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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眼論 : 一字師 이야기

천하한량 2007. 5. 15. 16:58
詩眼論 : 一字師 이야기

아, 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 정진규 몸詩 26 -

한 글자를 찾아서

徐居正은 《東人詩話》에서, "무릇 시는 妙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 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였고, 胡仔는 《苕溪漁隱叢話》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히 빼어나게 되니, 마치 한낱의 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袁枚가 《隨園詩話》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한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한 글자가 시를 죽이고 살린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딘가에 있을 꼭 맞는 딱 한 글자를 찾아 헤매이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京口와 瓜洲는 강물 하나 사이요
鍾山은 몇 겹 산을 격하여 서있도다.
봄바람 강남 언덕에 또 다시 푸르른데
밝은 달은 그 언제나 돌아갈 날 비추려나.
京口瓜洲一水間
鍾山只隔數重山
春風又綠江南岸
明月何時照我還

王安石이 고향을 그리며 지은 시다. 洪邁가 吳나라 한 士人家에 전해오던 그 초고를 보니, 3구의 '又綠江南岸'은 처음엔 '又到江南岸'으로 되어 있었다. 王安石은 '到'자 위에 '不好'라고 주를 달고는 '過'자로 고치고, 다시 '入'자로 고쳤다가 그 다음엔 '滿'자로 고쳐 놓았다. 이렇게 하기를 십여 차례나 한 끝에 겨우 '綠'자로 결정하였다. 봄바람의 빛깔을 초록으로 해놓고 보니, 다른 글자의 밋밋한 것과는 과연 한 맛이 다르다. 《容齋續筆》에 보인다.

그 사이의 고심참담을 두고 王建은 "시구를 단련타가 머리 온통 다 깖네. 煉精詩句一頭霜"라 하였고, 方干은 "다섯 자 시귀를 읊조리자니, 몇 오라기 수염이 또 희어졌네. 才吟五字句, 又白幾莖澙"라 하였으며, 貫休는 "시구를 찾느라 멍청히 앉아, 찬 서리 몰아쳐도 아지 못하네. 覓句如頑坐, 嚴霜打不知"라 하였다. 古人이 시구의 연마에 어떤 공력을 들였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도 杜詩에 "새 시를 고쳐 놓고 혼자 길게 읊조리네. 新詩改罷自長吟"의 기쁨이 있기에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歐陽修의 《六一詩話》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陳從易란 이가 우연히 舊本의 杜甫 詩集을 구했는데, 글자가 빠진 곳이 많았다. 그 중 〈送蔡都尉詩〉의 제 7구에 "身輕一鳥○"라 하였는데 마지막 한 글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陳從易는 좌중의 여러 손님에게 각기 빈 곳의 한 글자를 채우게 하였다. 어떤 이는 '疾'자를, 어떤 이는 '落'자를 빈칸에 채웠다. '起'자라고도 하고 '下'자라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뒤에 善本을 얻어 확인해 보니 '過'자였다. 위 구절은 蔡都尉의 위풍을 묘사한 대목으로 "몸은 민첩하기 새 한마리 지나는듯"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陳從易는 탄복하며 "비록 한 글자이지만 그대들이 또한 능히 미치지 못했구려."라 하였다.

楊愼의 《升庵詩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孟浩然의 〈過故人庄〉의 7.8구에 "重陽節 오기를 기다려서는 다시 와 국화 앞에 나아가리라. 待到重陽日, 還來就菊花"라 한 구절이 있는데, 刻本에는 '就'자가 탈락되고 없었다. 이를 채우려 하니 '醉'라 하는 이도 있고, '賞'이라는 이도 있고, '泛'이라 하기도 하고, '對'라야 한다고 하기도 해 의논이 분분하였다. 뒤에 善本을 얻어 보니 '就'자였다. 과연 다른 글자들은 意境이 바로 노출되거나 요란스러워, '就'자의 온건함에는 능히 미치지 못한다.

송나라 때 어느 院壁에 杜甫의 〈曲江對雨〉시가 적혀 있었는데, "숲속 꽃잎 비 맞아 연지가 젖었구나. 林花着雨檎脂濕"라 한 구절의 마지막 '濕'자가 떨어져 나갔다. 蘇軾과 黃庭堅과 秦觀과 佛印 등이 제각기 '潤'과 '老', '嫩'과 '落'으로 채웠으나, 원시의 '濕'이 주는 선명하고 촉촉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또 蘇東坡가 일찍이 〈病鶴〉시를 지었는데 "석 자 되는 긴 다리에 마른 몸을 얹었네. 三尺長脛閣瘦軀"란 구절이 있었다. 하루는 蘇東坡가 '閣'자를 가리고서 任德章 등에게 적당한 글자로 채워 넣게 하였으나 끝내 알맞은 글자를 찾지 못하였다. 蘇東坡가 천천히 그 원고를 꺼내 보여주는데 '閣'자가 써 있었다. '閣'이란 '놓아 두다'는 뜻인데, 이 글자가 놓이고 보니 가뜩이나 위태로와 보이는 긴 다리에 병들어 수척한 몸뚱이를 얹어 놓고 힘에 겨워 하는 병든 학의 모습이 마치 눈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東人詩話》에 나온다.

淸代 梅曾亮의 문집을 보면 詩謎 또는 詩寶 詩條라고도 불리는 유희에 대해 말한 대목이 있다. 詩謎란 위에서 본 예처럼 옛 시인의 시집에서 한 구절을 따다가 그 가운데 眼字가 되는 한 글자를 지워 버리고, 원래 있던 글자 외에 그럴듯한 네 글자를 늘어 놓아 제 글자를 찾아 맞추는 놀이를 말한다. 말하자면 오지선다형이다. 詩謎 유희는 뒷날 시를 배우는 한 방편으로 널리 성행하였는데, 위 네 예화 같은 것이 바로 이 놀이의 연원이 된 것이다. 현대시에서도 이런 놀이가 가능할까.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언어의 감각을 키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놀이는 행해졌던 듯 하다. 沈義의 〈大觀齋記夢〉에 나오는 다음 삽화가 그 예증이다. 이 작품은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데, 沈義가 잠깐 꿈속 文章 王國에 들어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현세에서의 갈등을 마음껏 해소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한 삽화로, 夢中 文章王國의 천자 崔致遠이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보내네. 風敲夜子送潮沙"라 한 구절을 놓고 '送'자가 마음에 안든다 하여 신하들에게 고치게 하니, 陳篍는 '過'자를, 鄭知常은 '集'자를, 주인공인 沈義는 '落'자를 각각 올렸는데, 천자는 '落'에 낙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필자가 崔致遠의 《桂苑筆耕集》을 뒤져 보니 위 구절은 〈石上矮松〉이란 시의 제 4구로 본래부터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떨구었도다. 風敲夜子落潮沙"라 한 구절이 멀쩡하게 실려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詩謎 놀이의 한 가지임을 알았다.

이 경우 여러 사람이 내 놓은 글자들을 차례로 원시에 대입시켜 보면 意境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 사이 언어의 질량을 저울질 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상승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明의 謝榛은 시인이 알맞은 한 글자의 선택을 위해 심혈을 쏟는 것을 모자 고르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급히 모자를 사려고 시장에 들어가 여러 개를 꺼내 놓고 하나 하나 써보면 반드시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자 고르는 법을 쓸 수만 있다면 詩眼은 공교롭지 않음이 없다."

뼈대와 힘줄

정진규의 〈몸詩 26〉에는 '字眼'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입술이든 子宮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 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아, 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고 하였다. 정말이지 시에도 눈이 있다. 시의 빗장을 옳게 열려면 시의 눈, 즉 詩眼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詩眼이란 말은 蘇東坡가 〈僧淸順新作垂雲亭〉의 5.6구에서 "天功은 向背를 다투고, 詩眼은 增損이 교묘하도다. 天功爭向背, 詩眼巧增損"이라 한 것이 최초의 용례로 되고, 范成大도 그의 시에서 "道眼은 간데 없이 詩眼만 남고, 매화가 피려 하니 눈꽃은 녹네. 道眼已空詩眼在, 梅花欲動雪花稀"라 하여 詩眼의 말을 남겼다. 이래로 詩眼은 고전 시가 창작의 감상 경험 이론을 개괄한 술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范溫 같은 이는 아예 자신의 시화를 《潛溪詩眼》으로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淸의 劉熙載는 詩眼이란 시의 어느 글자가 좋고, 어느 구절이 뛰어나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 全詩의 主旨가 엉겨 있는 '神光所聚'의 지점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詩眼은 글자 그대로 시의 안목이다. 한편의 시 속에서 가장 정채롭고 傳神이 會注된 지점, 一動萬隨의 경락이 바로 詩眼이 된다. 그러므로 詩眼은 단순한 수사적 煉字煉句의 문제를 넘어서는, 시가 예술의 意境美를 형성하는 핵심처이다.

예전 張僧繇란 이가 金陵 安樂寺 벽에 네 마리 龍을 그렸는데 눈동자에 굳이 점을 찍으려 들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점을 찍으면 龍은 그 즉시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비웃자 그는 한 마리 龍의 눈에 점을 찍었다. 그 순간 천둥 벽력이 쳐 벽을 쪼개더니 龍은 구름을 타고 솟구쳐 올랐다. 점 찍지 않은 나머지 세마리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른바 畵龍點睛의 고사이다. 일찍이 顧愷之는 "사람의 곱고 추함은 본래 妙處와는 무관하다. 傳神寫照는 바로 눈동자 가운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눈동자로 정신이 전달된다는 '阿堵傳神'의 유명한 주장이다. 淸의 吳大受는 그의 《詩筏》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대개 뛰어난 솜씨의 시인이 구절을 단련하는 것은 지팡이를 던져 龍으로 변하게 하여 꿈틀거리며 솟아 오르는 것과 같아서, 한 구절의 靈活함이 전편을 모두 살아 움직이게 한다. 또 글자를 단련함은 龍을 그려 눈동자를 찍자 龍이 번드쳐 솟구침과 같아, 한 글자의 빼어남이 全句를 모두 기이하게 할 수 있다." 詩眼이란 바로 한편 시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자리다. 시의 힘줄과 뼈대가 바로 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시는 아연 飛動하는 생기를 띄게 된다.

王國維는 《人間詞話》에서 지적하기를, "붉은 살구 가지 끝에 봄 뜻이 들레네. 紅杏枝頭春意鬧"란 구절은 '鬧' 한 글자에 境界가 온전히 드러났고, "구름을 헤치고 달이 떠오자 꽃은 그림자를 희롱하네. 雲破月來花弄影"란 구절에서는 '弄' 한 글자에 경계가 온전히 드러났다고 하였다. 이 두 글자가 바로 詩眼이 된다. 시는 한 글자에 죽고 산다.

산빛과 物態가 봄볕을 희롱해도
흐린 날 개였다고 하지는 마오.
맑게 개어 빗기운은 없다고 하나
구름 속 깊은 곳엔 옷이 젖나니.
山光物態弄春暉
莫爲輕陰便擬歸
縱使晴明無雨色
入雲深處亦沾衣

당나라 張旭의 〈山行留客〉이란 작품이다. 이 시의 詩眼은 제 1구 '弄'자에 있다. 봄날 따사로운 햇볕 아래 신록을 머금어 빛나는 산빛, 사물도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山光物態가 봄볕과 만나 빚어내는 발랄한 생기를 시인은 '弄' 한 글자에 담아내었다. 따뜻하고 감미롭다. 또 賈島의 〈逢僧〉시에,

하늘 위엔 중추의 둥두렷한 달 天上中秋月

인간엔 半世를 비추는 등불. 人間半世燈

이라 하였는데, '半'자가 詩眼이 된다. 중년의 삶을 돌아보는 고단함이 환한 8월의 보름달 아래 가물거리고 있다. '半'은 윗구의 '中'과 대구를 이루면서 둥두렷한 보름달과 반이 꺾인 지나온 생애가 다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杜詩 〈絶句〉의,

강물이 출렁대자 달은 바윌 옮겨가고
빈 시내에 구름은 꽃가에서 피어나네.
江動月移石
溪虛雲傍花

에서는 '移'자가 詩眼이 된다. 강물은 넘실대므로 그 위에 비친 달빛도 덩달아 일렁인다. 물 위에 비죽 솟은 바위가 아예 떠내려 가는 것만 같다. 이때 '移'는 얼마나 정채로운 포착인가. 이백은 〈鳳凰臺〉에서

三山은 하늘 밖에 반쯤 떨어져 있고
二水는 白鷺洲서 둘로 나뉘었도다.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

라고 하였다. 위 구는 삼산이 아스라한 푸른 하늘 저편에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세 봉우리는 '높이 솟았다. 高聳' 또는 '솟아 올랐다. 聳出'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식인데, 시인은 이를 반대로 '반쯤 떨어졌다 半落'고 표현하였다. 바로 여기에 표현의 묘가 응축되어 있다. 이러한 참신한 발상은 이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시에서 詩眼의 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呂氏童蒙訓》에서 潘撏老는 7언시는 제 5자가 울려야 하고, 5언시는 제 3자가 울려야 한다고 하고, 이른바 울린다(響)는 것은 힘이 결집된 곳을 말한다고 하여 響字論을 주장하였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5언시의 경우 세번째 글자가, 7언시는 다섯번째 글자가 眼字가 된다. 岑參의 "외로운 등불은 나그네 꿈을 사르고, 찬 다듬이 소리 고향 생각을 다듬질 하네. 孤燈然客夢, 寒杵搗鄕愁"의 '然(燃)'자나, 許渾의 "만리 산천이 새벽 꿈을 나누니, 이웃의 노래 소리에 봄 근심을 전송하네. 萬里山川分曉夢, 四後歌管送春愁"의 '分'자의 경우가 모두 그렇다. 5언시의 경우 2.3으로 끊어 읽고, 7언시는 4.3으로 끊어 읽는데, 이때 제 3자와 제 5자는 두 의미 단위가 결합되는 경계에 놓인 자들이다. 이 글자가 두 개의 이미지를 어떻게 결합시키는가에 따라 의경이 달라진다. 이는 의미 단위 뿐 아니라 절주 단위의 매듭이면서, 대부분 주어와 동사의 관계에 놓이며, 서사와 서정의 關鍵字가 된다. 위 예시에서 '孤燈'과 '客夢'은 별개의 어휘인데, '然(燃)'이 매개함으로써 이 둘은 충격적으로 결합된다. 나그네는 등불을 밝혀둔 채 고향 시름에 잠이 깜빡 들었고, 그가 고향 꿈을 꾸는 사이 '孤燈'만이 외로이 남아 그리움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詩眼의 위치는 언제나 일정한 것이 아니다. 시구의 어법 변화의 다양성 만큼이나 유동적이다. 詩眼이 항상 제 자리가 정해져 있다면 그 무슨 눈을 찾아 헤매일 필요가 있겠는가. 孟浩然의 "기운은 雲夢澤을 푹푹 찌는데, 물결은 岳陽城을 흔들어 대네. 氣蒸雲夢澤, 波厳岳陽城"는 둘째 자가 眼字가 된다. 杜甫의 "시절을 느끼매 꽃 보아도 눈물 나고, 이별을 한하니 새 소리에 마음 놀라네. 感時花甠淚, 恨別鳥驚心"에서처럼 네째 자가 眼字가 되기도 한다.

한 글자의 스승

당나라 때 詩僧 齊己가 사방을 유력타가 당시 澝嘑詩 한편으로 鄭澝嘑의 별명을 얻었던 시인 鄭谷을 찾아가 5언율시 한 수를 지어 헌정하였다. 대문간에서 명함 대신 시를 들여 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쪽의 기별은 좀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하인의 전언은 시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가지고 오면 그때 만나 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뒤 齊己는 한 글자를 수정하여 다시 鄭谷에게 보냈다. 鄭谷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그를 기꺼이 맞이 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 詩友로 교유하였다. 뒤에 齊己가 다시 〈早梅〉시를 지어 鄭谷에게 보였다.

외론 뿌리 따뜻함을 홀로 품어서,
나무들 모두 얼어 꺾이려 해도
앞 마을 답쌓인 깊은 눈 속에
간 밤 몇 가지 꽃을 피웠네.
바람도 그윽한 향기를 품고
새들은 흰 떨기를 엿보러 왔네.
내년 이맘 때가 돌아오면은
먼저 피어 春臺를 환히 비추렴.
萬木凍欲折
孤根暖獨回
前村深雪裏
昨夜幾枝開
風帶幽香去
禽窺素艶來
明年如應律
先發映春臺

시를 찬찬히 읽고 난 鄭谷이 "제 4구의 '幾'자를 '一'자로 고쳐야만 '早梅'라 할 수 있을걸세."라 하니, 마침내 齊己가 탄복하였다. 쌓인 눈 속에 갓 피어난 매화의 돌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확실히 여러 가지의 매화보다 단 한 가지의 매화가 훨씬 함축적이면서도 도약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뒷날 齊己의 詩名이 높아지자 예전 그가 鄭谷에게 그랬던 것처럼 張回란 시인이 시 한수를 들고 그를 찾아 왔다. 그 시 가운데 "살적은 시들어 다해가는데, 구불구불 수염만 흰 것이 없네. 蟬撗雕將盡, 壗澙白也無"라는 구절이 있었다. 齊己가 한번 읊조리고는 '白'자가 좋지 않으니 '黑'으로 고침만 못하리라고 충고하였다. 귀밑머리는 시들어 다 빠졌는데 수염만 희지 않다함은, 차라리 "구불구불 수염도 검은 것이 없구려"로 함만 못하다는 말이다. 張回는 이에 사례하고 그를 '一字師'로 섬겼다. 齊己는 이래저래 '一字師'와 관련된 세 번의 일화를 남긴 셈이다.

그런가 하면 顧嗣立의 《寒廳詩話》에는 위 齊己의 〈早梅〉시의 뜻을 뒤집은 一字師 이야기가 실려 있어 흥미롭다. 張橘軒이 시를 지었는데,

밤 비에 물이 불어 상앗대가 반쯤 차니
한 그루 이른 매화, 봄은 그 어딜러뇨.
半嗮流水夜來雨
一樹早梅何處春

라 하였다. 元遺山이 지적하기를, "좋긴 좋으나 편안치 않은 데가 있다. 이미 '一樹'라고 해놓고서 어찌 '何處'라 말할 수 있겠는가? '一樹'는 '幾點'으로 고쳐 飛動함을 깨닫게 함만 못할걸세"라 하였다. 앞서는 '幾枝'를 '一枝'로 고쳤는데, 이제는 '一樹'를 '幾點'으로 고쳐야 한다 하니 언뜻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어디메뇨'라 해놓고, '단 한그루'라 하기 보다는 한 그루라 하더라도 '몇 개의 점'으로 나누어 포착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더 생동스럽지 않은가. 글자가 놓이는 앞뒤 환경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또 당나라 때 任扪이 과거에 낙제하여 돌아가는 길에 浙江의 天台山에 들렀다가 詩情이 동탕하여 절 담장 위에 시 한 수를 써 놓았다.

산마루 새 가을에 밤 한기 돋아나니
학 날자 솔 이슬은 옷깃을 적시누나.
앞마을에 온강 가득 달빛이 떨어져도
산중턱의 스님네는 竹房에서 한가롭네.
絶嶺新秋生夜凉
鶴翔松露濕衣裳
前村月落一江水
僧在翠微閑竹房

天台山을 내려와 錢塘江에 다다른 그가 늦은 밤 강물에 비친 달빛을 보니, 강물이 조수를 따라 물러나자 달빛도 단지 '半江'에만 남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전날 시에서 '一江水'라 한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마음이 불안하여 길을 되짚어 절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웬걸, '一'자 위에는 이미 누가 한획을 가로 긋고, 다시 세로로 한 줄을 그은 뒤 점 두 개를 찍어 '半'자로 고쳐 놓은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그가 절에 스님들에게 수소문 해보니, 그가 시를 써놓고 간 뒤 얼마 못되어 한 관리가 이곳을 지나다가 그렇게 고쳐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관리가 누군지를 백방으로 알아 보았으나 결국 알 수가 없어 안타까워 하며 돌아갔다.

李敏求가 금강산에 놀러 갔다가 시를 지었는데,

벼랑에 말 세우니 몸이 너무 피곤하여
늙은 나무에 시 쓰려도 글자가 되질 않네.
千崖駐馬身全倦
老樹題詩字未成

라 하였다. 계속된 여정에 지칠대로 지친 나그네는 아마득한 벼랑 앞에 말을 세운다. 솜처럼 노곤하다. 老樹의 껍질을 벗겨 시를 쓰려 하니 지친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뒤에 金尙憲이 이 시를 보더니 대뜸 '未'자를 '半'자로 고쳤다. 그러자 갑자기 精彩가 확 살아났다. 과연 글자가 도무지 써지질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반만 이루었다고 하니 溫柔敦厚한 기상을 담게 되었다. 南龍翼의 《壺谷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詩僧 皎然에게도 한 승려가 찾아와 "이 물결 帝澤을 머금고 있어, 티끌 묻은 갓끈을 씻을 곳 없네. 此波涵帝澤, 無處濯塵纓"라 한 〈御溝〉시를 보여준 일이 있었다. 皎然이 '波'자가 좋지 않으니 다른 글자로 고치라고 하자, 그 승려는 불복하여 시를 가지고 떠나 버렸다. 皎然은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손바닥 가운데 한 글자를 써놓았다. 얼마 뒤 승려가 허겁지겁 돌아오더니 조금 들뜬 어조로, "스님의 지적이 과연 옳습니다. '波'자를 '中'자로 고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皎然이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거기에는 이미 '中'자가 써 있었다. 둘은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牧隱 李穡이 아들 李種學과 함께 자주 西州樓에 올라가 시를 지었는데,

西林의 성벽은 구름 끝에 들었는데
亭樹에 바람 불어 여름에도 춥구나.
西林石堡入雲端
亭樹含風夏尙寒

라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種學이, "아버님의 시 가운데 '尙'자는 '亦'자의 온당함만 못할듯 싶습니다."라 하자, 牧隱은 "과연 그렇구나." 하고는 아들에게 빨리 되돌아가 고치게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一字師로 삼은 이야기이다. 《東人詩話》에 나온다. '夏尙寒'이라 하면 '여름인데도 아직까지 춥다'는 뜻이니 지속적으로 추웠다는 뜻이 되고, '夏亦寒'이라 하면 '여름에도 또한 춥다'가 되어 지속의 의미는 상당히 줄어든다.

一字師의 美感 原理

이상 살펴본 一字師의 예화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한 글자를 놓고 무게를 되는 미묘한 저울질이 있다. 글자가 바뀌면서 미감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를 범주화 할 수 있다면 여기서 한시의 미감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법 하다.

一字師가 환기시키는 첫번째 미감 원리는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는 것이다. 徐居正은 《東人詩話》에서 秦觀의 小詞 가운데, "두견새 울음 속에 봄날 해가 저물고. 杜鵑聲裏斜陽暮"라 한 구절을 들고, 이미 '斜陽'을 말해 놓고 '暮'자를 다시 썼으니뜻이 중첩 되었다고 지적하였고, 또 李仁老의 〈漁陽〉시의 첫 구절에서 "무궁화 꽃 나직히 푸른 산 봉우리에 비치네. 槿花低映碧山峯"라 한 것을 두고 이미 '碧山'이라 하고서 다시 '峯'을 말하니 중첩됨을 면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詩家의 句法은 중복을 꺼린다. 언어를 다잡아 한 글자도 차거나 넘치는 일을 용납치 않아야 한다. 이 절제된 경지를 韓愈는 이렇게 말한다. "할 말을 다하되 한 글자도 남지 않고, 할 말만 했는데도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 祮而不餘一字, 約而不失一辭." 한 글자만 더하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글, 그런 시를 쓰라는 주문이다.

詩語 상 의미의 중첩을 바로 잡은 一字師의 몇 예화를 들어본다.

땅 적시는 天竺의 비 질리도록 들리더니
달 밝자 景陽 종소리 해맑게 들려오네.
地濕厭聞天竺雨
月明來聽景陽鐘

종일 싫증 나도록 땅을 적시며 질척대던 비가 밤이 이슥해서야 개인 것이다. 달이 떠오르고 달마중이라도 하듯 종소리는 허공 속에 푸르게 부서진다. 해맑은 경계이다. 薩天錫의 시인데, 虞道園이란 이가 1구의 '聞'과 2구의 '聽' 두 글자가 중복된다 하여 '聞'자를 '看'자로 고쳤다. 번역 상으로도 '들리더니' '들려오네'의 중복보다는 '보았는데' '들려오네'의 조합이 훨씬 정채로와 보인다.

權應仁의 《松溪漫錄》에도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鄭士龍이 중국 사신에게 준 시에 말하기를,

조선과 중국은 만리 길도 더 되니
몇 겹의 구름 나무 자욱한 안개를 사이했나.
煒海秦城餘萬里
幾重雲樹隔烟微

라 하였는데, 후배인 權應仁이 지적하기를, "이미 '雲'자를 써 놓고 또 '烟'자를 쓰는 것은 온당치 않은듯 합니다. '雲'자는 '春'자로 고침이 어떨런지요?"하였다. 그러자 鄭士龍은 "네 말이 과연 옳구나."하고는 바로 고쳤다. '구름 낀 나무'라 해놓고 다시 '자욱한 안개'를 말함은 중첩의 뜻이 있으니 '봄 나무'의 온건한 맛과는 거리가 없지 않다. 뒤에 權應仁이 이 일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자랑 삼아 이야기 하자, 동료 가운데 柳沆이란 이가, "자네가 또한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 그려. '春樹' 밑에는 '雲'자를 붙여야 하니 '烟'자는 본색의 말이 아님일세."라 하였다. 그의 말대로 고치면 두번째 구는 "몇 겹의 봄 나무 자욱한 구름을 사이 했나. 幾重春樹隔雲微"가 된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바꿀 때마다 달라지는 意境의 맛이 참으로 미묘하다. 여기에 한시의 한 멋이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지나친 것은 언제나 병통이 된다. 명나라 때 謝榛이 謝爕의 "맑은 강 깨끗하기 흰 비단 같네. 澄江淨如練"란 구절을 놓고, '澄'과 '淨'은 의미가 중첩되니, '澄江'은 '秋江'으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한 기록이 있다. 과연 이렇게 고치고 보니 의미의 중첩은 덜었으나, 그는 정작 이 시가 봄날 쓰여진 시인줄은 몰랐다. 뒷 구절에 "새들은 시끄럽게 봄 모래톱 덮었네. 喧鳥覆春洲"라 한 것이 있는 것이다. 중첩을 피한다는 것이 더 큰 병통을 낳았다.

一字師의 두번째 미감 원리는 詩思의 溫柔敦厚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直說 보다는 에돌려 말하는데서 오는 온건한 맛이 더 깊고,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하니
강남 땅서 한가로운 늙은 尙書로다.
獨恨太平無一事
江南閑殺老尙書

張乖崖란 이가 늙마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읊자, 蕭楚材가 못마땅한 낯빛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고, 공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중한데, 홀로 태평함을 한스러워 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하고는 한 글자를 고쳤다. 무슨 글자였을까? 첫구의 '恨'자를 지우고 그 자리에 '幸'자를 써 넣었다. 언뜻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고치고 보니 두터운 맛이 한결 다르다. 태평하여 아무 일 없는 것이 '恨'스럽다 하는 것과, 다행스럽다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전자가 뭔 일이 안 일어나나 하고 기다리는 형국이라면, 후자는 한가로운 만년을 보내는 '老尙書'의 老境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東人詩話》에 보인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하나 더 있다. 판서 吳祥이 시를 지었는데,

羲皇 적 즐거운 풍속 쓸어낸듯 사라지니
봄 바람 술 잔 사이에만 남아 있을 뿐일세.
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杯酒間

라 하였다. 尙震이 읽더니, "말을 어찌 이리도 박절하게 하는가?" 하며 나무라고는 이렇게 고쳤다.

羲皇 적 즐거운 풍속 지금껏 남았으니
봄 바람 술 잔 사이를 살펴 보게나.
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杯酒間

한 사람은 상고의 즐거운 풍속이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어 봄 바람 맞으며 술 마시는 속에서 겨우 그 남은 즐거움을 찾노라 했고, 한 사람은 그 즐거움은 지금도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으니, 봄날의 즐거운 술 자리가 바로 그 증거라고 하였다. 과연 몇 글자의 차이 속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인생관이 뚜렷한 편폭으로 자리잡고 있다.

一字師의 세번째 미감 원리는 餘韻을 남기되 앞뒤 호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餘韻은 딱 부러지게 규정하지 않은 추상의 여백에서 생겨난다. 詩家는 단정적 언사를 꺼린다. 상식에 절은 타성을 거부한다. 사물과 시인이 만나 빚어내는 의경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명징한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는데 묘한 맛이 있다. 그렇지만 意境의 일관된 호흡이 흐트러지면 안된다.

다음은 葉夢得의 〈金陵五題〉 중 한 수이다.

생전의 공의 설법 귀신도 들었거니
죽은 뒤 빈 집은 밤에도 걸지 않네.
佛座는 적막하고 먼지만 자옥한데
둥두렷한 밝은 달은 뜰 가운데 쯤이로다.
生公說法鬼神聽
身後空堂夜不啈
猊座寂廖塵漠漠
一方明月可中庭

어떤 이가 蘇東坡에게 왜 끝구를 '滿'이라 하지 않고 '可'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蘇東坡는 픽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웃은 이유는 무엇일까? '滿中庭'이라 하면 밝은 달이 뜰 가운데 가득찼다는 뜻이 된다. 이래서는 윗 구절의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해친다. 또 '明月'이라 해놓고 다시 '滿'을 말하면 중복되어 의경도 淺近해진다. '可'는 '쯤'의 의미다. 밝은 달이 뜰 가운데 쯤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두텁다. 李齊賢의 《嵡翁稗說》에 보인다.

杜甫의 〈曲江對酒〉시 3.4구에,

복사꽃 버들꽃 좇아 가녀리게 떨어지고
꾀꼬리는 해오라비 따라 이따금 난다.
桃花細逐楊花落
黃鳥時兼白鳥飛

라 하였다. 한 사대부의 집에 杜甫가 직접 쓴 親筆의 초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3구를 "복사꽃은 버들꽃과 함께 말을 나누려 하고. 桃花欲共楊花語"라 되어 있었다. 그것을 엷은 먹으로 세 글자를 고쳐 위와 같이 만들었다. 이 시를 지을 당시 杜甫는 長安에서 拾遺에 임명되어 한때 희망에 부풀었으나, 희망은 곧이어 좌절과 무력감으로 바뀌어 그는 다만 강가에 앉아 하릴 없이 꽃 지고 새 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견디기 힘든 적막과 무료를 토로하던 터였다. 이러한 때 복사꽃과 버들꽃이 다정히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한 처음의 의경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에서 보면 마땅치 않다. 이제 세 글자를 고침으로써 두보는 한풀 꺾인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적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曾吉甫의 〈贈王彦章〉시에,

白玉堂 가운데서 詔書를 초 잡았고
水晶宮 안에서는 시 짓기를 가까이 했네.
白玉堂中曾草詔
水晶宮裏近題詩

라 하였는데, 韓子蒼이 읽더니 '中'을 '深'으로, '裏'를 '冷'으로 바꾸었다. '中'과 '裏'는 아무래도 단순하고 엷은데, '白玉堂 깊은 곳에서'와 '水晶宮 서늘한데'로 바꾸고 나니, 淺近하던 표현에 深遠한 기운이 감돈다. 또 고려 때 李詹이 鄭以吾와 더불어 시를 논하다가 싯귀를 얻었는데,

안개 낌은 杜牧之의 秦淮의 밤과 같고
달 밝음은 蘇東坡의 赤壁의 가을일세.
烟橫杜子秦淮夜
月白坡仙赤壁秋

라 하였다. 鄭以吾가 두번 세번 읊조리다가 '橫'은 '籠'으로, '白'을 '小'로 바꿀 것을 말하니, 李詹이 처음엔 긍정하지 않다가 마침내 인정하였다. '籠'이라 함은 에워쌌다는 것이니 '橫'보다 강하고, '小'는 '白'에 비해 약하니, 쥐었다 놓았다 하는 미묘한 줄다리기가 있어 먼저번 보다 精彩로움이 백배 더하다. 徐居正이 《東人詩話》에서 한 말이다.

다음은 李奎報의 《白雲小說》에 실려 전하는 일화이다. 鄭知常의 재주를 시기한 金富軾은 그를 죄로 얽어 죽였다. 하루는 金富軾이 시를 지었는데,

버들은 천 실이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라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홀연 鄭知常의 귀신이 나타나 金富軾의 뺨을 치며 "千絲와 萬點은 누가 세어 보았더냐. 어찌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이 경우 과연 '千'과 '萬'으로 규정함 보다 '絲絲'와 '點點'의 모호가 낫지 않은가. 실실이 푸른 빛을 머금고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와, 온 산을 점점이 찍어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는 '千'과 '萬'으로 한정지웠을 때보다 한결 생생하다.

잠시 이야기는 곁가지로 나가지만, 詩話에 전하는 金富軾과 鄭知常의 不和의 시말은 이러하다. 한번은 두사람이 함께 山寺를 찾아 놀 때 鄭知常이 다음 싯구를 읊었다.

절에서 讀經소리 끝나자 마자
하늘은 유리처럼 깨끗해지네.
琳宮梵語罷
山色淨琉璃

청아한 讀經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지자, 그 소리에 씻긴 듯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아지더라는 이야기다. 讀經 소리에 쇄락해진 마음을 맑아진 하늘에서 새삼 확인하고 있는 교감적 심상의 교묘한 결합이다. 金富軾이 이 싯구를 좋아하여 자기 것으로 해달라고 했으나 鄭知常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金富軾이 사건을 꾸며서 급기야 鄭知常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뒤 金富軾이 어떤 절에 가서 解愁閣에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鄭知常의 귀신이 음낭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네 얼굴빛이 어찌 그리 붉은가?" 지기 싫어 하는 金富軾은 곧 죽어도 "건너편 언덕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다."고 대답했다. 이에 음낭을 더욱 세게 움켜 쥐자 그만 金富軾은 죽고 말았다. 이 무슨 해괴한 장난이었을까? 두 사람을 라이벌로 설정한 양상도 그렇고, 시 한 수, 아니 한 글자를 두고도 티격태격하는 그 모습에 담긴 뒷 사람의 장난끼도 꽤나 고약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鄭知常의 〈送人〉 제 3.4구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결 보태나니. 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는 원래 '添綠波'가 아니라 '添作波'였다. 이를 뒤에 洪載란 이가 옮겨 적으면서 다시 '漲綠波'로 바꾸었다. '添作波'가 '보태어져 물결이 된다'의 뜻이라면 '漲綠波'는 '푸른 물결로 넘쳐 흐른다'가 된다. 이별의 눈물이 물결을 일으킨다는 것은 작위적 느낌을 주고, 푸른 물결로 넘실댄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거슬린다. 이에 李齊賢은 지적하기를, "'作'이나 '漲' 두 글자는 다 원만치 않다. 마땅이 '添綠波'일 뿐이다"라 하여 마침내 이것을 정론으로 삼는다. 푸르게 흘러가는 강 물결 위에 이별의 눈물이 그저 가세할 뿐이라는 것이다. 蘊藉한 맛이 있다.

또 매천 황현의 〈鴨江途中〉시의 3.4구는 원래,

바람이 건듯 부니 나귀 걸음 빨라지고
봄비를 맞고 나니 새는 모두 고웁구나.
微有天風驢更快
一經春雨鳥皆姸

라 하였는데, 金澤榮과 李建昌이 이를 보고 '皆'를 '增'으로 고치게 하였다. '增'이라 하면 '새가 더욱 고웁구나'가 되어 위 구의 '更'과 잘 어울리는 대구가 된다. 나귀의 걸음이 산들바람에 더욱 경쾌해 졌다면 한번 봄비를 맞아 깨끗하게 씻겨진 새는 더욱 고울 것이 당연하다. 이 모두 봄날 상쾌한 바람과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속에서 새삼 느끼는 생명의 약동을 경쾌한 리듬으로 포착한 것이다. 一字師 이야기가 보여주는 漢詩의 미감 원리는 물론 이 세가지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계에는 더 많은 변주들이 존재한다.

詩眼과 티눈

詩眼과 一字師 이야기는 古人이 한편 시를 창작 함에 있어 한 글자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언어 형식을 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성의 추구일뿐, 문자의 유희와는 구분된다. 문자의 유희와 시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李杙光이 "대체로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예술적이지만 손끝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있는 말이다. 崔滋는 《補閑集》에서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琢鍊함은 杜甫와 같이 한다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솜씨가 생경한 자는 조탁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졸렬하고 껄끄럽기가 더 심하여져 공연히 애만 태울 뿐이니, 어찌 각기 타고난 재주에 따라 자연 그대로를 토해내어 갈고 깎은 흔적이 없는 것만 같겠는가?"

앞서 詩眼의 위치를 말했지만, 詩眼은 꼭 한 글자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淸의 劉熙載는 〈詩槪〉에서 字句의 단련은 活處의 단련이라야지 死處의 단련은 의미 없다고 보고, 活處를 포착하는 관건은 詩眼을 찾아내는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詩眼에는 시집 전체의 눈도 있고, 한편의 눈도 있으며, 몇 구절의 눈도 있고, 한 구절의 눈도 있다. 몇 구절로 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고, 한 구절로 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으며, 한두 글자로 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아예 詩眼의 의미 범주를 확장시켜 놓았다. 자칫 詩眼論은 시인으로 하여금 수사적 기교에 탐닉케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므로 劉熙載의 위 지적은 詩眼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통쾌함이 있다. 또 淸의 吳大受는 《詩筏》에서, "지금 사람은 시를 논하면서 다만 한 두 글자에 천착하여 이를 가리켜 옛 사람의 詩眼이라 하니, 이것은 死眼이지 活眼은 아니다"라 하여 시에 있어 정채가 서려 얽힌 영롱한 지점을 찾을 때라야만이 살아있는 눈, 즉 活眼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詩眼이 없다고 해서 하등의 시라 말할 수도 없다. 明의 胡應麟은 《詩藪》에서 詩에 詩眼이 있는 것은 돌에 티눈이 있는 것과 같다는 이른 바 '티눈론'을 주장하였다. "盛唐詩의 句法은 渾涵하여 마치 兩漢의 시와 같아 한 글자에서 구할 수 없다. 杜甫 이후부터 시구 가운데 기이한 글자가 있으면 詩眼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句法이 있고 나서 渾涵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옛 사람은 돌에 티눈이 박혀 있으면 벼루의 한 흠으로 여겼다. 나는 또한 말한다. 시구 가운데 눈이 있으면 시의 한 흠집이 된다." 그는 계속해서 杜甫의 〈曉望〉의 5.6구,

땅은 갈라져서 강 배를 감추었고
하늘이 맑게 개니 잎 지는 소리 들려오네.
地坼江帆隱
天淸木葉聞

에서 '坼'자의 詩眼 있음이, 杜甫의 〈遣興〉의 5.6구,

지대가 낮고 보니 황야는 드넓고
하늘은 멀어서 저문 강은 더디도다.
地卑荒野大
天遠暮江遲

의 詩眼 없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詩家 최고의 三昧의 경지이니 안목있는 자만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詩眼을 연마함에 있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詩眼은 詩眼을 드러나지 않게 감추는 '藏眼'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洞察과 慧眼 없이 그저 남의 눈을 놀래키는 수사적 기교에 탐닉하는 시인들은 귀담아 들어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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