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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의 일생

천하한량 2007. 5. 26. 18:27

 

 

솔잎의 일생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솔 향이 나에게 달려와

내 몸을 세척한다.

 

 

송화 가루 날리는 봄이면

나는 내 창문 밖에

큰 고무다라이를 가져다 놓고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누런 송화 가루가 고무다라이에 모아진다.

그걸 먹는다.

송화 가루가 내 몸 속에 들어가

내 몸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면서….

 

 

송화 가루 날리면

장독대 위의 간장 독과 된장 독의 뚜껑을 연다.

간장과 된장 속에 들어 가 맛있게 만들라고…..

 

 

이웃집 아낙네는 푸른 솔방울을 따다가

신랑 줄 솔방울 술 담근단다.

나는 어린 솔잎을 흑설탕에 재워 두었다가

고이는 진액에 물을 부어 차를 마신다.

 

 

한가위 돌아오면 부드럽고 푸른 솔잎을 따서

송편 찔 적에 켜켜이 넣는다.

송편이 빨리 쉬지도 마르지도 말라고

솔잎엔 살균력이 있어서 세균을 죽인다.

 

 

옛날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들은

솔잎가루만 먹고도 살았단다.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 하도 많아서 ……..

 

 

솔잎은 겨울에 잎이 지지 않는다.

많은 나무들이 단풍 들어 낙엽질적에 독야청청 하려고

그냥 푸른 잎을 달고 추위를 이긴다.

삼각형 바늘 같은 잎에는

찬바람에도 끄덕 없는 큐우티클층으로 둘러 쌓여서

추위가 왔다가 그냥 간다.

 

 

솔잎은

봄이 오면 새잎이 새록새록 나올 적에

그 때서야

찬바람에 골병 든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몸살을 앓다가

새로 난 푸른 잎 사이에서 갈색 옷 입고

하나 둘 죽어서 떨어진다.

 

 

갈색 솔잎이 낙엽 되어 떨어져서는

자기가 물리치며 죽였던

세균과 송이버섯의 밥이 되어 형체를 잃고서

흙으로 돌아 가 다시 뿌리 속으로 들어가서는

소나무의 잎. 줄기, 가지, 솔방울, 송화 가루가 되어서는

솔 향을 풍기며 나에게 다가 온다.

 

 

林光子   200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