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