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은 지금 조선 중기 때 신사임당·허난설헌 등과 함께 여류시인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임벽당 의성김씨에 대한
재조명 작업 준비가 한창입니다.
임벽당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등과 어깨를 겨루는
당대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요,
그래서 이번 재조명 작업이 그만큼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임벽당 의성김씨는 1492년 부여에서 태어나
당시 비인현 도화동 그러니까 지금의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 살았던
부군인 진사 유여주 공에게 시집을 오게 되어
서천과 인연을 맺게 된거죠.
이 곳에 시집 온 임벽당 의성김씨는 남당리 인근에
임벽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글을 즐기며 지내길 좋아했다는데요,
그래서 그녀의 호도 정자 이름을 따 임벽당이라고 지은 것이죠.
오늘날 조선중기 3대여류시인을 임벽당, 사임당, 난설헌 등을
들고 있는데 이중 시상, 구성, 집중력 등 작품수준은
임벽당을 으뜸으로 삼을만큼 유명합니다.
특히 임벽당은 중국 전수제가 편찬한 열조시집(列朝詩集)과
국내명호시집 등에 실릴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겨
당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역사인물평에는 임벽당을 지목해
‘공시선서(工詩善書)’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글과 시를 잘 썼다고 합니다.
지금 서천에는 임벽당 터 인근에
당시 임벽당 부부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고요,
임벽당 정자 초석은 인근 청절사라는 절의
삼문기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임벽당 내외 묘소와 그녀가 쓴 글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명필로 이름난 그녀의 글들과
직접적인 유물들이 17세기까지는 잘 전해 내려왔으나
지금은 단 한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에 군 차원에서 그녀의 업적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예산을 들여
임벽당 정자와 당시 주변 경관을 복구 할 예정이고요,
종중과 함께 충남도에 건의해
지역 문화재로 승격시키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 내 일부 뜻 있는 사람들과 단체도
이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사업 추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임벽당 정자사업이
본격괘도에 오르면 군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다양한 관광사업과 더불어
한층 빛이 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재조명 작업 준비가 한창입니다.
임벽당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등과 어깨를 겨루는
당대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요,
그래서 이번 재조명 작업이 그만큼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임벽당 의성김씨는 1492년 부여에서 태어나
당시 비인현 도화동 그러니까 지금의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 살았던
부군인 진사 유여주 공에게 시집을 오게 되어
서천과 인연을 맺게 된거죠.
이 곳에 시집 온 임벽당 의성김씨는 남당리 인근에
임벽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글을 즐기며 지내길 좋아했다는데요,
그래서 그녀의 호도 정자 이름을 따 임벽당이라고 지은 것이죠.
오늘날 조선중기 3대여류시인을 임벽당, 사임당, 난설헌 등을
들고 있는데 이중 시상, 구성, 집중력 등 작품수준은
임벽당을 으뜸으로 삼을만큼 유명합니다.
특히 임벽당은 중국 전수제가 편찬한 열조시집(列朝詩集)과
국내명호시집 등에 실릴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겨
당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역사인물평에는 임벽당을 지목해
‘공시선서(工詩善書)’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글과 시를 잘 썼다고 합니다.
지금 서천에는 임벽당 터 인근에
당시 임벽당 부부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고요,
임벽당 정자 초석은 인근 청절사라는 절의
삼문기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임벽당 내외 묘소와 그녀가 쓴 글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명필로 이름난 그녀의 글들과
직접적인 유물들이 17세기까지는 잘 전해 내려왔으나
지금은 단 한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에 군 차원에서 그녀의 업적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예산을 들여
임벽당 정자와 당시 주변 경관을 복구 할 예정이고요,
종중과 함께 충남도에 건의해
지역 문화재로 승격시키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 내 일부 뜻 있는 사람들과 단체도
이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사업 추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임벽당 정자사업이
본격괘도에 오르면 군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다양한 관광사업과 더불어
한층 빛이 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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