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역사상 나라가 망할 때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 수천명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족처럼 6형제 일가족 40여 명이 한 마음으로 결의하고
나라를 떠난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우당의 형제는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의 절의는 참으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월남 이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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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선생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1867~1932) 선생과 그의 형 건영,석영,철영, 동생 시영(대한민국 초대 부통령),호영의 가족들로 모두 40여명에 달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선조 때의 명신(名臣) 이항복(李恒福)의 후예이다.
1920년대 북경에 있던 이회영 선생의 집은 북경을 거쳐가는 독립운동가들의 사랑방이었다.
김규식,신채호,김창숙,안창호,조소앙,박용만,김두봉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소년 시절의 심훈도 그의 집을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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