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는 의(義)를 위하여 죽는다
유응부(兪應孚), 저 쓸모없는 선비에게 물어보라.
1) 왕을 족하(足下) 라고 부르며 친국장을 압도한 무인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고 세조의 친국(親鞫)에 대 놓고 세조를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고 부른 사람이 성삼문과 박팽년이며, 여기 족하라고 부르며 비아냥 대 세조의 화를 끝까지 돋운
인물이 바로 유응부 이다.
세조 : “너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였느냐?”
벽량 : “명나라 사신을 초청 연회하는 날에 내가 한 자루 칼로써 족하(足下: 같은 나이 또
래의 상대방 또는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세조를 가리켜 부른 말)를 죽여
폐위시키고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고 하였으나, 불행히 간사한 놈(김질을 가리
킴)에게 고발을 당하였으니 응부는 다시 무슨 말을 하겠소. 족하는 빨리 나를
죽여주오.”
세조 : “너는 상왕(단종)을 복위시킨다는 명분을 핑계하고서 사직(社稷)을 도모하려고
한 짓이지.”
즉시 무사를 시켜 살가죽을 벗기게 하고서 그 정상(情狀)을 신문하였으나 유응부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복(自服)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삼문 등을 돌아보면서
벽량 : “사람들이 서생과는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지난번
사신을 초청 연회하던 날, 내가 칼을 사용하려고 하였는데, 그대들이 굳이 말리면
서 ‘만전의 계책이 아니오’ 하더니, 오늘의 화를 초래하고야 말았구나. 그대들처
럼 꾀와 수단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만약, 이 사실 밖의 일을 묻고자 한다면 저 쓸모 없는 선비에게 물어보라.”
세조를 향하여 대답하고는, 그는 입을 닫고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세조는 더욱 성이 나서 달군 쇠를 가져와서 그의 배 밑을 지지게 하니 기름과 불이 함께 이글이글 타올랐으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달군 쇠가 식기를 기다려 그 쇠를 집어 땅에 던지면서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 하고는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
성삼문이 세조의 극악한 친국을 받으면서도 인두가 식었다고 “다시 달구어 오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 독하구나” 하고 외쳤던 것처럼 유응부 또한 더욱 당당하였으니 어찌 우리 같은 범인이 우러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춘추(春秋)에 일암(日暗)하고 전국(戰國)에 운요(雲擾)한이
만고장야(萬古長夜)는 언어 때예 밝아질꼬
어줍어 대명중천(大明中天)을 다시 볼까 하노라
해일(海ㅡ) 356
2) 천추의 한을 안고 죽은 유응부
유응부(兪應孚) <?∼1456(세조 2)>.
단종을 위하여 사절(死節)한 사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기계(杞溪, 혹은 川寧).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 포천출신.
일찍이 무과에 올라 1448년(세종 30)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고, 1449년에는
경원도호부사·경원절제사를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의주목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1453년에는 평안좌도도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55년 4월에 판강계도호부사를 거쳐, 이해 윤6월에 세조가 즉위한 뒤,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복위를 모의할 때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청 연회하는 날에 거사하기로 하고, 유응부와 성승(成勝:성삼문의 아버지) 등을 별운검(別雲劒: 2품 이상의 武官이 칼을 차고서 임금 옆에서 호위하던 임시 벼슬)으로 선정하여 그 자리에서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다시 세우기로 계획을 세웠다.
세조의 명운이 길었든지 왕은 운검(雲劒)을 제폐(除廢)하도록 명령하였고, 세자도 질병 때문에 왕을 따라 연회장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유응부는 그래도 거사하려고 하니 성삼문과 박팽년은 굳이 말리기를 “지금 세자가 경복궁에
있고, 공(公)의 운검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만약, 이곳 창덕궁에서 거사하더라도, 혹시 세자가 변고를 듣고서 경복궁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온다면 일의 성패를 알 수가 없으니 뒷날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그는 “이런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은데, 만약
늦춘다면 누설될까 염려가 되오. 지금 세자는 비록 이곳에 오지 않았지만, 왕의 우익(羽翼:보좌하는 신하)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오늘 이들을 모두 죽이고 단종을 호위하고서 호령한다면 천재일시(千載一時)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니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오.” 하였으나, 성삼문과 박팽년은 만전의 계책이 아니라고 하면서 굳이 말려서 일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간밤의 부든 바람 눈셔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다 기우러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퓐 곳치야 일너 무엇 하리오
병가(甁歌) 66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집이 가난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하는 준비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사생활은 지극히 청렴하여 벼슬이 재상급(宰相級)의 2품 관직에 있으면서도 거적자리로 방문을 가리웠고 고기 없는 밥을 먹었으며, 때로는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니 처자가 이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그가 죽던 날에는 그 아내가 울면서 길가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살아서도 남에게 의지함이 없었는데
죽을 때는 큰 화를 입었구나.”고 하였다.
두십유(杜拾遺)의 충군애국이 일월로 쟁광할로다
간관 검각(劒閣)에 뜻둘듸 젼혀 업서
어즈버 무한단충(無限丹衷)을 일부시(詩)에 부치도다
남파
남효온(南孝溫)이 《추강집》의 〈육신전 六臣傳〉을 지으면서 단종복위의 거사 주모역은 성삼문·박팽년이고, 행동책은 유응부이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이 한 일을 삼주역(三主役)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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