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3.1운동 시위로 인한 월남 이상재 선생 신문 조서(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천하한량 2007. 4. 5. 17:55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6(三一運動 VI)

 

三ㆍ一 獨立示威 關聯者 豫審調書(國漢文)

 

 

문서제목

李商在 신문조서

 


피고인
李商在


위 피고인에 대한 출판법·보안법 위반사건으로 大正 8 5 22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永島雄藏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磯村仁兵衛가 열석한 다음 豫審判事는 피고인에 대해 신문함이 다음과 같다.

성명·연령·신분·직업·주소·본적지와 출생지를 말하라
.

성명은
李商在.
연령은 70 10 26일 생.
신분은
-.
직업은 中央基督敎靑年會 幹事
.
주소는 京城府 敦義洞 75번지
.
본적지는
忠淸南道 舒川郡 韓山面 種芝里.
출생지는 忠淸南道 舒川郡 韓山面 種芝里.

위기·훈장·종군기장·연금·은급 또는 공직을 가지지 않았는가.

없다
.

지금까지 형벌에 처해진 일이 없는가
.

없다
.

피고는 기독교청년회 종교부 총무를 맡고 있는가
.

기독교청년회 간사는 종교부를 관장하고 있어 총무라고도 칭하고 있다
.

피고의 관력을 말하라
.

구 한국시대에 統衛營文案, 典圜局委員, 承政院承旨, 學務衙門參議, 學部參書官, 內閣總書, 議政府總務局長, 議 政府參
역임하고 丙午년 즉 明治 39 10월에 벼슬을 그만두고 從2品까지 나아갔다.

언제부터 야소교를 믿고 있는가
.

18년 전 蓮洞 敎會에서 영국인 선교사 奇一로부터 세례를 받고 야소교를 믿고 있다
.

피고는 구 한국시대에 독립협회의 회장이었는가
.

회장은 아니고 부회장이었다. 그 당시는 야소교를 믿고 있지 않았다
.

무슨 동기로 야소교를 믿게 되었는가
.

나는 독립협회의 부회장을 하고 있다가 동 협회가 실패 후 세계정세를 보니 야소교가 아니면 부국강병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해 그 결심으로 야소교를 연구했는데, 어느 때인지 그 결심은 딴전이 되어버리고 신앙을 얻게 되어 신자가 되었다
.

피고는 북경에 사는 목사 孫貞道를 아는가
.

알고 있다
.

작년 가을부터 금년 봄까지 孫貞道가 조선에 와 있다는데 만난 일이 있는가
.

만난 일은 없다
.

작년 10월 이후 동인으로부터 편지가 온 일이 있는가
.

나는 동인과 아는 사이나 편지가 오고가고 할 만한 교제는 하고 있지 않다. 孫貞道으로부터 편지가 온 일 없다
.

미국에 사는 李承晩으로부터 편지가 온 일 있는가
.

동인은 7·8년 전 미국에 갔는데 그후 한번도 편지를 보낸 일이 없다
.

피고는 한일합방에 대해 어떤 감상을 가지는가
.

그 당시 총독부로부터 나한테 의견을 물어왔으나 나는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뜻이니 내가 말할 것은 없다고 답신한 일이 있으며, 당시 조선은 하느님에게 죄를 지었기로 하느님의 뜻으로서 병합 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아무런 감상도 없었다
.

합병 후 10년간의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
.

나는 정치에 대해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선 생각이 없으나 다소간 잘못됐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내가 종교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정치에 관계없는 종교에 대해 경찰관이 간섭하기 때문인데 보기를 든다면 종교를 위해 사람들을 모았을 때 모은 사람이나 모인 사람들을 경찰에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하는 것 등이다. 그밖에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는데 내가 체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말하지 않겠다
.

피고는 이번 조선독립운동을 기도(企圖)한 일이 있는가 말하라
.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2·3인이 나에게 교섭하러 온 일이 있으나 나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

누가 어떤 교섭을 하러 왔던가
.

날짜는 잘 기억못하나 금년 음 正월 15일 이후 내가 병으로 누워있을 때 平安道의 李昇薰이 나를 찾아왔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더니 李昇薰은 병문안을 왔다고 하기에 어째서 서울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조선독립을 청원 하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나는 청원을 하면 독립이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李昇薰은 그것은 실행해 보지 않고서는 판단 못한다고 하는고로 내가 말하기를 독립이 되면 물론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 며칠 후에 세브란스병원 안에 있는 咸台永이 나를 찾아와 독립청원서에 이름(연명)을 내겠는가 하는 뜻의 말을 하기에 나는 못내겠다고 대답하니, 咸台永은 어째서 이름을 못내겠는가 하기 때문에 나는 늙었으며 또 독립이란 것은 희망하지만 운동방법이 나쁘기 때문에 이름을 못내겠다고 말했다. 그후 또 李昇薰이 와서 정부에 청원서를 내기 위해 東京에 가주지 않겠는가 하기에 나는 내가 東京에 가서 청원하여 조선이 독립된다고 하면 가겠다고 말했더니 李昇薰은 가주면 좋겠다고 말하였으며, 누가 나 이외에 東京에 가는가 하고 물었더니 林圭란 자가 간다고 하기 때문에 그러면 林圭를 나한테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후 林圭가 왔는고로 동인에 대해 내가 東京에 가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林圭는 너는 가지 않아도 좋겠다고 말하기 때문에 東京행을 중지한 것이다. 李甲成이 나한테 와서 왜 이름을 안내는가 하고 묻는고로 나는 싫어서 안낸다고 대답한 일이 있다. 咸台永이 나한테 와서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하게 되었다고 말하기에 나는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데 그래서는 곤란하다고 말해 준 일이 있다. 그것은 나의 목적은 조선과 일본은 인종상으로나 지리상으로나 형제와 같은 사이로 합병한다든지 독립한다든지 형제간의 참된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형식만의 독립이 되어도 참된 사랑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닌 이상은 곧 망하고 말 것이니 일본정부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서 독립하면 일본을 적()으로 만들게 되어 언제까지나 독립을 유지할 수가 없다. 明治 27년의 때와 같이 온당하게 일본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허()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싫다 하는 것을 억지로 독립을 바란다는 것은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피고는 李昇薰으로부터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천도교와 야소교가 조선독립을 기도하고 있으니 야소교측의 수령으로서 참가해 줄 것을 교섭받았으나 그 일에는 찬성하나 목하 병중에 있어 구속당하면 곤란하니 제1회 운동에는 이름을 내지 않고 계속 독립운동을 획책할 것으로 말했다는데 사실인가
.

나는 경무총감부에서 신문을 받았으나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

피고는 李昇薰에 대해 조선의 독립에 대해서는 하루도 잊은 적이 없고 그 운동에는 찬성하나 지금은 병중에 있어 체포당하면 곤란하니, 뒷날 운동에는 책임지겠으니 제1회 운동에는 이름을 안내도록 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어떤가
.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 나는 李昇薰에 대해 조선독립을 희망하나 운동방법이 나쁘니까 나의 이름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나는 일본의 신용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조선이 독립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양 민족의 의사가 화합하여 일본이 조선을 독립시키 려 해도 이번에는 조선이 독립할 것을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

피고는 죽어도 조선의 독립이 되면 만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

그렇지 않으며 왜 야소교를 믿게 되었는가 하고 묻기에 하나님 앞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던 바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보다 감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나는 감옥으로 가도 야소교를 믿고 있으면 좋겠다. 야소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

그러나 피고는 경무총감부에서 독립운동에 찬성하고 제1회에서는 이름을 내지 않고 뒤에 남았다가 독립운동을 계획하기로 한다고 말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닌가
.

나는 그 취조를 받을 때 병을 앓고 있는 때이므로 신문당하는 것이 귀찮아서 묻는대로 그렇다, 그렇다 하면서 답했지만 실제는 오늘 말한 것이 그대로이다
.

피고는 李昇薰으로부터 교섭을 받고 독립청원을 위해 東京으로 갈 것을 일단 책임맡은 것이 틀림없는가
.

李昇薰이 그 교섭을 하러 왔을 때 나는 내가 갔으면 좋겠는데 하고 말했으며, 뒤에 林圭가 동경에 가는 것을 듣고 동인을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으므로 일단 그 일을 맡은 것이 되었다
.

咸台永은 피고에게 독립운동의 일을 교섭하니 피고는 좋다면서 찬성한다고 말했다는데 어떤가
.

나는 조선의 독립운동 때문에 총독부에 청원을 하겠다고 하는 일은 찬성했지만 뒤에 와서 독립선언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 운동에는 가담안하기로 한 것이다
.

피고는 청원서의 원고를 제시한 일이 있는가
.

청원서 원고를 제시한 일은 없지만 咸台永으로부터 독립선언서의 원고를 제시받은 일이 있다
.

선언서에 이름을 낸 자들이 체포당한 뒤 피고는 어떤 행동을 했는가
.

나는 조선의 독립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그렇지 않으며 독립운동에 대해 획책하고 있지 않은가
.

그런 일은 없다
.

피고는 야소교 사회에서 명망가이므로 李昇薰, 咸台永 등이 피고에게 참가해 줄 것을 요구해 왔는가
.

그것은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르겠다
.

피고를 독립운동에서 야소교측의 수령으로 하기 위해 李昇薰 등이 참가하도록 요구해 오지 않았는가
.

야소교를 믿는 자는 겸손한 마음이 없어서는 안된다. 내가 명망이 있다든가 경력이 있다든가 나를 수령으로 할 목적으로 참가를 요구해 왔을 것이다 하는 말을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
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尾田滿
위 통역생에게 읽게 하였더니 이를 승인하고 서명날인하다.

京城地方法院
서기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磯村仁兵衛
신문자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永島雄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