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햇살이 가득한 나라 스페인

천하한량 2007. 4. 5. 03:31
햇살이 가득한 나라

스페인

spain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햇살,
건강한 미소,
늦은 시간까지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가득한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다.


[저 멀리 성가족 성당이 보이는 바르셀로나 거리]
■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서■

뒤섞이고 혼돈된 것은 아름답다. 이것은 문화의 법칙이기 전에 자연의 법칙이다. 아름다운 인자를 우성 유전으로 물려가는 혼종의 아름다움은 인간사회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혼혈 미인의 묘한 아름다움에 쉽게 매혹당하는 사람의 경우도 그렇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삶의 양식이다. 삶은 침윤당하고, 섞이고,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그 미적 양식을 체득해 가며, 완성한다.
유럽에서도 가장 어지러운 나라는 단연 터키와 스페인이다. 터키는 유럽에 속하고 싶어하는 자국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에게는 비유럽권으로 분류된다. 예전엔 그리스 로마의 문화권이었고, 이후엔 기독교의 발생지였고, 그리곤 이슬람의 성지가 되어버린 터키. 터키 곳곳엔 어지럽게 로마의 유적지와 그 위를 휘감고 있는 장엄한 이슬람의 생활양식이 마구 뒤섞여 있다.
그렇다면 스페인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스페인은 아프리카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슬람의 문화권역이었으며, 동시에 유럽을 지키는 기독교의 성벽이었다. 스페인 곳곳에 위치한 궁전과 성당은 지배자의 종교적 기호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내부공사를 하였다. 그 결과 대단히 이국적인, 혹은 성당처럼 보이지 않는 성당들이 만들어졌다. 이 묘한 혼혈문화의 매력이 바로 스페인을 감싸고 있는 강렬한 느낌이다.

[바르셀로나 항구를 그려 놓은 그림, 동상은 콜럼버스의 것이다.]
■ 왜 소매치기는 관광객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는가? ■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배낭여행객들을 만났지만, 스페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너무 아름다웠다는 사람들과 소매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 그렇다. 스페인에는 소매치기가 많다. 일명 집시라고 불리는 소매치기들이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린다. 하지만 꼭 스페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관광 쪽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집시들은 주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그리곤 집시답게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3개월 마다 이동을 한다고 한다. 그분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 지역 경찰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면 바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소매치기와의 전쟁을 벌려 많은 집시들이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묵었던 민박집에서 총 7팀의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그중 4팀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중 한 학생의 일화는 그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한다는 남학생인 김은 고가의 DSLR급 디지털 카메라를 소유하고 다녔다. 하지만 백팩에 지퍼 잠금장치(여행객들은 지퍼에 조그만 자물쇠를 달아 다른 사람이 함부로 열 수 없도록 한다)도 하지 않고 넣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위험하지 않냐고, 조심하라고 충고를 했다. 김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아, 형 괜찮아요. 이거 워낙 무게가 나가서 가방에서 빠지면 금방 알 수 있거든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음날 그가 멋진 사진을 찍었다면 기쁜 얼굴로 민박집으로 들어왔다. 사진 한 번 보자고 졸라대자 그는 백팩을 풀러 지퍼를 열었는데, 그곳에는 카메라와 비슷한 크기와 무게를 지닌 돌덩이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놀라 자빠졌다.

하지만 약간의 대비만 하면 소매치기는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우선 지갑은 자신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한 속주머니에 넣고 가방의 지퍼엔 조그만 자물쇠로 안전장치를 하면 웬만한 소매치기는 예방할 수 있다. 솔직히 소매치기보다 무서운 것이 한국의 퍽치기 아닌가? 집시가 기껏 쳐봤자 소매(?)지만, 한국의 그분들은 뒤통수를 퍽(?)치지 않는가?
여행의 추억을 고이 간직해 줄 수 있는 약간의 안전장비와 여유 있는 마음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스페인을 즐길 모든 준비를 다 한 셈이다. 자, 스페인으로 가자!

[해가 진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그림처럼 화려한 원색으로 바뀐다.]
■ 건축의 성자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

바르셀로나하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하’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이미 익숙한 이름이 된 스페인 최고의 명문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있는 곳, 그 귀여운 표정의 호나우딩요가 이 팀의 스트라이커이다. 그리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곳이기 때문이다. 분명 스포츠팬에게 바르셀로나는 즐길 수 있는 멋진 도시이다. 하지만 당신이 약간이라도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이곳 바르셀로나는 지독한 환상의 도시이다. 바로 가우디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야 1852.6.25~1926.6.10)는 스페인 남부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한 건축가이다. 그는 직선으로 대표되는 건축 양식에서 탈피해 곡선이 가득한 건물들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을 위해 바르셀로나 곳곳에 10개의 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작인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다 전차에 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노부모를 모시며 조카와 살았다고 한다. 평소 허름한 복장으로 다니며 성당 건축에 매진하던 말년에 그는 평소의 신념―모든 길은 보행자 우선이다―을 따르며 길을 걷다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의 허름한 복장 때문에 처음엔 걸인으로 오해를 받았으나 택시 기사들이 곧 그를 알아보고 5대의 택시에 실려―이건 그쪽 가이드의 말이다. 아마 한대는 그를 싣고, 다른 네 대는 주위를 호위하지 않았을까 한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 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카사 바트로의 모습. 지중해를 표현한 건물 답게 햇살에 따라 색이 변한다.]
■ 카사 바트로(Casa Batllo), 미치도록 혼란스럽고 아름다운 건물 ■

실제로 그의 건축물을 보기 전에 가우디는 그냥 나와는 관계가 먼 건축가일 따름이었다. 적어도 그의 건물 카사 바트로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유명한 건물 카사 밀라, 카사 바트로가 있는(이 두 건물은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라시아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넓게 뚫린 도로와 주변에 가득한 이국적인 가게들에 매혹되어 이미 가우디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문득 가우디의 건물이 여기 어디 있다는 생각에 가이드북에 실린 건물의 번지수를 확인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내가 바로 카사 바트로의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카사 바트로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뼈 형상의 기둥이 가득한 외벽, 그리고 푸른색 타일 조각 때문에 지중해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외관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만약 당신이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의 이 멋진 카사 바트로를 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분명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지 간에 그 이상의 일’이 될 것이다. 난 가우디의 그 아름다움에 반해 일주일 동안 바르셀로나에 있으면서 5번이나 이 그라시아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그의 건축물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로를 바라보았다. 특히 카사 바트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시간과 빛의 양의 따라 자신의 모습이 변화시키는 카멜레온 같았다. 놀라운 자연 경관 앞에서 넋을 잃고 앉아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 매혹되어 그렇게 앉아 있어 본 적은 고백컨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카사 바트로 건물 앞에는 친절하게 벤치가 놓여져 있다.

[카사밀라의 모습]

[활기에 넘치는 스페인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