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 박상철
-
치질은 우리 나라 성인 2명 중 1명꼴로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질병이다. 치질은 피가 나고 항문이 비어져나오는 치핵, 항문이 곪았다가 터지는 치루,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등 항문(痔 · 항문 치)에 생기는 질환을 통칭한다. 이들 중 치핵의 발병률이 가장 높아 흔히 치질 하면 보통 치핵을 일컫는다.
항문 및 직장 하부에는 정맥혈관들이 그물처럼 모여 있다. 항문의 쿠션역할을 하면서 항문 점막 밑에 존재하는 이 정맥들이 여러 원인에 의해 주변조직과 함께 늘어나 덩어리를 형성하여 밑으로 빠지거나 출혈·통증 등의 증상이 생기는 것이 치질이다. 항문입구 안쪽 1.5㎝ 위에 치상선이라 불리는 경계선의 상부에 생기는 것은 내치핵이라 하고 치상선 하부, 즉 항문 입구 쪽에 생긴 것을 외치핵이라 한다. 흔히 내치핵을 암치질, 외치핵을 수치질이라고도 한다. 치질은 일반적으로 20~50세의 성인에게 가장 많이 발병한다.
항문혈관을 확장시키거나 복압을 상승시키는 자세와 생활태도를 지속할 경우 치질이 생긴다. 그 밖에 유전적 요인, 임신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치질이 발생할 수 있다.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오랫동안 힘을 주어 변을 보는 습관이 가장 흔한 치질의 원인이다. 따라서 배변을 단시간에 집중하여 해결하는 것이 치질 예방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변비가 생기면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게 되면서 항문에 오랫동안 힘이 가해져 항문의 혈관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습관이 오래 지속되면 늘어난 혈관에 피가 고여서 계속적으로 부어있는 상태가 지속되어 통증이나 출혈 또는 탈항 등의 증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설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자주 화장실에 가면 항문에 피가 몰려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술을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얼굴의 혈관이 늘어나서 생기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항문의 혈관이 음주 후에 팽창되어 평소에 없던 치질이 발생하거나 악화된다.
임신 중에 갑자기 치질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성 호르몬의 작용으로 정맥이 이완되고 자궁이 커져서 심장으로 올라가는 정맥을 압박하여 항문의 혈관 내 혈액이 정체되어 혈관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임신 중 다리가 잘 붓거나 저린 것도 다리의 정맥피가 잘 올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평소 치질증상이 있는 여성은 임신 전에 치질을 치료하면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가족 중에 유난히 치질 증상이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선천적인 항문의 구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족의 유사한 식습관이나 배변습관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직업의 사람은 치질이 생기기 쉽다. 평소 가벼운 치질 증상이 있을 때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헬스?舟?등산 등 복압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하면 더 악화될 수 있다.
치질은 특수한 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비교적 간단한 진단이 가능하다. 암치질은 진행 정도에 따라 증상에 차이가 있다. 1기에는 어쩌다 한 번씩 화장지나 변에 피가 묻어난다. 2기에는 배변 시 힘을 주면 항문 밖으로 덩어리가 튀어나오지만 저절로 들어간다. 3기에는 배변 시 쉽게 튀어나오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들어가거나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간다. 4기에는 덩어리가 계속 나와 있고 손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수치질에는 항문 겉에 혈전이 생겨 손가락 마디만하게 혹이 불거져 나오는 혈전성 외치핵과 항문 겉이 전체적으로 부어오르는 부종형 외치핵이 있다. 또 항문 끝에 꼬리처럼 피부가 늘어나 가려움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피의 색깔, 배변과의 관계, 통증 유무 등 환자의 증상을 듣고 점막이 돌출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치질을 진단할 수 있다. 그 뒤 의사가 손가락을 이용하여 항문 속에 치핵과 구분되는 다른 혹이 있는가를 만져본 후 항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항문경을 통해 치핵의 유무와 증상의 정도를 진단한다. 하지만 출혈이 있는 경우 대장이나 직장의 질환일 수도 있으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보는 것이 확실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
치질의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는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좌욕을 꾸준히 하면 치유될 수 있다. 하지만 치핵의 크기가 커지고 증상이 악화돼 약물이나 좌욕으로도 개선이 안될 때는 수술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박준동 주간조선 기자(jd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