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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시장 이용자는 막장인생들?

천하한량 2007. 4. 26. 15:34





2007년 3월 현재 등록된 대부업체만 1만7539개. 더 많은 곳이 미등록 상태로 고이율의 대출영업을 하고 있다.
연소득 2000만 원 이상인 사람들 62% 차지, 저소득층은 18% 불과

‘피자보다 빠른 대출’ ‘한 달간 무이자 이벤트’ ‘여성 전용 무담보 대출’ ‘고민하지 마세요, ○○신용대출!’

사채를 양성화한 대부업체가 늘어나면서 생활정보지, 지하철 광고판, 케이블TV, 전단지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광고다. 최근 공중파TV에서도 유명 탤런트가 등장하는 대부업체 광고들이 아파트 분양 광고 못지않게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KT, 하나로, 두루넷, 3개 초고속 인터넷 통신업체 가입자 400만 명의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유출되어 가입자 중 상당수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대출받으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최고 연 66%의 고금리지만 급하게 돈 쓸 일이 있는 사람에겐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연소득 4000만 원 이상도 31%나

지난해 법무부와 국정홍보처가 서울 및 6개 광역시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사금융 이용실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39.2%가 최근 10년간 1회 이상 사금융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에는 이른바 ‘막장인생’이 아닌 일반인들의 대부업체 이용률도 급격히 높아졌다. 지난 4월 13일 재정경제부와 금융연구원이 대부잔액 30억 원 이상 5000억 원 이하인 중·대형 대부업체 2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대부업체 이용자 가운데 연간소득이 2000만 원 이상인 이용자의 비중은 61.9%로 나타났다. 특히 연간소득 4000만원 이상인 이용자 비중도 31.4%나 됐다. 대부업체 이용이 대중화화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연간소득 1000만 원 이하의 저소득 계층 비중은 17.9%에 불과했다.

우량고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고객 가운데 연체기간이 3개월 미만인 정상 채무자 비중이 90%에 이르고,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등급 1~7등급 비중도 6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부업체 이용자 가운데 빚을 갚을 능력이 평균 이상인 고객층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채시장의 대중화는 이용자 분포에서도 잘 나타난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부시장 이용자의 64% 정도가 20~30대이고, 회사원이 56% 자영업자가 20%로 나타났다”며 “이들 중 69%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상태로, 대부시장 이용자와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자가 겹치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외환위기 이후 경기 양극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생활자금 용도의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제도권 금융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금융 소비자의 상당수도 금융회사로부터 자금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대부시장을 동시에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대부업체로부터 500만 원을 빌린 김모씨(41)는 “일반 은행과 저축은행에 소액신용대출을 신청했지만 카드대금 연체가 있어 모두 거절당했다”며 “빨리 쓰고 갚으면 되지 싶어 대부업체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500만 원 대출에 선수수료 20만 원을 떼고 480만 원을 받았다. 연이율은 64% 정도로, 앞으로 매달 17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하지만 ‘한 달만 쓸 생각’이기 때문에 이자가 다소 높아도 대출방법이나 시간에서 ‘편리하다’는 생각이다.

주부 최모씨(34)도 대부업체의 대출을 ‘나름대로’ 잘 활용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매매한 아파트의 양도세 납부를 앞두고 대부업체를 찾았다. “양도세를 일시납부할 경우 10%의 감면 효과가 있는데 돈도 조금 모자라고 시간도 촉박해 대출을 받았다”는 최씨는 “두 달 쓰고 이자를 40여만 원 내야 하지만 양도세 10% 감면액이 480만 원이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달 후엔 목돈이 생기기 때문에 부채를 해결할 계획이다.

주택청약 가입자들 급전 쓰기도

최근에는 대부업체에서 빌린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도 포착된다. 전매제한에서 자유로운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곳에 투자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 실제로 123가구 분양에 59만7000여 명이 청약해 평균 485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 과열 양상을 빚은 인천 송도 신도시 내 ‘더 프라우’ 오피스텔 공사현장 주변엔 ‘사채자금 유입설’이 파다하다. ‘로또청약’으로 불릴 만큼 예상되는 프리미엄이 높고, 당첨 즉시 전매가 가능해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다 다수의 이름으로 청약신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아파트 분양신청을 했다가 당첨되자 계약금을 내기 위해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끌어다 썼다는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 됐다.

이처럼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들이 제도권 금융시장을 활용하지 못하고 대부시장을 찾는 이유는 과거 연체기록과 보증 및 담보 부족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사에서 ‘사금융을 이용하는 이유’로 41.8%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서’를 들었고, 36.2%는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라고 응답했다.

1인당 평균 대부액 및 건당 평균 대부액 모두 500만 원 이하가 과반수로, 소액신용대출이 대부시장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처럼 ‘단타대출’ 개념으로 대부업체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이는 은행 문턱은 너무 높고, 그렇다고 사채를 쓰기는 부담스러운 서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카드사·저축은행·할부금융사들마저 서민 대출을 갈수록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댈 언덕이 사라진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대출이 편한 대부업체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찬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10% 이하 담보대출과 금리 66%인 대부업체 사이에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중간단계 금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보가 없는 서민이 대부업체 이용자로 급격히 전락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서민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확대를 정책적으로 조금씩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4월 5일,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대부업법상 이자율(최고 연 66%)은 너무 높다”며 대부업체 이자 상한선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4월부터 시행 예정인 이자제한법상 이자제한인 연 40%와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대부업체 이자율도 낮추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이자율을 낮춰 서민 피해를 막고, 단속을 강화해 고이율의 미등록 대부업체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의문을 나타낸다. 현재 대부업체 이자율 상한이 연 66%지만 대형업체 몇 곳을 제외하고는 이것조차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 금융연구원 조사 결과 합법적인 대부업체 이용자조차 실제 부담하는 금리는 평균 20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높은 금리에도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 즉 급전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법정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소용이 없다는 설명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