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魔 이야기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詩魔는 .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詩魔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즐거운 손님, 詩魔
앞에서 李奎報의 〈詩癖〉이란 작품을 소개하면서, 詩魔에 대해 잠시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이 詩魔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詩魔란 말 그대로 '시귀신'이다. 이 詩魔는 어느 순간 시인의 속으로 들어와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만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한번 붙고 나면 그 사람은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되며, 짓는 시마다 절창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실제로 예전 詩話를 보면 이 詩魔에 관한 삽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선조 때 사람 李顯郁이란 이에게 붙었던 詩魔이다. 李山海는 그의 시를 몹시 아껴 늘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李達이 어느 날 이산해를 보러 가니 이현욱의 시를 보여주며 품평케 하였다. 그의 시 가운데 소리도 없이 찾아온 설레이는 봄빛을 노래한,
걸음걸이 느리지도 바쁘지도 않건만 동서남북 온통 모두 봄빛이구나. |
步復無徐亦不忙 東西南北遍春光 |
라 한 구절을 본 이달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이것은 정말 문장가의 말입니다. 역대 어떤 시인도 일찍이 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이가 젊으니 반드시 詩魔를 얻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산해는 이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지은 시는 말이 모두 脫俗하고 격이 老蒼하였는데, 과연 뒤에 詩魔가 떠나가자 그는 시는 커녕 한 글자도 알지 못하는 무식쟁이가 되었다. 말하자면 그동안 이현욱의 시는 그가 쓴 것이 아니라 시마가 이현욱을 시켜 대신 구술한 셈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詩魔는 제멋대로 시인에게 들어왔다가는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리기도 하는 재미있는 귀신이다. 시마가 붙으면 이규보의 경우처럼 시를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게 되나, 일단 시마가 떠나기만 하면 아예 시를 짓고 싶은 생각도 없어질 뿐 아니라, 제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시를 지을 수 없게 되고 만다. '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魔가 많이 낀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이상스레 잘 안될 때도 우리는, "필시 魔가 낀 게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魔'란 무슨 일을 잘 안되도록 방해하는 방해꾼이다. 그런데 이 詩魔란 놈은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는 방해꾼이 아니라 언제고 환영해야 할 손님이다. 시마가 붙고 나면 그냥 하는 말도 모두 기가 막힌 시가 되는데, 시마가 떠나고 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말이다.
白居易는 일찍이 〈醉吟〉이란 시에서,
酒狂에다 더하여 詩魔까지 끌어와 한낮부터 슬피 읊다 저물녁이 되었네. |
酒狂又引詩魔發 日午悲吟到日西 |
라 하였다. 술에 흠뻑 취한 그에게 詩魔까지 들러 붙었으니, 밝은 대낮부터 구슬피게 읊조리기 시작한 시가 땅거미가 뉘엿해지도록 그칠 줄 모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與元九書〉에서는
"이제 내 시를 아껴주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는 오직 그대 뿐입니다. 그러나 천백년 뒤에 어찌 다시 그대같은 사람이 나와서 나의 시를 알아주고 아껴주지 않을 줄 알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8, 9년 이래로 그대와 더불어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시로써 서로 경계하였고, 조금 어렵게 되면 시로 서로를 권면하였으며, 떨어져 있을 때에는 시로써 위로하였고, 같이 지낼 때에는 시로 서로 즐기었으니, 나를 알아 줄 것도 시요, 나를 죄줄 것도 시일 뿐입니다. 금년 봄 성남에 놀러 갔을 때에, 차례로 읊조리고 노래하니 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이 이십 여 리나 되었었지요. 나를 아는 사람은 詩仙이라 여겼고, 나를 알지 못하는 자는 詩魔라고 생각했을 겝니다. 왜냐구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괴로운줄도 알지 못하니 詩魔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우연히 다른 사람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 하거나, 혹 꽃 필 때 잔치를 마치거나, 혹 달밤에 술이 거나해지면 한번 읊조리고 한번 읊으며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난새와 학을 타고서 봉래와 영주에서 노니는 자의 즐거움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테지요. 그러니 또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글은 자신의 문학 인생을 담담히 술회하고 있는 장문의 편지인데, 자신의 불우를 되새기는 약간은 서글픈듯한 어조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시를 짓는 즐거움을 남들은 詩魔에 붙들린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은 신선의 경지와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노라고 하여, 현세의 말할 수 없는 불우에도 불구하고 창작의 길에서 느끼는 그윽한 희열을 예찬하고 있다.
詩魔와의 논쟁과 詩魔 증후군
한나라 때 揚雄은 〈逐貧賦〉를 지어, 자기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가난'이란 놈의 축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글을 보면,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내 인생을 이렇듯 고달프게 만드는 연유를 따져 묻고, 이어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고 따라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뒤, 지체치 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자못 등등한 기세다. 그러자 '가난'이란 녀석이 나타나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나도 할 말이 있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었고, 桀이나 盜甁 같은 탐학의 무리를 거들떠 보지 않는 기상을 길러 주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겹겹이 둘러 싸인 곳에서 지내나 그대는 홀로 툭 터진 곳에서 살게 하였고, 사람들은 근심에 싸여 지내나 그대는 홀로 근심이 없게 하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공로이다. 이렇게 말을 마친 '가난'은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며 "내 맹세코 너를 떠나, 저 수양산에 가서 伯夷 叔齊와 더불어 함께 지내리라."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급해진 양웅이 자리를 피해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며, 다시는 원망치 않을 터이니 내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만류하는 것으로 글은 끝난다.
뒤에 당나라 때 韓愈가 이를 본떠 다시 〈送窮文〉을 지었다. 제목 그대로 '窮狀을 전송하는 글'이다. 이 글 또한 버들고리로 수레를 만들고, 풀을 엮어 배로 만들어 여기에 양식을 싣고 窮鬼를 전송하는 축문을 읽자, 窮鬼가 나타나 자신을 몰아내려는 그 행위가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진 뒤, 여기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한유가 智窮て學窮て文窮て命窮て交窮 등 자신을 평생 따라 다니는 다섯 가지 窮狀의 실체를 낱낱히 열거하며, 이 때문에 괴로워 살 수가 없으니 제발 나가 달라고 요청하자,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 다섯 귀신이 나와 눈을 부릅뜨고 혀를 차며 항의하기를, 사람이 나서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잠깐일 뿐인데, 내가 그대의 이름을 세워 백세토록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거늘 그 공이 어찌 작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를 쫓아내려 하다니 참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주인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기운이 꺾이어 손을 들어 사죄하고, 수레와 배를 불사른 뒤 窮鬼를 삼가 윗 자리로 모셔 앉혔다는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가난과 궁상이 시인에게 KO승을 거두고 있다. 시인이 오죽 가난을 달고 살았으면, 가난을 몰아내고 궁상을 쫓아낼 마음을 먹었을까 생각하니 안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나마도 축출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일장훈계만 듣고 주저물러 앉았으니 더더욱 처량한 일이다.
이규보도 이와 비슷한 작품을 남긴 것이 있다. 그는 앞서 〈詩癖〉이란 시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驅詩魔文〉, 즉 '시 귀신을 몰아내는 글'을 지었다. 詩魔와의 논쟁 역시 이규보의 참패로 끝나지만, 詩魔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글이다. 이규보는 이 글에서 먼저 생명이 없는 사물에 귀신이 붙게 되면 괴상하고 요사한 일들이 나타난다고 하고, 사람에게도 이러한 귀신이 붙을 수 있다 하였다.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에는 바탕이 순박하여 꾸밈이 없고 순후 정직하였지만, 한번 시에 빠지게 되면 그 말을 요사하게 하고 괴상하게 하여 사물을 희롱하고 남을 현혹시키니 이것이 모두 詩魔의 농간이라 하며, 이제 그 죄상을 낱낱히 밝혀 시마를 내게서 몰아내고자 한다고 엄숙히 선언하였다. 이어 이규보는 시마의 죄상을 모두 다섯 가지로 나누어 신랄하게 성토하였다. 그러자 그날 밤 꿈에 의복을 화려하게 입은 詩魔가 찾아와서 질책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그대와 함께 지내왔고, 성년이 된 뒤에는 언제나 그대의 뒤를 따르면서 그 기운을 웅장하게 해주었고 문장을 화려하게 해주어, 과거에 해마다 급제하여 명성이 사방으로 퍼지게 하였고, 벼슬아치와 귀족들까지도 그대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어 하게 하였으니 나의 공이 적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말을 삼가지 아니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지 않으며 여색에 탐닉하고 술을 즐기는 것은 너의 삼가지 않는 탓이지 나의 책임이 아니다. 이같은 시마의 질책에 그는 꼼짝 없이 수긍하며 부끄럽고 황송하여, 절하여 스승으로 맞아들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詩魔가 붙었는지 붙지 않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 이규보는 詩魔가 자신에게 들어온 뒤 나타난 이상한 증상들을 이렇게 적고 있다.
"네가 오고부터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몸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며, 계집종이 게으름을 부려도 꾸중할 줄 모르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타이를 줄 모르며, 동산에 잡초가 우거져도 깎아낼 줄 모르고, 집이 쓰러져가도 고칠 줄을 모른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은 사람을 업수이 보며, 방자하고 거만하게 언성을 높여 겸손치 못하며, 면박하여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며, 여색에게 쉬이 혹하며, 술을 만나면 행동이 더욱 거칠어지니, 이것이 다 네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詩魔의 증후는 시 이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현상이다.
이규보의 〈驅詩魔文〉이 있은 뒤, 조선 중기의 문인 崔演이란 이가 이규보의 글을 본받아, 다시 〈逐詩魔〉란 글을 남겼다. 최연은 시마가 자신에게 온 뒤 나타난 증세를 이렇게 쓰고 있다.
"네가 오고부터 술에 어리 취한 것 같고 바보가 된듯 멍하게 신음하며 구슬퍼 하여 한 病夫가 되고 말았다. 장차 네게서 벗어나고자 일년 내내 애를 썼으나, 네게서 떠나고자 산에 올라가면 너는 어느새 나를 따라 노닐고, 바다로 들어가면 너는 어느새 나를 찾아내는구나. 사물을 만나면 눈길을 쏘아보아 취함이 많아도 그만두지 않았고, 내 耳目의 총명함을 빼앗아 가서 나의 보고 들음을 어지럽게 하였고, 머리가 쑥대가 되어도 빗질하지 않으며, 마음이 거칠어도 다스릴 줄 모르고, 성글고 게을러 의논을 자초하며, 교만하고 오만하여 허물을 불러들이고, 기림은 뭇 사람의 뒤에 있고, 꾸짖음은 다른 사람의 앞에 있게 하니, 나를 굶주리게 하고 나를 빈한하게 하는 것이 또한 네가 불러들인 것이다."
지금 자신이 시마에 사로잡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 보려면 위의 여러 증후들을 시인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볼 일이다. 길을 가면서도 시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시 생각, 심지어 꿈 속에서까지 시 생각 뿐, 이 밖에 다른 것들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지는 증세, 예의니 염치니 체모니 하는 것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는 증세, 눈에 띄는 사물마다 허투루 보지 않고 거기에 담긴 비밀을 찾아 내고야 말게 만드는 증세가 이른 바 詩魔 증후군이다. 만일 이런 자각 증세가 있다면 그 또한 詩魔에 붙들린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詩魔의 罪狀
이제 〈驅詩魔文〉에서 이규보가 적시하고 있는 詩魔의 다섯 가지 죄상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첫째,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인으로 하여금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바탕이 소박할 때에는 화려하지 않은 꽃 떨기 같고, 총명함이 가리워져 있음은 마치 눈이나 귀가 열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허술한 틈을 타서 詩魔란 놈이 들어와 붙게 되면 여기에 의탁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남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고, 요술을 부리고 온갖 괴상한 짓을 하며, 아양을 떨면 살과 뼈가 녹는듯 하고, 떨쳐 소리 지르면 바람이 일고 물결이 출렁이게 한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너를 장하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다지 날뛰며, 사람들은 너를 공이 있다 여기지 않는데, 어찌 헐뜯기에 힘쓰는가?
둘째, 하늘의 이치를 파헤쳐 천기를 누설하면서도 당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이다. 삼라만상은 모두 저마다의 조화와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신비를 염탐하고 천기를 누설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하늘이 놀랄 정도로 그 마음을 꿰뚫어 보므로 신명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하늘은 불평하게 여겨, 너 때문에 사람의 삶을 각박하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삼라만상의 천만 가지 형상을 닥치는대로 하나도 남김 없이 붓 끝으로 옮겨내어 겸손할 줄 모르게 하는 죄이다. 구름과 노을의 아름다움, 달과 이슬의 정기, 벌레와 고기의 기이함과 새 짐승의 괴상함과 싹트고 꽃피는 초목의 천만가지 현상으로 천지에 가득한 것을 거침 없이 취해, 열에 하나도 남김이 없이 보는대로 읊조려 붓 끝으로 옮겨 놓으니 너의 겸손치 않음을 하늘과 땅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상 주고 벌 주기를 제멋대로 하고, 정치를 평론하고, 만물을 조롱하고, 뽐내며 거만하게 만드는 죄이다. 비위에 거슬리기만 하면 즉시 공격부터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곤룡포 없이도 임금으로 꾸며주고, 미운 사람이면 칼 없이도 찌르니, 무슨 권리로 상 주고 벌 주기를 네 마음대로 하는가. 높은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라 일에 관여하고, 광대도 아니면서 만물을 조롱하고 뽐내며 잘난척 하니, 누가 너를 시기하지 않고, 누가 너를 미워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목욕을 싫어하게 하고 머리 빗기를 게으르게 하며, 괜스레 신음소리를 내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어 온갖 근심을 불러들이는 죄이다. 詩魔가 붙기만 하면 멀쩡하던 사람이 마치 병 들어 부스럼이 난 사람처럼 온통 지저분하게 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은 빠지며 몸은 비쩍 마르게 되어 신음소리를 내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고 가슴을 앓게 하니, 근심을 불러 들이고 평화를 해치게 한다는 것이다.
崔演도 〈逐詩魔〉에서 詩魔의 죄상을 모두 네 가지로 적시하고 있다. 대개 이규보가 든 詩魔의 죄상을 말만 바꾼 것인데, 첫째는 제멋대로 붓을 휘둘러 어지럽게 하고, 샘솟는 듯한 생각과 봄날 구름같은 태도로 번화함을 다투어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키며, 날로 眞元을 소모케 하고 太素를 깎아 내게 하는 죄이고, 둘째는 천지자연의 비밀을 엿보고 서책을 표절하여 오묘한 표현을 찾으며, 字句를 琢鍊하고 기이함을 다투며 일생의 마음을 토하고 수염을 배배 꼬면서 精微함을 추구하고 動砄케 하는 죄이며, 셋째는 온갖 형식과 격식을 만들어 변화를 뽐내고 솜씨를 자랑케 하여 마침내 그 임금의 마음을 방탕케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죄이고, 넷째는 時諱를 저촉하고 禍機를 밟아 몸에 곤궁을 이르게 하고 비방을 불러 들이게 하는 죄이다.
멀쩡하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시 귀신이 있으니 이를 쫓지 아니하고 어쩌겠는가? 대개 이런 종류의 글은 反語의 성격이 짙어, 문면 그대로 읽고 말 일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규보와 최연이 제시하고 있는 詩魔의 죄상을 그대로 뒤집어 읽어 보면, 바로 시인 예찬론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이규보가 제시한 시마의 죄상을 거꾸로 읽어 보면,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시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있고, 시인은 그 날카로운 예지로써 천지의 드러나지 않은 奧義를 파헤쳐 사람들의 인식을 보다 高遠한 곳으로 인도해 주며, 시인은 온갖 사물들을 관찰하여 거기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해 내며, 시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세속의 질서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시를 통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으며, 시인은 세속 사람들이 추구하는 겉모양의 꾸밈보다는 한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하기 위한 고초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제자랑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규보와 최연 등이 적시하고 있는 '詩魔의 罪狀'이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시에 죽고 시에 사는 전업 시인으로서 누리는 특권에 대한 '즐거운 비명'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 詩魔란 놈은 무슨 이마에 뿔이 달린 귀신이 아니라,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이규보는 다시 〈三魔詩〉를 남겼는데, 그의 三魔는 바로 色魔와 酒魔, 그리고 詩魔이다. 그 서문에서 그는 "내가 연로하여 오래동안 色慾을 물리쳤으나, 시와 술만은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詩酒도 이따금 흥미를 붙일 것이지 性癖을 이루어서는 안된다. 性癖을 이루면 곧 魔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詩魔를 노래한 시는 다음과 같다.
시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아닐진대 애태우며 찾아낸들 마침내 무엇하리. 산들바람 밝은 달은 처음엔 좋겠지만 오래 되어 빠지게 되면 이것이 詩魔라네. |
詩不飛從天上降 勞神搜得竟如何 好風明月初相諭 着久成淫卽詩魔 |
詩鬼와 鬼詩
詩魔 이야기를 꺼낸 김에 시와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詩話를 보면 또 詩鬼와 鬼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詩魔가 보통 지속적으로 시인에게 들러붙어 있는 것이라면, 詩鬼는 일회적으로 시인의 입을 빌어 대신 노래하게 하거나, 그 자신이 홀연히 나타나 시를 읊조리기도 하는 귀신이다. 또 이 詩鬼가 지은 시를 鬼詩라 한다.
광주 교외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金德齡을 모신 사당 忠壯祠와 醉歌亭이란 정자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하여 爲國盡忠 하였으나 간신배의 모함을 입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 권필이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김덕령의 시집을 얻었다. 그 첫머리에는 〈醉時歌〉란 작품이 실려 있었다. 그 시에 이르기를,
취했을 때의 노래 이 노래 아무도 듣는 이 없네. 내사 꽃 달에 취함도 바라잖코 내사 공훈을 세움도 원치 않네. 공훈을 세우는 것, 뜬 구름일 뿐이요 꽃 달에 취하는 것, 그 또한 뜬 구름. 취했을 때의 노래 아무도 모른다네. 내마음 다만 긴 칼 들고 밝은 임금 받들고 싶을 뿐. |
醉時歌 此曲無人聞 我不要醉花月 我不要樹功勳 樹功勳也是浮雲 醉花月也是浮雲 醉時歌 無人知 我心只願長漻奉明君 |
이라 하였다. 자! 이 시는 김덕령이 지은 것인가? 아니면 권필이 지은 것인가? 물론 세상에는 김덕령의 시집이란 것은 있지도 않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던 권필의 꿈에 그가 나타나 부른 노래는 과연 그의 시라 보아 좋을 것인가? 실제로 光州의 醉歌亭에는 권필이 꿈에서 보았다는 이 시가 현판에 새겨져 걸려 있다.
권필은 이 시 말고도 꿈 속에서 지은 시를 여러 편 문집에 남기고 있다. 어느 날 밤 꿈에 텅빈 집에 들어 갔다. 때는 저물녁인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낙엽은 뜨락에 가득하였다. 문득 이별을 원망하고 시절을 상심하는 느낌이 일어 꿈 속에서 시를 지었다. 그 시는 이러하다.
텅빈 마을 적막하여 사립을 닫고 낯선 땅 머물자니 옛 벗도 없네. 저녁 해 다 지도록 아무도 오질 않고 뜰엔 가득 붉은 잎, 비만 부슬부슬. |
空村寂寞掩柴扉 滯臥殊方故舊稀 送盡夕陽人不到 滿庭紅葉雨摴摴 |
詩想이 悽苦하여 자못 鬼氣마저 감돌고 있다. 평소 얼마나 시를 가지고 마음을 졸였으면 꿈에서까지 시를 짓겠는가. 실제 요즘의 시인들에게도 이 같은 현상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권필에게는 이런 일화도 있다. 沈氏 성을 가진 선비가 지금의 종암동 어귀에서 말을 쉬고 있는데, 한 서생을 만났다. 그 서생은 절구 한 수를 읊조리더니, 홀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시에 이르기를,
봄 물은 아득하고 버들개지 날리는데 들 바람 비 불어와 征衣를 점 찍네. 들머리 옛 무덤엔 淸明이 가까운지 지는 해에 갈가마귀 울며 돌아가잖네. |
春水微茫柳絮飛 野風吹雨點征衣 原頭古墓淸明近 落日寒鴉啼不歸 |
이와 같이 귀신이 나타나 시를 지은 경우가 시화에 종종 나타난다. 尹潔이 車軾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지은 오언시 한 수를 들려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그 시에 이르기를,
우연히 石門洞 골짝에 들어 밤길에 시 읊으며 외로이 갔네. 달은 중천에 떠 백사장 모래 밝은데 빈 산에선 새 한 마리 울음 울었다. |
偶入石門洞 吟詩孤夜行 月午澗沙白 空山啼一鶯 |
라 하였다. 시를 듣고 난 차식은 "이것은 鬼詩일세."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尹潔이 깜짝 놀라, "사실 내가 간 밤 꿈에 한 깊은 골짝에 놀러 갔는데, 백사장이 십여리나 펼쳐져 있고 달빛은 마치 그림 같은데, 어디선가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었네. 그곳의 이름을 물어보니 石門이라 하더군. 그래서 꿈 속에서 지은 것이야."라고 실토하였다. 《五山說林》에 나온다. 과연 그 시를 보면 詩想이 맑고 서늘하여 보통 사람이 능히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때 어떤 선비가 친구를 찾아가 술을 마시고 날이 저물어 돌아오는 길에 취해 쓰러져 누워 있는데, 갑자기 낭낭하게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냇물 졸졸졸 산은 적막한데 나그네 시름 가이 없고 달빛은 황혼이라. |
澗水潺湲山寂歷 客愁痸遞月黃昏 |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자신이 누웠던 산 길 옆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또 귀신 朴弄이 지었다는 시도 있다.
해당화 지는 가을, 꽃잎은 눈 같은데 성 밖 인가엔 문이 죄다 걸려있네. 아득한 언덕 길을 홀로 돌아 가려니 길은 먼데 날 저물고 산만 첩첩하구나. |
海棠秋墜花如雪 城外人家門盡關 茫茫丘壟獨歸去 日暮路遠山復山 |
라 하였다. 또 權唵이 만났던 귀신은 이런 시를 남겼다.
누대의 꽃비가 십삼천에 나리는데 풍경 소리 뚝 그치고 향조차 사라진 밤. 창 밖의 두견새는 피 토하며 우는구나 새벽 산 꿈 속 같고 달빛은 안개 같네. |
樓坮花雨十三天 磬歇香殘夜盶然 窓外杜鵑啼有血 曉山如夢月如烟 |
모두 《小華詩評》에 보인다. 이상 살펴본 몇 수의 鬼詩들은 모두 음운이 高絶하고 처량하여 확실히 인간의 말이 아니다. 鬼氣가 서려 있다. 洪萬宗은 이를 소개한 뒤, "귀신도 자신의 시를 아껴, 왕왕 놀랄만한 시귀가 있으면 반드시 사람의 힘을 빌어 세상에 전함으로써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라 하였다.
또 선조 때 문인 梁喜가 눈 오는 밤에 매화를 감상하다가
읊는 입에 눈 내리자 시조차 얼려하고 雪墮吟脣詩欲凍
라는 한 구를 얻었는데, 마침내 그 바깥짝은 채우지 못하고 잊어 버렸다. 십년 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그대는 왜 '詩欲凍'의 구를 계속 잇지 않는가?" 하더니,
부채에 매화 나부끼니 노래에 향기 나네. 梅飄歌扇曲生香
라 하고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한 편 시를 이루었다. 혹 이 시화는 달리 이런 이야기로도 전한다. 충청도에 시에 능한 두 형제가 있었는데, 아우가 형만 못하였다. 분통이 터진 아우는 화가 나 요절하고 말았는데, 원귀가 되어 형에게 달라 붙었다. 집안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꾸짖으니, 아우의 귀신이 "내가 시 한 구절을 부르겠다. 능히 대구한다면 다시는 달라붙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에 위 '詩欲凍'의 구절을 읊조리므로 형이 '曲生香'의 구로 응대하자 귀신은 슬피 울면서 그에게서 떠나갔다. 《東詩話》에 전한다.
또 《東人詩話》에 보면 고려 때 金之岱가 義城館樓에 시를 지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는데, 뒤에 전란으로 누각이 불타버려 詩板도 따라서 없어졌다. 몇 십년 뒤 吳迪莊이란 이의 딸이 미쳐 발광했는데 어지러이 말하는 가운데 갑자기 김지대의 시를 줄줄 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는 다시 시판에 새겨 전해졌다. 이른바 귀신도 또한 시를 사랑하여, 능히 잃지 않도록 지켜 다시 세상에 전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시 귀신에 얽힌 이야기들은 모두 시인들의 시를 향한 끝없는 몰두와 집착이 빚어낸 환상일 뿐이다. 꿈 속에서 귀신이 들려준 시는 실상 귀신이 들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귀신의 입장이 되어 그렇게 노래한 것이 아니던가. 시와 관련된 귀신들은 한결같이 무섭지도 않고 인간에게 해꼬지를 하는 법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귀신들은 바로 시인 자신의 분신인 셈이므로.
鬼神의 조화와 詩人의 窮達
鄭知常이 일찍이 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밤에 달이 휘영청 밝아 홀로 梵閣에 앉아 있는데, 홀연히 허공에서 시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에 이르기를,
스님이 보면 절 있을까 의심하고 학이 보곤 소나무 없음 아쉬워 하네. |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
라 하였다. 정지상은 혼자 생각에 귀신이 알려주는 것이려니 하였으나,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는데, 考試官이 '夏雲多奇峯', 즉 "여름 구름엔 기이한 봉우리 많네."란 도연명의 시귀를 詩題로 하여 '峯'자를 압운으로 내거는 것이었다. 퍼뜩 山寺에서 귀신이 들려준 시귀가 생각난 그는 이를 이어 시로 써서 제출하였다.
밝은 해 중천에 환히 떴는데 뜬 구름 제 홀로 봉우릴 짓네. 스님이 보면 절 있을까 의심 하고 학이 보곤 소나무 없음 아쉬워 하리. 번개는 나무꾼의 도끼 자루요 우레는 隱士의 종소리로다.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말했나 저물녁 바람에 저리 날려 가는데. |
白日當天中 浮雲自作峯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電影樵童斧 雷聲隱士鍾 誰云山不動 飛去夕陽風 |
여름 날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구름은 허공에 수려한 산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스님네가 보면 근사한 절이 있으려니 생각함직 하고, 날던 학도 소나무만 있으면 진짜 산으로 알고 깃들일만큼 실감나는 모습이다. 그런 착각에 빠져 있던 시인의 눈에 나무꾼의 도끼처럼 번개가 번쩍이고, 隱士의 종소리인양 우레가 치더니만, 석양 무렵 바람에 불려 먼 곳으로 산이 둥실둥실 떠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 모자 벗겨오지"하는 노래 가사를 듣는 듯 상쾌한 느낌을 준다. 考官은 특히 3.4구를 驚語라 하여 극구 칭찬하였으나, 이 두 구절이 귀신이 정지상에게 일러준 것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白雲小說》에 보인다.
또 《惺ੑ擎辣?출세시킨 이야기도 실려 있다. 김안로가 어릴 적 관동지방을 유람하였는데, 꿈 속에 귀신이 나타나서,
우임금의 산천 밖엔 봄 기운이 한창인데 순임금 뜰 짐승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네. |
春融禹甸山川外 樂奏虞庭鳥獸間 |
라는 시를 읊으며 "이는 네가 벼슬을 얻을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듬해 그가 庭試를 치러 들어갔더니, 연산군이 율시 6수를 내어 시험 치는데, 그 가운데, "梨園의 弟子들이 沈香亭 가에서 한가로이 樂譜를 들쳐본다."는 제목이 있었는데, '閑'자로 압운하였다. 퍼뜩 귀신이 읊어준 시구를 떠올린 김안로는 그것을 써서 바쳐, 마침내 장원 급제하였다. 金安國이 그 때 試官으로 자리에 있다가 "이것은 귀신의 말이지 사람의 말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김안로가 사실대로 이야기 하니 사람들이 김안국의 식견에 모두 탄복하였다.
趙己宗이란 젊은 서생이 南學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는 句讀도 뗄 줄 모르고 시를 지을 줄도 몰랐다. 하루는 꿈에 빈 집에 들어갔는데 넓고 조용하였고, 대추꽃이 막 피어나 마치 초여름과 같았다. 두 세 명의 서생이 그곳에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기종에게 굳이 시 짓기를 청하였다. 이에 조기종이 시를 지었는데,
나무 위엔 대추꽃이 활짝 피었고 빈 집은 적막하여 아무도 없네. 봄바람 끝없이 불어오더니 만리에 봄풀이 새로웁구나. |
樹上棗滿開 空家寂無人 春風吹不盡 萬里草多新 |
라 하였다. 꿈에서 깬 뒤 그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꿈에서 지은 시를 써서 벽에 붙여 놓았는데, 이튿날 죽고 말았다. 이것이 귀신이 시로써 사람을 죽인 이야기다. 《曡聞期錄》에 실려 있다.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지금까지 詩魔와 詩鬼, 그리고 鬼詩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 모두 시가 폐부에 깊이 박힌 痼疾이 되어, 시를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었던 옛 시인들의 시정신이 빚어낸 笑話들이다. 그러나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이들 이야기 속에는 깃들어 있다. 詩魔는 한 마디로 옛 사람의 시를 향한 열정의 다른 말이다. 詩鬼는 달리 말해 사물의 비밀을 끝까지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일 뿐이다.
謝肇燃란 이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많으면 心火가 타오르고 심화가 타면 腎水가 고갈되어 심장과 腎이 교통이 안되므로 사람의 생리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문인의 대다수가 자식을 두지 못하고 또한 장수하지 못하니, 이는 그 하는 일이 이런 까닭이다." 董其昌은, "그림을 그리는 도는 이른 바 우주가 손에 달려 있어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生機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왕왕 오래 산다."고 말하였다. 과연 시인은 短命하고, 화가는 長壽하는가. 이 두 사람의 말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이치가 전혀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을 하더라도 만약 渾厚하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그림을 그려도 너무 정교함만 추구하면 혹 단명하기도 한다. 속담에 말하기를, '목공은 일생 동안 궁하나, 철공하는 사람은 필경 부자가 된다.'하니, 이 말은 그 운명과 운수가 직업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말이다. 목공은 깎아 버리기만 하고, 철공하는 사람은 항상 붙여 더하기 때문이다. 李德懋가 《椵葉記》에서 한 말이다.
詩魔가 떠난 시인들은 시 짓기를 그만둘 일이다. 실제로도 젊은 시절 날카로운 표현과 치열한 시정신으로 詩壇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시인들이 어느 순간 침묵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침묵은 그래도 보기에 아름답다. 이미 시마가 떠나가 버린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전에 벌어놓은 점수까지 죄다 까먹는 조악한 시를 발표하는 시인들은 얼마나 추한가. 詩魔가 떠나고 보면, 지금 발표하고 있는 것이 시인지 넋두리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詩魔를 쫓아내겠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이규보의 경우는 오히려 행복하다. 詩魔가 더이상 오지 않는 시인들은 붓을 꺾든지, 아니면 차라리 〈迎詩魔文〉이라도 지을 일이다. 배부르고 따뜻함 속으로 詩魔는 절대 깃들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詩魔는 혐오한다. 이것은 꼭 물질의 넉넉함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詩魔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